2005년 영화이니 나온지 꽤 된 영화이다.
평소에 이런 류의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닌데 이번에 이 영화를 봐야할 일이 있어서 일부러 찾아서 보게 되었다.
내용을 약간은 알고 보기 시작했지만 막상 보고 있자니 소름이 끼친다.
개인적으로 이건 너무나 가능한, 멀지 않은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내게 있어 더 이상 '미래공상과학, 그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제복의 사람들.
아침 기상과 함께 자동적으로 건강 체크가 이루어지고 주의 사항이 전달된다.
그 사람의 건강 상태를 최대한으로 고려한 식단이 짜여져 배급되고, 주어진 스케쥴에 따라 맡겨진 일에 종사하게 된다.
이들은 오염으로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 (이라고 믿고 있는).

제목의 '아일랜드'란 이들이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는 어떤 곳을 뜻하는데 매주 추첨을 통해서 몇 명을 뽑아 그곳으로 갈 기회가 주어진다. 뽑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게 되며, 뽑히지 않은 사람들은 다음 추첨의 기회를 기다리며 그곳으로 가게 될 날을 고대하게 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사실은, 이들은 인간의 장기에 질병이 생겼을 경우 그것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져 보관, 관리되고 있는 클론들이고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이것을 사업으로 삼고 있는 회사의 거대 배양소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이 회사에 돈을 내고 고객이 된 인간들, 즉 원본 인간의 장기에 문제가 생기면 그 원본 인간의 클론이 발탁되어 그 장기를 제공하기 위해 사용되게 되는 것인데, 그것을 이 클론들은 추첨에 뽑혀 아일랜드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원본인간과 복제인간이라.
원본과 복사본처럼 원본'인간'과 복제'인간'이라는 말이 우선 충격이다.

 

 

 

 

 

 

 

 

 

 

 

 아래 모습은 자신들이 지내던 곳을 탈출하여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나온 두 클론 (이완 맥그리거와 스칼렌 요한슨)이 우연히 도시의 어떤 상점 쇼윈도에서 자기의 원본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고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단순히 생명공학 분야의 큰 이슈인 복제인간에 대한 문제를 그린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맞는 말이지만, 그것의 의미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감하고 있을지.

우리의 생명공학 기술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 이미 남편 없이 여자 혼자 정자를 골라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대이고 그런 회사들은 미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운영되어 왔다. 

생명공학의 발전이 인간의 질병 치료와 예방에 기여하는 바에 대해서는 두말 할 필요도 없으나, 이것이 어떤 비즈니스와 연결되고 회사의 이윤 추구라는 목적과 결부되면 이 영화에서처럼 복제인간 비즈니스라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이것은 분명히 인류의 불행을 스스로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현재 인간의 대체 장기를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연구 방법들이 개발, 수행되고 있고, 줄기 세포를 이용하여 새로운 조직으로 분화시켜 인체 특정 부위를 재생하는 방법들이 여러 나라에서 경쟁적으로 연구되고 있는데, 인간에게 해가 될 것이냐 득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은 정말 아슬아슬한 경계면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이런 영화를 보며 다시 한번 머리가 아닌 눈으로 확인을 하고 있자니 소름이 끼칠 수 밖에. 

이런 시대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한발짝씩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보기보다 복잡한 영화이다. 이 감독 혹시 천재 아냐? 다 보고 나서 이런 생각도 했을 정도로. 영화에서 원본인간과 복제인간이 서로 적도 되었다가 동지도 되었다가 하면서 한판 대결을 하는 모습은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장면이었다.

언젠가 읽은 아래 책 '기억전달자'는 같은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소인 (유전적 소인)에 따라 나라에서 그 사람의 임무, 또는 직업을 정해주어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하고, 병이 들거나 수명을 다하게 되면 조용히 처리되는 방식등, 미래에 대한 가능한 한 모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보며 문득 떠올렸던 책이다. 

 

 

 

 

 

 

 

 

  

 

 

인터넷 과학신문 Science Times에 실린 영화 <아일랜드>에 관한 기사를 보고 싶으면 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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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4-09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OCN에서 봤는데 정말 끔찍하더라구요.

hnine 2010-04-10 00:08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도 이 영화 보셨군요.
위에도 썼지만 이런 시대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한발짝 한발짝 우리도 모르는 새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 전 그것이 소름끼쳤어요.

카스피 2010-04-09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제인간도 심하지만 제 3세계 어린이들 장기 매매하는 현실은 더 끔직하지요 ㅜ.ㅜ

hnine 2010-04-10 00:10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일도 하는 인간들인데 위의 일은 더 쉽게 하겠군요.
살아있는 생명체 혹은 생명체의 일부를 어떻게 '매매'를 할수가 있는건지.

같은하늘 2010-04-10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비디오로 빌려보고 OCN에서도 보고 두번이나 봤는데...
생각하면 섬찟해요.

hnine 2010-04-10 05:19   좋아요 0 | URL
두번이나 보셨군요.
기술이 발달해갈수록 생명공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도 이 세상에 생명만큼 존귀한 것은 없다는 생명 존중 사상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껴요.

2010-04-10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4-10 09:33   좋아요 0 | URL
그래요? 적어 놓았다가 한번 봐야겠어요. 섬찟하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지 찾아볼께요.

2010-04-11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4-12 11:18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안그래도 지난 번에 댓글 달아주신 것 보고 얼른 가서 검색 해보았더니 그런 것 같더라고요 ^^

마노아 2010-04-1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 월광천녀를 추천해요. 이 영화보다 먼저 나온 책인데 설정이 거의 비슷해요. 좀 더 절절하지만요. 제목이 너무 소녀틱하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아요.^^ㅎㅎ

hnine 2010-04-12 11:20   좋아요 0 | URL
제가 몰라서 그렇지 이런 비슷한 내용의 소설이나 영화, 만화 등이 많이 나와있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해놓았다가 꼭 봐야겠어요.
 

 

아침에 늦게 일어난 것도 아닌데
꾸물꾸물 거린다.
눈은 뜬 채로 이불 위에 누워 딩굴딩굴,
그래, 어른도 아침에 눈 뜨면 바로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 많아,
잔소리 꾹 참고 아침 상을 차린다. 


있는 밥 데우고, 있는 국 데우고,
뱅어포만 두장 꺼내어 새로 구웠다. 기름에 볶다가 설탕 반 숟가락, 꿀 반 숟가락 두르고 끝.
김과 김치는 필수. 

그러고서 상을 둘러보니 단백질이 부실.
계란 꺼내어 프라이한다. 

"밥 먹어라~"
남편은 얼른 식탁에 앉아서 먹기 시작하건만
딩굴딩굴하던 아이는 꿈쩍도 안한다.
몇번 더 부른다.
"다린아, 밥 먹어라~"
그래도 꿈쩍도 안한다. 

이제 더 먹으라고 부르지 않기로 한다.
결국 남편만 식사를 마치고서 상을 다 치웠다.
식탁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것을 보고 아이는 잔뜩 부어서 혼자 학교로 가고
(평상시에는 아빠와 함께 나간다),
나는 설겆이를 한다.

12시나 되어야 점심을 먹을텐데
물 한모금 안 먹고 나간 아이.
반찬은 별것 없어도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차린 밥상인데...  

사진 올리며 마음을 달래보려고.

 



 

 

 

 

 

  








 

 

 



 

 

 

 

  

 

 

 내일부터는 아침에 꾸물거리지 않고 바로 밥을 먹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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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4-09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깔끔하게, 맛깔스럽게 차리셨네요. 전 김은 그냥 반찬통에 담은 채로....
다린이 내일은 씩씩하게 일어나서 한그릇 다 먹을 거예요.
가끔은 강한 엄마 모습도 필요하지요.
그리고 다린이 금방 잊어버릴 거예요. 넘 속상해 하지 마세요!
전 오늘 조퇴하고 대천 갑니다. 엄마, 아버지 모시고, 언니랑 함께 1박 2일 일정으로.
아이들 생각하면 많이 미안하고, 옆지기도 내켜하지 않지만(내일 새벽같이 출근하거든요)
그래서 심난한데 부모님 입장 생각하면서 가기로 했습니다.

hnine 2010-04-09 08:38   좋아요 0 | URL
세실님, 역시 엄마 마음은 엄마가 알아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대천 다녀오신다고요.
자식도 자식이지만 앞으로 함께 지낼 시간이 훨씬 짧은 부모님. 1박 2일 여행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실까요. 아마 며칠 전 부터 이미 행복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세실님은 정말 좋은 따님이세요. 저는 오늘 아침에도 엄마 전화 받으며 바쁘다는 핑계로 간단히 대답만 하고 끊었는데요.
잘 다녀오세요~ ^^

turnleft 2010-04-09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
저라면 저 밥을 먹고 차라리 학교에 늦을텐데 말이죠 ㅠ_ㅠ

hnine 2010-04-09 13:11   좋아요 0 | URL
학교에 늦지도 않았는데 안먹고 가더라고요.
아침 먹으라고 더 권할 줄 알았는데 싹 치웠더니 화가 난거죠.
아무래도 아이가 제 엄마 닮아서 성질이 좀 있는것 같아요 ^^

상미 2010-04-09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상차려놨는데, 안먹으면 화날거 같아.
다린이가 아침에 입맛이 없나보다.
애들이 밥을 푹푹 잘 먹어줘서 내가 일찍 출근 할 수 있는거 같아.
경은이는 고기만 있으면 한그릇 뚝딱~~

hnine 2010-04-09 13:11   좋아요 0 | URL
너는 그런 경험 없나보다...정말 기운 빠진단다.

상미 2010-04-09 21:0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울 신랑은 반찬이 먹을게 많아도 국이 꼭 있어야 되지.
꼭 그런 날은 무슨 시위하는거 처럼 밥에 물말아 먹는단다.
얼마나 얄미운데...

hnine 2010-04-10 05:25   좋아요 0 | URL
ㅋㅋ 우리 나라 남자들이 대개 그렇지, 국이 있어야 제대로 된 밥상이 되는.
그러면서 물어보면 자긴 안 그렇다고 그래요 꼭.

stella.K 2010-04-09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갈한 밥상이로군요.
가끔 아이들도 자기 마음을 자기가 모를 때가 있어요.
밥상 차리면 막상 먹을 맘이 없는데, 치우면 섭섭한 거.
울 엄마 같으면 신경도 안 써요. 그러거나 말거나. 울엄마도 참...ㅋ

hnine 2010-04-09 13:13   좋아요 0 | URL
아침엔 잔뜩 차려봤자 여유있게 먹을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단촐하게 차리거든요.
stella님 댓글 보고 알았어요. 막상 먹을 맘이 없어도 치우면 섭섭하다는거. 정말 그렇겠네요.

카스피 2010-04-09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일찍 공부하러 가는 아이들이 뭔 밥맛이 있겠어요.그냥 간단히 죽이나 누릉밥을 해주세요.그냥 훌훌 마시고 갈수 있게요^^

hnine 2010-04-10 00:11   좋아요 0 | URL
그럴 수도 있겠네요. 훌훌 마시고 갈 수 있는 것이면 좋을텐데 엄마 마음이라는게 참, 하나라도 더 챙겨먹이고 싶은 욕심이지요.

같은하늘 2010-04-10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봤어요. 아이가 하도 늦장을 부리길래 평소엔 도와주었는데 버릇될 것 같아 그냥 두었지요. 결국 시간이 없어서 밥 못먹고 학교 갔어요. 그런데 늦장 부리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더군요.ㅜㅜ

hnine 2010-04-10 09:36   좋아요 0 | URL
어제 속은 좀 상했지만 전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나갈 것 같아요.
제가 좀 못된 엄마인가요? ^^
 

 

 

나는 오늘 생각할 시간이 있다. 

 

오늘 내가 누리는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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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0-04-07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순수하게 100% 나만을 위한 간편하고 표 안나는 사치네요.

hnine 2010-04-07 17:06   좋아요 0 | URL
좀 역설적인 의미도 될 수 있을텐데, 시간이 없으면 이런 저런 생각도 할 틈이 없으니 고민도 없어요. 때로 제가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때가 있거든요. 그런 고민할 여유가 있다는 것 자체가 더 절박한 상황을 살아내는 사람들에 비하면 사치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에서 나온 끄적거림이랍니다.

같은하늘 2010-04-08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들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전 왜 그런 시간이 없었을까요? 도대체 난 무슨일로 이리도 바쁠까? ㅜㅜ

hnine 2010-04-08 05:25   좋아요 0 | URL
저 글을 썼을 때에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도 일종의 사치일 수 있겠다는, 자기 반성 모드였어요.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때론 안해도 될 생각까지 하게 될 때가 있어서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할 정도면 딱 좋을 것 같아요.

2010-04-08 0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8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름끈 2010-04-08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장욱,『고백의 제왕』단행본 창비에서 나왔더라구요~WOW

hnine 2010-04-08 17:32   좋아요 0 | URL
고민되네요. 1회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살까, 고백의 제왕을 살까...

비로그인 2010-05-10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좀 그려보고, 음악 듣다가 잠시 멈추어 몇번이나 읽고 갑니다.. hnine 님..

hnine 2010-05-11 13:34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 바람결님 올려주신 음악 들으며 준비했답니다.
잘 듣고 나갑니다 라고 한줄 인사라도 남긴다는 것이 그만 잊고 말았네요.
한동안 글도 음악도 마음에 잘 안 들어오고 있었는데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그럴거라고 바람결님께서 말씀해주셨었지요? ^^
 
<침묵의 시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읽기에 앞서 책 표지에 필기체로 쓰여져 있는 글씨부터 눈에 들어왔다.
Love, Christian, is a warm bearing wave.
나중에 보니 이 문장은 슈텔라가 크리스티안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내용이었다.
크리스티안, 사랑은 따스함을 머금은 물결이야. (144쪽)
고등학생 크리스티안과 그의 학교 영어 선생님인 슈텔라 사이의 짧은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을 80대의 노장 소설가가 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투명하며 감정으로부터 절제되어 있다.
크리스티안은 그 당시 슈텔라에게 느끼는 자기의 감정을 과장하지도, 축소시켜 억누르지도 않고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동하지만 그것은 결코 일방적으로 불붙는 모습의 사랑이 아니었다. 슈텔라 역시 크리스티안으로부터 느끼는 감정을 억누르고 물리치려 애쓰기 보다는 그대로 반응한다. 이럴 수 있을까 싶었다. 그들의 사랑이 앞으로 어떻게 겉잡을 수 없이 갈 것인가, 고뇌하며 괴로와하지 않고 솔직한 감정을 주고 받는 단계까지 진행될 시간만이 주어졌기 때문이었을까?
슈텔라가 크리스티안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저 짧은 편지 내용처럼, 그들의 사랑은 뜨겁기 보다는 따스함을 머금은, 거센 파도라기 보다는 잔잔한 물결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주위에 떠벌리고 싶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그들만의 영역 속에 침묵으로 머물고 지키고 싶은 사랑이었는데 남들에게 누설하는 순간 내게 전부였던 것이 단번에  사라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153쪽) 생각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그들의 사랑에 종지부가 찍어진 후 크리스티안은 생각한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고 싶지도, 있을 수도 없었다. 내게 남은 유일한 소망은 혼자 있는 것이었다. (153쪽)
혼자 있고 싶은 순간, 혼자 알고 싶은 일, 혼자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정말 소중하고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침묵의 시간 속에 넣어두기.
학생과 선생님 사이의 사랑이라는 주제도 전혀 흥미를 자아내지 않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것보다 더 이 책에서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나 싶다.
더불어,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이러한 사랑에 대한 소설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이 책과 함께 남을 감상이 될 것이다.
담백하고 절제된 이야기의 흐름이기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재미는 덜한 감이 있다는 점도 솔직하게 얘기하고 넘어가자. 별이 네개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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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6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4-06 23:55   좋아요 0 | URL
"쟤는 통 말이 없어요." 전 늘 그런 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하마트면 이 책의 '침묵'을 그런 말없음과 착각할 뻔 했어요. 의사 표현을 잘 못하는 말없음이 제 경우였다면 이 책의 침묵은 목적과 의도가 분명한 침묵이었지요.
남도의 봄을 보고 오셨다는 말씀에 왜 제가 다녀온 것처럼 마음이 화사해지는지 모르겠네요.

2010-04-06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7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학에 들어가자 신입생이 읽어야 할 책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던 책 중 하나가 이 문열의 <사람의 아들>이었다. 내가 처음 읽은 것은 <젊은 날의 초상>. 그 다음 <사람의 아들>로 이어져서 이후로 학교 도서관에 있는 그의 소설들은 아마 거의 다 찾아서 읽고, 없는 것은 사서도 읽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한 작가의 작품을 이렇게 많이 읽은 적이 없었다. 이 목록을 만들면서 보니, 지금도 기억이 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은 어떤 내용이었더라 가물가물하니, 세월이 참 많이 흐르긴 흘렀다.
나에게 그는 여전히 문학적으로 진지하고 자기 세계가 있는, 좋은 '작가'인데, 작가로서가 아닌 다른 면으로 더 세상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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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초상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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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이 책을 읽고서 이 작가에게 꽂히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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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이문열 지음 / 나남출판 / 198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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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4-06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우리 20대 때 이 사람 소설 한 권쯤 안 읽은 사람이 있었나요?
대단했죠.^^

hnine 2010-04-06 17:25   좋아요 1 | URL
제 친구 하나는 '젊은 날의 초상'인지 '사람의 아들'인지를 다 읽더니 소문에 비해서 너무 별로라고 하는 것을 듣고서 겉으로 표시는 안 했지만 저 혼자 그 친구에 대한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데 시간 좀 걸렸지요 ㅋㅋ

stella.K 2010-04-06 22:02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사실 이문열이 지금이야 그럴수도 있다지만
그 시절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인 것 같아요.
그 친구분이 문학을 보는 눈이 좀 앞섰을까요?
하긴, 남들은 다 좋다는데 나 혼자만 별로라고 부득부득 우기고 싶은 사람
꼭 하나쯤은 있어요. 그죠? 나는 누가 있었더라...?ㅋ

hnine 2010-04-07 00:18   좋아요 1 | URL
글쎄요, 저와 지금까지도 아주 친하게 지내는 친구인데, 문학을 보는 눈이 앞서서라기 보다, 한마디로 지루했대요 ㅋㅋ

춤추는인생. 2010-04-06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저두요 나인님 요즘 이문열을 좋아한다고 하면,편견에 치우쳐 보는 시각이 부담스러워요.. 그의 책임도 없진 않지요. 작가는 작가로서 그자리를 지켜야 한다는것이 독자에 대한 책임 아닌가 싶어요. 전 젊은날의 초상. 참 좋아했어요.^^

hnine 2010-04-06 20:09   좋아요 1 | URL
본인은 아마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작가이기 때문에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지금도 <젊은 날의 초상>을 생각하면, 젊음의 한때가 누구에겐가는 특권이라기 보다는 힘겹게 넘어야 할 고비가 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순오기 2010-04-06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한때 좋아했죠. 황제를 위하여 2도 있는데 목록에 빠졌어요.^^
일곱 권 읽었네요~ 40이 넘어서 초등동창회를 시작하고 일게 된 '아가'는 우리들 이야기처럼 찡하게 울렸어요. 옛날엔 마을마다 그런 반편이가 있었거든요.

hnine 2010-04-07 00:17   좋아요 1 | URL
황제를 위하여 2, 귀찮아서 그냥 생략했어요 ㅋㅋ
최근에 '불멸'이라는 소설을 낸 것으로 들었는데 아마 전집류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엄두를 못내고 있지요 ^^

같은하늘 2010-04-08 0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멸 출간과 함께 싸인회에 갈 기회가 생겼는데 결국 못가서 아쉬워 했더랬죠. 그런데 댓글들을 보니 안좋은 말을 쓰신 분들도 많더라구요.

hnine 2010-04-08 05:28   좋아요 1 | URL
그에 대해 쏟아지는 혹평들을 작가는 어떤 입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해요. 좋은 작품으로, 문학으로 그의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을 뿐. 불멸을 제가 읽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