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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읽기에 앞서 책 표지에 필기체로 쓰여져 있는 글씨부터 눈에 들어왔다.
Love, Christian, is a warm bearing wave.
나중에 보니 이 문장은 슈텔라가 크리스티안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내용이었다.
크리스티안, 사랑은 따스함을 머금은 물결이야. (144쪽)
고등학생 크리스티안과 그의 학교 영어 선생님인 슈텔라 사이의 짧은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을 80대의 노장 소설가가 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투명하며 감정으로부터 절제되어 있다.
크리스티안은 그 당시 슈텔라에게 느끼는 자기의 감정을 과장하지도, 축소시켜 억누르지도 않고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동하지만 그것은 결코 일방적으로 불붙는 모습의 사랑이 아니었다. 슈텔라 역시 크리스티안으로부터 느끼는 감정을 억누르고 물리치려 애쓰기 보다는 그대로 반응한다. 이럴 수 있을까 싶었다. 그들의 사랑이 앞으로 어떻게 겉잡을 수 없이 갈 것인가, 고뇌하며 괴로와하지 않고 솔직한 감정을 주고 받는 단계까지 진행될 시간만이 주어졌기 때문이었을까?
슈텔라가 크리스티안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저 짧은 편지 내용처럼, 그들의 사랑은 뜨겁기 보다는 따스함을 머금은, 거센 파도라기 보다는 잔잔한 물결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주위에 떠벌리고 싶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그들만의 영역 속에 침묵으로 머물고 지키고 싶은 사랑이었는데 남들에게 누설하는 순간 내게 전부였던 것이 단번에  사라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153쪽) 생각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그들의 사랑에 종지부가 찍어진 후 크리스티안은 생각한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고 싶지도, 있을 수도 없었다. 내게 남은 유일한 소망은 혼자 있는 것이었다. (153쪽)
혼자 있고 싶은 순간, 혼자 알고 싶은 일, 혼자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정말 소중하고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침묵의 시간 속에 넣어두기.
학생과 선생님 사이의 사랑이라는 주제도 전혀 흥미를 자아내지 않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것보다 더 이 책에서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나 싶다.
더불어,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이러한 사랑에 대한 소설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이 책과 함께 남을 감상이 될 것이다.
담백하고 절제된 이야기의 흐름이기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재미는 덜한 감이 있다는 점도 솔직하게 얘기하고 넘어가자. 별이 네개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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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6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4-06 23:55   좋아요 0 | URL
"쟤는 통 말이 없어요." 전 늘 그런 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하마트면 이 책의 '침묵'을 그런 말없음과 착각할 뻔 했어요. 의사 표현을 잘 못하는 말없음이 제 경우였다면 이 책의 침묵은 목적과 의도가 분명한 침묵이었지요.
남도의 봄을 보고 오셨다는 말씀에 왜 제가 다녀온 것처럼 마음이 화사해지는지 모르겠네요.

2010-04-06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7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