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헌책이라고 하기에는 책들의 상태는 아주 좋다. 알라딘 중고서적 코너가 생기기 전에는 금호역 근처에 있는 "고구마", 신촌역에 있는 "숨어있는 책", 서울대 녹두거리에 있는 "도동고서" 등 몇군데 잘가는 헌책방에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들러 몇권씩 손에 쥐곤했다. 요즘 헌책방 가는게 좀 뜸해졌다.   

바다의 기별만 새책이고 나머지는 다 알라딘중고서적에서 구입한 책들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외>, 장 폴 사르트르의 <상상력>, 김정운의 <나는 아내와 결혼을 후회한다>, 샘 고슬링의 <스눕>,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이다. 

우선 김정운의 <나는 아내와...>를 먼저 읽었다. 딱 제목이 내 스타일(?)이다.(대부분의 아내들은 남편이 이런 제목의 책을 보고 있으면 뭐라고 한마디 할 성 싶은데...와이프는 아무 말 없다. 오히려 이런 스타일들이 더 무서운 법이다.) ㅋㅋ 김정운 교수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앞에 있는 "모차르트"란 카페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곳에서 '헤페바이젠"을 한 잔 시켜 놓고 지나 다니는 예쁜 여자들을 처다보면 너무나 행복하단다. 그런데 그 취향이 나와 너무 비슷하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 다음 부터는 거의 한달, 적어도 두달에 한번 정도는 예술의 전당에 간다. 거의 혼자가기 때문에, 여유있게 "모차르트" 야외 테라스에 앉아 '헤페바이젠'  또는 약간 씁쓸한 맛이 땡길땐  "엑스포트" 한잔을 시켜 혼자 마신다. 언제 한번은 고등학교 친구랑 같이 가서 내가 맥주를 시키니, 친구 曰 "넌 공연 볼 놈이 술을 마시냐?"한다. 근데 난 이게 술이 아니라 음료다. 그 놈이 답답한건지, 내가 허술한건지... 하여튼, 이런 류의 책들은 '모 아니면 도'다. 내가 보기엔, 다행이 딱 내 스타일이다. 인생 뭐 있나... 재미나게 사는거지!!

김정운 책이 다 읽혀 갈 때 즈음 읽어 간 책은 김훈의 <바다 기별>이다. 김훈의 글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흡인력과 통찰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글귀들이 그렇다. 

   
  내 영세한 사랑에도 풍경이 있다면, 아마도 이 빈곤한 물가의 저녁 썰물일 것이다. 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다. p.15  
   
   
  행복에 대한 내 빈약한 이야기는 그 무사한 그날그날에 대한 추억이다. 행복이라기보다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나는 이 무사한 하루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 p.33  
   

어찌보면, 일상의 재미와 스펙타클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김정운 교수의 책 내용과는 사뭇 상반되는 글 같다는 인상이다. 뭐 어느것도 정답은 아니다. 나에게 다가오기만 하면 될 듯 하다.  

김훈의 책이 다 읽혀 가면 읽을 책은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외>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이 책과 관련된 글을 읽은 적이 있어 관심 가지고 있었는데, 중고책으로 나와 낼름 구입했다. 2년 전에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외>를 읽은 적이 있다. 줄친 부분을 옮겨본다.

   
 

어떤 사물의 진품성이란, 그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과 함께 그 사물의 역사적인 증언가치까지 포함하여 그 사물에서 원천으로 부터 전승될 수 있는 모든 것의 총괄 개념이다. ... 복제의 경우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손을 떠나게 되면 사물의 역사적 증언가치 또한 흔들리게 된다. 물론 이때 이 증언가치만 흔들릴 뿐이다. 그러나 이로써 흔들리게 되는 것은 사물의 권위, 사물의 전통적 무게이다. 우리는 이러한 특징들을 아우라(Aura, 독특한 분위기)라는 개념 속에 요약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즉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췩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p.46-47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당시 한가람 미술관에서 한 "매그넘 코리아" 사진전에 갔다 온 다음에 사진에 관심이 가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이 궁금했던 것 같다. 대상 자체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결정적 순간"은 시공간의 통합, 완전한 조화와 균형속의 찰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위해서이고, 찰나에 승부를 거는 것은 사진의 발견이 곧 나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 -

 
   

사람에게도 인생에서 '결정적 순간'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순간이 아닌, 그 사람의 걸어온 과정과 그 사람이 있는 공간, 시간과 주위의 사람들이 결합된 절묘한 완벽의 상태. 그 순간의 선택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뀔 만큼의 순간. 물론 인간에게 '결정적 순간'은 한번은 아닐게다.

나머지 책들도 찬찬히 읽어야 겠다. 그나저나 한동안 뜸했던 책 구입이 또 시작된듯 하다. ㅠ.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1-01-30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쌓아있는 사진을 보면서 '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라는
제목이 눈에 띄네요. 사모님이 이 책을 보시면 안 좋을텐데요...^^;;
햇빛님은 고구마에도 들려보셨군요. 저도 시간이 되면 고구마나
신촌 숨책에 들려보려고 했거든요. 고구마라는 곳이 책 엄청 많기로 유명하다던데
꼭 가보고 싶어지네요 ^^

햇빛눈물 2011-02-01 22:07   좋아요 0 | URL
고구마는 '헌책방계의 교보'로 통하죠. ㅋㅋ 숨책과 고구마 꼭 가보세요. 저는 기분 않 좋은 일있을때 헌책방에 가 퀴퀴한 헌책 냄새를 들이마시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설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