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작가를 위한 창작 노트 아동청소년문학도서관 5
손연자 외 지음, 신형건 엮음 / 푸른책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출판사 푸른책들에서 '아동청소년문학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시리즈 중 한권이다. 가지고 있는 책 <동화창작교실 (이 금이 저)>, <독서치료의 첫걸음 (명 창순 저)> 등에 이어, 목차를 보니 내가 읽은 책들과 아는 저자들이 필자로 나오길래, 이 책도 읽어보기로 하고 구입하였다.
미래에 아동청소년문학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 이 책의 출판 의도라고 되어 있는데 책에 수록된 작품들 대부분이 같은 출판사들에서 펴낸 것들 이었다. 140여 페이지의 얇은 분량이 3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는 작가의 창작 노트로서 이 경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이 금이 ('밤티마을'), 박 윤규 ('산왕 부루'), 손 연자 ('마사코의 질문'), 강 숙인 ('마지막 왕자'), 이 준관 ('내가 채송화처럼 조그마했을때'), 전 병호 ('들꽃 초등학교') 작가 스스로 쓴 작품 노트가 실려 있는데, 이 중 이 경혜 작가의 책을 제외한 모든 작품들은 푸른책들에서 나온 것들이다. 제2부엔 작가 편지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두 작가가 서로 편지글로 작품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 옥수 ('내사랑 사북')와 강 미 작가 ('길 위의 책'), 오 미경 ('교환 일기')과 문 영숙 작가 ('무덤 속의 그림'), 그리고 한 정기 ('플루토 결사대')와 김 하늬 작가 ('나의 아름다운 늪')가 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원래 서로 친분이 있는 작가들을 서로 연결시켜 놓은 것인지 작품 경향에 따라 연결지은 것인지, 기획자의 의도가 얼른 짐작되지 않았다. 제3부는 작가 인터뷰로서 임 태희, 백 은영, 정 은숙, 손 호경, 유 정이, 이 옥용 작가의 인터뷰 기사가 그대로 실려 있는데 모두 푸른책들에서 나온 작품을 가지고 인터뷰한 내용들이었다. 알고 보니 이 책에 실린 내용 대부분이 이 출판사의 웹진에 이미 다 실렸던 것들을 책으로 묶은 것이었다. 책의 표지나 어디에 그렇게 소개를 해놓았다면 좋았을텐데. 굳이 책으로 구입 안하고 웹진을 찾아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작가 후기 읽는 것을 책 본문 읽는 것 못지 않게 즐기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래도 과히 나쁘지는 않은 책이었지만 출판사에서 기왕 이런 제목으로 책을 낼 생각이었다면 좀 더 심도있게 기획하고 수록 작품들을 골고루 선별하여 펴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같은 시리즈물 중에 이 금이 작가의 <동화창작교실>이 꽤 잘 읽히고 독자들에게 만족을 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들 마다 어린이 책 혹은 청소년 책을 통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좀 차이가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일이라 하겠다. 동심을 서정성있게 표현하는 본분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부터,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시켜야 한다, 사회적 이슈를 담은 동화도 하나의 흐름이 되어야 한다 등등.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하고 싶지 않다.
이 경혜 작가의 '자신에게 간절한 글을 간절하게 쓰자 (17쪽)'라는 말, 그리고 이 옥용 시인의 '어린 시절은 삶의 그루터기 내지는, 보이진 않지만 삶 전체를 감싸고 있는 베일 같은 것 (139쪽)'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동화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지금 내 삶의 근원을 제공한 그루터기를 찾아보고 싶은 끌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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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7-26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책이 나왔군요.

hnine 2010-07-26 17:32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아시는 분이? ^^
 
마지막 이벤트 높새바람 24
유은실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외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많이 편찮으시더니 5학년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내가 아기였을 때 우리 집보다는 외갓집에서, 엄마보다는 외할머니 손에서 키워졌다고 하는 편이 맞는 나는 외할머니의 사랑을 무척 많이 받고 자랐는데 그런 할머니께서 죽음을 앞두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서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은 다음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누가 시원하게 대답을 좀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었다.
아이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내 아이가 어렸을 때 내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그런 질문을 내게 던진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고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전부 해결해줄 수 없겠지만 적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하면 될지 힌트를 줄 것 같아서이다.
함께 방을 쓰던 할아버지의 죽음. 이 이야기는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장례식을 스스로 '마지막 이벤트'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살아 생전 할아버지는 매우 재미있으신 분이었지만, 그리고 글의 화자인 손주 영욱이를 무척 귀여워 하셨지만, 젊으셨을 때의 부인인 할머니에게도 자식들에게도 좋은 아비와 남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할머니는 다른 분과 재혼을 하셨고 자식들에게도 그다지 존경받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 가끔 나 곧 죽을 것 같다고 온 자식들을 다 불러 모으는 어린 아이 같은 행동도 하시길 수차례, 결국 정말 돌아가실 당시엔 아무도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장례 대행사가 주관하는 요즘 우리 나라의 장례 문화, 고인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로 부터 전화 한통으로 보내지는 2-3일 용도 대형 화환, 셈이 오고 가는 부의금 등, 우리의 장례 문화의 이런 저런 구석이 손주 영욱이의 눈으로 여실 없이 보여지고 있다.
작가가 단편도 아닌 200여 쪽의 어린이 책을 쓰기 위한 것으로 이런 주제를 택했다는 것도 매우 특이한데, 너무 어둡지 않게, 어린이의 시각을 넘어서지 않고 끝 마무리까지 이야기를 무리 없이 잘 이끌어 갔다는 점은 더욱 돋보였다. 어른인 나도 전혀 예상 못하던 이야기들을 중간 중간 삽입하여 아이들 책이니 뻔한 얘기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들로 이어지지 않겠나 하며 혹시나 만만히 보았을 지도 모르는 독자들에게 다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책이 유 은실 작가의 비교적 최근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작가의 작품들을 몰아읽어본 경험으로서, 갈수록 더 좋은 작품을 내고 있는 것 같아 앞으로도 기대가 많이 된다.
책의 앞장에 '칠년 동안 많이 쓰고, 많이 응모하고, 많이 떨어지고, 많이 울었다'라는 고해 성사같은 작가 소개가 인상적이다.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꾸준히 좋은 책을 써 날 작가임을 믿는다. 

영욱이는 매사에 권위적이고 경직되어 있는 아버지와 별로 친하질 않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고모들과 엄마가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으며 영욱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을 읽으면서 (아래 인용), 아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어른이 생각하는 그것과 꼭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저 남자 알고 보면 불쌍한 남자예요. 아직도 가끔 어렸을 때 신문 배달하다 손에 동상 걸린 얘기 하면서 우는걸요. 우리 영서랑 영욱인 그런 고생 안 시킨다고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일하잖아요. 그래야 애들 끝까지 공부시키고 결혼할 때 조그만 집 하나씩 마련해 준다고." 엄마가 말했다. 아빠가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별로 고맙지가 않다. 감동하려고 노력해도 안 된다. 끝까지 공부시켜 준다는 말은 부담스럽다. 아빠가 생각하는 '끝까지'는 대학원이나 유학 같은 건데, 난 대학에 들어갈 자신도 없다. 아빠가 나중에 집을 사주면 좋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녀석'이라고 안 하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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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25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조카들과 배깔고 같이 책 보다 보면 가끔 이렇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글들이 눈에 띄곤 했습니다. 제가 막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그러는데, 제가 하도 많이 물어봐서 걔네들이 너무 귀찮아 하던 기억도 나네요 ^^.

아이들의 시각에서 이해하고 뭔가를 설명하고, 또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 참으로 힘든 것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무심결에 한 어른의, 그 하나의 행동이 아이들에겐 평생 갖고가야할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더위에 잘 지내시죠 ? hnine님 ^^

hnine 2010-07-25 20:37   좋아요 0 | URL
조카들이 아주 잘 따르는 삼촌이신가봐요. 저도 어릴 때 외삼촌을 참 좋아했었는데...
더위는 저에게 아킬레스 건이라고나 할까요. 맥을 못 춰요. 그래도 오늘 아오리 사과가 나온 것을 보고 여름도 길진 않겠구나 위안을 삼았답니다.

세실 2010-07-25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이벤트가 죽음의 의미였군요. 아이의 입장에서 비춰지는 장례 문화라니 궁금합니다. 장례식때는 아무래도 어른 위주로 진행되기에 아이들은 배제가 되지요.

님 편안한 주말 되시나요?

hnine 2010-07-25 20:39   좋아요 0 | URL
장례 절차에서는 말씀하신대로 아이들은 제외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궁금해하지요. 저는 대학 졸업하고서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도 장례 과정 중 모든 과정을 다 지켜볼 수 없었거든요.
오늘이 주말인 것도 모르면서 보냈네요 ^^
 

요 며칠 읽은 어린이책들인데, 누구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줘도 될 만한 것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중 한 사람인 Andrew Clements의 <The Jacket>
친구가 아이책으로 사주고서 자신도 재미있게 읽었다고 추천하길래 구입하여 읽어 보았다.
등교길, 저기 앞에 내 동생 옷과 똑같은 옷을 입고 가고 있는 모르는 흑인 아이가 있다. Phil은 그 아이가 자기 동생 옷을 훔쳐 입은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되어 시비를 걸어 다툼이 일어나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 아이는 Phil의 집에 도우미로 오는 할머니의 손자였고, Phil의 엄마가 그 도우미 할머니에게 손자 갖다 주라고 해서 입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Phil은 인종 문제, 그리고 편견에 대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조차 의식 못하고 있는지를 새로이 알아가게 된다. 

아이가 인종과 편견 문제를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도입하는 방식이 역시 노련한 작가 다왔다. 

 

 

  
김 시민 작가의 동시집 <아빠 얼굴이 더 빨갛다>
이 책은 최근에 알라딘에 소개된 것을 보고 읽어보려 보관함에 담아 놓았던 책이다. 시인이 직접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며 몸으로 부딪히며 쓰게 된 시(詩)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동시들은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썼나보다 짐작되는 것들이 있는가하면 이 책의 시들처럼 요즘의 어린이들 마음 속 생각들을 그대로 꺼내어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시도 있다. 학원, 성적, 시험 등의 짐을 안고 사는 요즘 어린이들의 심리와 현대의 가족 관계를 반영하는 재미있는 시들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여기에 실린 시 중 두 편이 이 속에>

   
또 한권의 동시집으로 곽 해룡 작가의 <입술 우표>를 읽었다.
이 책 역시 알라딘의 소개를 보고 메모해 두었던 책.  2010년 푸른책들에서 나왔다.
곽 해룡 시인은 1965년 생으로 2007년에 눈높이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초등학교 졸업식때 교장 선생님께서 중학교에 진학 못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시고 위로의 말을 담아 마지막 훈화를 해주신 것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시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한다는 시인의 말이 따뜻했다. 이 책의 맨 마지막에 실린 시가 제목이 된 '입술 우표'. 짐차 운전수로 일하는 아빠는 자신이 하는 일을 한통의 편지를 전달하러 전국 여기 저기 다니는 것이라고 하며 새벽에 집을 나설 때면 이마를 아이 앞에 내밀며 입술로 쪽 소리 나게 우표를 붙여달라고 한다.  역시 사랑은 마음만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몸으로, 말로 표현하는 것. 특히 아이들에게는 말이다.
위의 김 시민 작가의 시를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이런 시들이 과연 작가의 머리와 마음으로만 쓰여질 수 있는 시일까? 동시를 쓰는 데에는, 직접 아이들과 부대껴보는 작가의 체험과, 그리고 최소한 대상층이 되는 어린이들의 생활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참을성있게 관찰하는 애정과 관심이 꼭 필요하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도 하며 읽었다. 

 

어린이책을 읽는 날만이라도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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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7-24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책, 인종 편견 문제를 다루었다니 궁금하네요. 근데 원서인가요?

hnine 2010-07-24 17:10   좋아요 0 | URL
쉬운 영어로 되어 있는 원서랍니다. 제가 산 책의 표지는 저것과 좀 달라요.

순오기 2010-07-24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소개하는 님의 글에도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어요!^^

hnine 2010-07-24 19:2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

프레이야 2010-07-24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술우표, 참 다정한 표현이네요.^^
다린이랑 이렇게 동시집도 같이 읽으시군요.^^

hnine 2010-07-24 19:56   좋아요 0 | URL
ㅋㅋ...그 책은 저 혼자 오늘 도서관 가서 읽었어요. 다린이는 지금 아빠와 둘이서 빗속의 캠핑중이랍니다.
 
The Surrendered (Paperback)
Chang-Rae Lee 지음 / Riverhead Books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이 창래’ 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십여 년 전 영국의 한 대학 서점에서였다. 신간 진열대에 다른 책들과 함께 놓여 있던 책은 <A Gesture Life> 였는데, 영어로 쓰여 있는 표지의 저자 이름이 언뜻 보기에도 시각적으로 달라보였기 때문이었을까? 혹시 한국인이 아닐까 싶어 책장을 들춰 보았더니 한국에서 태어나 네 살 때 부모를 따라 이민을 간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작가라는 것이다. 신간이니 물론 하드 커버였고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에도 망설임 없이 그 책을 구입하여 읽었었다.
최근에 발간된 그의 책 <The Surrendered> 표지를 읽는 동안 자주 들여다 보았다. 어두운 바탕에 하얀 손. 그 위로 떨어지는 물줄기. 무슨 의미일까?
전체 19장으로 되어 있는 중 첫 장의 배경은 1950년 한국이다. 이제 열한 살 된 여자 아이 June이 쌍둥이 여동생 희순, 남동생 지영을 데리고 부산으로 가는 피난 열차에 타고 있는 장면이다. 폭격으로 엄마와 언니를 잃고, 아빠와 오빠는 그 전에 이미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발 디딜 틈 없는 피난 열차에서 결국 떨어지고 정신이 들어보니 여동생은 이미 죽어 있고, 남동생은 다리 한쪽을 잃고 출혈이 심해 죽어가고 있는 중. June은 이미 가망이 없음을 알고 뒤돌아 혼자 막 떠나려 하는 피난 열차에 다시 오른다. 죽은, 그리고 죽어가는 동생들을 뒤로 하고 다시 열차에 오르는 June은 이후로 한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위암 말기로 마지막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이런 배경을 두고 다음 장의 배경은 1986년 뉴욕, 전쟁 후 36년이 지난 시점이다. 남편이 죽기 전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가구점과 집을 팔고 이사 준비를 하는 June. 그의 아들은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후 행방이 묘연한 채 더 이상 연락이 안 되고 있고, June은 사람을 고용하여 아들의 행방과 함께 Hector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보도록 시킨다. Hector란 남자는 전쟁 당시 사흘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그대로 두면 죽을 수도 있던 그녀를 발견하여 고아원까지 데려다 준 사람이다. 
이 Hector 는 어떤 사람인가? 불구였던 아버지를 취한 상태로 술집에 혼자 두고 나와 옳지 못한 짓을 하고 있는 동안 아들을 기다리다 혼자 집으로 돌아오던 술 취한 아버지가 물에 빠져 죽는 일이 일어나자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여 한국 전쟁에 참전하기로 한다. 전쟁 중, 한국인 출신으로 보이는 중공군 소년병 포로를 처리하라는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공포감에 질린 소년병이 스스로 수류탄을 터뜨려 죽음을 택하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한국에 남아 전쟁고아들을 거두어 보살피는 고아원에서 잡역일을 하며 머무르게 되는데 그 고아원을 찾아가는 길에 굶주림에 죽어가는 June을 발견하여 함께 고아원으로 데리고 가게 되었던 것이다. 고아원을 책임지고 있는 미국인 목사의 부인 Sylvie는 잡역부로 일하는 Hector에게 관심과 호의를 보이고, June은 고아원의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공격적이고 과격한 행동만을 일삼는다. 이런 June과 목사 부인 Sylvie, 그리고 Hector사이에 미묘하고 뒤틀린 관계가 형성되어 가며 이야기가 전개되어 간다.
June의 고아원에서의 어린 시절과 현재, Hector의 과거와 현재, Sylvie의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등장함으로써 그들의 현재가 있기까지의 얽히고설킨 슬픈 과거가 매우 조직적이고 흥미 있게 구성되어 있다.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과거의 경험은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가. 부모 형제를 졸지에 잃고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어 극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June의 그 후의 생, 자기의 과거 잘못으로 인하여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전쟁에 참여하여 다른 사람의 목숨을 쥐었다 놓았다 하는 경험을 하고 나온 Hector의 이후의 삶, 선교사로 일하는 부모를 따라 일찍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살던 어린 Sylvie가 중국에서 일본군에 의해 처참한 모습으로 부모가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보고 난 후의 정신적 트라우마로, 목숨은 붙어 있지만 그 시점으로부터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사는 삶. 과거의 치명적인 경험은 개인의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거의 잠식해버리지 않는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서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 June은 Hector를 수소문하여 찾아내 함께 그들의 아들이 떠난 이탈리아로 가서, 아들을 찾아내어 다 함께 Solferino로 가는 것이 소원이다.
끝내 아들은 함께하지 못한 채 Hector와 함께 그곳으로의 긴 여정을 끝마쳤을 때 June은 거의 죽어가고 있었고 혼자 일어설 수도 없는 상태에서 처연하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 이 마지막 부분이 어찌나 조용하면서도 참담하던지 447쪽 부터는 눈물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마지막 장 까지 계속 울면서 읽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이처럼 슬프고 처참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 앞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 많은 경우들을 겪으며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달라지고 망가져갈 수 있는지, 작가는 낮은 소리로, 하지만 무겁고 진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먼 나라까지 힘들게 찾아와 원하던 장소에 와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아들이 옆에 없는 것을 끝내 아쉬워하며 June이 눈을 감는 것에 이어 마지막 장면은 다시 이 책의 시작 부분에 소개되었던 장면, 즉 피난 열차에서 떨어져 죽어가는 동생을 두고 혼자 다시 열차에 올라타는 열한 살 소녀 June으로 맺고 있다.

책을 덮고 난 후에도 무슨 영화를 보고 난 후처럼, 책 속의 몇 몇 장면들이 영상처럼 자꾸 머리에 떠올랐다. 대체로 비극적이고 가슴 아리는 장면들이.

정말 그런가보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고통, 원하는 대로 가지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을 때 소설이 탄생한다는, 작가의 인터뷰 중 그가 한 그 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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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7-22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요즘 이민작가들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Native Speaker의 문학적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 것이었는지에 대해 새삼스레 생각했었더랬어요. 그 데뷔작의 힘을 믿고서 지금도 이창래를 찾는 것이겠지요. 저도 어서 읽어야 할텐데요..

hnine 2010-07-22 01:28   좋아요 0 | URL
Native speaker는 그것대로 좋았는데 이 책도 참 무겁고 진지하군요.
행여 삶을 가볍고 만만하게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작가가 경종을 울리는 것 같은 내용이어요. 언제고 꼭 읽어주세요...

상미 2010-07-22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 날 말한 책인거니?
저자의 색다른 이력덕에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지. 책은 물론 안읽고....
이렇게 늦게까지 안자고 새벽엔 일찍 일어나는거니??

hnine 2010-07-22 01:30   좋아요 0 | URL
맞아. 며칠 전에 다 읽고서 리뷰는 오늘에서야 썼어. 더워서 잠도 안오고 하길래.

stella.K 2010-07-22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올핸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어서 그런지
이쪽에 대한 조명이 활발한 것 같습니다. 드라마도 그렇고.
이창래는 워낙 유명해서 알고는 있습니다만,
선듯 손이 가지 않는 작갑니다. 만만해서라기 보단 너무 잘나서...
번역돼서 나오면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전 영어랑은 도무지 안 친해서...ㅜ

hnine 2010-07-22 17:44   좋아요 0 | URL
하하...너무 잘 나서 ^^
번역되어 나오면 저도 한번 더 읽어볼까 생각중입니다. 제가 제대로 읽었는지도 볼겸해서...^^

pjy 2010-07-22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맘 아픈 이야기네요....막 리뷰보면서도 감정이입되는데 진짜 보면 울겠군요,,근데 번역본은 없나요?

hnine 2010-07-22 17:53   좋아요 0 | URL
더 자세히 쓰고 싶었는데 spolier가될까봐 간략하게만 적었어요.
죽음을 눈 앞에 두고 걸음도 제대로 못걸으며 그나마 간신히 하는 말들이 계속 미안하다, 나를 용서해라, 고마왔다...그런 말들이더군요.
그리고 이 작가 스타일이 무엇을 탁 드러내놓고 표현을 안해요. 정말 대단한 사람이어요. 이 책이 올해 봄에 나왔으니 번역본도 곧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sslmo 2010-07-22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분의 글들을 읽으면 심기가 불편해요~
다른 이들의 소설이 삶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고통에 대해서 얘기한다면,
이 분의 글들은 삶 속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곧이곧대로 직시하게 해요~
데니스 루헤인이랑은 또 다른 의미로,가슴을 먹먹하게도 단단하게도 만드는 분이예요~

hnine 2010-07-22 17:57   좋아요 0 | URL
A Gesture Life 나 Native Speaker보다 스케일이 크고 인물들이 더 복잡하게 얽혀있어요. 한국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이긴 하지만 저희가 그랬듯이 아버지로부터 어릴 때부터 전쟁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고, 이 소설을 쓰다가 문득 그 얘기를 소설의 서곡 (overture)으로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났다고 하더군요.
앞으로 지켜보고 싶은 작가 중 한 사람이어요.

2010-07-23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3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3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 The Surrendered > 를 읽고서,  

   리뷰를 쓰기에 앞서 검색해보았다. 

  

  

 

 

 

 

 

 

 

작가의 눈빛...
저런 눈빛을 가진 사람을 더러 보았다.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너무 진지해보여서 부담갈수도 있는 눈빛? 


그가 말하는 그의 작품, 그리고 그에게 있어 문학 (Literature) 이란 무엇인가,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 All literature is a record and celebration of trouble......"
  (모든 문학이란 고난에 관한 기록이고 향연이고...)

  

 이 말이 특히 마음에 쏙 들어온다. 

 

 

 

  

  

 

 

 

 

 

 

 

 

 

 

 

 

 

 

 

 

 

  

 

연속적으로 읽지 못하고 서평단 책들과 섞어 뜨문뜨문 읽느라, 읽는 동안 해놓아야 했던 메모만 남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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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7-17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이 안 나왔나 보군요.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요.^^

hnine 2010-07-17 13:13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에도 꽤 알려진 작가이고 전작들도 번역본이 대부분 나와있으니 이 책도 아마 곧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아마 누군가가 지금 열심히 번역을 하고 계실지도 ^^

2010-07-19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9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10-07-20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페이퍼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