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야단치고, 아이는 화를 내며 방에서 나가 버리고, 나는 혼자 분을 삭히다가 그 다음 단계, 즉 반성과 우울 모드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 ...... 이 어제였다.
이 나이 먹도록 산뜻하고 쿨한 구석이라곤 없는 나는 오늘도 하루 종일 그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이와 남편은 내가 그렇든 말든 자기들끼리 치고 받으며 장난 치고, 체스 두고, 기니픽 얘기 하고. 방 안에서 여전히 침울 모드인 나는 투명인간 취급 하고 있었다. 이젠 그게 더 속이 상하다.
마음 가라앉히기 목적으로 노트를 꺼내 옆에 있던 책 '나무를 심은 사람'을 연필로 베껴 쓰기 시작했다. 한손으론 턱을 괴고.
무얼 가지러 들어왔다가 아이가 나를 보고 뭔가 엄마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었나보다. 이리 저리 말을 시켜보다 나의 대꾸가 시원찮자 내게 커피를 타다 주겠다고 하며 부엌으로 나간다.
주전자에 물 끓이는 소리가 나고 달그락 거리길 한동안 하더니, 조금 후 커피가 담긴 컵을 조심조심 들고 돌아와 내게 내밀었다.
더 이상 속을 끓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마흔 넘은 이 엄마보다 어떨 땐 네가 마음 쓰는 것이 더 낫구나.'
생각하며 감동의 커피를 마시려던 순간, 커피를 보니 녹지 않은 커피 알갱이가 둥둥 떠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인스턴트 커피가 아니라 원두 커피를 가지고 커피를 탄 것.
마실 수는 없었지만 그냥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진 한장 남겨 놓고, 내가 기분이 나아진 것을 본 아이는 흐뭇해하며 자러 들어갔지만 마시지도 못할 커피를 지금도 옆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