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헌책방에 가고싶었다. 

그래서 수업이 비는 중간에 잠깐 짬을 내어 신촌에 가기로 했다. '숨어있는 책'에 가기 위해...그런데 신촌역에 내리고 보니, 월요일이 정기 휴일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 보았지만 역시, 철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이런 제길~~" 그래서 '꿩 대신 닭'으로 간 곳이 근처에 있는 공씨 책방이다. 공씨 책방은 위치가 큰 길 건너에 있어 가기가 쉽지않아 맘 먹고 가지 않으면 가지 않는 곳이다. 

오랜만에 간 공씨. 주인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커피 한잔 하겠냐 하신다. ㅋㅋ 책방을 쭈욱 둘러보니 어째 눈에 들어오는 책이 별로 없다. 그런데 둘러보았던 책꽃이를 다시한번 보니 책들이 보였다. 몇권... 

   

 

구입한 다섯권의 책들. 프란츠 카프카의 책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다. 이름으로만 그의 책들을 알 뿐이다. 이번 기회에 한번 읽어보려 구입했다. 그리고 출판사도 내가 좋아하는 펭귄클래식 시리즈이다.  

예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은 이후 20세기 전후 일본 소설가들의 글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워낙 소설을 읽는 편이 아니라 많은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인간 실격>에서 받은 충격은 사실 충격적이기보다 신선했다. 나에게는. 39살에 요절한 소설가와 소설 속 자살한 주인공 요조의 묘한 대비 또한 소설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참고로 최근 홍대 인디계에서 인기있는 '요조'라는 미모(?)의 여가수가 있는데,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_요조 

세번째 책은 제목이 참 맛있다.(이 책 구입한 날 결국, '돈가스'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돈가스의 탄생> 단순히 제목만 봐서 간단히 생각할 만한 책은 아니다. 부제가 '튀김옷을 입은 일본근대사'이다. 돈가스(사실 일본음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것 같다.)라고 하는 일본의 대표적 음식의 탄생 과정을 살펴보며 일본 근대 격동기의 사회적 변화상을 그려내고 있는 책이다. 책소개 글이다. 

밀가루와 계란, 빵가루로 입힌 튀김옷과 돼지고기의 만남. 일본만의 독특한 음식인 돈가스는 서양 문화가 일본 문명과 충돌하면서 빚어낸 산물이다. 이 책은 일본의 대표요리 돈가스가 탄생하기까지 60년간의 일본 근대를 살펴보면서 일본의 근대문화사를 풍성하게 풀어낸다.

돈가스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메이지유신이 불러온 '요리유신(요리혁명)'의 상징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1,200년간 유지되어온 육식 금기가 천황에 의해 깨지고, 빵과 같은 서양 음식이 일본에 도입된다. 서민들 사이에 남아있던 육식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문물이 조화를 이루면서 카레라이스, 고로케, 단팥빵과 같은 음식들이 등장하게 된다.

책은 그 변화의 중심으로 돈가스를 주목한다. 쇠고기와 닭고기에서 돼지고기를 먹게 되고, 얇은 고기에서 두꺼운 고기를 먹게 되며, 유럽식의 빵가루가 현지화되는가 하면, 기름에 담구어 튀기는 방식, 튀긴 고기를 썰어서 밥, 소스, 양배추와 곁들여 내는 풍습, 나이프와 포크가 아닌 젓가락으로 먹는 풍습 등등이 60여년 간에 걸쳐 등장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지은이는 돈가스가 서민들 사이에서 천천히, 그러나 주체적으로 일어난 변화의 결과물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동시에 당시 일본은 음식에 대한 주체성이 없었기 때문에 전 세계의 음식을 흡수해서 나름의 민족성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하며 이를 한국과 중국의 음식문화와 비교, 일본의 독특한 음식 문화를 발견한다.

네번째 책은 재야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조선왕 독살사건>이다. 내 기억으로 출간 당시(2005년 7월)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을 들추어보니 초판 1쇄 발행일이 2005년 7월8일이고 내가 구입한 책이 초판 60쇄 발행 2006년 8월 22일이다. 우리나라 출판 시장을 생각해 본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판매부수이다. 그 후에 <조선왕 독살사건> 1.2권이 다시 나왔다.  

이덕일씨의 역사관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머리말 글을 옮겨 본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은 분명 우리 역사에서 묻어두고 싶은 어두운 과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어둡고 밝음을 떠나, 긍정적인 면이든 부정적인 면이든 정확히 밝혀질 필요가 있다. 그 속에서 가치를 추출해 내는 것은 우리의 몫일 뿐이다. 때로는 부정의 극에서 최상의 긍정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역사며, 그래서 역사는 모름지기 끝까지 추구해야 그 의미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 역사의 밝은 면만 보려는, 그래서 긍정적으로만 서술하려는 자세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 한다고 해서 객관적으로 세상이 아름다워지지는 않는다. 또한 역사를 그렇게만 본다면, 역사 연구에 반드시 필요한 '반성'을 배제하게 된다. 반성 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 미래가 없는 역사를 어디에 쓰겠는가?" 

역사 전공이 아니어서 이덕일씨의 저 말을 어떻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역사학자로서 저런 자세가 올바른 것이라는 생각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정조 관련 드라마의 인기에 따라 불거진 정조 독살설의 논쟁이 있을때 이덕일씨에 대한 제도권(대학 교수) 학자들의 비난을 생각해본다면 더욱더 '끝까지 추구해야 그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책은 좀 생소한 책이다. 헌책방을 돌아다니다 보면 16세기부터 20세기 초반 탐험가들이나 여러분야의 학자들이 여러 지역들을 여행하며 작성한 다분히 지리적인 책들이 많이 있어 놀란 적이 있다.(하긴 해마다 몇 만권의 책이 쏟아 지는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책이 내 손에 들려지는 책이 몇 권이나 되겠나! 그러니 <지난 10년, 놓쳐서는 안 될 아까운 책>같은 책이 또 나왔을까!)

  

하여튼, 책은 "18세기 초 지구의 생김새를 알아내기 위해 남아메리카 탐험에 나섰던 프랑스 과학대원 장 고댕과 그의 아내 이사벨 고댕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당연히 나는 '사랑'과 '이별' 이야기 보다는 18세기 남미를 탐험한 사람들의 느낌과 그 당시 그 지역의 정보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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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1.8.29  마산·창원·진해 자율통합 1년 창원. 덩치 커졌지만…아직 실험단계

새 청사·재정 배분 문제 여전
시민들 “좋은지 잘 모르겠다” 

  

현재의 경남 창원시는 지난해 7월1일 창원·마산·진해 등 3개 시의 이른바 ‘자율 통합’으로 탄생했다. 당시 전국 곳곳에서 시·군 통합이 추진됐으나 성사된 곳은 창원시 한 곳뿐이다.
창원시는 통합 당시 주민등록 인구가 108만1808명으로 수원을 제치고 전국에서 최대 기초자치단체가 됐고, 지역내 총생산(GRDP)은 21조7639억원으로 경남의 37.7%를 차지했다. 통합 1년 만인 지난 7월 현재 창원의 인구는 110만5355명, 지역내 총생산은 29조2435억원으로 늘어 광역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국회의원 선거구에 따라 5개 행정구가 설치됐고, 부시장도 2명으로 늘었다.


통합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것은 △시 이름 △시청사 위치 △정부 재정지원금 배분 등 세 가지였다. 이름을 창원시로 함에 따라, 청사 위치는 마산 종합운동장과 진해 육군대학 터를 1순위 후보지로 정했다. 또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정부가 10년간 146억원씩 주는 지원금은 창원, 마산, 진해가 2 대 4 대 4 비율로 나누기로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통합 이후 새 청사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재정지원금 배분도 창원·마산·진해가 한 몸이 된 상태에서 약속한 비율대로 나누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남도민일보>가 지난 7월1일 통합시 출범 1주년을 맞아 지역 각계 전문가 100명에게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좋아졌다’와 ‘나빠졌다’는 답이 엇비슷하게 나왔다. ‘아직 모르겠다’는 대답도 절반에 육박하는 42명이나 됐다. 하지만 통합 창원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창원시가 여론조사기관에 맡겨 조사한 결과 88.7%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창원/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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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슈테트하면 난 우선 위 앨범들이 기억난다. 나를 말러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게 만든 장본인이며 그 앨범들이다. DVD를 통해 본 그의 시카고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말러 교향곡 1번 연주는 정말 황홀 그 자체였다. 물론 과도한 감정이입을 싫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 연주에 감정이입이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가장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은 교향곡 8번도 EMI 전집의 런던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은 후에야 귀에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Mahler symphony 1번 4악장 K.Tennstedt Chicago Symphony Orchestra, 1990년 

클라우스 텐슈테트는 1926년 6월 6일 라이프치히에서 서쪽에 위치한 메르제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함께 바이올린을 배웠다고한다. 2차 대전 후인 1948년부터 51년까지는 메르제부르크 북쪽 마을인 할레 시립 가극장 관현악단에서 콘서트마스터로 일했으며, 1949년에는 독일은 동서로 분할된 후 동독에서 생활을 계속하게 된다. 

그 후 손에 생긴 이상 때문에 지휘자로 전향하여, 1952년에는 할레 시립 가극장 제1 지휘자로서 활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1954년부터는 칼 마르크스 슈타트(현 켐니츠) 시립 가극장 제1 지휘자, 1958년부터는 라디포일 주립 가극장 음악감독, 1962년부터는 슈베린 메크렌부르크 국립 가극장 음악감독을 역임하였다. WEITBLICK에서 발매된 아래 앨범의 베토벤 교향곡 1번이 바로 슈베린 메크렌부르크 국립 가극장 음악감독시절 녹음한 앨범인것 같다. (고클래식에는 악단을 클렌부르크 슈타츠카펠레라고 나와있다. 독일어를 잘 몰라서 모르겠지만 'Staatskapelle'는 우리말로 하면 '국립관현악단'인 것 같다.) 녹음연도가 1968년 08월 18일이다. 더군다다 초기 녹음이면서 라이브가 아닌 스튜디오 녹음인 것이 특색이다. 고클래식에서 이 앨범에 있는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다운받아 들어보았다. 충격이었다. 시카고심포니와의 말러 교향곡 1번 4악장의 광폭함이 베토벤 교향곡 5번 4악장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듣는 내내 몸이 절로 움직여진다. 

음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너무 연주가 맘에 들어 어제 CD를 주문했다. 주문하는 김에 같은 레이블에서 나온 텐슈테트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도 주문했다. 텐슈테트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 CD로 발매된 건 이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녹음연도는 1975년 3월 20.21일이다. 악단은 뮌헨필하모니오케스트라이다. 텐슈테트의 쇼스타코비치는 어떨까? 궁금하다. 그리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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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26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좀 바이트블릭레이블에서의 텐슈테트가 좀 궁금합니다.

그냥 느낌일 뿐이겠지만 같은 음원이라도 시디로 들으면 왠지 좀 더 가깝고 폭 넓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주문해서 기다리고, 음반을 구입해서 포장을 벗기고, 반짝이는 음반을 플레이어에 넣고 하는 과정도 감상에 포함되어 있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일지 LP를 듣는 맛은 또 어떨까.. 싶기도 하고요. 텐슈테트의 베토벤과 쇼스타코비치. 외모만 봐서는 좀 매치가 안되지만 그의 말러를 생각하면 또 짐작가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ㅎ

햇빛눈물 2011-08-29 23:0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도 고클래식을 통해서 음원을 많이 다운 받아 듣고 있고 사실, mp3플레이를 통해 이동중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시디를 꺼내 시디플레이에 집어 넣고 듣는 기분도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텐슈테트의 베토벤은 생생한 기대 이상의 느낌이지만, 기대했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은 그닥 잘 모르겠네요. 좀 더 들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이병권 2012-11-03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텐슈테드 베토벤 교향곡 5번 갑이죠.
 

2007년 뉴질랜드 답사 이후 아주 오랜만에 해외 답사를 나왔다.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하지만 왜 가고 싶어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인도. 

이번 여행은 가고 싶은 마음과 가기 싫은 마음이 마구마구 교차되는 여행이었다. 떠나는 날까지 날 아주 괴롭게 했었다. 

이제 혼자가 아니다 보니, 집 생각과 아이 생각 와이프 생각에 어디 나와도 맘이 편치 않다. 다음에는 좀 참았다. 규진이 크면 같이 와야 겠다. 

전에는 어디 해외 간다고 하면 여행 책자를 사거나 인터넷을 통해 여러가지 내용들을 찾아보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그렇지 않고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손에 쥐어졌다. 예전에 사 놓고 읽진 않은 책이다. 책 내용을 대충 알기에 내가 왜 이 책에 손이 가는지는 이해간다. 

  

하지만 내내 드는 생각은 인도와 이 책은 참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다. 난 개인적으로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과 같은 생각을 하는 부류이기 때문에 인도에 며칠 있지 않았지만 내내 불편할 뿐이다. 뭐 지저분한 환경과 음식 때문만은 아니다. 어디가나 볼 수 있는 이름 모름 '신'을 모시고 있는 사당 비슷한 장소와 그곳에서 생각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그 옆에서 똥 싸는 소. 그리고 구걸을 하는 노숙자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떤 나라기에 이런 .... 이해하기 힘들다. 

어제 바라나시에 왔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네팔의 룸비니에서 차 타고 8시간을 달려 바라나시에 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갠지스 강가에 있는 가트(ghat)에 가 배를 탔다. 때마침 지금이 시바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기간이라고 한다.(약 한 달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이른 새벽부터 무지하게 많았다.  

누가봐도 더러운 물에서 목욕하고 기도하고 빨래하고 좀 떨어진 하류부 화장터에서는 화장을 한 후 타다 남은 재를 강가에 버리는 풍경. 

  

물론, 우리네 개념으로 이들의 생활 환경을 이해할수도 없거니와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들의 '신'에 대한 믿음이 거리에서 갓난 아이를 업고 1달러를 외치는 아주 젊은 애엄마를, 거지들을, 구걸하는 아이들을 재생산하는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기에 이 여행에서 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읽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한다. 

ps : 책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앞 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종교 신앙의 요체, 그것의 위세와 주된 영광은 그것이 합리적인 정당성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동성애자를 차별하기 위한 법적 소송은 이른바 종교적 차별에 반대하는 소송으로서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법은 그것을 존중하는 듯하다. "나더러 동성애자를 모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내 편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는 말로는 무사히 넘어갈 수 없다. 하지만 "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는 말로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어쨌든 여기서도 종교가 모든 것을 이긴다.

어쨌든, 이들을 비판을수는 있으되, 이들의 비참한 생활을 당연시하는 그들의 개념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킨스식으로 이야기 한다면 "늘 그렇듯이 종교는 으뜸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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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06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개인적으로는 번역이 좀 이해불가여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 나왔을 때, 그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나저나 인도에 계시는군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햇빛눈물 2011-08-10 16:57   좋아요 0 | URL
네, 좀 전에 서울에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인도를 무어라 무어라 애기하곤 하는데, 전 솔직히 너무 별로였습니다. 물론 제가 있는 그 짧은 기간동안 제가 무얼 알겠냐마는, 좀 인도여행에 대한 '거품' 혹은 '환상'이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우리 모두가 '존 레논'은 아니니깐요? 아무나 그럴수 없는데 말이죠. ㅋㅋ 저 또한 마찬가지였나봅니다.
 

지나간 신문을 들추다 한창훈씨의 글을 읽었다. 제목이 '밥집 아줌마'다. 뭔가해서 읽어봤더니 배우 김여진씨와 관련된 내용이다. 요즘 김여진씨는 여러 사회적 이슈에 맨발로 뛰어나니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연예뉴스보다는 정치 사회 뉴스에 더 많이 나오고 있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커밍아웃한 어떤 이상한X과 김연진씨(일명 밥집 아줌마같은 여진족)와의 에피소드에 관련된 내용이다. 아래 내용이 그 내용이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한창훈씨의 말마따나 ‘밥집 아줌마 무시하지 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제대로 차려주어 본 적 있느냐.’ 생판 모르는 사람이지만, 정말 비난같지도 않은 천박한 생각을 가진이라는 생각이다. 인터넷 찾아보니 사진도 나오던데 올리기 조차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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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집 아줌마처럼 생긴 여진족"  

"밥집 아줌마처럼 생긴 여진족" vs "국밥집 아줌마라니 영광이다"

소셜테이너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배우 김여진(39)이 최근 트위터를 통해 누군가와 설전을 펼쳤는데요. 그 상대는 패션 칼럼니스트이자 커밍아웃을 선언한 황의건 씨(43) 입니다.

황 씨는 지난 14일 자신의 트위터에 "몇 년전 한 명품 브랜드 출시 때 공짜 옷을 협찬 받기 위해 한 여배우가 왔다"며 "그랬던 그녀가 몇 년 사이 변했는지 아니면 원래 기회주의자인지, 연기에 뜻이 없는 건지, 정치를 하고 싶은 건지 당최 헷갈린다"는 글을 올려 트위터리안의 관심을 받았는데요.

여배우가 누군지 묻는 질문에 황 씨는 "연예 뉴스에 한번도 못 나온 대신 9시 뉴스에 매일 나오는 그 밥집 아줌마처럼 생긴 여진족 여자"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배우 김여진을 가리키는 것이었죠.

이에 당사자 김여진은 자신의 트위터에 반박 글을 남겼습니다. 그는 16일 트위터에 "국밥집 아줌마라니 영광"이라며 "그렇지만 난 공짜 옷 협찬 받으러 간 적 없고 이 부분은 명백히 허위 사실이니 정정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또한 "당신이 그동안 국밥집 아줌마와 ‘뜨지 못한’ 배우들과 ‘데모하는’ 사람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왔는지 잘 알겠다"며 "그래도 당신이 차별 받을 때 함께 싸워 드리죠 황의건 씨" 라고 받아쳤답니다. (스포츠서울 2011.6.18) 
 

한겨레신문 2011.6.30  밥집 아줌마   » 한창훈 소설가

문제는 모욕을 당한 사람이
김여진씨 말고 더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진족과 밥집 아줌마이다

동성애 커밍아웃을 한 어떤 남자가 배우 김여진씨에게 모욕을 주면서 ‘연예 뉴스에는 한 번도 못 나온 대신 9시 뉴스에 매일 나오는 그 밥집 아줌마처럼 생긴 여진족 여자’라고 말했단다. ‘토 쏠려서 조금 전에 소화제 한 병 마셨다’고도 했다.
이 정도면 비난의 천박성이 수준급이다. 그 자신이 성적 소수자이면서도, 차별받는 소수의 사정을 헤아리고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김여진씨에게 그런 발언을 한 것인데, 그 이유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원하고 최근에는 대학교 반값 등록금 시위에 참여하고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에 들어갔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하고 고공크레인 위에서 농성중인 김진숙씨를 위해 한진중공업 회장에게 눈물로 하소연을 한 그녀의 행보가 싫었을 것이다. 잘난 척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돈과 권력이 타인의 아픔에 관심이 없는, 자신의 이익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 뜬 봉사들을 많이 만들어내 버렸으니까.

그는 또 그녀에게 정치를 하고 싶은 것이냐고 비아냥댔는데 정작 자신의 말도 정치적이라는 것은 모르는 듯하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기본적으로 정치성을 띤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다. 누군가 그에게, 보수정치인이 되고 싶은 거냐고 물으면 그는 어떤 대답을 할까.

아무튼, 문제는 김여진씨 말고 모욕을 당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진족과 밥집 아줌마이다. 여진족은 지금 어디에들 살고 있는지 잘 몰라서 말하기가 뭐하지만 나는 밥집 아줌마가 마음에 걸린다. 도대체 밥집 아줌마를 이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버릇은 어디에서 생겼을까.

그동안 나는 수많은 밥집 아줌마들을 만났다. 물론 다 좋은 기억은 아니다. 터무니없이 비싸게 받는 아줌마, 맛과 정성보다는 그릇 수만으로 장사하는 아줌마, 안 먹으려면 먹지 마라 너희들 아니어도 손님 많다 유세 떠는 아줌마들 적잖았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많은, 좋은 아줌마들을 보고 살아왔다. 밥공기 하나 더 슬그머니 두고 가는 아줌마, 민박집과 차편을 전화로 물어봐서 알아봐준 아줌마, 심지어는 나를 사위 삼고 싶어했던 공사판 함바집 아줌마도 있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방이 이모였다. 오래전 그녀는 느닷없이 식당을 차렸는데 장사하는 폼이 좀 이상했다. 모든 손님이 아주 만족스러워하게 차려주었고 고기를 시켜도 추가 없이 배부르게 먹게끔 해주었다. 지나가는 노숙자들을 불러들여 밥 차려준 것도 여러번이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지난 뒤였다. 아들이 가출을 했는데 찾을 수도 없고 연락도 오지 않았다. 어미로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식당을 차려서 사람들에게 밥을 차려주는 거였다. 그래야 내 자식도 어디에서 굶지는 않겠지, 하며 이모는 눈시울을 적셨다.

사람은 자기 직업을 닮기 때문에 그 아줌마들의 공통점은 눈이 순하고 타인의 배고픔을 안쓰러워하는 데 있다. 그래서 밥을 차려주는 이들은 측은지심의 모성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따뜻한 밥 차려주는 손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알려면 아주 쉽다. 한 두어 끼 굶겨놓으면 된다. 밥집 아줌마가 없다면 돈 있어도 밥 못 사먹는다. 직접 끓여 먹어야 한다. 영원히.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시가 생각난다. 시인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밥집 아줌마 무시하지 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제대로 차려주어 본 적 있느냐.’ 천박한 비난에도 김여진씨는 이렇게 대응했다. ‘그래도 당신이 차별을 받을 때 함께 싸워드리겠다.’ 시민사회 구성원의 덕목은 이 정도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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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7-29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기사 봤던 기억이 나네요.
한창훈을 다시 찾아 읽어야 하는 건가, 김여진의 전작을 찾아봐야 하는건가 그러고 있었어요~^^

햇빛눈물 2011-08-10 16:58   좋아요 0 | URL
한창훈씨의 전작을 찾아보시는게...하여튼 이 분 글이 참 맛깔나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