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독히 외로운 상황에 있다면 불안한 존재를 집안으로 들일 수 있을까. 그렇다 혹은 아니다로 갈릴 법한데 나의 답은 들일 수 있다는 거다. 혼자라는 외로움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생의 마지막 순간, 혼자 외롭게 죽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죽었을 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하는 걸 고독사라 부른다. 그거야말로 가장 두려운 것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오던 옥주는 쓰레기를 뒤지는 아이를 발견했다. 석류처럼 붉은 눈을 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그는 소금 그릇을 챙겨 밖을 내다보았다. 썩은 쓰레기를 먹던 아이의 모습을 한 존재는 쓰레기통 옆에서 졸고 있었다. 안쓰러워 집안에 들여 석류를 권했으나 아이는 옥주의 팔을 물었다. 인간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아이를 집안으로 들인 것이다. 혼자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그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이 죽었으면 했다.




 

조예은의 소설은 스노볼 드라이브를 읽고 이번 작품이 두 번째인데 꽤 매력적인 작가다. 우리의 미래는 현실의 확장으로 디스토피아적이고 상상하지 못하는 존재들과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며 인육을 먹어야만 하는 존재나 꿈을 꾸는 사람이 상상하는 무서운 거로 보이는 악몽의 존재나 서로 다른 세계를 잇는 틈이 벌어져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것은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보았던 내용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세계가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느낌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우리는 밖의 세상을 향한 목마름이 있다. 그 목마름을 채워주는 역할이 하는 게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상상하지 못하는 세계에 도달해 마음껏 즐기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는 것 같다.

 


파란 수염을 변주한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고양이가 사라진 도시에 새롭게 발견한 고양이의 존재를 알게 한 유니버셜 캣숍의 비밀등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를 상상하게 한다. 상상의 세계만 다루는 게 아니다.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는 마치 우리의 거울 속을 보는 듯 불편하다.


 

새해엔 쿠스쿠스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에 틀어박힌 한 여성의 이야기다. 사촌 언니와 비교당했던 유리, 학교에서 전공과는 무관한 과목을 가르쳤던 유리는 학생부장의 괴롭힘으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집 앞으로 엄마가 찾아오는 날이 이어지고, 유리는 알 수 없는 번호로 온 문자를 받는다. 모로코, 사막과 쿠스쿠스라는 단어를 보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부모들이 종종 저지르는 실수 중의 하나가 타인과 비교하는 거다. 친구는 당연하고 형제나 친척들까지 끼는 경우가 있다. 비교당하는 자의 기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복수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부모에게 복수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유리나 연우의 입장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스치듯 말한 부분에서 힌트를 얻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훌쩍 떠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누군가의 강력한 권유는 이처럼 변화가 필요할 때 더할 나위 없는 방법이 된다.

 




인간의 호흡기에 침투하는 바이러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극성을 부릴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요소 중 하나가 공기다. 우리의 미래는 먼지와의 전쟁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들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에서 눈에 띄는 한 가지가 바로 미세먼지로 가득한 지구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옇게 가라앉은 지구. 마음껏 숨을 쉴 수 없어 보호구를 착용하고 다녀야 하는 지구를 그려보니 우울하다. 가장 작은 신의 수안은 취업 면접에서 떨어진 날, 급성 먼지바람이 불자 벤치 밑으로 들어가 방독 마스크를 사수하고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 요양을 위해 자발적으로 집에 틀어박혔다. 생수 배달이 오는 날,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미주가 찾아오며 기묘한 만남이 시작된다. 다단계의 영구회원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미주와 그런 미주의 사정을 알면서도 집에 찾아오는 게 싫지 않아 미주의 회사에서 파는 저품질의 제품을 사주고 있었다. 수안에게 영구회원 동의서를 내밀지 못했던 미주는 실적이 좋지 않은 직원들이 가는 야유회에 가야 한다. 미심쩍은 수안은 미주를 구하기 위해서는 집 밖으로 나가야 했다. 용기를 내어 집 밖으로 나섰던 수안의 모습은 투사와도 같다.

 


그러므로, 인간은 타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이 잠들 때 가장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악몽이 곰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벌어진 틈 사이로 빠져나와 기억을 잃은 릴리가 마지막까지 쥐었던 손에서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 서로 싫어했던 사촌 자매가 같은 것을 바라보고 그에 대한 꿈을 꾸는 것까지. 마음 한쪽이 차올랐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직 살 만하다고. 우리 곁에 누군가가 있어 외롭지 않다고 말하는 소설이었다. 비록 다른 존재에게 먹힐지라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트로피컬나이트 #조예은 #한겨레출판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북리뷰 #소설 #소설추천 #하니포터 #하니포터4_트로피컬나이트 #한국문학 #한국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팡세는 파스칼의 철학적 사유를 다룬 책인 줄 알았다. 책을 받아들고 보았더니 기독교 고전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좋은, 신자를 위한 책이 아니라 불신자를 위한 책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아울러 신에 대한 믿음과는 상관없는 삶의 방향, 불신자들에 대한 깊은 염려를 다룬 철학적 사유에 가까운 책이었다.

 


팡세 전문가인 김화영 교수의 정확한 번역으로 천여 편의 단상들로 구성되어 신을 믿는 자들이 바라보는 불신자들에 대한 시선을 바라볼 수 있었다. 불신자들이 불행하다 여긴 적이 없건만 파스칼의 눈으로 보는 불신자들은 충분히 불행하다는 것은 의외였다. 믿지 않은 내가 불행했던가.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신자들이 바라보기에 불신자들은 믿음의 변화를 꾀할 수 있지만 불신자들보다 무신론자들을 더 가엾게 여긴다는 점이 독특했다. 무신론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가차 없는 공격을 가하라고까지 말했다. 파스칼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했던 책이라 더 의미 있을 것이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진리를 발견하는 데에 직결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자기 인생 문제를 푸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이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다. (71페이지, 72-106/66-120)

 


인간 존재의 무력함을 표현하는 묶음15. 이행편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아는 방향으로 인식을 전환하게끔 이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문장을 살펴보자. 아마 팡세나 파스칼은 알지 못해도 이 문장만은 귀가 닳도록 들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갈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이 갈대를 꺾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움큼의 물안개, 한 방울의 물로도 충분히 그것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우주가 갈대를 꺾는다고 해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우주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거기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196~197페이지, 200-231,232/347-391)

 


그러고 보면,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주 안의 우리는 한낱 미물일 뿐이다. 지구에 터를 잡고 사는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라 여기지만 자연 앞에 무너지고 만다. 며칠째 내리는 집중호우로 일가족이 사망하여 슬픔에 잠기게 한다. 인재에 가까워 보여도 어쩌면 자연재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그저 지구에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영원한 허무 속으로 떨어지든지 아니면 진노한 하나님 손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뿐이지만, 둘 중의 어느 것이 영원한 내 몫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나약함과 불확실로 가득 찬 것이 내 상태이다. 이 모든 사실로부터 내가 내리는 결론은 내게 무슨 일이 닥칠지 생각할 필요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면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진지한 회의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수고를 하기도 싫고 답을 찾기 위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도 않다. (370~371페이지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한다. 그렇지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신을 찾게 된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는 신을 찾게 되는데 나 또한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을 못하겠다. 간절하게 구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신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팡세-분류된 단장 편에서 긴 편에 속하는 <신을 찾도록 권고하는 편지>에서는 우리의 마음 깊은 데서 우러나올 감정들을 다룬다. 증거가 눈앞에 있는데도 보려고 하지 않는 거로 무지를 고집하며 불행으로 뛰어드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파스칼은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다. ‘기하학의 정신과 섬세한 정신의 차이의 명쾌한 논리는 우리의 믿음의 세계로 이끄는 것만 같다. 기하학이 신과 연결되리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기하학자가 좋은 눈을 지니게 된다면 섬세하게 될 거라는 것조차 의문스럽지만, 기하학자로서 보는 섬세함의 논리는 이처럼 판단과 지성으로 맞닿아 있다.


 

파스칼 연구자인 김화영 교수의 명확하고 매끄러운 번역으로 만나게 된 팡세를 드디어 읽었다는 뿌듯함이 든다. 불신자를 위한 기독교 명작 고전 임에도 파스칼의 생각과 철학을 알 수 있어 기쁨이 크다. ‘철학을 경멸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철학하는 것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깊이 사고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팡세 #파스칼 #선한청지기 #블레즈파스칼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북리뷰 #그래제본소 #기독교고전 #자아 #기하학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지음 / 수박설탕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소설을 여러 번 읽다 보면 꽂히는 문장들이 있다. 매번 읽어도 같은 문장이 눈에 들어오는데 아마도 그건 개인의 취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이다.

 


지나가는 바람일지도 몰라요. (244페이지)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427페이지)






 

이런 감정은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문장을 꼽아보면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이렇듯 20년째 사랑받고 있는 소설이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읽었던 사람들은 새로 발간된 책을 구매하고 오래전에 느꼈던 감정을 복기한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새롭게 느끼기도 하고, 매번 같은 부분에서 울컥하고 또 감동하게 된다.

 


사랑이란 무릇 이런 거, 라는 감정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공진솔과 이건의 사랑이 오래도록 계속되는 느낌. 우리는 변해도 진솔과 건은 그대로이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랑을 지켜냈으면 하는 바람 같은 거.






 

이 소설을 처음 읽었던 게 아스라이 떠오른다. 지금은 휴대폰 어플로 라디오를 듣지만,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사서함이란 게 있었다. 사서함 몇 호, 라는 말만 들어도 이 소설을 떠올렸었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신청곡을 들려주는 음악과 멘트에 귀 기울였던 느낌들. 지금이야 신청곡을 보내기보다 그저 누군가가 신청한 노래들을 조용히 혹은 함께 음악을 듣는 사람과 가까이에 있는 듯한 감정을 공유한다. 라디오의 특성이 혼자 듣지만 혼자 있지 않은 느낌이랄까.

 


라디오 피디와 구성 작가와의 사랑은 이렇듯 설렘을 주었다. 매일 함께 부대끼며 음악 선곡 작업과 프로그램을 구성하다 보면 저절로 가까워질 것 같다. 물론 각자의 업무만큼의 고충은 따르기 마련이지만 꽤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는 공진솔과 이건 피디의 관계에 더 집중했다면 이번에 읽을 때는 애리와 선우의 관계도 보였다. 관계의 확장, 시선의 확장이었다. 힘든 사랑을 하는 애리에게 건 피디의 존재는 이건과 진솔, 애리와 선우의 관계 변화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사랑의 실체를 깨닫기 위해서는 때로 과격한 상황이 있어야 했다.


 




짝사랑에 대하여 진솔처럼 빠른 결정을 해야 하는데 나의 과거는 미련을 버리기 힘들었다. 혹시나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기다리는 기간이 길었다. 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봐야 하는 쓸쓸한 사랑에 마음이 아팠다. 건과 진솔, 애리는 다른 사람의 등을 바라봐야 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쓸쓸하고 울고 싶은지 경험한 사람만 알 일이다.

 


이도우 작가의 글은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가만가만히, 속삭이듯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을 건드린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마음을 홀리게 된다. 타인의 이야기임에도 내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한다. 내 쓸쓸했던 연애를 떠올리고는 진솔과 이건의 사랑에 웃고 만다.

 


 

#사서함110호의우편물 #이도우 #수박설탕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북리뷰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스테디셀러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2-08-15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아기자기한 화초에 마음을 빼앗기네요^^
 
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그 영화를 다시 볼 수밖에 없다
주성철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십 대 시절 내가 머문 도시의 개봉관 영화 모두를 섭렵했다. 좋아하는 영화는 몇 번씩 다시 보았다. 그 습관은 최근까지 계속되었다. 코로나로 인하여 강제적으로 영화관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VVIP였던 내 등급은 일반으로 내려앉았다. 책과 음악, 영화 중 책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영화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껴 화면에 빠져들고 좋아하는 배우, 감독이 나오는 영화라면 꼭 봐야 직성이 풀린다.

 


영화잡지 <키노>, <필름 2.0>, <씨네21>에서 편집장으로 일한 주성철의 영화평론집은 영화에 대한 나의 애정을 더욱 각성시켰다. 다시 영화관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영화와 감독, 배우의 깊은 성찰에서 영화가 가진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영화 전시회를 보는 듯하다. 영화에 관한 이야기의 주제를 전시실로 보고 감독관, 배우관, 장르관, 단편관으로 하여 설명한다. 우리나라 영화감독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나홍진, 김기영을 거론한다. 나 또한 좋아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비롯해 요르고스 란티모스, 마틴 스코세이지, 켄 로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관이다.

 


전에는 영화 하면 할리우드를 먼저 떠올렸다. 지금은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의 감독과 배우의 수상으로 그 위상이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새로운 발상, 창의적인 시도로 이룩한 쾌거다.

 


감독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건 박찬욱 감독부터였다. <공동구역 JSA><올드보이>를 생각해보라. <올드보이>는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으로 알려졌는데, 미국에서 리메이크되며 원작이 더 사랑받았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던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영화를 꽤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주성철 평론가의 글은 이해하기가 쉬웠다. 감독이 즐겨보았던 영화와 영화가 나오게 된 배경을 깊이 있게 설명하였고, 다양한 영화를 예로 들어 내용이 더 풍부해졌다.


 

최근의 가장 핫한 배우는 윤여정이 아닐까 싶다. 유려한 영어로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장면이나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개성적인 연기가 일품인 배우 윤여정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윤여정 배우가 친근하게 여겨지는 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였지만, 그의 연기는 자연스럽고 독특하다. 윤여정의 시작을 알고 싶으면 <화녀>를 보라고 말하는데, 윤여정 스타일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고 표현했다.

 




영화감독은 단편에서 시작된다. 장편에서 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단편으로 만들어 실험해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복수에서 시작되어 여성주의 영화를 만드는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스타일, 즉 봉테일로 불리는 특별한 스타일의 탄생 또한 단편에서 나왔다. 봉준호 감독의 단편들이 변화하고 진화하여 <기생충>에 이르게 했다는 부분은 꽤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뒷모습이라기보다 영화의 총체적인 성찰의 결과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영화평론집이라 하여 어려운 글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누구나 좋아할 책이며, 보았던 영화에 대하여 다시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고, 한 감독의 영화를 전작(全作)주의식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려봐도 좋을 듯하다.


 


#그영화의뒷모습이좋다 #주성철 #한겨레출판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북리뷰 #에세이 #에세이추천 #영화평론 #영화평론집 #씨네21북스 #하니포터 #하니포터4_그영화의뒷모습이좋다 #영화에세이 #방구석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의 덫에 갇힌 사람은 기억 속 장소로 가길 꺼린다. 과거의 기억과 고통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일부러 마음속에 봉인해두었던 진실의 문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고 해도 전혀 잊히지 않는다. 언젠가는 문이 열릴 수밖에 없다. 자의든 타의든 열리기 마련이다.

 


이 소설은 스코틀랜드의 아우터 헤브리디스 제도 최북단에 위치한 루이스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그것을 풀어가는 한 형사의 이야기다. 본토와 떨어져 있는 섬이라는 곳에서는 고립의 냄새가 풍긴다. 그들만의 종교와 인식에 갇혀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섬에 안주하고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외부의 도시로 나가 다시는 섬에 발붙이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과거의 기억 속 섬을 그대로 과거로 남겨두고 싶지만 핀 매클라우드에게는 다시 현실이 되었다.


 


 

 

다섯 살 난 아들을 사고로 잃은 핀은 4주간의 휴가 끝에 경찰서로 불려갔다. 루이스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그가 수사하고 있던 살인 사건의 유사성에 거절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핑계가 필요했다.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아내와의 불화에서 조금쯤은 거리를 둘 수 있어 다행이라 여겼다.

 


현재 상황과 과거의 이야기가 혼재되어 나타나는데 핀 매클라우드가 화자로 나서 과거를 떠올린다. 루이스섬은 친구 아슈타르와 줄곧 핀을 사랑해왔던 마샬리를 빼놓고 상상할 수 없다. 섬에서는 바닷새 구가를 먹는 전통이 있었다. 섬의 남자들은 안 스커에 가서 2주 동안 머물며 구가를 잡았다. 2주 동안 섬에서 벌어지는 일은 섬에서만 머물 뿐 바깥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됐다. 핀의 과거로 들어가며 핀과 마샬리, 핀과 아슈타르, 아슈타르와 마샬리의 관계는 이 소설의 중요한 쟁점이다. 섬에 다녀와야만 성인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18년 전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것이 관건이었다.


 

문화의 차이는 논란거리가 되곤 한다. 외국의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우리나라의 개 식용 습관에 대하여 비난했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의 습관 때문에 자연스럽게 식용해왔던 것 같다. 일명 보신탕집으로 불렸던 식당들이 꽤 많았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설에서도 구가를 먹는 이유로 동물보호단체의 반대 시위가 있었고 시위자의 폭행 사건도 발생했었다. 전통적으로 이어오던 쫄깃한 구가의 맛을 포기할 수 없었겠지만, 과거부터 이어오던 전통과 바닷새 보호 중 어떤 게 중요한 것인지 생각할 거리를 준다.


 

 

 

섬의 특수성 때문에 이 소설이 아름다웠는지도 모르겠다. 스릴러 소설 임에도 아름다웠던 이유는 루이스섬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가를 잡으러 배를 타고 떠나는 남자들, 2주간의 적당한 크기의 구가를 잡는 일, 세찬 바람이 불어와도 섬에서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남자들을 강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프로테스탄트 적인 종교의 신념과 과거의 유산에 젖어 아내와 딸, 아들에게 고압적인 전근대적인 산물 또한 섬의 고유한 특성 때문일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자연적으로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이 필요한 법이다. 과거의 유산에 갇혀 지내서는 안된다. 그토록 잊고자 해도 다시 그 장소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잊을 수 있는 것처럼, 과거의 천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주해야 한다.

 


블랙하우스로 시작해 루이스맨, 체스맨으로 이어지는 루이스섬 3부작이 기대되는 이유다. 루이스섬의 풍경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블랙하우스 #피터메이 #비채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북리뷰 #소설 #소설추천 #스릴러 #스릴러소설 #스릴러소설추천 #스코틀랜드스릴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