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최근 발생되고 있는 아랍권 국가들의 사태에 대해 그 문제의 원인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아래 기사가 일정부분 의문점을 해소해준다. 기사 말미에 나오는 "아랍권 ‘88만원 세대’의 분노가 독재정권을 뒤흔든 혁명을 몰고 왔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아직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들은 짱돌을 쥘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까?

# 2. 아랍권의 문제가 인구 급증으로 인한 청년층의 증가와 이들의 욕구불만(?)으로 인해 발생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나라나 다른 선진국가들 즉, 고령사회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나라들은 이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될까? 문제 발생의 과정과 양태는 다르겠지만,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인구'문제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전에 출간된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이 유용할 듯 하다.

한겨레신문 2011.2.9  “아랍 민주화 열풍 뒤엔 인구 폭증 공통점”  

‘아사히’ 분석…30년새 이집트 1.9배 튀니지 1.6배 ↑
청년층 비율 높아지고 20~30%대 실업률에 분노  
 
 
» 아랍권 국가들의 인구증가율 


이집트·튀니지 시위 밑바탕은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돼 아랍 최대국인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이번 ‘아랍 혁명’의 원인은 뭘까?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한 ‘정보혁명’만큼이나, 아랍 사회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 및 고달파진 젊은 세대의 좌절에 주목하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8일 “튀니지와 이집트 등 독재 국가들을 뒤흔든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인구 폭증이라는 공통된 사회 변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취임하기 1년 전인 1980년 이집트의 인구는 4443만명이었지만 2010년 인구는 그보다 1.9배 늘어난 8447만명으로 폭증했다. 24년 동안 권력을 틀어쥐었던 자인 엘아비딘 벤알리 대통령을 축출한 튀니지는 같은 기간 1.6배, 요르단은 2.9배, 예멘도 2.8배나 늘었다. 같은 기간 세계 전체의 인구는 1.5배 증가에 그쳤다. <아사히신문>은 “이슬람은 피임을 신에 뜻에 반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의료의 향상으로 유아 사망률이 낮아진 점을 인구 폭증의 원인으로 꼽았다.

인구의 급증은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의 비율을 높였다. 2010년 현재 이집트에서 24살 이하 젊은 세대의 비중이 54%, 다른 아랍권인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도 이 비율은 모두 50%를 넘는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뒷받침하기 위해선 이를 지탱할 경제성장이 뒤따라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통계를 보면, 이집트의 국내총생산(GDP)은 1980년 223억달러에서 2010년 2168억달러로 10배 정도 늘었다. 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은 5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도 안심하긴 이르다. 1980년 사우디아라비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1만7600달러였지만, 30년 동안 인구가 2.5배나 늘어 2010년은 1만6600달러로 오히려 줄었다.

인구 증가의 압박은 사회에 갓 진출해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젊은이들에게 전가됐다. 2008년 현재 이집트의 실업률은 8.7%였지만, 15~24살 사이 젊은 세대의 실업률은 그보다 3배 많은 23.3%(2005년 현재)에 이른다. ‘재스민 혁명’의 도화선이 된 튀니지도 2005년 전체 실업률은 14.2%였지만 젊은층의 실업률은 31.4%나 됐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좋은 직업을 찾아 안정된 생활을 누리려는 젊은이들이 늘어난 사회의 변화에 아랍의 독재권력이 적응하지 못했다”고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정리했다. 짱돌을 들고 거리에 나선 아랍권 ‘88만원 세대’의 분노가 독재정권을 뒤흔든 혁명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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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현히 오늘 전철 역에서 어떤 사람이 보는 신문에 정명훈 지휘자가 대문짝만하게 나와서 기사를 찾게 되었다. 

클래식 애호가로서 정명훈 지휘자를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세계적인 지휘자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기사를 보면서 그를 한국인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든다. 국적도 한국이 아니며, 지금까지 태어나서 약 60여 년 동안 한국에서 자란 시기는 8년 밖에 되지 않고 그래서 한국어도 익숙치 않은, 어쩌면 문화나 모든 면이 한국보다는 다른 것에 익숙할 것 같은 그가,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인'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예전에 골프선수 미셸 위를 한국 어떤 한국 언론에서는 '위성미'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 사람들은 국적이나 문화적으로 한국과는 먼 사람이다.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국적만 가지고 따질 수야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국적과 문화적 동질성은 따져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가 '한국인'이라 할 때 '한국인'이란 무엇일까?   

# 2. 기사 중간에 정명훈 지휘가 이런 말을 한다.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서는 날처럼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가 없었다.” 비슷한 말을 피아노의 여제라 불리우는 마르타 아르헤치도 했다. 그녀는 혼자 무대에 서면 너무나 외로워서 미칠것 같아 독주회는 가지지 않겠다고 한적이 있다. 혼자는 외로운 법이다. 

# 3. 정명훈 지휘자의 국제적인 명성과 지휘자로서의 전환점이 된 사건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의 만남이다. 이 세상에서 나 혼자 잘 난 놈은 없는 것 같다. 날 알아주는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해 나가는게 인간인가 보다. 그런 의미에서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만남은 그 옛날 정명훈과 줄리니의 만남에 비견될 법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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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1.2.10  정명훈 … 연말 공연 표가 벌써 동났다

올해 12월 3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이 연주된다.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공연이다. 티켓을 구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늦었다. 이미 매진됐다. ‘합창’ 교향곡은 정명훈이 서울시향과 함께 2006년 말 시작한 고정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12월 22일 공연 티켓은 9개월 전인 3월 매진됐다. 티켓이 동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매년 같은 곡을 연주하는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많은 교향악단이 ‘합창’ 교향곡을 연말에 연주한다. 그중에서도 서울시향과 정명훈의 공연은 ‘필청(必聽)’으로 꼽힌다. 



‘합창’ 교향곡 내용을 모르는 청중은 있어도 정명훈의 이름을 못 들어본 사람은 없을 법하다. 대중에게 이만큼 널리 알려져 있는 클래식 음악인을 찾긴 힘들다. 종영된 인기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천재 지휘자의 극중 이름이 ‘정명환’이었던 것도 우연은 아니다.

클래식 음악가에게 인기는 그 자체로 독이 된다. 대중이 많이 알수록 심각한 예술과는 멀어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정명훈은 여기에 강력한 방어막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부터 이끌었던 오케스트라, 함께 앨범을 낸 연주자들의 이름이 상당하다. 미국 LA필하모닉,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오케스트라,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메조 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 등 동료들이 단연 세계 톱이다. 정명훈은 어떻게 인기와 무게를 동시에 가지게 됐을까.

어머니가 명훈에게 음악을 시킨다고 했다. 누나 명화와 경화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동생이 말이 없고 느렸기 때문이다. 그가 스물한살 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등을 했다. 4년 뒤에는 지휘봉을 잡았다. 마침내 바스티유 오페라는 사상 최고 연봉을 제시했다. ‘한국에 세계적 오케스트라 하나 만들겠다’. 그의 하나 남은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7세, 데뷔

일곱 살 정명훈은 피아노 의자에 앉으면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그는 당시 서울시 공관(현재 서울특별시의회)에서 서울시향과 협연하며 데뷔했다. 그리고 2년 후 가족과 함께 미국 시애틀로 떠났다.

가족은 시애틀에서 한식당을 열었다. 일곱 남매 중 두 자매(정명화ㆍ경화)는 뉴욕 줄리아드 스쿨에 다녔다. 나머지 다섯은 레스토랑에서 식당ㆍ홀을 돌며 일을 했다. 식당 한 켠엔 피아노가 있었다. “집과 식당이 가까웠어요. 집에 있다 ‘손님이 너무 많다’는 부모님 전화를 받으면 자전거를 타고 식당으로 달려갔죠.”

주방엔 그만의 발 받침대가 있었다. 아직 키가 덜 자란 여섯째 아이는 그 받침대에 올라서서 주방 일을 도왔다. 훗날 요리책도 펴낸 정명훈의 요리에 대한 첫 기억이다. 손님이 빠져나가면 그 받침대를 피아노 앞으로 옮겼다. 식당 안엔 꼬마의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초콜릿과 피아노가 가장 좋았다. 자전거 타고 놀듯, 피아노도 즐기며 쳤다”고 기억한다.

어머니 이원숙씨는 ‘기다리기’의 명수다. 아이들에게 수많은 교육을 시켜본 후 적성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 어린 시절 정명훈은 춤부터 노래까지 두루 배웠다. 지휘자가 된 후 발레ㆍ오페라 연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유를 알 수 있다.

13세, 결심

아홉 살 위의 누나 정명화(첼리스트)씨는 “어머니가 명훈이에게 음악을 시킨다고 했을 때 나와 경화는 의아해 했다”고 말했다. 두 누나는 감정에 충실하고 생각을 잘 표현하는 편이었다. 반면 정명훈은 말이 없고 느렸다. “내가 언제 한마디라도 할까, 어머니가 내 입만 쳐다보고 있었을 정도”라는 농담도 한다. “나이를 먹고도 만나는 친구, 함께 식사하는 사람도 정해져 있다”고 할 정도로 내성적인 편이다. 무겁고 진중한 남자 아이에게 음악은 맞지 않는 듯 보였을 법하다.

정명화는 “하지만 나중에야 어머니의 결정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즉각적인 표현보다 넓게 보고 깊이 파는 데 소질이 있었고, 피아노에서 지휘로 진로를 바꾼 것도 이런 성격 덕에 성공적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정명훈은 요즘에도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했다’는 회고는 하지 않는다. 그는 피아노가 아니라 ‘음악’을 하기로 결정했다.

13세 때였다. 시애틀에 살던 그는 로스앤젤레스(LA)로 날아가 주빈 메타를 어렵게 만났다. “쇼팽의 스케르초 2번을 연주했다. 내가 음악을 해도 되겠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긍정적인 답을 얻는다. 메타의 답을 들은 후 뉴욕 줄리아드 스쿨 예비학교를 선택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한다.

“뉴욕은 충격적이었다. 내 또래 피아니스트들이 완벽하게 훈련돼 있었다. 어린 시절 뛰어 놀며 피아노를 친 내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는 몇 년을 연습실에 틀어박혀 지낸다. 



21세, 콩쿠르

빛을 본 때가 1974년이다. 러시아에서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공동 2위에 오른다. 어렵고 배고픈 고국에 날아온 소식이었다. 정명훈의 국적은 미국이었지만, 귀국하는 그를 위해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가 준비됐다. 박정희 대통령 가족은 정명훈 가족을 만찬에 초대했다. 정명훈은 콩쿠르 상금으로 러시아 캐비어를 사 와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콩쿠르 당시 정명훈의 연주를 녹음한 실황 LP는 지금도 희귀 음반으로 꼽힌다. 화려함보다 절제된 표현, 진한 감정이 특징이다. 또 누나들과 함께 한 정트리오 활동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좋은 피아니스트로 입지를 다진다.

정명훈은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서는 날처럼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요즘에는 독주자로 무대에 서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악기와 함께 연주라도 하는 날이면 종일 무대에서 손을 푸는 그를 만날 수 있다.

25세, 지휘

피아니스트로 성공했지만, 그는 지휘대를 넘보기 시작한다. 75년 매네스 음대 학사 과정을 피아노로 마친 후 줄리아드 스쿨에서 지휘를 공부한다. 처음엔 학생 오케스트라, 뉴욕 청소년 교향악단을 지휘했고 꿈을 점점 키워간다.

전환점은 미국 LA에서 시작됐다. 명문 악단인 LA 필하모닉의 부지휘자 선발 오디션에 응모했다. 악단의 상임 지휘자였던 고(故)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는 스물다섯의 정명훈을 부지휘자로 뽑았다. ‘지휘자 정명훈’의 고속 성장은 이때 시작됐다. 이탈리아 태생의 줄리니는 “당신은 타고난 지휘자”라며 피아노와 지휘 사이를 고민하던 그에게 확신을 안겼다. 정명훈의 초기 레코딩 중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의 오페라가 유독 많은 찬사를 받았던 이유도 줄리니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줄리니가 달아준 날개로 유럽까지 날았다. 이탈리아ㆍ독일ㆍ프랑스를 차례로 섭렵했다. 특히 프랑스의 바스티유 오페라 오케스트라는 그에게 사상 최대의 연봉을 제시했다. 동양 연주자에게 좀처럼 레이블을 붙여주지 않던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은 정명훈의 앨범을 잇따라 냈다. 정명훈은 생상스ㆍ라벨ㆍ메시앙 등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기품 있게 해석, 각종 음반상을 받으며 음반사와 상생 관계를 이어갔다.

서울올림픽 이후 늘어난 국내 문화 행사에선 섭외 1순위로 떠올랐다. 21세에 국제 콩쿠르로 세계 무대에 데뷔해 각종 일류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한국 출신 음악인에 대한 호기심이자 자부심 때문이었다. 정명훈은 런던필, 로열 콘서트헤보, 빈필,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등 세계적 오케스트라ㆍ연주자와 한 무대에 서며 명성을 높였다. 폭발하던 문화적 관심과 맞물려 스타가 탄생한 셈이다.

52세, 서울시향

“언젠가 한국을 위해 일하겠다.” 늘 하던 약속을 지킨 것은 1997년. KBS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를 맡았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각종 불화설이 나오고 5개월 만에 지휘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2005년 서울시향을 맡았다. 이후 이 악단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베토벤ㆍ브람스 시리즈를 통해 국내 관객과의 접점을 꾸준히 늘렸다. 실력 있는 단원을 미국ㆍ유럽에서 영입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그 결과 지난해엔 유럽 4개국의 음악 축제에 참가하며 서양 음악의 본토에 진출했다. 올해는 한국 교향악단 최초로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음반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는 “한국에서도 세계적 오케스트라가 나오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나머지 인생은 이 목표 아래에서 흘러갈 듯하다.


정명훈이 걸어온 길


-1953년 서울생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 2위
-1975년 미국 매네스 음대 졸업
-1978년 미국 줄리아드 스쿨 졸업
-1978~84년 미국 LA필하모닉 부지휘자
-1984~90년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
-1989~94년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상임지휘자
-1990년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계약
-1997~2003년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1998년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5개월 만에 퇴임)
-2000년~ 현재 라디오프랑스필하모니,
     도쿄필하모닉 음악감독ㆍ예술고문
-2005년~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시시콜콜] 요리하는 정명훈

음식은 그의 또 다른 관심, 이탈리아 식당에서 정식으로 요리를 배우기도 했다

정명훈은 “내 평생의 관심은 둘”이라고 말한다. 물론 첫 번째는 음악이다. 그 다음은 음식이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가 거기에서 공부하고 자랐던 내가 유럽에서 살기로 결심한 것도 음식 때문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이 유럽 작곡가에게서 나왔는데 그들이 먹은 것과 본 것을 나도 느끼고 싶었다”는 것이다.

연주를 끝낸 지휘자는 귀가하는 길에 집에 전화를 한다.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한번은 집에 오징어가 조금 남았다고 해서 꺼내놓으라고 한 뒤 집에 도착하자마자 파스타를 해먹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이 다 끓기 전에 재료 준비를 마쳐야 하고, 총 요리 시간은 15분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재료는 소박하고 조리는 간단하다. 그는 “독일ㆍ이탈리아ㆍ프랑스에서 다 살아봤지만 얼른 해서 빨리 먹는 이탈리아 요리가 가장 적성에 맞는다”고 한다. 격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정식으로 요리를 배우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작은 식당에 찾아가 수프ㆍ파스타와 메인 요리를 몇 가지 마스터했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여덟 명을 위한 식탁’이라는 뜻의 『디너 포 에이트(Dinner for 8)』를 쓰기도 했다. 부인과 세 아들, 그리고 아들의 짝까지 여덟 명을 위해 손수 요리하고 싶다는 꿈이다. 정명훈의 요리에 대한 관심은 정확히 표현하면 “남들을 먹이는 것”이다.

“은퇴한 뒤의 목표도 둘”이라고 한다. 하나는 요리를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 다른 하나는 한국어에 숙달하는 것이다. 여덟 살에 미국으로 이민간 후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휘대에서 내려간 후에도 두 종류의 배움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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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2-11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정명훈 '우리나라 사람인가?'라고 생각하며 살다가...
언젠가 목수정으로 대변되는 그 사건을 계기로 아주 별로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연말 공연 표가 동나서 유감이에요.
표가 남아돌아도...결코, 네버, 안 갈거 거든요~^^

햇빛눈물 2011-02-11 13:34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목수정으로 대변되는 그 사건'은 전원 해고된 국립오페라합창단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저도 좀 씁쓸하긴하지만, 또다른 사람들은 또다른 말을 하더군요. 하여튼 유쾌하지 못한 일입니다.
 

참여사회 2011.1월   인구가 줄어 몰락한 스파르타

스파르타 몰락시킨 인구감소 원인 ‘경제문제’

                                                                                                 정창수 좋은예산센터 부소장

고대 도시국가 스파르타가 몰락한 가장 큰 원인은 인구감소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인구감소 원인으로 토지 체계를 들었다. 스파르타는 한때 보병과 기병 3만 명을 먹여 살릴 수도 있었지만 말기에는 1천 명도 감당하지 못했다.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쇠망한 것이다.

  스파르타도 처음에는 인력난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그것은 강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절정기부터는 문호가 닫힌다. 거기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부의 집중문제가 있었다. 고대의 부는 토지일 수밖에 없다. 만약 자신들끼리 재산을 평등하게 분배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인구증가를 위한 법은 있었다. 당시 자녀 셋을 두면 노동에서 면제되고, 넷을 두면 세금까지 면제되었다. 하지만 토지독점이라는 경제문제의 본질을 회피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인구가 늘면서 토지가 분할되자 상당수는 빈곤해졌다. 그래서 부유층은 재산유지를 위해 출산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그래서 경제력이 집중되었다. 때문에 토지를 소유한 가문이 3세기 즈음에는 100여 개에 불과하게 된다. 물론 외국인을 유입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문제가 가져온 인구감소가 스파르타를 몰락하게 만든 것이다.

  스파르타에서는 새로운 사람들이 부유층으로 진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스파르타는 이런 배타적인 정책 때문에 스스로 절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긴밀한 결합으로 자신의 계급을 유지하려는 정책과 일종의 산아제한, 가족규모제한, 독신주의 횡횡 등도 인구가 감소하는 원인이었다. 이에 반해 영국 귀족계급은 가문이 끊기고 작위가 단절되어 귀족 수가 줄어들자 새로운 작위를 수여함으로써 그 세력을 유지했다.

  로마시대에서도 인구감소 문제가 심각했다. 그라쿠스 형제가 10남매였듯이 기원전 2세기에는 다산(多産)이 일반적이었지만 기원전 1세기 경에는 출산이 급격히 감소했다. 그래서 아우구스투스는 간통법과 혼인법을 제정해서 자유연애를 범죄로 규정하고 이혼했거나 결혼하지 않은 독신여성에게는 상속을 금지하는 등 재산 소유를 제한했다. 비슷한 상황의 남자는 공직에 진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혼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실효는 없었다. 양극화로 인해 자유민이 몰락했기 때문에 대상자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로마는 스파르타와 달랐다. 아프리카인이 황제가 될 정도로 개방적인 사회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인구감소를 많이 우려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고조顧助보살피며 도와줌라는 정책을 시행했는데, 결혼하지 못한 처녀를 조사해 그 연유를 기록한 후 혼인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능력이 있음에도 시집을 보내지 않으면 국문을 하기도 했다.

  부자들은 재산 감소를 우려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부양 능력이 없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부유해져서 인구가 감소한다는 것은 한 면만 본 것이다. 대부분은 양육 같은 경제 문제가 핵심이다. 그래서 근대 이전의 국가에서는 출산장려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최근 출산감소가 국가적인 문제로 등장했다.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산아 제한을 했다고 호들갑이더니 이제는 온통 인구감소 걱정들이다. 노 대통령은 선거 당시 “아이는 제가 키워주겠다”고 했다. 출산장려의 핵심은 육아문제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에서는 저출산 현상을 편한 것만을 찾는 풍조로 돌리고 있다.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항상 엉뚱한 일을 벌인다. 출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출산기피부담금까지 제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산왕 선발대회를 개최한 것도 그런 발상에서 비롯된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단순히 귀찮아서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부유해지면 인구가 감소한다는 것은 일면을 본 이야기이다. 사회불안정도 인구감소의 원인이다. 최근 러시아는 급격한 인구감소를 보이고 있는데 그 결정적 요인은 경제불안 의료체계의 붕괴 등 사회불안이라고 한다. 공동체의 활력과 인구증가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인구감소로 인한 위기가 닥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폐쇄성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흑사병과 같은 커다란 재앙이 아니고서는 아무리 인구가 줄었다 한들 전체가 줄어드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외국인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인권 문제뿐 아니라 국가의 존망과도 연결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저출산. 고령화의 핵심 원인으로 집값 급등과 고용 불안이 지목됐다. 한국 은행 금융경제연구원 12월 22일 발표한 ‘저출산·인구고령화의 원인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고용이 불안정해지거나 주택가격이 상승할 때 결혼 건수와 결혼율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시직 비율이 1%포인트 상승하면 결혼은 330건 줄고 결혼율(15∼39세 인구 1,000명 당 결혼 건수)은 0.23∼0.40건 하락했다. 또 실업률이 1%포인트 높아지면 결혼은 835∼1,040건 줄고 결혼율은 0.18∼0.42건이 낮아졌다.

  국내 기업은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임시직을 활용하기 때문에 임시직 증가는 소득 불평등 확대로 이어지고 미래 소득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결혼을 늦추게 된다. 또 주택가격 상승 역시 결혼 비용의 상승을 가져와 결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데 주로 남성의 평균 초혼 연령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주택매매 가격보다 전세 가격에 더욱 크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성이 주로 주택 마련 비용을 부담하는데 전세 등 주택가격 상승이 남성의 초혼 연령이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럴수록 출산율이 낮아져 인구구조가 고령화된다.

  결국 저출산 문제는 총체적인 경제문제이고 저출산과 고령화를 완화하려면 근본적으로 고용 안정성을 높이고 실업률을 낮추고 무엇보다 전세가격이라도 낮추는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셈이다. 단순히 보육료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2010년 예산안을 보면, 예산의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 저출산 대책은 말뿐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번 날치기 예산처리로 그나마 국회에서 증액하려던 예산들도 삭감됐다. 한마디로 그분들은 공동체의 미래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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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09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 역사의 경험을 토대로 오늘날의 사회문제를 보는 시각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 글 찜해야겠습니다. ^^

햇빛눈물 2011-02-10 22:04   좋아요 0 | URL
약간은 결과론적인 측면이 있긴하지만, 우리 사회의 인구문제에 대한 통찰력있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설 선물을 사러 오랜만에 백화점에 갔다. 학교에 볼일이 있어, 가는 길에 있는 롯데백화점 본점에 갔다. 사람 정말 많았다.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사고 구경을 하는데, 피곤했는지 규진이가 힘들어해 수유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했다. 다 그렇지만, 아이 옷 파는 곳에 수유실이 있어 올라온 김에 돌아보며 구경했다. 그런데 간단한 장남감과 책을 파는 곳이 눈에 띄었다. 

요즘 규진이가 책에 부쩍 관심도 많아지고, 팝업책을 좋아해 괜찮은 책이 없나 하고 찾던 차였다. 그런데 아주 좋은 책이 있었다. 저자와 출판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책의 내용은 정말 와이프와 내가 찾던 물건이다. 영어 동화(나중에 와이프가 다 읽어주리라는 기대는 하고 있다.)라 아직 규진이에게 요긴하진 않지만, 비쥬얼이 너무 좋다. 기쁨 마음에 와이프와 거실에서 훝어보며 대충 찍은 사진이다.

이놈은 요즘 아주 상종가를 달리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시크릿 가든도 아주 재미나게 봤는데. 처음에 드라마에 이 동화책이 나오는게 이상했는데, 지금은 이해가 간다. '주원'이나 '라임'이에게 서로는 사는 세계가 너무나 다른 '이상'한 나라였을게다. 이해할 수 없는, 절대로. 

하여튼 아래 사진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인데, 요놈이 참 물건이다. 왼쪽 사진을 보면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가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앨리스의 앞에 보면 약간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이게 뭔고 했더니,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가다가 토끼굴에 빠지는데. 이걸 설명하기 위한 장치다. 오른쪽 사진 처럼 잡아 당기면 쭈욱 종이가 탑처럼 올라온다. 그리고 위에 있는 구멍을 통해 보면 앨리스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정말 죽인다. 실감난다.(와이프는 이걸 보고 '와...'하고 감탄을 하더니, 조금 있다하는 말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상상력을 감소시키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럴듯.) 

  

역시 앨리스다. 정말 멋지지 않나. 아이만 보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마지막 이 놈은 피터팬에 나오는 해적선의 모습이다.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죽인다는 표현밖에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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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05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팝업북을 즐겨 읽는 요즘 아이들이 부러워지네요. 제가 어렸을 땐 저런 책이
나올줄 생각도 못했는데,, 정말 아이 혼자 보기에 아까운데요 ^^

햇빛눈물 2011-02-05 14:35   좋아요 0 | URL
저도 어렸을때 집에 책이 많지 않아서,항상 도서관이나 친구집에서 보고 했는데. 요즘엔 정말 재미난게 너무나 많은것 같습니다.

세실 2011-02-13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죽인다는 표현 리얼한데요. ㅋㅋ
요즘 팝업북은 요렇게 입체적이군요. 참 멋져요.
아이들은 부모가 조금만 관심 기울이면 책에 빠지고 말꺼예요. 호기심 가는 책들이 많으니요.

햇빛눈물 2011-02-13 23:14   좋아요 0 | URL
좀 표현이 그렇죠...아이들 장남감만 해도 정말 좋은 것들이 많더군요. 부모가 관심과 경제력만 된다면 아이들에게 해줄게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herenow 2011-02-14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죽이죠. ㅋㅋ
저도 어린이날 할인할 때 사두었는데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햇빛눈물 2011-02-15 12:47   좋아요 0 | URL
매번 볼때마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합니다. 기본적인 폼은 컴퓨터로 했겠지만...그래도...신기할 따름이죠!

2011-06-21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2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년 2월 미국 동부에 불어닥친 강력한 '블리자드'에 의해 피해를 크게 보고 있다고 한다. 그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 보다 재미있는 글을 찾았다. '블리자드 베이비' ㅋㅋ 

눈이 많이 와 나갈 수 없어 부부들이 집에만 많이 있었단다. 2010년 2월에. 그래서 2010년 연말에 산부인과에 출산을 앞두고 있는 산모와 아이들이 많단다. 세계지리 시간에 아이들에게 애기해주면 재미나게 듣겠다. ㅋㅋ 참고로 위키백과에 나오는 블리자드에 대한 설명이다. 

   
  블리자드(blizzard)는 낮은 온도, 강한 바람, 그리고 매서운 눈보라가 특징인 겨울의 가혹한 한랭습윤한 폭풍을 말한다. 맹렬한 눈보라를 수반하는 찬 폭풍설로서 풍속 14m/s 이상, 저온, 시정 500ft(피트) 이하인 상태를 가리킨다. 또 풍속 20m/s 이상, 기온이 -12℃ 이하, 시정이 0에 가까운 상태를 심한 블리자드라고 한다. 남극에서는 빙관으로부터 불어오는 맹렬한 강풍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블리자드는 미국의 기상용어로서 러시아 남부에서는 부란(Buran), 북시베리아 툰드라지대에서는 푸르가(Purga),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지방에서는 팜페로(Pampero)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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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2010.11.18   美 '블리자드(폭설) 베이비' 출산 붐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 프레더릭에 있는 한 병원은 최근 늘어난 산모들로 인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워싱턴DC와 버지니아 등 동부 일대의 다른 병원의 분만실도 산모로 붐비고, 간호사 등 의료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 2월 미 동부지역에 내린 기록적인 폭설로 인해 집안에 갇힌 부부들이 '계획에 없던' 사랑을 나눈 결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미 언론은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을 '폭설'을 뜻하는 블리자드를 붙여 '블리자드 베이비'로 부르고 있다. 미 ABC방송과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최근 미국 동부권 일대에는 '블리자드 베이비'출산이 붐을 이루고 있다.

프레더릭 미모리얼 병원 관계자들은 산모를 위한 병실을 구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으며, 여기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최근 하루동안 평소의 배에 가까운 14명의 신생아 출산을 도았다. 메릴랜드주 소재 '홀리 크로스 병원' 측은 지난 2월 몰아친 폭풍설 때문에 최근 하루에만 4건 정도의 추가 분만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지난 2003년 9월 엄습한 허리케인 이사벨 이후 이처럼 '베이비 붐'이 일기는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 병원은 최근 의료인력과 장비를 추가로 배치해 125명의 신생아들을 추가로 받아냈다고 한다.

한편 지난 2월초 워싱턴 DC를 비롯해 버지니아주, 메릴랜드주 일원에는 최대 90cm 이상의 기록적인 폭설이 내려 도로와 공항이 폐쇄되고 철도운행이 중단되는가 하면 전선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끊어져 정전사태가 발생하는 등 도시 기능이 마비됐다.

 

 

MBC 뉴스 화면 캡쳐 - 차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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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0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정 기후 현상으로 인해 출산 증가율이 높아졌다니 신기해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

햇빛눈물 2011-02-05 14:36   좋아요 0 | URL
두 현상간에 정말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좀 무리하게 연결시킨 것 같기도 하지만, 생각 가능한 일 같습니다. 저도 한국지리 수업때 우리나라의 전후에 태어나신 '베이비붐' 세대를 애기할때 위 내용과 비슷한 내용으로 애기를 하곤하죠. ㅋㅋ

herenow 2011-02-14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가능한 일이겠는데요? ^o^;
옛날에 출산율이 높았던 것도 밤에 깜깜해지면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그나저나, 저런 설명 하시면 아이들 반응이 재미있겠는데요? ㅋㅋ


햇빛눈물 2011-02-15 12:40   좋아요 0 | URL
애들이 좋아하죠...그런데 문제는 본래의 내용은 기억하지 않고 이것만 기억한다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