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이다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9
장강명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성이다 #장강명 #현대문학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기도하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을까. 다시 깨어나지 못한다면 과거에 우리가 했던 행동들을 돌아보고,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이 아픈 게 나 때문인 것 같아 괴로울 것도 같다. 깨어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건 빈말이 아니다. 간절하고 또 간절해서 신에게 외치듯 내뱉는 말이다.



 

독서 모임 플랫폼 ‘그믐’의 SNS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다. 어느 날 모자를 눌러쓴 대표의 사진이 보며 아픈가 보다, 생각했다. 작가와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 같아 안타까웠다. 소설 『서성이다』를 읽으며 작가가 하는 모든 말들이 아팠다. 이런 상황이 온다면 누구라도 신에게 호소하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이 시간을 헤쳐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자신을 가리켜 ‘사이코패스’에 가깝다고 표현할 정도로 냉철한 작가가 견뎌야 했을 고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작가가 경험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약간의 허구를 가미해 한 편의 소설로 펴냈다. 아내가 갑자기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입원하며 일어난 일이다. 슬프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산재해 있었다. 아픈 아내를 둔 사람답지 않게 냉철하게 판단하여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고 이게 현실이구나 싶었다. 부재 시 아내를 보러 와줄 사람이 필요했고, 도저히 취소하지 못한 일들을 해야 했다. 이사로 인하여 집 매도와 매수의 잔금 입금일이 다가오고 있어 어떻게든 아내의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내야 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남편을 보고 경악할지 모른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아내가 중환자실에 있는데, 계획적으로 대처하는 남편의 모습이 낯설지 않을까.






 

말을 알아듣기는 하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내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3일 동안의 일을 나타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거리에서 울며 서성이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절대 울지 않는다는 예상과는 달리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남자는 두려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기를 가리켜 사이코패스라고 했지만, 그것이 그 남자의 본심이다.



 

무서워. 너무 무서워. 못 걷겠어.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말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고개를 숙이고 울면서 서성이고, 서성이며 울었다. 왜 태어나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다 잃고 병에 걸리고 고통을 받고 죽어야 하는가. 인간은 고통을 받으려고 태어나는 걸까. 사람이 뭘 통제할 수 있고 무슨 책임을 질 수 있단 말인가. (213~214페이지)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은 아주 찰나일 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쓰러지는 순간,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 절망하지 않을까. 그저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그 순간처럼 두려운 것도 없으리라. 고통은 예고하고 찾아오는 게 아닌 것 같다. 방심하고 있을 때 소리 없이 나타난다. 마치 온몸이 묶인 것처럼 답답한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산다는 건, 물 위를 걷는 일과 같다. 비교적 평온하게 살아오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아슬아슬,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할 말이 많아 전화기를 두 시간씩 붙잡고 이야기를 하였던 커플이 남편과 아내가 되어 살아가다가 아프게 되면 이렇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소설을 읽는데, 계속 마음이 아팠다. 리뷰를 쓰면서도 그 감정이 나와 자꾸 ‘아프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프다’라는 단어를 지우면서 글이라는 것도 감정대로 움직이는 것 같다. 직접 경험한 일이기에, 우리에게도 다가올 일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든 탓일까.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안타깝다. 가족 중에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있고, 예전 같지 않은 몸에 적응하는 단계라고 할지, 여기저기 아픈 곳이 있어 그런지도 모른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어서 쾌차하기를 바란다. 더불어 우리 모두의 건강을 바란다.

 

 

#서성이다 #장강명 #현대문학 #책추천 #소설추천 #핀소설 #한국문학 #한국소설 #한국소설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서울의 선인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울의선인 #김호연 #위즈덤하우스

 



180만 부 판매 신화를 기록한 『불편한 편의점』의 작가 김호연의 신작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타락한 도시 서울을 멸망시키러 온 천사가 나타나 도시의 의인을 한 명이라도 찾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신의 뜻을 전하는 내용이다. 물론 소설의 주인공 김재근은 과거 서울의 의인상 1회 수상자에 빛나는 인물이다. 지금은 산 아래쪽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동네에서 철물점을 하고 있는 신세다. 거액의 돈을 주겠다며 의인을 찾으라는 천사의 전언에 과거 경찰이었던 능력을 되살려 사람 찾기에 나서는 다소 판타지적인 이야기다.

 



의인상을 수상했던 그가 왜 철물점 사장이 되었는지는 과거의 의인상 수상자를 찾아다니며 거론한다. 의인상을 받았던 사람들이 진짜 의인인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선의의 뜻으로 행동한 결과가 의인상으로 나타났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의인상은 과거 TV의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양심 냉장고’를 떠올리게 했다. 아무도 지키지 않은 횡단보도 앞의 정지선, 그 선을 지키는 사람의 감동적인 장면이 압권인 프로그램이었다. 의인상 또한 의로운 일을 한 사람에게 서울시장이 상금과 함께 주는 상이었다. 그들의 다음 행보는 어떨까. 지금도 누군가를 구하고 살리는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일까. 궁금증에 김재근의 여정을 따라가 보게 된다.

 








소설의 근간은 현대사회에서도 신의가 존재할 수 있는가, 사회 정의는 살아 있는가다. 누군가의 계략에 의해 경찰에서 불명예로 퇴직할 수도 있는 상황, 한때 모두가 받들었던 의인 김재근은 이제 하루하루 벌이를 위해 애쓰는 중년의 남자로 전락했다. 그가 의인을 찾아 나섰던 이유도 스스로 천사라고 일컫는 성갑이 건네준 거액의 계약금과 약속한 잔금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인을 찾아다니며 과거의 시간들과 마주한다. 성갑이 누구인지, 그와 관련된 인물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며 소설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김재근이 찾은 의인상 수상자들의 이후의 행보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첫인상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면 인간성을 금세 파악할 수 있지 않나. 인간은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고 선의와 정의를 잃지 않기는 매우 어렵다. 경제적으로 힘들면 누구라도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인상 수상자들을 바라보는 김재근의 불편했을 마음이 짐작되었다.

 



『불편한 편의점』에서 작가는 우리 주변 소시민의 삶을 그렸다. 『서울의 선인』 또한 서울 서민들의 삶과 함께 권력에 힘입어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존재하지만, 의인은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도시의 운명과 신의 계시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을 사는 선의들이 모여 도시를 가꾸어 나간다는 것을 강조했다.



 

사람 냄새나는 작품, 읽으면 저절로 마음이 따스해지는 작품을 읽고 싶다. 변해가는 세상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우리의 이야기가 그리워지는 계절인 것 같다. 누군가는 고군분투하고, 누군가는 편안하게 시작되는 하루의 온기처럼 스며드는 따뜻한 이야기가 그립다.

 

 

#서울의선인 #김호연 #위즈덤하우스 #책추천 #소설추천 #한국문학 #한국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면도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면도날 #서머싯몸 #민음사

 

어느 순간부터 자꾸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이 책 안 읽고 뭐해?’, 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겠다. 아마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알고리즘을 타고 왔을 것이다. 기꺼이 알고리즘에 부응하여 책을 읽게 되었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나 『인생의 베일』이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면도날』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읽었다. 한 젊은이의 삶에 압도되어 그의 선택을 지켜보며 인생이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건네는 작품이었다.



 

작가 서머싯 몸이 화자로 등장하여 그의 한 시절을 엿보는 듯하다. 작가로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된 이후, 때로는 그들의 이웃으로 때로는 친구로 작가의 경험담처럼 친근하게 비친 작품이다. 작품의 주요 인물은 속물적인 사교계의 신사 엘리엇 템플턴과 그의 여동생의 딸 이사벨, 그리고 이사벨이 약혼한 래리다. 특히 래리의 행보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비행기를 좋아했던 래리는 전쟁에 참가하여 사고로 친구가 죽은 후, 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삶의 방향을 바꾼 인물이다. 이사벨과 약혼까지 하였으나 직장을 얻지 않고 도서관에서 책에 파고든다. 구도적 삶을 위해 미국을 떠나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를 거쳐 인도로 향하는 여행을 떠난다. 이사벨은 백수랑 결혼하고 싶지 않다며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남자의 돈과 사회적 지위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사벨이 래리와 어릴 적 친구이기도 한 그레이와 결혼한 후에도 인연을 이어간다.







 

서머싯 몸은 가까이에서 래리를 지켜본다. 래리가 만났던 소피와 수잔의 삶을 비추며 시대의 역사와 일상을 살아온 삶을 통해 인간의 성장을 보여준다. 어떤 선택을 하는 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영적인 삶을 향해 여행했던 래리는 점점 신에 가까운 삶을 보여준다. 삶에 통달하고 아픈 사람을 치료했으며 사정이 어려운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이사벨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기꺼이 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성직자와 비슷하게 보였다.



 

서머싯 몸이 화자가 되어 모든 사람을 지켜보며 회상하는 내용이다. 대중적인 내용에 가깝다. 사교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 유명한 사람들과의 유희를 즐겼던 엘리엇을 속물적인 인간으로 그렸다. 엘리엇 템플턴이 가장 속물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은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 초대장을 받지 못해 슬퍼하는 장면이다. 필생의 역작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중심에 서 있어야 하고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어야하는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인물을 그렸다. 서머싯 몸은 그러는 그가 안타까워 초대장을 훔쳐 그의 마지막을 기쁘게 한다. 사람에 대한 배려와 허영심의 끝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고전문학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매력을 다시 한번 느낀 작품이었다. 서머싯 몸이 바라보는 세계가 좋다. 속물적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인간들의 민낯을 그렸기 때문이다. 아직 읽지 않은 서머싯 몸의 책을 찾아봐야겠다. 왜 영원할 수밖에 없는지 그 진심에 다가서고 싶다.

 

 

#면도날 #서머싯몸 #민음사 #책추천 #민음사세계문학전집 #영미소설 #영미문학 #세계문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인 더 메가처치 - 2026 일본 서점대상 1위
아사이 료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더메가처치 #아사이료 #은행나무



 

처치 마케팅이란 게 있다. 원래는 교회의 신자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 방법이다. 메가처치는 처치마케팅의 일환으로 거대 교회를 가리킨다. 아이돌 그룹을 런칭하는 팝 음악계는 신도를 확보하기 위해 마케팅을 시작한다. 일종의 서사를 만들어 마케팅에 이용하는 것이다. 마치 신도가 되듯 아이돌을 향한 덕질을 시작하게 된다. 좋아요, 구독은 필수다. ‘좋아요, 구독’ 이런 권유 한 번쯤 받아보지 않았나. 어느 음악방송에 좋아하는 가수의 순위를 높이기 위해 몇 번을 눌러 투표해달라는 것 말이다. 인증 사진까지 남겨 공유하는 장면을 보고 예전 일이 생각났다. 덕질은 어딜 가나 비슷한 양상을 띠는구나 싶었다.

 



2026 일본 서점대상 1위에 빛나는 『인 더 메가처치』는 광기에 가까운 덕질과 팬덤 현상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먼저 신도를 만들기 위해 아이돌 팬덤 산업에서 서사를 맡은 요시히코가 있다.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다보니 가정에 소홀했고 그 결과로 이혼했다. 딸의 대학 학자금을 모으고 본인은 인스턴트 미소 된장국을 후루룩 마실 뿐이다. 한 달에 한 번, 딸과 화면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점점 할 말이 없어진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도 점점 밀려나고 있는 상태다.

 



요시히코의 화면 반대편에는 그의 딸 스미카가 앉아 있다. 언제까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고, 아버지를 가리켜 ‘그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멀어진 사이다. 어렸을 때 말했던 ‘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는 것을 기억하고 할 말이 없을 때마다 그걸 물어보는 그 사람과의 대화는 소통이 안 된다. 정작 본인은 유학을 가기 위한 신청에서 1차에 떨어지고 2차를 앞두고 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무시했었는데 어느 날 서바이벌 오디션에 가까스로 합격한 아이돌 멤버를 좋아하게 되며 덕질에 빠지게 된다. 누구보다 열정적인 신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아야코는 최애 배우를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린 패밀리’ 멤버와 교류하며 최애 배우의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음모론에 빠져든다.

 



이 팀의 역할은 멤버들의 서사를 계속 제공하는 거야. 서사 중독자들을 놓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이 끌어들이기 위해서. 음악 이외의 전문 분야를 가진 멤버들로 구성된, 팬덤의 열기를 꾸준히 끌어올리는 데 특화된 팀이지. (216페이지)

 



아이돌 팬덤을 만들기 위해 신도들을 이용한 마케팅에 빠져들며 좁은 시야와 넓은 시야의 차이점을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작정하고 서사를 만들면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겠다. 최애를 위해서 광적인 행동까지 일삼은 걸 보고는 이러한 신도들이 있기에 아이돌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최애가 광고하는 물건을 사고, 그들이 입는 옷을 입고, 그들이 읽는 책, 영화, 음악들을 듣는다. 마치 내가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처럼 최애의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메가처치와 다르지 않다. 어쩌면 좁은 시야를 가진 광신도와 가깝다.

 



덕질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동생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동생의 취미가 덕질이다. 내가 책을 읽는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여동생은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 CD를 여러 장 구매했다. 택배가 올 때마다 숨겨두어 제부는 몇 개를 구매했는지 몰랐다. 제부가 있는 장소에서 몇 개를 구매했냐는 내 질문에 두 사람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콘서트 티켓 예매에 당첨되어 다녀왔다. 처치 마케팅의 효과다.



 

빠져들 수밖에 없는 서사를 제공하여 팬덤을 형성하게 만든다. 마치 시나리오를 쓰듯 서사를 만들어 퍼트리는 역할을 하는 자와 그에 빠져 덕질에 빠져드는 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다. 소설을 읽으며 왜 덕질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어느 순간 깊이 이입되어 읽었다. 내가 예상한 소설의 결말은 아니었지만, 이제 요시히코는 딸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할 정도가 되었다. 일본의 서점인들이 왜 이 소설을 추천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팬덤 형성을 메가처치에 빗대어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이다.

 

 

#인더메가처치 #아사이료 #은행나무 #책추천 #소설추천 #일본소설 #일본문학 #2026일본서점대상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6-09-24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eeze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찌니주의보 #정지아 #창비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다. 주말이면 하룻밤씩 자고 오며 작물을 돌본다. 일하고 있으면 동네 어르신들이 지나가며 한마디씩 하신다. 농사는 그렇게 짓는 게 아니라고, 본인의 지식을 주입식 교육하듯 강요한다. 마을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는데, 세컨드의 아들이 몇십억을 들여 카페를 만들었다느니 하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물어 답변을 해주면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될 것 같아 매우 조심스럽다. 누군가의 수저가 몇 개인지 다 알고 있어야 속이 시원하다는 시골의 특성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만약 평균 나이 칠십팔 세인 마을에서 살아가는 것을 생각해 보라. 아찔하다. 그런 동네에 삼십 대 초반의 두 찌니가 입주했다. 마을의 평균나이를 78세에서 72세로 낮춘 이들과 동네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마음 한편이 울컥해진다.



 

수평마을 마을회관이 북적인다. 마을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윤 선생이 노인들을 소집하여 중대 발표를 한다. 서울에서 귀촌한 성진과 혜진이 서로 여자끼리 좋아하는 ‘레지’라고 한다. 수평마을에서 ‘쪼까내자’고 마을 주민들과 이장을 닦달한다. 찌니들을 아꼈던 절골댁 마저 발길을 끊었다. 보다 못한 이장의 아내 쑤언은 찌니들을 집으로 데려와 쌀국수를 해 먹이며 그들의 마음을 달랜다.



 

이런 이야기만 있으면 소설이 재미없다. 이들을 쫓아내자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문고리에 호박전을 몰래 가져다 놓은 노인들도 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 같은 상황이다. 겉으로는 레즈비언이라고 날이 선 눈빛을 보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반찬과 음식을 챙기는 것이다. 또한 찌니들의 친구 기희가 삐순이와 삐돌이라는 이름을 가진 반려 닭을 데리고 오며 마을은 더 들썩인다.

 







구례 사투리를 맛깔나게 표현한 글에서 본연의 글맛이 느껴진다. 입말 그대로 표현된 사투리는 할머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들이다. 마치 외래어처럼 신기한 말들의 향연에 저절로 웃음이 배어난다. 팔십이 넘은 할머니들이 살아온 날들,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구박을 당했던 일들,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던 이들의 사연이 낯설다. 노인들은 찌니들을 쫓겨나게 놔두지 않는다. 들여다보면 흠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말하기 좋아하는 노인들은 찌니들의 일을 놀림 삼아 이야기하다가 윤 선생네 집에 일이 생기자 혜진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전라도의 진한 사투리를 글로 본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즐겁다. 정지아 소설의 입말은 더 다채롭다. 사투리가 나오는 부분에서 입말을 소리 내어 읽었다. 마치 할머니들이 눈앞에 있는 듯 그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눈치 보지 않고 할 말 다하는 할머니들의 노골적인 성 표현, 차별과 편견에 갇힌 사람들로 보였지만, 정작 예기치 않는 일이 생기자 서로 나서서 도우려는 마음을 보여주었다. 비싼 식재료를 구입해 장아찌를 담가 한아름 건네주며 미안함을 슬그머니 표현하는 윤 선생을 보라. 정작 중요한 것은, 전복 등 비싼 재료를 사용했지만 음식 솜씨가 없어 냉장고에 고이 모셔둔 것은 어쩌란 말인가.



 

차별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고령화된 마을에서 청년으로 살아가기란 무엇보다 버거운 일이며, 호기심 어린 날 선 시선이 부담스럽다. 다른 한편으로 찌니들에게 의지하는 이들의 행태가 블랙코미디 같다. 힘든 시절을 겪어 왔다. 무서울 것도 없으며, 말에 거침이 없다. 이러한 노인들을 미워할 수 없다.

 



이리 멀쩡하게 이삐고 잘난 것들이 워쩌자고 이상헌디로 빠져가꼬 지 무덤을 지가 판다는디 내 속은 워쨌겄냐? 시방도 속이 쌔롬쌔롬허다. 넘이 안 간 질로 가본들 고생만 씨게 해야. 살아봉게 넘들 다 가는 질로 조심조심 감시로 넘들맹키 사는 거이 젤이드라. (163페이지)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차별과 편견에 사로잡힌 것 같지만, 반찬을 나눠 먹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가며 오늘을 사는 것이다. 수평마을 사람들과 찌니들의 생활이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전라도 입말을 따라 해 보는 즐거움이 컸다. 정지아 작가의 글이 자꾸 좋아진다.


 

 

#찌니주의보 #정지아 #창비 #책추천 #소설추천 #한국문학 #한국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