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손님들이 몇명 왔다. 내 또래의...남자들이. 중국음식을 시켜놓고 이런저런 애기들을 했다. 한명은 나보다 3살이 어리고 한명은 3살이 많고 한명은 8살이 많은 남자 4명이 모인거다.
정치적인 성향도 제각각이다. 그중에 가장 나이 많은 형이 가장 보수적이다. 내 딴에는 좀 진보적인 편인데, 이 형은 누가보더라도 정말 보수적이다. 그런데 건전한 보수다. 좀 스타일이 과격해서 그렇지. 그런데 애기를 하다가 현 정부의 말도 안되는 정책과 반농업적인 정책에 대해 말이 나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구제역 애기도 나왔다. 모두의 공통된 의견은 현 정부의 정책이 '반농촌'적이다는 사실이다. 농촌을 농부를 너무 무시한다. 우리의 뿌리는 농촌인데, 농사일을 손에 흙 한번 묻히지 않고, 내 손으로 낫질 한번 해보지 않은 인간들이 정책을 좌지우지 하니 농촌은 작살나고 있는 것이다.
난 인간들의 돈 중심적 사고가 가끔 너무 역겨울 때가 있다. 뭐, 나도 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구제역 사건에서 보여지는 정부 고위층의 자세는 정말 인간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농민들이 정부에서 주는 보상금을 노리고 제대로 방역대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말하는 인간들의 자세는 무엇일까? 이건, 농민들을 무시하는 거다. 농촌을 무시하는 말이다. 심각하게. 어떻게 농민들이 키우는 소, 돼지가 한마리에 100만원 500만원하는 금전적가치로만 환산될 수 있는가? 설령 정부가 현 시세로 모두 보상을 해줬다고해서 농민들에게 해줄거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만약, 도시에서 구제역과 같은 병이 애완견(반려동물, 난 솔직히 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 용어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에게 퍼져서 300만 마리 정도의 개와 고양이를 살처분 하고, 그 개와 고양이들의 시세(?)로 주인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해줬다면, 그 주인들은 뭐라고 할까? 그때도 지금의 농민들에게 "돈 받았으니까 됐지 뭐"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농민들에게 땅과 소와 돼지는 단순히 돈으로만 환산할 수 없는 비경제적 가치도 상당하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관료들이 있는 한 이 나라의 농촌은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야밤에...드는 생각이다. 관련된 신문기사 하나를 스크랩한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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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1.2.16 기계는 괴물을 양산한다
설날 연휴 사이에 생매장된 가축이 300만마리를 넘어섰다. 농부도 자살하였다. 그 순박한 눈망울이 떠올라 잠들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소를 중심으로 문명사를 써보자. 고대에 소는 신이어서, 살아선 좋은 잠자리에서 성수로 목을 축이고, 가장 신선한 풀을 먹었다. 죽으면 상으로 만들어져 신으로 모셔졌다. 중세시대에 소는 신과 인간, 성스러운 세계와 세속을 이어주는 메신저였다. 불교에서 소를 찾는 것은 깨달음을 얻는 길이고, 도교에서 소를 타는 것은 선계에 이르는 것이다. 유교국가인 조선조엔 선농단에서 소를 제물로 바치는 것을 매개로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풍년이 들기를 빌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소는 가족이었다. 농부는 소에게 지극한 정성을 쏟았다. 힘들여 좋은 풀을 베어 먹였고, 진드기나 등에를 잡아 주고, 냇가로 끌고 가서 씻어주고 빗어주었다. 소도 이를 아는지라 달리 채찍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랴, 쯔쯔쯔!” 소리만 내면, 순순하게 쟁기와 우차를 끌고 갔다. 돌아오다가 간혹 늑대나 호랑이를 만나면, 소가 주인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져 싸우더라는 일화는 마을마다 넘쳐난다. 그때 소들은 백신과 항생제 없이도 웬만한 병들을 스스로 이겨냈다.
그러던 소가 기계가 되었다. 목적적 합리성과 자본제의 효율성 원리대로 축산이 기업화하고 사육은 생산 과정으로 바뀌었다. 소는 기계로, 쇠고기는 상품으로 전락했다.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소를 가두고 빠른 시간 안에 가장 적은 돈을 들여 근수와 지방을 늘릴 수 있는 온갖 기술을 ‘소-기계’에 적용하였다. 기계에 경유 대신 싸구려 합성유를 주입하듯, 풀을 먹던 되새김질 동물에게 곡물은 물론, 식당 쓰레기, 닭의 사체를 포함한 닭장 쓰레기, 도살장의 찌꺼기와 골분을 먹인다. 호르몬제와 항생제도 투입한다. 소의 몸은 암과 광우병 등 온갖 병의 매개체가 되었다. 소-기계 패러다임에서 살처분이란 고장이 난 기계를 처분하는 것이자 가치를 상실한 것을 버려 다른 상품의 가치를 지키는 길이다.
어른 소나 돼지의 경우 구제역의 치사율이 5%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2주가량 앓다가 대부분 자연치유된다. 사람에게 전염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대학살을 감행하는 것은 빠른 전파력과 상품가치 때문이다.
생명의 존엄성에는 전혀 아랑곳않고 효율성만 내세우는 이들도 겨우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인 20억원의 고기 수출을 위하여 2조원 이상의 혈세를 낭비한 현 정권을 힐난한다. 진보진영은 기업형 사육을 생명윤리의 시각으로 비판하지만, 이는 경제적으로도 효율성이 없다. 사료비, 약값, 환경비, 보건비 등 전체 비용을 고려하면, 1만원을 투자하여 1000원도 못 건지는 엄청 밑지는 장사다. 그럼에도 기업형 사육이 계속되는 것은 이것으로 이득을 보는 축산자본과 관료, 다국적 곡물기업과 제약회사가 축산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기계는 두 괴물을 낳는다. 하나는 생명을 경시하고 효율성만 추구하는 인간과 축산 카르텔이고, 또 하나는 기업형 축산에 적응하여 진화하는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는 인간의 과학과 상상이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적응력과 진화 속도가 뛰어나다. 이 바이러스가 살처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에게도 감염되는 바이러스로 진화하면 어떻게 할까.
소를 묻을 때 우리의 양심과 인간성만이 아니라 미래도 함께 묻는 것이다. 소-기계가 괴물을 양산하기 전에 축산카르텔을 해체하고 소-생명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제러미 리프킨에 따르면, 완전한 목초 가축 사료 시스템으로 바꿀 경우 10억명 이상의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곡물이 절약된다. 소를 살리는 길이 곧 사람을 살리는 길이자 경제도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