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얼마 전에는 와이프가 휴일에 갑자기 목에 담이 걸려 응급실을 갔다 왔는데, 오늘은 규진이가 아파 응급실에 갔다 왔다. 응급실이라고 해서, 뭐 그렇게 응급 상황은 아니었다. 어제 졸림에도 불구하고 SBS에서 새벽 1시 30분에 하는 서울시향 공연 방송을 보기 위해 잠을 참아가며 늦게 자는 바람에 늦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와이프가 아침에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놀라 일어나 보니 규진이 기저귀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이다. 살펴보니, 규진이 고추에 상처가 약간 나있는 것이다. 우선, 휴일에 여는 소아과를 찾았다. 다행이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그런데, 소아과에 가보니 거짓말 아니고 사람이 50명 정도 있었다. 설이 지난 다음 날이라 그런지, 아픈 애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주차장 아저씨 애기를 들어보니 이 소아과가 좀 유명하단다.) 결국 접수만 하고 다시 집에 들어와 규진이를 한 숨 재우고 다시 병원에 갔다. 의사는 뭔가에 의한 상처 때문인것 같다 하지만, 요로 감염일 수 있으니 소변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규진이가 소변이 나오지 않아 결국 소변 주머니를 차고 근처에 있는 보라매 병원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이라고 드라마에서 보는 그런 응급실 풍경은 아니었다. 대부분이 가벼워 보였다. 내가 보기에는. 다행히 응급실에서도 뚜렷한 외상이 있고, 열이 나지 않기 때문에 요로 감염은 아닌 것 같다고 항생제와 연고를 처방해 주었다. 그런데 내가 의심스러워 다시 들어가 이것저것 물어보니 의사도 찜찜했는지, 비뇨기과 외래진료를 잡아 주었다. 혹시 모르니... 

* 2. 

병원에서 집에 온 후 정리를 하고 규진이 연고 바르고 약 먹이고 낮 잠을 잤다. 피곤했는지 오래 잤다. 느즈막히 일어나 저녁을 먹고 서재와 거실을 왔다갔다 하며 놀았다. 그런데, 와이프가 규진이를 데리고 서재를 나가다 규진이 손이 문 틈에 살짝 끼인 것이다. 규진이는 울고 불고, 손은 약간의 멍이 들었다. 와이프는 자기가 부주의 해서 이렇게 됐다며 자책을 하며 침울해졌다. 다행히 손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다.(하마터면 또 응급실 갈뻔했다.) 오늘은 규진이의 수난시대였다. 전에는 와이프가 그랬는데, 이번에는 아들이 그러니. 다음엔 난가? 아파도 말 못하는 아들보다는 내가 아픈게 차라리 낫겠다 싶었다.  

* 3.  

사실 내가 얼마 전 큰 잘 못을 저질렀다. 항상 인간이란 후회를 하며 산다지만, 이런 후회는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우연히 오늘 다시 그 일이 떠올랐다.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다시는 그러지 말자. 

   
 

후회는 할 수 있지만, 절대로 해서는 않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1-02-05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휴 때 여러모로 안 좋은 일이 있었군요. 연휴 때 병원 들리는게
여간 쉽지 않을텐데 규진이가 진료를 받게 되어서 다행이네요.

햇빛눈물 2011-02-05 14:39   좋아요 0 | URL
네. 전에 페이퍼에 쓴 적이 있는데, <120 다산 콜센터>가 아주 유용합니다. 명절같은 휴일에 동네 근처에 병원 찾기 어려울때 전화해서 물어보면 아주 친절히 알려준답니다. 다산 콜센터 처음에 생길때는 뭐 저런걸 만드나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180도 변했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이번주는 어찌어찌 하다 보니 관심가는 책들이 많이 생겼다. 

우선, 노이에자이트 님이 추천해주신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 예술론>책이다. 무네요시의 <조선 예술론>는 제목만 알고 있던 책이었다. 무네요시란 이름도 그렇고. 최근에 보니 <야나기 무네요시의 두 얼굴>이라는 책도 나왔다. 제목에서 풍겨지는 이미지와 같이,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한 국내 평판은 왜곡되어 있고 과장되어 있다는 취지의 글이다. 나야 뭐 그 어떤 판단을 내릴 수는 없기에, 우선 그의 글을 직접 읽어보고 싶다. 특히 <조선과 그 예술>, <조선을 생각한다>는 꼭 읽어보고 싶다.(그런데 <조선을 생각한다>는 절판이다.)  

어찌보면 우리의 것에 대해 정작 내부자인 우리들은 관심이 소홀하지 않았나 한다. 그러기에 야나기 무네요시가 진정 '두 얼굴'의 모습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건 외부자이기에 어찌보면 당연한게 아니었을까? 그의 '업적'이 존재한다면 그것만은 객관적으로 평가해줘야 하지 않을까?

  

  

 

두번째 책들(?)은 최영미 시인의 책들이다. 책이 아니라 책들이다. 찾다보니 관심가는 이분의 쓴 책이 꽤 많다. 시집과 내가 좋아하는 산문도.   

      

최영미 시인을 내가 처음 알게 된건 아주 최근이다. 시인의 첫 시집이 나온거와 무관하게. 강신주의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작년에 읽으면서 알게되었다. 이 책은 국내 시인들의 시들과 푸코, 들뢰즈, 바디우 같은 외국의(대부분) 현대철학자들의 사유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때로는 서로 횡단하며 시를, 사상을 풀어내고 있느 책이다. 최영미 시인이 나오는 꼭지는 이렇다.  

   
 

  13. 애무의 비밀 - 사르트르와 최영미 


    비극적 사랑의 씨앗, 자유 /  

    사랑에 빠질 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  

    육체가 살로 태어날 때

 
   

책이 학교에 있어 내용을 다시 살펴 볼 수는 없으나, 뇌리를 스치는 짧은 느낌은, '야하다' 였다. 여기에 나오는 최영미 시인의 시 하나가 "차와 동정" 이다.

차와 동정

내 마음을 받아달라고
밑구녁까지 보이며 애원했건만
네가 준 것은
차와
동정뿐.

내 마음은 허겁지겁
미지근한 동정에도 입술을 데었고
너덜너덜 해진 자존심을 붙들고
오늘도 거울 앞에 섰다

봄이라고 개나리가 피었다 지는 줄도 모르고...

근데, 다시 찬찬히 시를 찾아 읽어보니, 하나도 '야'하지 않다. 오히려 그냥 그런거 같다. 그냥... 웃기게도 왜 하필 그 남자는 '커피와 냉대'가 아니라 '차와 동정'을 주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ㅠ.ㅠ 

 

세번째 책은 박상진 경북대학교 명예교수의 <우리 나무의 세계 1.2>이다. 이 책은 단순한 나무의 사진이 나오고 특징, 이름이 나오는 그런 책이 아니다. 부제에서 알 수 있다. '문화와 역사로 만나는' 나무에 관한 책이다. 우리들은 숭례문을 보면서, 숭례문이 불타는 모습을 보며 경복궁의 그 수많은 건조물들을 보며 그 외관에 대하여 관심을 가 질 뿐이지, 그 존재를 이루고 있는 켜켜이 시간이 쌓여있는 '나무'는 보지 않았다. 누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을 보면서 또는 생각하면서 팔만대장경이 존재하게 해주는 그 나무에 대해 궁금했겠는가? 그러기에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더 클 것이다. 우리에게 소중하지만 미처 모르고 지나가는 것들을 일깨워주는 글과 책들이 그러기에 소중하다.

   

네번째 책들은 세 권이다. 어제 모임이 있어 종로3가에 있는 삼겹살 집에 갔다. 아주 지루한 회의와 내용의 연속. 옆에 있던 분의 가방을 보니 접혀있는 주간지가 보이더라. 한겨레21이다. 슬쩍 꺼내 보니 에두아르 로네의 <완벽한 죽음의 나쁜 예>에 관한 리뷰 기사가 있더라. 제목이 재미있어 읽어보았다. 책은 뭐 그렇게 복잡한 내용은 아닌 듯 하다. 부제가 이렇다.' 법의학이 밝혀낸 엉뚱하고 기막힌 살인과 자살'. 저자가 법의학자들의 글과 논문을 통해 알게된 여러가지 기발한 죽음의 방식에 관한 책이다.(어떤해 독일에서는 전기드릴로 죽은이가 2명 있다고 한다. '전기드릴'로 말이다.) 구입하기는 그렇고 도선관에 주문해봐야 겠다.

     

그 다음 책들은 아주 관심가는 저자들의 책들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출판사들이 몇 있다. 그 중 대표적 출판사가 '후마니타스'이다. 이 출판사의 대표가 박상훈씨이다. 정치학 전공자로 <어떤 민주주의인가>, <미국의 헌법과 민주주의>같은 책들을 공저, 공역했다. 이 중에서 로버트 달의 <미국의 헌법과 민주주의>는 아주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들은 으레 '미국=민주주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로버트 달은 이 책에서 미국 헌정체제의 비민주성, 대표적으로 상원의 불평등한 대표성, 연방대법원의 과도한 파워 등을 들으며 조목조목 애기하고 있다. 다시 한번 읽어보고싶다. 박상훈씨의 <정치의 발견>은 진보정치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이들과의 다섯 차례의 강연을 엮은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적어도 진보라 하는 이들에게 허무주의에 지지 않고 조금씩 실천해갈 수 있는 실천적, 이론적 힘이 되어 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서문이 이렇다. 

인간이 선하기만 한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고, 또한 늙고 병들고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인간 운명의 비극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어떻게 우리는 삶의 조건을 바꿔 보려는 적극적 사회 개혁의 의지를 견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 현실 속에서도 바람직한 정치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치의 세계와 대면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고 또 정치가 제공하는 긍정적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정치에 참여하고 누구에게 기대를 걸까를 즐겁게 상상해 볼 수 있을까?

 
   

마지막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 시대의 지식인 전남대학교 김상봉 교수이다. 이 분을 어찌하다 보니 가까이서 몇 번 뵌적이 있다. 공식적인 강연회 자리에서. 키가 작으시고 왜소해 보이지만, 목소리와 표정에서 강단이 있어 이는 분이었다. 책에 싸인을 해달라는 나의 요청에도 아주 친절히 대해주셨다.(내 취미 하나가 책에 저자의 싸인을 받는 건데, 싸인을 받다보면 책은 좋았는데 저자를 통해서 기분 나쁜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닌 경우가 더 많긴 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싸인도 받은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은 아주 유쾌한 사람 같았다.) <다음 국가를 말하다>는 한겨레신문에서 박명림 연세대 교수와 서신교환의 형태로 연재된 글들을 정리한 책이다. 난 김상봉 같은 이가 진정한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 생각한다. 그 분이 앞으로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며 여러 어설픈 이(나 같은)들에게 조금씩 깨우침을 주셨으면 한다. 건강하시길... 책 소개글은 이렇다. 

   
 

사유하는 정치학자 박명림, 실천하는 인문학자 김상봉이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정치 교과서. 과연 민주공화국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는가. 민주주의는 시작일 뿐,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다음 국가를 말하다>는 이제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공화국’의 의미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목적을 새롭게 정의한다. 공화국의 기본 정의에서부터, 법, 경제, 교육 등 모두 13가지의 주제로 나눈 논쟁과 대담 끝에 지나온 우리 역사의 가치를 일깨우고 오늘의 한국에 필요한 합의와 연대의 기준을 묻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1-02-01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영미 외엔 겹치는 게 없네요.
한쪽으로 치우지지 말자고 하면서도 쉽지 않네요~ㅠ.ㅠ

명절, 잘 지내시라구요~

햇빛눈물 2011-02-01 22:05   좋아요 0 | URL
네, 그러시군요.
양철나무꾼 님도 설 잘 보내시길..

노이에자이트 2011-02-06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말한 책의 번역본은 송건호 역 <한민족과 그 예술>(탐구당 문고 1975)이 제목인데 이제 안 나오고 아마 다른 제목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송건호 씨가 40대 때 번역했는데 마지막 장에 일본학생들을 데리고 일제시대 때 수학여행 데리고 가다가 일어난 일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박경리 씨는 야나기 무네요시를 우호적으로 보는 사람들에 대해서 맹비난을 하던데 그런 태도를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탐구당 문고 번역본의 역자서문에 송건호 씨가 피력한 일본관이 비교적 무난하고 건전하다고 봅니다.제가 독설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물론 박경리 씨의 문학적 재능은 저도 인정합니다.

햇빛눈물 2011-02-06 15:30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책이 송건호씨 번역의 책이었군요. 안그래도 찾아보니 어떤 님의 블로그에 무네요시의 책들을 정리해논 페이퍼에 송건호씨 번역의 책이 나오던군요. 책들을 찾아보면서 무네요시의 책들이 많지 않아 좀 의아했습니다.
 

 

사실 헌책이라고 하기에는 책들의 상태는 아주 좋다. 알라딘 중고서적 코너가 생기기 전에는 금호역 근처에 있는 "고구마", 신촌역에 있는 "숨어있는 책", 서울대 녹두거리에 있는 "도동고서" 등 몇군데 잘가는 헌책방에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들러 몇권씩 손에 쥐곤했다. 요즘 헌책방 가는게 좀 뜸해졌다.   

바다의 기별만 새책이고 나머지는 다 알라딘중고서적에서 구입한 책들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외>, 장 폴 사르트르의 <상상력>, 김정운의 <나는 아내와 결혼을 후회한다>, 샘 고슬링의 <스눕>,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이다. 

우선 김정운의 <나는 아내와...>를 먼저 읽었다. 딱 제목이 내 스타일(?)이다.(대부분의 아내들은 남편이 이런 제목의 책을 보고 있으면 뭐라고 한마디 할 성 싶은데...와이프는 아무 말 없다. 오히려 이런 스타일들이 더 무서운 법이다.) ㅋㅋ 김정운 교수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앞에 있는 "모차르트"란 카페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곳에서 '헤페바이젠"을 한 잔 시켜 놓고 지나 다니는 예쁜 여자들을 처다보면 너무나 행복하단다. 그런데 그 취향이 나와 너무 비슷하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 다음 부터는 거의 한달, 적어도 두달에 한번 정도는 예술의 전당에 간다. 거의 혼자가기 때문에, 여유있게 "모차르트" 야외 테라스에 앉아 '헤페바이젠'  또는 약간 씁쓸한 맛이 땡길땐  "엑스포트" 한잔을 시켜 혼자 마신다. 언제 한번은 고등학교 친구랑 같이 가서 내가 맥주를 시키니, 친구 曰 "넌 공연 볼 놈이 술을 마시냐?"한다. 근데 난 이게 술이 아니라 음료다. 그 놈이 답답한건지, 내가 허술한건지... 하여튼, 이런 류의 책들은 '모 아니면 도'다. 내가 보기엔, 다행이 딱 내 스타일이다. 인생 뭐 있나... 재미나게 사는거지!!

김정운 책이 다 읽혀 갈 때 즈음 읽어 간 책은 김훈의 <바다 기별>이다. 김훈의 글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흡인력과 통찰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글귀들이 그렇다. 

   
  내 영세한 사랑에도 풍경이 있다면, 아마도 이 빈곤한 물가의 저녁 썰물일 것이다. 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다. p.15  
   
   
  행복에 대한 내 빈약한 이야기는 그 무사한 그날그날에 대한 추억이다. 행복이라기보다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나는 이 무사한 하루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 p.33  
   

어찌보면, 일상의 재미와 스펙타클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김정운 교수의 책 내용과는 사뭇 상반되는 글 같다는 인상이다. 뭐 어느것도 정답은 아니다. 나에게 다가오기만 하면 될 듯 하다.  

김훈의 책이 다 읽혀 가면 읽을 책은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외>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이 책과 관련된 글을 읽은 적이 있어 관심 가지고 있었는데, 중고책으로 나와 낼름 구입했다. 2년 전에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외>를 읽은 적이 있다. 줄친 부분을 옮겨본다.

   
 

어떤 사물의 진품성이란, 그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과 함께 그 사물의 역사적인 증언가치까지 포함하여 그 사물에서 원천으로 부터 전승될 수 있는 모든 것의 총괄 개념이다. ... 복제의 경우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손을 떠나게 되면 사물의 역사적 증언가치 또한 흔들리게 된다. 물론 이때 이 증언가치만 흔들릴 뿐이다. 그러나 이로써 흔들리게 되는 것은 사물의 권위, 사물의 전통적 무게이다. 우리는 이러한 특징들을 아우라(Aura, 독특한 분위기)라는 개념 속에 요약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즉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췩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p.46-47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당시 한가람 미술관에서 한 "매그넘 코리아" 사진전에 갔다 온 다음에 사진에 관심이 가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이 궁금했던 것 같다. 대상 자체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결정적 순간"은 시공간의 통합, 완전한 조화와 균형속의 찰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위해서이고, 찰나에 승부를 거는 것은 사진의 발견이 곧 나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 -

 
   

사람에게도 인생에서 '결정적 순간'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순간이 아닌, 그 사람의 걸어온 과정과 그 사람이 있는 공간, 시간과 주위의 사람들이 결합된 절묘한 완벽의 상태. 그 순간의 선택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뀔 만큼의 순간. 물론 인간에게 '결정적 순간'은 한번은 아닐게다.

나머지 책들도 찬찬히 읽어야 겠다. 그나저나 한동안 뜸했던 책 구입이 또 시작된듯 하다. ㅠ.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1-01-30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쌓아있는 사진을 보면서 '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라는
제목이 눈에 띄네요. 사모님이 이 책을 보시면 안 좋을텐데요...^^;;
햇빛님은 고구마에도 들려보셨군요. 저도 시간이 되면 고구마나
신촌 숨책에 들려보려고 했거든요. 고구마라는 곳이 책 엄청 많기로 유명하다던데
꼭 가보고 싶어지네요 ^^

햇빛눈물 2011-02-01 22:07   좋아요 0 | URL
고구마는 '헌책방계의 교보'로 통하죠. ㅋㅋ 숨책과 고구마 꼭 가보세요. 저는 기분 않 좋은 일있을때 헌책방에 가 퀴퀴한 헌책 냄새를 들이마시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설 잘 보내세요^^
 

아들 규진이는 작년 8월 생이니 18개월이다. 엊그제 '엄마'라는 단어를 말 한 것 같은데, 이제는 제법 많은 단어를 구사(?)할 줄 안다. 남자 아이라 그런지 자동차를 좋아해서 볼 때마다 '부웅'한다. 그래서 밖에 나가면 입에서 연신 '붕붕'하고 그런다.   

 

내 아들 '규진'

책을 보면서 토끼는 '깡총깡총'하고, 소는 '음메'하는 식으로 사물과 연관되는 단어들을 알려주는데, 이제는 많이 따라한다. 어찌 귀여운지. 근데 엊그제 거실 바닥에 있는 원숭이 사진을 보더니 나한테 와서 '끽끽'하는 것이다. 예전에 알려준 적은 있는데, 한번도 말하지 않았던 단어였다. 와이프와 내가 하도 신기하고 귀여워서 한번 더 "원숭이는 어떻게 울어"했더니, '끽끽'이라고 하더라. 정말 귀엽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다 천사인것 같다. 요즘은 악어만 보면 '하아악~' 길게 말하며 흉내 낸다. 심지어 악어 노래가 나오면 '하아악~'하면서 거실 바닥을 기어 다닌다. ㅋㅋ  

      

 아이들의 언어 습득 과정과 능력은 정말 미스테리한 것같다. 작년에 <아이는 어떻게 말을 배울까>란 책을 사서 읽었다. 서재에서 책을 찾아보니 11개월 부분까지 읽었다. 아이의 나이에 따라 단계별로 나와있는데, 돌 무렵때까지 읽었나 보다. 얼른 나머지 부분도 읽어봐야 겠다. 그리고 러시아 아동문학가 코르네이 추콥스키가 쓴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란 책도 아주 유용하다. 이 책은 저자가 40년 넘게 모은 아이들의 말과 시를 바탕으로 아이들의 언어 발달에 대한 통창력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예일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폴 블룸이 쓴 <데카르트의 아기>도 재미있을 듯 하다. 작년에 구입하고 아직 읽지 못한 책이다. 부제가 '아기한테 인간의 본성을 묻다'이다. 진화심리학자가 아이를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연구한다는 내용인 듯 하다.  

좀 전에 들은 Beethoven의 Bagetelles op.126 중 no.1.2.3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Brendel 할배의 초기 Vox 시절 녹음 박스 세트의 <CD 23>에 있는 것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Brendel 할배가 난 좋다. 관심가는 앨범은 2008년 12월에 있었던 알프레드 브렌델의 작별 콘서트 실황을 담은 앨범이다. 이건 DVD로 나오면 더 좋을 거 같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싶다. 그리고 얼마 전에 나온 '브렌델이 선곡한 베스트 모음집'이다. CD 3장 짜리 인데 정가가 7만원이다. 헉~~

Schnabel plays Beethoven Six Bagatelles op.126 (no.1.2.3)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01-29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브렌델 고별 콘서트 음반 갖고 있는데 꽤나 선곡이 마음에 들어요. 무엇보다 슈벨트의 그 조용한 네 박을 들을 수 있어서요.. ^^

햇빛눈물 2011-01-30 01:06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보면 음반도 많으시고 음악도 많이 들으시는 것 같은데...블로그에 올라온 깔끔한 모습의 음반 사진들을 볼때마다 너무 부럽습니다. 바람결님이 말씀하시니 고별 콘서트 음반을 정말 듣고 싶군요!!

cyrus 2011-01-29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규진이 너무 귀여운데요. 아이들의 행동에 대한 책을 읽으시는 모습을 보니
규진이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어서 보는 저도 기분이 좋네요.
주말, 설 연휴 잘 보내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

햇빛눈물 2011-01-30 01:07   좋아요 0 | URL
제 아들이라 그러겠지만, 너무 귀엽습니다.cyrus님도 주말, 설 연휴 잘 보내세요. 오늘 날씨도 엄청 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얼마 전 와이프한테 상처(?)를 받았다. 새벽 밤공기를 마시며 아파트 주위를 한시간여 방황했다. 내 나름 상처라고 하지만 원인 제공은 역시 나다. 그리고 그 원인의 원인은 역시 술이다. 

난 이번에는 절대 아내를 용서하지 않겠다 맘을 다부지게 먹고, 상처 받은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후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와이프도 역시. 니가 먼저 사과하기 전까지 난 절대로 한마디도 안하겠다 다짐에 또 다짐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밥이였다. 와이프가 차려줄 일 만무하고, 굶자니 배고프고. 그래서 혼자 냄비에 물 붓고 라면을 끊이려 했다. 순간 와이프 얼굴이 보였다. 와이프도 저녁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야, 너도 라면 먹을래?"했다. 그랬더니 와이프가 '피식~~' 웃더라. 그래서 나도 '픽'하고 웃었다. 이로써 우리의 싸움은 나름 종결 되었다. 

어찌보면 싸움의 시작은 사소하고 화풀는 단순하다. 우리의 싸움은 "피식~~" 웃음 한마디로 끝났다.

규진이를 재우고 둘이서 나의 상처와 우리의 싸움에 대해 애기했다.(사실 지나간 싸움에 대해 서로 사과하고 풀려다 오히려 싸움 크게 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날도 위태위태했다.) 나도 사과하고 와이프도 사과했다. 근데 와이프가 하는 말이 "너 내가 너한테 왜 화 났는지 아냐?"하더라, 그래서 "뭔데, 속시원이 애기해봐"했다. 와이프 왈 "니가 술 먹고 한 행동은 표면적인 이유고, 내가 더 화가 난건 난 규진이 엄마인것만 같은데, 넌 규진이 아빠이면서 oo의 친구이면서, oo의 동료이고, 할 건 다한다."였다. 순간 할 말이 없었다. 어찌보면 나도 다 아는 사실이다. 

사람이 태어나 사는 동안 '나'는 '나' 하나가 아니다. 학교에서는 누구의 선배이기도 하면서 후배이기도 하고 직장에 가면 동료이면서 상사이기도 하고, 집에서는 남편이면서 아빠이기도 하고 또한 엄마와 아빠의 아들이기도 하다. 이 무수한 '나'의 소용돌이에서 도대체 진짜 '나'는 누구일까? 아니다, 하나만의  '나'는 무의미 할 것이다. 각 상황 맥락에 맞게 행동하는 여러가지 '나'가 존재할 뿐이다.  

이런 여러 맥락적인 '나'의 존재 속에서 대한민국의 여자들은 '엄마'가 되는 순간 모든 '나'는 잊혀지고 한 아이의 '엄마'로서만 의미지워진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리고 사회는 이걸 '엄마'의 당연한 책무라고 의무 지운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아이들이 엄마들이 상처받고 있다. 난 SBS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보면서 우울하고 눈물이 날뻔한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무수한 '엄마'들이 상처받고 있다. 물론 아이들도.  

   
 

사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 속 아이와 부모들은 모두 상처 받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작은 결심을 하나 했다. 술을 당분간 끊기로 했다. 단, 당분간! 난 정말 술 좋아하는 인간이다. 점심에 반주로 소주 한 병이 기본이라 생각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그러니 내가 술을 끊는다는 건 있을수 없다. 단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잠시 술을 않 먹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알콜'에게서 잠시 떨어져 지내는 것도 우리 둘의 사랑을 돈독히 해주는 그 무엇이 되어 주리라 생각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지 않던가!

와이프도 여러 '나'가 존재한다. 사실 결혼 전에는 나보다도 더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이어서 인기도 많았다. 운동도 잘한다. 둘 다 배드민턴을 좋아하는데, 나보다 더 잘한다. 뭐 내가 좀 운동신경이 둔하긴 하지만. 그런 와이프가 규진이가 생긴 후로 친구 만나고 술 마시고 운동하는 것 등 모든 외부 활동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난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현실 인식을 하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아내의 희생과 노고를 감사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사실 이것이 얼마 전 싸움의 원인이었다. 그러니 나도 뭔가 반성과 행동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1-01-29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으면서 저희 부모님이 생각났어요. 싸움 원인부터 시작해서 화해하시는
모습마저 똑같아요 ^^;; 저희 아버지도 최근에 저에게도 몰레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 당분간 술 좀 끊어야겠다 ' 라구요,, 그런데, 저한테 이 말을 한지
벌써 수십번 넘게(!) 했으니,,, 글쎄요 ㅎㅎ ^^;;
그래도 햇빛눈물님은 자신과의 약속 꼭 지켜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

햇빛눈물 2011-01-30 01:08   좋아요 0 | URL
ㅋㅋ, 그러시군요. 남자가 아빠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과정은 모두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도 꼭 약속이 지속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부천에서 2012-06-29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오늘 와이프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사과를 했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와이프한테 더 잘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 모두들 힘들지만 조금 더 가족을 생각하는 가장이 됩시다!!

햇빛눈물 2012-07-03 22: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님 덕분에 오랜만에 저도 서재에 들어오게 되었네요. 님도 힘내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