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헌책방에 가고싶었다. 

그래서 수업이 비는 중간에 잠깐 짬을 내어 신촌에 가기로 했다. '숨어있는 책'에 가기 위해...그런데 신촌역에 내리고 보니, 월요일이 정기 휴일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 보았지만 역시, 철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이런 제길~~" 그래서 '꿩 대신 닭'으로 간 곳이 근처에 있는 공씨 책방이다. 공씨 책방은 위치가 큰 길 건너에 있어 가기가 쉽지않아 맘 먹고 가지 않으면 가지 않는 곳이다. 

오랜만에 간 공씨. 주인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커피 한잔 하겠냐 하신다. ㅋㅋ 책방을 쭈욱 둘러보니 어째 눈에 들어오는 책이 별로 없다. 그런데 둘러보았던 책꽃이를 다시한번 보니 책들이 보였다. 몇권... 

   

 

구입한 다섯권의 책들. 프란츠 카프카의 책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다. 이름으로만 그의 책들을 알 뿐이다. 이번 기회에 한번 읽어보려 구입했다. 그리고 출판사도 내가 좋아하는 펭귄클래식 시리즈이다.  

예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은 이후 20세기 전후 일본 소설가들의 글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워낙 소설을 읽는 편이 아니라 많은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인간 실격>에서 받은 충격은 사실 충격적이기보다 신선했다. 나에게는. 39살에 요절한 소설가와 소설 속 자살한 주인공 요조의 묘한 대비 또한 소설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참고로 최근 홍대 인디계에서 인기있는 '요조'라는 미모(?)의 여가수가 있는데,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_요조 

세번째 책은 제목이 참 맛있다.(이 책 구입한 날 결국, '돈가스'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돈가스의 탄생> 단순히 제목만 봐서 간단히 생각할 만한 책은 아니다. 부제가 '튀김옷을 입은 일본근대사'이다. 돈가스(사실 일본음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것 같다.)라고 하는 일본의 대표적 음식의 탄생 과정을 살펴보며 일본 근대 격동기의 사회적 변화상을 그려내고 있는 책이다. 책소개 글이다. 

밀가루와 계란, 빵가루로 입힌 튀김옷과 돼지고기의 만남. 일본만의 독특한 음식인 돈가스는 서양 문화가 일본 문명과 충돌하면서 빚어낸 산물이다. 이 책은 일본의 대표요리 돈가스가 탄생하기까지 60년간의 일본 근대를 살펴보면서 일본의 근대문화사를 풍성하게 풀어낸다.

돈가스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메이지유신이 불러온 '요리유신(요리혁명)'의 상징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1,200년간 유지되어온 육식 금기가 천황에 의해 깨지고, 빵과 같은 서양 음식이 일본에 도입된다. 서민들 사이에 남아있던 육식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문물이 조화를 이루면서 카레라이스, 고로케, 단팥빵과 같은 음식들이 등장하게 된다.

책은 그 변화의 중심으로 돈가스를 주목한다. 쇠고기와 닭고기에서 돼지고기를 먹게 되고, 얇은 고기에서 두꺼운 고기를 먹게 되며, 유럽식의 빵가루가 현지화되는가 하면, 기름에 담구어 튀기는 방식, 튀긴 고기를 썰어서 밥, 소스, 양배추와 곁들여 내는 풍습, 나이프와 포크가 아닌 젓가락으로 먹는 풍습 등등이 60여년 간에 걸쳐 등장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지은이는 돈가스가 서민들 사이에서 천천히, 그러나 주체적으로 일어난 변화의 결과물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동시에 당시 일본은 음식에 대한 주체성이 없었기 때문에 전 세계의 음식을 흡수해서 나름의 민족성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하며 이를 한국과 중국의 음식문화와 비교, 일본의 독특한 음식 문화를 발견한다.

네번째 책은 재야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조선왕 독살사건>이다. 내 기억으로 출간 당시(2005년 7월)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을 들추어보니 초판 1쇄 발행일이 2005년 7월8일이고 내가 구입한 책이 초판 60쇄 발행 2006년 8월 22일이다. 우리나라 출판 시장을 생각해 본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판매부수이다. 그 후에 <조선왕 독살사건> 1.2권이 다시 나왔다.  

이덕일씨의 역사관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머리말 글을 옮겨 본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은 분명 우리 역사에서 묻어두고 싶은 어두운 과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어둡고 밝음을 떠나, 긍정적인 면이든 부정적인 면이든 정확히 밝혀질 필요가 있다. 그 속에서 가치를 추출해 내는 것은 우리의 몫일 뿐이다. 때로는 부정의 극에서 최상의 긍정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역사며, 그래서 역사는 모름지기 끝까지 추구해야 그 의미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 역사의 밝은 면만 보려는, 그래서 긍정적으로만 서술하려는 자세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 한다고 해서 객관적으로 세상이 아름다워지지는 않는다. 또한 역사를 그렇게만 본다면, 역사 연구에 반드시 필요한 '반성'을 배제하게 된다. 반성 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 미래가 없는 역사를 어디에 쓰겠는가?" 

역사 전공이 아니어서 이덕일씨의 저 말을 어떻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역사학자로서 저런 자세가 올바른 것이라는 생각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정조 관련 드라마의 인기에 따라 불거진 정조 독살설의 논쟁이 있을때 이덕일씨에 대한 제도권(대학 교수) 학자들의 비난을 생각해본다면 더욱더 '끝까지 추구해야 그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책은 좀 생소한 책이다. 헌책방을 돌아다니다 보면 16세기부터 20세기 초반 탐험가들이나 여러분야의 학자들이 여러 지역들을 여행하며 작성한 다분히 지리적인 책들이 많이 있어 놀란 적이 있다.(하긴 해마다 몇 만권의 책이 쏟아 지는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책이 내 손에 들려지는 책이 몇 권이나 되겠나! 그러니 <지난 10년, 놓쳐서는 안 될 아까운 책>같은 책이 또 나왔을까!)

  

하여튼, 책은 "18세기 초 지구의 생김새를 알아내기 위해 남아메리카 탐험에 나섰던 프랑스 과학대원 장 고댕과 그의 아내 이사벨 고댕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당연히 나는 '사랑'과 '이별' 이야기 보다는 18세기 남미를 탐험한 사람들의 느낌과 그 당시 그 지역의 정보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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