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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유어 마인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Open Your Mind 오픈 유어 마인드 -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행복명언
이화승 엮음 / 빅북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어떤 사람을 내 인생의 어느 시기에 만났느냐에 따라 그 관계가 달라질 수 있듯이 책도 그렇다. 같은 책이라도 그 책에 담긴 내용이 마음에 전혀 와닿지 않을 때가 있는가 하면 한때 별로 관심 두지 않았던 부류의 책이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읽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한마디로 인생의 명언집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류의 책은 한때 무슨 인생의 비밀스런 팁이 담긴 책인양 마구 찾아서 읽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시들해진 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얻은 교훈은 그 교훈 자체보다도 그것을 얻기까지 살아온, 그리고 견뎌온 그 시간과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 그러니까 이런 책을 읽을 시간에 내가 직접 참여하여 살아보고 부딪히고 깨져보고 울고 웃고 하는 시간들을 만드는 것이 더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였을 것이다.  
나 이제, 나름대로 여기 저기 부딪혀보고 경험해보고 울고 웃는 과정에서 잠시 마음을 정리하고 있는 중, 다시 이런 책들을 들춰보니 예전과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구나.

이 책에 실린 여러 글들 중 뽑은 베스트 식스;

1.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을 살라.
-평범하기 그지없는 말이고 이게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다른 사람의 잣대가 아닌, 내가 주체가 되어 고민하여  추진한 결정이나 일에는 결과가 어떻든간에 후회가 남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점이다.

2. 말이나 행동으로는 다른 사람을 결코 변화시킬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변화된다. 변화될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러나 우리가 변할 때 다른 사람도 우리가 원하던 대로 변화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자신이 준비가 되었을 때 무슨 변화든 일어난다. 다른 것들은 그것을 도와주는 것일 뿐.

3. 배우는 과정이 배우는 내용보다 대체로 더 중요하다.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생각하며 반복해서 읽다보니 저 '대체로' 란 말이 문득 눈에 들어온다. 영어 원문에는 'often' 이라고 되어 있다.

4. 자기 내면 경험을 지배하는 자는 삶을 지배하는 자이다. 
-자기 경험에 지배당하며 사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나의 과거 경험에 지배당하여 나의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규정짓지 말아야한다.
 
5. 눈 덮인 깊은 산 속에 새가 한 마리 있다. 살을 에는 듯한 밤의 추위에 시달린 나머지 새는 아침이 되면 따듯한 둥지를 지을 것이라면서 운다. 그러나 정작 날이 밝으면 새는 따스한 햇볕을 쬐며 잠을 자는 것으로 하루를 다 보낸다. 새는 이처럼 평생을 속절없이 울며 산다. 사람들도 이와 똑같아서, 처지를 탓하면서 정작 변화의 기회가 오면 모두 흘려보내고 만다.
-변화보다는 안주하는 것이 당장은 더 편하기 때문이다. 변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재 자신의 처지를 탓하며 속절없이 울기 전에,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서 한탄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6. 약한 자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용서는 강한 자의 특권이다 (마하트마 간디).
-여기서 '약한 자'를 나는 '마음'이 약한 자로 해석하기로 한다.

 글과 함께 실린 그림과 사진도 좋은 것들이 많았는데 출처가 남겨 있지 않았다.
정신을 한동안 집중해서 읽어야 할 것들에 눈과 마음이 안 갈 때, 스토리를 따라 가야하는 소설보다 즉각적으로 마음에 와닿는 글들이 필요한 시기에, 읽는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아도 다음으로 부담없이 넘어갈 수 있는 책이 필요할 때, 그럴 때 읽기에 적절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때가 누구나 가끔은 있지 않을까? 그러니, 이런 책이 마음에 와 닿는 시기가 누구든지 살다보면 한번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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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5-10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이 경영이나 처세쪽인 줄 알았더니 문학이었군요. >.<;;

hnine 2010-05-11 13:20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경영이나 처세쪽으로 분류해도 되었을 책이네요.

같은하늘 2010-05-11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생각하는거지만 문학평가단 하시는 분들 대단하세요.^^ 언제 이 책들을 다 읽으시는건지... 참!! hnine님 이미지가 너무 상큼해요. 항상 이렇게 웃으시길~~~

hnine 2010-05-11 13:21   좋아요 0 | URL
읽을 각오가 되어 있으니 평가단에 신청을 했을텐데 이번엔 자꾸 쳐지고 있어요.
바꾼 이미지가 괜찮나요? 제가 그렸어요 ^^

같은하늘 2010-05-15 15:29   좋아요 0 | URL
저도 hnine님이 그리신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너무 예뻐요.~~~

hnine 2010-05-15 23:56   좋아요 0 | URL
좀 애들 같더라도 이해해주세요 ^^
 
<보이니치 코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보이니치 코드
엔리케 호벤 지음, 유혜경 옮김 / 해냄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사람들에게 베스트셀러로 많이 알려져 영화로까지 제작된 소설 '다빈치코드'를 연상시키는 제목의 이 책은 소감부터 미리 말하자면 나로서는 참으로 힘들게 힘들게 읽혀진 책이었다. 그것도 568쪽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이다보니 거의 한 달을 잡고 있었나보다.
우선, 저자의 직업이 천체물리학자이다. 물리학자라고만 해도 엉뚱하다 여겨질 만큼 창의적이고 번뜩이는 면모를 보인다는, 나만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다가 천체물리학자라니. 보통 사람들의 사고 방식, 보통 사람의 사고의 범위를 넘어설 것이라는 것을 짐작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없었던 이유 같지는 않다.
이 책은 픽션을 바탕으로 소설처럼 꾸며졌고 그러느라 저자의 수고가 적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끝까지 어떤 흥미진진함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고 솔직히 말할 수 밖에 없겠다.
알 수 없는 그림과 기호가 잔뜩 들어있는 500년된 그림책인 '보이니치 필사본'이 있다. 그리고 유명한 천문학자인 케플러의 튀코 암살설. 이 두 사건을 서로 관련지으려는 작가의 구성 의도 자체가 작위적인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별로 와닿지를 않았다. 또한 책의 내용만 논픽션적인 것이 아니라 문체 또한 논픽션적이랄까. 문학적인 묘사라던가 비유, 표현, 상징, 이런 것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겠고, 여기에는 번역도 한 몫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127쪽 구절 중의 'bee 읽고 쓰기' 가 무엇인가 갸우뚱했는데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보니 미국의 중고등학교에서의 읽고 쓰기 대회 얘기가 나온다. 아마도 원문의 'spelling bee'를 'bee 읽고 쓰기'라고 번역해놓은 것 같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이자 예수회 사제인 스페인 출신의 엑토르, 그리고 여기에 합세하는 영국인 존과 멕시코 여자 후아나. 이렇게 서로 다른 나라 출신들이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상으로 함께 협의하여 보이니치 필사본의 의미를 해석을 위해 노력하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나라 출신들의 주인공들을 내세워야 할 이유가 뭐였는지.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이들 사이의 어떤 특별한 이해관계 혹은 애정관계가 발전하여 이야기의 흐름에 흥미있게 기여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거기에다가 연금술의 방법과 의미, 천문학 이야기, 그리고 진화론과 창조론을 보는 과학자 그리고 종교인으로서의 입장등, 저자는 이것 저것 정말 다양한 주제를 이 소설 속에 집어 넣고 있으나 그것의 역할과 당위성이 별로 있어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전체 속에서 따로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문제이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세일럼의 마녀와 사라진 책'이 금방 비교되었다. 저자가 자신의 학위 논문을 위해 자료를 조사하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을 근거로 하여 쓰여졌지만 여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져 탄탄한 구성과 흥미를 갖춘 소설로 탄생한 예이다.
혹시 이 책 '보이니치 코드'도 재미있게 읽은 독자들이 분명히 있을 터이지만, 나로서는 끝까지 다 읽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만, 아쉬움이 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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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2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3 0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비소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숨비소리 - 조선의 거상 신화 김만덕
이성길 지음 / 순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숨비소리.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물밖으로 올라와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 (네이버 국어사전)'
해녀의 딸로 태어난 김 만덕의 일생만 그러하랴. 이 땅의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숨비소리 그칠 새 없는 일생을 살아왔겠는가.
배를 타고 장사를 하는 아버지와 해녀 일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두 오빠와 함께 살고 있던 어린 만덕은 풍랑으로 아버지를 잃고, 전염병 호열자 (콜레라)로 어머니를 여의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이 든 기생의 수양녀로 들어가 살게 된다. 기생 수업을 받기는 하나 수청을 드는 일을 도저히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한 만덕은 원래 천민이 아닌 양인의 신분이었다는 것을 마을 현감에게 아뢰고 기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후 본격적인 여자 상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포구에 객주집을 차리고 그곳에 오가는 사공들의 물건을 거두어다가 소매상들에게 파는, 요즘의 도매상으로 시작을 해서 배를 구입하여 제주의 물건을 육지에 내다 파는 일을 하며 점차 돈을 모으게 되는데, 돈을 버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오히려 돈을 많이 모으지 못했을 수도 있고, 1700년대 인물인 그녀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덕이 장사를 시작할 때 세운 방침은 '매점매석 근절, 헐벗은 사람들을 위한 박리다매 추구, 적정 가격 매매, 정직한 신용 본위'였다는데, 지금도 몰라서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 아닐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만의 방침, 철학을 가지고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나게 마련인 것 같다.
어릴 때 비슷한 처지를 통해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된 도형과 끝내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 이상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참 안타깝다. 일찍 부모를 여읜 만덕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서로 의지하고 살아갈 가족이 필요했을텐데, 잠시나마 만덕이 기생의 신분이었다는 것 때문에 큰아버지로부터도 외면을 당하고 좋아하는 도형에게 마음의 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평생을 보내는 만덕이 참 측은했다.
예전에 살았던 한 인물에 대한 일대기이라서 그런지 드라마를 보듯 책이 술술 읽혀, 요즘처럼 마음 집중하기 어려울 때 읽기에 좋았다. 지금 만덕에 대한 드라마도 TV에서 방영되고 있다고 하는데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1700년대 정조 임금때 인물인 김 만덕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 이렇게 자세하게 남아있는 것일까. 여자의 신분으로서 조선의 거상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큰 인물이긴 하지만 양반의 신분도 아니었고, 평민 신분의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400년이 넘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보면 그 당시로서 의외적인 일이어서 말이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김 만덕 기념 사업회도 결성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은 적이 있다. 자기 가진 것을 다 털어 흉년으로 굶주린 제주 사람들에게 쌀을 사다 줄 수 있었던 김 만덕. 부족하게 자란 자신의 처지를 하나라도 더 채우는데 주력하게 하지 않고 더 베푸는데 이용할 수 있었던 사람.
정조로부터의 포상으로 생전 처음 제주 땅을 떠나 금강산 구경길에 나서는 책의 결말 부분이 좀 갑작스러운 감이 있어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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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4-27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그것도 큰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만, 자신이 가난했기에 다른 사람의 가난의 아픔을 더 알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있는 사람들은 없는 이의 사정을 알 턱이 없고, 또 그것이 얼마나 가슴저린 일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알고 경험한 이들이 조금은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도형과의 로멘스가 이어졌다면 어땠을까요? 자신의 가치는 지금의 처지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실천하기에는 그녀만의 문제는 아니었겠지만, 그 또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hnine 2010-04-27 21:06   좋아요 0 | URL
현대인들님의 말씀이 맞네요. 겪어본 사람이 제일 잘 알겠지요.
자신의 가치는 지금의 처지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도 가슴에 와닿아요.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이라면 또 모를까요.
개인적으로는 김 만덕이 말년에라도 좀 덜 외롭고 쓸쓸했었으면 하고 바라는데 글이 끊겨서 좀 아쉬웠어요.

2010-05-01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김없이, 남김없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숨김없이 남김없이
김태용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책 뒤에 실린 작가와의 인터뷰를 일부러 읽지 않고 리뷰를 써보기로 한다. 오로지 내 느낌에 충실하여 소감을 써보고 싶어서이다.
리뷰 제목을 뭐라고 할까 고민 중이다. '성.인.물' 이라고 할까? 아니면 '소설의 형식을 하고 있는 독백'이라고 할까. 흔한 표현이지만 '언어의 유희'라고 할까.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던 점 중의 하나는, 과연 작가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스스로 즐거웠을까, 아니면 그야말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썼을까 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이 작품은 내가 지금까지 접해보던 소설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소설의 줄거리는 있는가?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다. 줄거리라는 것을 만들며 글이 펼쳐지고 있나보다 하며 읽다보면 어느 새인가 작가의 독백이 이어지고, 이렇게 끝나려나 하다보면 앞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고. 잠깐 정신을 놓고 건성으로 읽다보면 글의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지만 그래도 신기하게 읽는 동안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그래서 생각보다 빨리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단어를 가지고 무슨 일을 했던 간에 그 나름대로 거기에는 일관성이 있었다는 것, 그래서 그 속에 흐르는 작가의 목소리가 한 목소리로 들렸다는 점, 그리고 한 문장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적어도 하나의 문장을 읽어나가다가 호흡을 놓치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작가가 즐겨 쓰는 문장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모순' 구조라고 하겠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다른 곳에 가도 이곳보다 나쁘지 않을 것이고 이곳보다 좋지 않을거야...그녀는 그가 더 이상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말을 하는 순간 행동으로 실현될 것이라 믿었다. 그녀가 붙잡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언제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 있어 붙잡고 있는 것을 놓치면 영영 다시 붙잡지 못할 것 같았다. (64쪽)  
   

계단을 밟을수록 계단이 하나씩 늘어났다는 표현은 또 어떤가. (101쪽) 예전에 공부할 때 무엇에 대해 한가지 새로 배우고 나면 그것에 대해 이해 안되는 것이 다섯 개 씩 새로 생겨나기 때문에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고 투덜거리곤 했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구절이어서 금방 공감이 갔다.
이 책의 제목이 들어가 있는 부분에 어떤 식으로 그 어휘들이 늘어서 있는지를 보자.

   
  모든 비유 속에는 세계의 질서를 조롱하는, 혼돈마저 조롱하는 비아냥거림이 도사리고 있거나...(중략) 그렇다면 불활성과 불확실성에 대해 좀더 말해야 한다. 쉬지 않고. 쉴 새 없이. 숨김없이. 남김없이. 아낌없이. 여지없이. 기약없이. 후회없이. 없이마저 없이. 기꺼이. 입이 아프도록, 입술이 부르트도록, 혀가 갈라지도록, 침이 마르도록, 목구멍이 닫히도록, 하악골에 금이 가도록, 입이 주둥이가 되도록, 주둥이가 영영 입으로 돌아갈 수 없을 때까지 떠들어야 한다. (162, 163쪽)  
   

 이런 식이다. 재미있다. 그리고 모든 비유 속에는 조롱하는 비아냥거림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도 조금 맘에 든다.
내용 중에 돌쌓기에 대한 행위, 의미, 과정 등이 한참 동안 나오는데 아마도 글쓰기를 비롯한 창작 행위를 비유하지 않았나 싶다. 그의 말대로 조롱하는 비아냥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돌쌓기 작업에 대한 표현 중에 '시간의 사체 (死體) 가 자란다' (217쪽)라는 문장에서는 창작 행위에 대해 그가 얼마나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지로 해석되기도 했다. 사체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과정이라니.
345쪽의 다음 구절에 이르자 작가가 이러한 언어 행위를 하게 된 배경이랄까, 변명이랄까, 그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사회화된 언어가 아닌, 소통의 언어가 아닌, 목적의 언어가 아닌, 기록의 언어가 아닌, 자신만의 형태와 소리의 울림과 발광의 언어를 부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언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언어 이전의 목소리와 시선 그리고 떨림이 전부인, 짐승도 흉내 낼 수 없는, 차라리 언어가 없다는 게 맞을 것이다. ...(중략) 이것 봐라. 저들의 언어가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언어는, 아무리 어법에 맞게 사용된다고 해봐야 이렇게 불완전하고 불확실 할 수 밖에 없으니 그 정해진 형식에서 벗어나보고자 함이라는 뜻일 것이다.
본문 중에는 그로테스크한 표현이 넘쳐나고, 적나라한 행위, 명칭, 표현이 넘쳐 흘러 (이런 책 정말 처음이다) 책의 중간을 넘어서는 거부감이 들뻔 하기도 했다. 뭐 이럴 것 까지야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가 모르던 언어, 말, 글 등의 저 깊은 속을 뒤집어 보여주었다. 이런 방식으로 작가는 언어의 정체를 철저하게 파헤쳐보고 싶었나보다. 그 실험 정신과 도전 정신에 점수를 주고 싶다. 그래서 다 읽은 지금, 뿌듯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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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4-2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리뷰를 읽으면서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나인님께서 적으신 그런 책을 썼을까..저자를 찾아보기까지 했어요. 1974년생의 한 남성의 얼굴이 보이네요.

언어에 대한 글에 대한 뒤집음 ..재밌어요.. 근데.. 정말 .. 인용하신 글을 읽으면서 혼자 웃었어요...나인님.

hnine 2010-04-20 22:14   좋아요 0 | URL
서평단 덕분에 제가 참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작가에 대해 궁금해지더라고요. 아마도 매우 재미있는 사람이 아닐까, 옆에 있는 사람을 절대 지루하게는 하지 않겠다, 그런 상상을 했더했습니다.
그리고요, 이 책의 첫장이 1장이 아니라 -1장, 그다음이 0장, 1장, 이런 식이랍니다, 큭큭...재미있죠?

2010-04-20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1 0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0-04-2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 그 아주 독특한 소설인가 봅니다.
그런데 님의 글 맨 마지막 문단에서 좀 주춤거리게 만드는군요. 흠...

hnine 2010-04-22 04:43   좋아요 0 | URL
하하...그래도 전 별 다섯 개 주었습니다 ^^

2010-04-21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2 0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14
필리파 피어스 지음, 수잔 아인칙 그림, 김석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저자는 1920년생인 필리퍼 피어스라는 영국 할머니. 나는 이 책이 이 분의 작품으로 처음 읽은 책이지만 영국 근대 판타지 문학의 대표작가로 손꼽히는 분이라고 한다. 글의 짜임새가 완벽하고 개성있는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좋은 평을 받고 있다는 책 표지의 해설이 틀리지 않음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나라에는 초판이 1999년에 나왔지만 원래1958년에 쓰여져 이듬해인 1959년에는 카네기 상을 받기도 한 작품이다. 역시 판타지 동화답게, 홍역으 전염을 막기 위해 이모댁으로 내키지 않는 피신을 가있어야 하는 톰의 상황이 도입부에 등장하고, 식구라고는 이모와 이모부 두분 뿐인, 아무 재미 없는 이모집에서 톰은 너무너무 심심하고 지루하다. 이제 주인공이 스스로 자기만의 재미있는 세계를 만들어야할 차례이다. 이모네 집에서 유일하게 눈길을 끄는 것이라면 실제 시간과 무관하게 종을 쳐대는 오래된 괘종시계, 그리고 이모가 살고 있는 다세대주택의 주인이자 이층 맨 끝방에서 혼자 살고 있는 바솔로뮤 할머니이다.  원래 이모댁에는 정원이라고 이름 붙일수도 없는 보잘 것 없는 뒷뜰이 있을 뿐이지만, 시계가 열세 번 치는 소리를 들은 신기한 일을 경험한 톰은 그 소리에 이끌려 한밤 중에 집 밖으로 나가게 된다. 현관 뒷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펼쳐진 전혀 다른 세계, 바로 이 책의  제목이 된 '한밤중 톰의 정원' 인 것이다. 톰의 눈에만 보이는, 톰만이 드나들 수 있는 이 신기한 정원에서 그 날부터 톰은 지루하고 심심할 새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한밤중 정원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 중 특히 '해티'라는 톰 또래의 소녀와 친하게 되는데, 바로 전에 읽은 '영모가 사라졌다'에서 그렇듯이 톰이 방문할 때마다 해티의 나이가 앞으로 당겨지기도 하고 뒤로 더해지기도 하는 일이 일어난다. 즉 시간을 초월한 방문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그래서 톰이 매일 밤 그 정원을 방문함에도 불구하고 해티는 톰에게 몇달만에 왔다고 하기도 하고, 몇 년 만에 왔다고 하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톰의 정원 여행이 워낙 다양하게 펼쳐지다보니 읽는 동안 내용의 흐름을 놓칠 뻔 하기도 했지만 여기는 판타지 세계, 상상을 통해 꿈꾸는 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곳이다.
홍역의 위험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오자 톰은 걱정이다. 이 멋진 정원과 헤어지는 것, 그리고 해티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차라리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의 백미는 바로 읽는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말에 있다. 그리고 그 결말의 내용이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처음부터 모두 복선으로 깔려 있었다는 것. 역시 명작은 명작인 이유가 있구나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50년이라는 세월의 탓일까? 이야기 중 성경책의 의미가 갑자기 부각되는 것, 성경의 내용중 특히 이 세상의 종말을 내용으로 담은 요한계시록 일부가 인용된 것은 지금 읽기에 약간 거북하기도 했다. 또, 위에도 밝혔듯이 한밤 중 정원을 통해 방문하는 세계, 그리고 그곳에서 방문하는 곳들, 하는 놀이들이 좀 장황하다 싶어, 그나마 그 점이 아쉬운 점이라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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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10-04-15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작가를 발굴하기 보다는 외국 유명서적 번역책을 주로 내서
시공주니어책을 안좋아했었음에도,
우리 집에 거기 책이 많더라구.

hnine 2010-04-15 21:48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창비에서도 나와 ^^
요즘은 시공사에서도 공모전을 하긴 하던데 말야.

lazydevil 2010-04-20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지금 생각해도 멋진 제목이에요.
근데 종이 울리면 문밖으로 나갔군요. 전 왜 커다란 괘종시계안 안으로 들어간 걸루 기억할까요?

hnine 2010-04-20 20:49   좋아요 0 | URL
벽장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들도 있었죠 왜...ㅋㅋ
제목도 그렇고, 번역이 참 잘 된 것 같다는 느낌을 읽으면서 여러 번 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