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말리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음, 이세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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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이라는 가정을 자주 사용하는 거 같다. 소설을 읽고 드는 생각에 빠져있다 보면 우리가 도달하지 못할 세계를 꿈꾼다. 도달하지 못하기에 꿈을 꾸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과거의 나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다분히 클리셰에 가까운 문장이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는 거 같다. 이 책 『아노말리』를 읽고서 나는 또 만약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나의 모든 기억과 경험을 가진 또 다른 내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이 경우 한 사람은 가짜일까 아니면 그저 복제품일 뿐일까. 


 

2021년 3월 10일, 파리에서 출발한 뉴욕 행 에어프랑스 여객기가 비행 도중 난기류를 만났다가 무사히 착륙했다. 세 달 뒤 6월 24일, 같은 여객기가 동일한 지점에서 난기류를 만나고 착륙하려고 한다. 동일한 여객기, 동일한 기장과 승무원, 동일한 승객이 타고 있다. 미국 정부는 비밀리에 과학자들을 소집하고 군 공군 기지로 비상 착륙 시켰다. 심리학자들과 군, 정부 관계자들은 3월 10일에 비행기를 탔던 사람들을 찾고 6월 24일에 비행기에서 내렸던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관계자들이 이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던 것은 가설은 세 가지였다.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차원 즉 웜홀 가설이 그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복사기 가설이었다. 이를테면 3D 프린팅으로 생체 물질을 만드는 바이오 프린팅이었다. 세 번째는 보스트롬 가설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된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가설은 가설일 뿐. 그들을 인간이라 여기고 싶지 않았지만 동일한 인격과 동일한 기억을 가진 인간이었다. 


 

비행기에는 다양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 블레이크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살인청부업자,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빅토르 미젤, 영화 편집자인 뤼시 보게르, 췌장암 말기 환자인 기장 데이비드, 성공하고 싶은 변호사 조애나, 나이지리아 뮤지션 슬림보이 등이다. 다양한 인물들인 만큼 다양한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다. 소설보다는 번역가로 명성을 얻은 빅토르는 이 작품과 동일한 제목의 소설을 쓰고 자살하며 유명해지고, 기장이었던 데이비드는 췌장암 말기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동성애자 임을 숨겼던 뮤지션은 역시 동성애자인 여성과 연인인 척 행동하고, 어떤 소녀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을 안고 있다. 이 비밀을 풀어가는 게 소설의 한 방식이며, 자기와 똑같은 존재를 만났을 때 대처하는 인간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소설의 다른 방식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던 사람은 자기와 똑같은 인물이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고, 갑자기 엄마가 두 명이 된 소년은 현명하게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을 주사위를 이용하겠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단 둘만 살아온 관계이기에 때로는 변화가 필요하고, 어느 순간 성장해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사랑에 실패한 사람은 자기와 같은 인물에게 충고를 해줄 수도 있다. 

 


3월의 인물과 6월의 인물이 두 사람이 되었을 때 대처한 방법 중 한 가지는 다른 신분으로 살아가는 거였다. 3월의 조애나는 당시 연인이었던 에이비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고, 6월의 조애나는 자기가 갖지 못한 아이에 대한 질투심, 에이비에 대한 사랑으로 괴롭다. 다른 조애나를 죽이는 꿈까지 꾼다. 멀리 떠나 새로운 신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물론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도. 

 


마치 퀴즈를 푸는 거 같다. 네모나 세모, 원에 갇힌 자와 그 바깥에 있는 사람과의 조우. 그 방법을 아는 일. 우리가 그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어떻게 할까. 사람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 정부이기에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두 사람의 존재가 각자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그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만약 공산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선택지는 많지 않다. 조용히 가두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했을 것이다. 미국 정부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을 것이다. 3개월 뒤, 동일한 비행기, 동일한 기장과 승무원, 동일한 승객들이 탄 비행기가 또 나타난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까. 


 


 

 

어떤 인물은 남편의 죽음을 몇 번이나 겪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살아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싶을까. 슬픔이 가득 차오르는 순간, 아직은 건강한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반복된 삶을 기꺼이 감수하게 될까. 죽어가는 그 순간마저 소중하게 여길 것인가. 반복된 상황은 반복된 고통을 줄지 모르고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기쁨을 느낄지도 모른다. 또는 자기의 존재를 죽이는 방법도 있다. 동일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봤자 좋을 게 없을 수도 있다. 비밀이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을 아는 자가 둘 일 필요는 없을 것이니. 

 


추리 소설 적인 면과 연애 소설 같은 느낌이 있었으며, 읽을 때는 행간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 행동 하나가 의미하는 바를 찾아내는 기쁨도 컸다. 물론 그다지 행복한 상황은 아니기에 우울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드러나서 다행인 점도 없지 않다. 생각 하나가 파생되어 생기는 여러 면이 좋다. 글이 가진 즐거움도 그렇고 작품이 내포하는 삶의 통찰 또한 우리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현재의 내 삶도 중요하지만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대신 살아보고 그에 맞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질문을 건넬 수 있는 책 읽기가 소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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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 - 잃어버린 세계와 만나는 뜻밖의 시간여행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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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와 지구 환경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나 하나가 조심한다고 지구가 변하겠느냐는 말을 들었다. 일회용품, 세제 사용을 자제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구 환경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나부터 실천한다면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트래버스 엘버러의 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는 특별한 책이다. 고대 도시를 비롯해 잊힌 땅, 사그라지는 곳, 위협받는 세계 편으로 구성된 책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진, 사라져가는, 사라질 장소들의 지도책이다. 역사적인 사실의 기록, 지도, 가장 최근의 사진까지 수록해 새로운 지식을 쌓게 된 느낌이다.




 

우리가 지구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 때문에 사라진, 사라질 장소들이 많다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다. 가까운 일본도 자유로울 수 없는 자연재해를 늘 안고 있지 않은가. 후지산의 화산 폭발과 해일, 지진 때문에 늘 두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홋카이도 최북단에 위치했던 에산베하나키타코지마는 아무도 모르는 새에 사라져버린 섬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어서 아무도 살지 않은 섬이라 사라진 것도 몰랐다. 격렬한 오호츠크해 아래로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대 도시의 붕괴는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교한 배수 시설과 공중목욕탕을 갖춘 모헨조다로는 파키스탄의 고대 도시다. 유골 44구가 발견된 도시에서 유골의 사망 원인을 알 수는 없다. 사람들은 인더스강의 물길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도시가 쇠퇴했을 거라 믿는다. 알렉산드리아는 로마의 속주로 있던 이집트의 중요한 도시였다. 파로스 섬에 지어진 유명한 등대는 선박을 인도할 목적으로 세운 세계 최초의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그 등대가 어떠한 이유로 종말을 맞았는지 알 수 없고, 새로운 지식의 빛을 비추는 학문이 등대인 도서관의 번성과 방대한 자료는 지진으로 버티지 못했고 영원히 바닷물 속에 잠겼다.

 




이미 사라진 장소들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그라지는 장소와 사라질 장소는 더 안타깝다. 세계문화유산은 말 그대로 인류가 지켜야 할 유산이다. 다뉴브강은 세르비아와 노비사드에서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토 폭격으로 주저앉았다. 현재는 EU가 자금을 지원하여 배가 다뉴브강 전체를 막힘없이 오가고 있다. 하지만 강의 동쪽 끝이 생태 재앙으로 위협받고 있다. 저수지와 폐공장에서 중금속과 유독성 폐기물로 가득찬 웅덩이가 발견되어 오염물질이 수로로 누출되었다. 강 유역 전체가 파괴될 수 있다고 한다. 기억과 역사를 품고 있는 다뉴브강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죽음의 바다로 일컬어진 사해 또한 요르단강 상류와 야르무크강의 물길이 바뀌어 걱정스러운 수준으로 줄어들고 있다. 사해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싱크홀이 많이 생겨났다. 호수를 가득 채우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 미래에 벌어질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한다.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는 것.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태평양을 막는 제방에서 바닷물이 경작지를 침입해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다. 사그라지는 곳 중의 하나로 미국의 에버글레이즈를 말하였다. 에버글레이즈도 바닷물이 침입해 들어오면서 늪지가 점점 후퇴하고 있어 습지대 전체를 집어삼킬 기세라고 했다. 그것을 가리켜 '죽음의 행진'이라고 표현했고, 절멸 직전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에버글레이즈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용감하게 보호하려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가 지켜내고 보호해야 할 행동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지난 토요일 저녁, 심한 가뭄으로 잎이 말라가고 있는 수국에 지하수를 뿌려주면서 여동생이 했던 말이 지금까지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다. 수국이 물을 많이 먹는 식물이라며 환경에 좋지 않다고 했던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식물을 살리기 위해 물을 이렇게 줘도 되는가 낭비하게 되는가, 순간 고민에 빠졌다. 멕시코와 미국을 가로 짓는 치와와 사막 부분을 읽으면서 새로운 감정에 휩싸였다. 아보카도 한 알을 얻기 위해 주변의 물 320L가 필요하고 아보카드를 재배하는 장소는 심한 가뭄을 일으킨다는 말을 듣고 아보카도 섭취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기온의 상승으로 빗물이나 저수지의 귀한 물이 증발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대로 황량한 땅이 되고 말 치와와 사막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무엇이 옳은 일인지 물었다.


 

어쨌거나 날씨는 스카라브레를 늘 위협한다. 수년 전 강풍은 순식간에 스카라브레 유적을 드러냈다. 이제는 기후 변화 탓에 점점 높아지는 해수면과 갈수록 격렬해지는 폭풍이 그만큼 빠르게 유적을 쓸어버릴 수도 있다. (189페이지)





 

바다 위에 세워진 도시 베네치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의 도시다. 물에 둘러싸인 만큼 역사적으로도 자주 침수된 장소다. 수록된 지도에서 베네치아는 운하 벽이 상당히 손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매해 침수가 일어난 지역이 많은 이곳은 지난 세기에 10센티미터 정도 가라앉았다. 이에 따라 해수면도 점점 높아지고 홍수도 잦아지고 있다. 앞으로 30년 안에 베네치아는 완전히 물에 잠겨서 살 수 없는 곳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다.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진다. 우리가 가봐야 할 장소가 더 늘어나고 있다. 해수면에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에 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비록 관광객 수를 제한하는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전 세계가 뜨겁다. 우리나라도 7월 초인데도 8월 초 날씨처럼 덥다. 어느 나라는 폭설이, 다른 나라는 폭염이, 홍수와 해일, 지진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빙하가 사라지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바다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지구에서 바닷물에 잠길 나라가 늘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가 모여 지구에 치명적인 해를 가한다. 나 하나쯤이야 했다가 우리 미래 세대에 지구의 푸르름을 물려줄 수 없을지도 모를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가 보존해야 할 유산과 지키는 법, 우리가 해야 할 일, 기후 위기에 맞서 지구 환경을 지키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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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10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리즈님 당선 축하드려요.
제가 7월에 놓친 좋은 리뷰가 많네요

mini74 2022-08-10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 *^^*

서니데이 2022-08-10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08-11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thkang1001 2022-08-1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eeze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강나루 2022-08-12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eeze님, 이달의 당선작 되신거 축하드려요^^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퇴근하고 식물집사 - 늘 긴가민가한 식물 생활자들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
대릴 쳉 지음, 강경이 옮김 / 휴(休)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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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집사에 이어 식물 집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오래전의 나라면 식물을 말려 죽이는 사람에 가까웠는데 최근에는 식물들을 제법 살리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수국 삽목과 꽃 피우기였다. 지금은 제라늄을 키우고 있다. 친구에게 분양받은 제라늄 물 주기와 삽목, 공중뿌리 화분 식재하기, 분갈이 등 날로 발전하고 있다. 다양한 색깔로 꽃피우는 제라늄이 예뻐 제법 분양받았고, 삽목 시도도 성공적으로 보인다. 지금 같으면 예전에 키우던 관엽 식물도 잘 키웠을 텐데 안타깝다.


 

식물집사가 되는 것도 다 때가 있나 보다. 식물에 관심을 두고 있으니 이 책도 읽게 되었다. 내가 키우는 방법이 과연 옳은가 그 진위를 알고 싶었다. 물을 싫어하는 식물에게 과도한 애정으로 과습의 원인을 만들지는 않았는지, 다양한 식물 키우기를 배워보고 싶었다.


 


 

 

대릴 챙이 좋아하는 식물은 우리 집에서 예전에 키웠던 관엽 식물이었다. 공기 정화 식물이라고 하여 집안 가득 2~30여 개의 화분이 있었다. 몇 년 전 미니멀 라이프를 생활화하려고 정리하여 텃밭에 심기도 하였다. 다육 종류 몇 개만 놔두고 있었는데, 다시 제라늄을 들이기 시작했다. 최근 제라늄에 빠진 친구 덕택이다.

 


대부분 (혹시 나뿐인가) 실내 공기 정화 식물은 빛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래서 일부러 빛이 들지 않은 곳에 화분을 두기도 했었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니 빛을 싫어하는 식물은 없다고 했다. 다만 적당량의 빛은 필요하다는 거. 식물에게 가장 좋은 자양분은 빛이라고 강조했다. 그다음이 물과 흙인 거다. 빛이 없을 경우, 밝은 간접광만 있어도 식물이 살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최근에 토분과 유기농 상토, 녹소토, 세척 마사토 등 식물 기르기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고 있다. 신랑이 하던 걸 구경만 하다가 직접 분갈이도 하고 있다. 조금 큰 화분에 분갈이를 하고 꽃망울을 터트려 꽃을 피우는 걸 보면 이 또한 감동적이다. 사람에게 받을 수 없는 애정을 받는 거 같다. 사랑을 주니 그 사랑을 되돌려 받았다고 표현해도 되겠다.


 

식물에게 가장 좋은 건 빛과 물, 토양 관리, 공기, 온도를 들 수 있겠다. 화원과 식물 전문점, 집안 온도와 습도가 다르기도 하겠지만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그에 따라 식물의 생태도 변하는 거 같다.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게 있는데, 토양 통풍 방법이다. 오래도록 분갈이를 해주지 않았을 때 식물의 뿌리로 가득 찬 화분 속 흙은 하나의 덩어리로 되어 있다. 이럴 때 나무젓가락 등으로 줄기에서 조금 떨어진 흙의 표면을 부드럽게 찌르면 된다. 이 방법 반복 시 물을 줄 때도 옆으로 흐르지 않고 흙 속으로 스며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다육 식물 중 염자(염좌)는 번식력이 강하다. 몇 개의 화분에 나눠 심었었는데 책에서처럼 목질화된 염자를 여러 개 심어 가지치기해도 상당히 예쁘다는 걸 발견했다. 당장 분갈이에 도전했다. 오래된 염자 화분 속을 들어 내보니 흙이 거의 없었다. 새로운 흙으로 바꿔주면서 가지치기를 해 정리했다. 제대로 살아줘야 할 텐데 조금 염려스럽다. 식물의 뿌리보다 큰 화분보다는 뿌리를 채울 정도의 비좁은 화분이 더 좋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쨌든 식물집사로서 가장 뿌듯함을 느낄 때는 식물이 자라고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다! (139페이지)

 


식물집사로서 중요한 것은 기다림일지도 모르겠다. 공중 뿌리가 생긴 제라늄을 물꽂이 해두면 뿌리가 난다는 말을 듣고 물꽂이를 하였으나 2주를 기다리지 못했다. 초록 잎은 싱싱하나 물속에 있는 식물이 곰팡이가 핀 것처럼 붙어 있어 포기하고 상토에 심었다.


 



 

저자는 식물의 관찰일기를 수록했다. 식물을 분양받아오고 돌보는 기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 식물이 자랄 때마다 분갈이를 해주고 가지치기와 삽목하여 돌보는 작업을 사진과 함께 수록해 유익했다. 관엽 식물을 좀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식물에 따라 물꽂이를 위한 유리병의 종류, 다양한 색깔과 종류가 다른 화분들도 마음에 들었다.

 


반려식물이든 반려동물이든 돌보는 만큼 즐거움과 기쁨을 준다. 왜 반려 식물이겠는가. 식물을 기르고 싶은 분이나 식물 키우기가 어렵다고 여기는 분에게 좋을 책이다.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은 분이라면 식물의 종류를 좀 더 늘리고 싶을 수도 있겠다. 건강한 식물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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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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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소설집이라고 칭하였으나 나는 하나의 주제로 된 각자의 인물을 말하는 장편으로 읽혔다. 하나의 이야기는 다른 소설의 내용에서 이어지는 듯했고 작가가 추구한 감정의 실체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공통된 단어의 언급이 그렇다. 우주와 외계 생명체, 지구. 우리가 이 세계에서 아주 잠시 머물 뿐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광활한 우주에서 아주 찰나의 시간만 스칠 뿐이라는 것을.

 


인간 사회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거 같다. 지금도 땅을 찾겠다는 나라와 지키려는 자의 전쟁 중이다. 지구는 잠시 평화로웠을 뿐, 각자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목숨을 빼앗는다. 잠시 머물다 갈 인간들이 이 세계에 영원히 살 것처럼 싸운다.




 

지구에서 머무는 인간들에게 지구 바깥세상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체가 나타난다. 인간을 죽이고 그들만의 세계를 건설하려고 하지만 인간은 전쟁을 겪어온 경험으로 맞서 싸운다. 늑대의 유전자를 주입한 인간들은 크람푸스를 제거했고, 크람푸스가 사라진 세계에서 그들은 보통의 인간들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었으므로 우주 밖으로 내쳐지게 되었다. 내 목숨을 살려주는 것과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반인류로 여겨져 두려웠으리라.

 


지구의 침략자는 크람푸스 뿐만 아니라 바키타도 있다. 지구의 쓰레기를 먹어치우는 바키타는 인공화합물 뿐 아니라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문명의 흔적은 남지 않았다. 인간들은 멸망한 지구에서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향한다. 이 부분에서는 인류가 일회용품을 마구 만들어내고 사용하는 것을 꼬집는 것만 같다. 지구가 이렇게 일회용품 쓰레기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먹히고 말 것 같다는 것을 경고하는 거 말이다. 우리가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질문을 건넨다.


 

옐로스톤 폭발 이후 화산재에 뒤덮인 지구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검은 연기로 가득한 지구에서 우주선에 탑승하지 못한 인간들은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냉동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인간은 우주선에서 저 멀리 푸른 점으로 보일 지구를 안타깝게 그려 볼 뿐이리라. 직접 다가가지도,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신호를 받지도 못할 것이다.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들은 또 다른 지구를 찾아 정착할 수 있을까.


 

소설에서 안개는 중요한 단서다. 지구가 멸망해가는, 한 마을이 사라져가는 매개체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안개 속에서 죽은 자들이 서로를 물어뜯는다. 죽음의 다른 변형이다. 어떤 외계 생명체는 안개를 피우며 조용히 다가와 인간의 마음을 조종한다. 때로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고, 때로는 죽음 이후의 것을 말한다. 인간이 마음을 열었을 때 그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내기도 한다. 결국,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그들은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해줄 뿐이다.


 

평소 접하지 않은 내용 때문에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미래의 인간 세계를 마주한 느낌이라고 해야겠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혼합된 세계. 우리가 머무는 세상 밖이 자기가 살아야 할 세계라고 여기는 거다. 지금 현재의 세상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인간 세상으로 들어온 과거 텍스트의 존재와 세상 밖으로 나간, 서로의 존재를 교체하는 세계. 두 세계의 접점은 우리의 심연 그 깊은 바다의 것인지도 모른다. 다분히 영화적이긴 하다. 그렇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사랑해 마지않던 사람들을 연이어 떠나보내게 되면 마음은 주는 것이 아니라 보관해두는 것, 기댄다는 건 그것이 사라졌을 때 넘어진다는 것. 그렇게 생각했다. 떠난다는 건 붙잡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53페이지, 흰 밤과 푸른 달중에서)

 


우리가 사는 지금이 이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찰나의 시간을 지날 뿐이다. 우주, 죽음, 소멸. 이 단어를 이루는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한 유리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실의 고통을 넘어 살고자 한다. 살아있다는 그 마음 하나로 살길 바란다. 그 마음이 중요하지 않겠나. 나의 존재를 실감하는 때이기도 하며 삶의 원동력이 되는 단어. ‘살아 있다라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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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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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해 여러 사람이 모여 말한다고 치자.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그 토론에 참여할 수 없을 거라고 여긴다. 할 말이 없을뿐더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미루어 짐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면? 다르게 생각해보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타인이 말하는 책에 관하여 고개를 끄덕거리고 그 사람의 언어에서 내게 와닿는 것들이 있다. 이 세상의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많은 책을 읽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많은 책을 읽지 않아도 비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우리가 읽었던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책에서 언급되지 않은 내용에 관하여 누군가 질문했을 경우 우리가 하는 행동 패턴은 단순하다. 그 뜻이 아니라며 책 속에 있는 내용만을 설명하려 들 것이다. 계속 다른 질문을 한다면 책에 관하여 설명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말해가며 설명해야 할 것이다.




 

독서는 우선 비()독서라 할 수 있다. 삶을 온통 독서에 바치는 대단한 독서가라 할지라도, 어떤 책을 잡고 펼치는 그 몸짓은 언제나 그것과 동시에 행해지는, 그래서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그 역()의 몸짓을 가린다. , 그 책 외에 다른 모든 책들, 어떤 다른 세상이었다면, 선택된 그 행복한 책 대신 선택될 수도 있었을 다른 모든 책들을 잡지 않고 덮는 몸짓을 가리는 것이다. (26페이지)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작가의 머릿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을 거라 짐작한다. 하지만 작가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책을 쓴 작가에 작품 속 인물에 대한 질문했을 때 백 퍼센트 대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책을 출판하는 편집자들은 수많은 작품 속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하게 편집자의 눈에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원고 더미 속에 파묻히기 마련이다. 자기 작품을 읽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발자크의 작품 잃어버린 환상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책을 읽지 않고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저널리스트인 루스토는 주인공 뤼시앙이 쓴 원고를 파리에서 가장 큰 출판업자에게 보내라고 한다. , 원고를 봉인하는데, 출판업자가 원고를 한 번 펼쳐보기라도 하는지 나중에 확인하기 위해서다. 출판업자는 원고를 읽어보지도 않은 채 시집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결론은 출판할 수 없다는 것과 봉인을 뜯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루스토가 뤼시앙에게 말하기를, 그 출판업자가 애지중지하는 작가의 작품을 비평하되, 서두에는 우호적으로, 말미에는 혹평을 하여 눈에 띄게 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뤼시앙은 그 출판업자로부터 데이지 꽃을 출간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이 부분을 읽고 드는 생각이다. 수많은 평론가가 있다. 특히 소설 작품 뒷표지에 주로 나오는 문학평론가의 비평은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학평론가는 과연 그 작품을 제대로 읽고 연구하고 쓴 글인가 싶었다. 많은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는 법이므로. 문학평론가의 글이 명쾌하기는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없잖다.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사용해 말하지는 않았는지 문득 궁금하다. 물론 이것은 나의 찰나적인 생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그러므로 용기만 있다면 자신이 어떤 책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또 그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제해야 할 이유도 전혀 없다. 어떤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가장 흔히 있는 경우이며, 부끄러움 없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짜 중요한 것, 즉 책이 아니라 어떤 복합적인 담론 상황 책은 이 담론 상황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결과이다 에 관심을 갖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175페이지)

 


저자를 포함해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들도 학생들을 전혀 혼란스럽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로라 보헤넌이 티브족 사람들에게 햄릿의 가족 상황을 알려주는 부분이 있다. 티브족이 관심을 두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관점에서였고, 햄릿 속에 들어있는 관계나 상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책을 읽을 때 내 상황에 따라 감동을 하고 울거나 무감각 상태에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전혀 접해보지 못한 책(UB), 대충 뒤적거려 본 책(SB),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책(HB), 읽었지만 내용을 잊어버린 책(FB)를 구분하여 주석을 남겼다. 이 모든 것임에도 책에 대하여 설명하고 중요한 점을 시사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우리가 분석한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들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책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얘기를 하는 것, 혹은 책들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 이것이 아마 책들에 대해 잘 말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런 상황들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달라진다. 접근 가능한 몇 가지 자료들에 입각하여 무엇보다 우선 중시해야 할 것은 바로 작품과 자기 자신, 그 둘 사이의 다양한 접점들이기 때문이다. (229페이지)

 


책을 읽고, 그에 대한 느낌을 쓴다. 어떤 책은 써야 할 내용이 명확하게 정리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굉장한 감동을 했어도 쓸 말이 없을 때도 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하지만, 글로 나타나지 않을 때. 글을 쓰는 작가의 노고를 생각한다. 저자는 책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얘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책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그러므로 책과 책을 읽은 사람의 접점이 생긴다고 말이다. 자기화시키는 작업일 것이다. 이것은 김영하 작가가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책 내용을 쓰기보다는 책을 읽고 파생되는 감정들을 쓸 것! 작가와의 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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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6-28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자기 감정 자기 생각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 저랑 같네요. 동감이에요. 그러자고 책 읽는 것이죠. 단순히 지식을 위한 거라면 의미가 덜하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