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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 고양이
이준희 지음 / 폴앤니나 / 202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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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그린 미래는 디스토피아가 대부분이다. 아마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의 발로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하고 있다. 인간이 제대로 살 수 없는 세계라고 할지라도 나아갈 수밖에 없다.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소설만 보다가 현실에 머무른 듯한 SF소설을 읽으니, 작가야말로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창작자라는 걸 실감했다. 작가가 추구하는 혹은 만들어놓은 상상의 세계가 불안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라 여기게 된다. 여기, 이준희 작가의 SF 세계에서는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달까. 현실적인 미래상이라고 해도 좋겠다.
먼저 기억에 관한 소설이 있다. 과거의 기억을 지우려는 사람, 자신의 기억뿐 아니라 자신의 기억 속 고통을 느낀 사람의 기억까지 지우려는 인간의 고통과 죄책감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었던 작품 「마인드 리셋」이 있다.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 「루디」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한 소방관의 기억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치유하려는 내용이다. 작품 속 루디는 인공지능을 장착한 기계로 혼수상태에 누워있는 소방관의 기억 속에 들어가 구하지 못했던 요구조자를 구하는 등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기억을 조작한다. 치유되는 듯하지만, 근원적인 고통의 기억에는 다가갈 수 없다. 감정의 전이까지 느끼는 미래의 인간에게도 휴머니즘은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고통스러운 기억도 경험의 일부가 아닌가.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그 기억을 삭제하고 싶은 것인가. 더군다나 죄책감을 느끼는 대상의 기억까지 삭제한다면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특별한 기억이 없는 그저 현재를 살아가는 감정이 없는 기계라고 할 수 있겠다.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기억을 삭제하려는 사람들은 정식적인 루트를 벗어나 기억 삭제 과정을 거치려 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버지가 하던 일을 하는 주인공이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낯설지 않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독자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표제작이기도 한 「평행우주 고양이」는 고양이의 눈을 바라보면 다른 세계로 이동한다는 레나를 기억하는 소설이다. 사람들에게 과한 친절을 베푸는 레나는 자기의 약점 혹은 단점을 숨기고 타인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서 다른 시간으로 이동하여 자기가 원하는 경험을 하는 식이다. 현실이 고통스러우면 우리는 과거나 미래의 어느 순간을 그리워한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기억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말하는 것 같다.
언니는 모를 거예요. 이날의 만남이란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는 걸요. 무수히 많은 선택과 우리가 알아볼 수조차 없는 힘들이 만들어 낸 소우주들의 마주침이라는 사실을요. (73페이지, 「평행우주 고양이」 중에서)
너와 나의 만남이 소우주들의 마주침, 혹은 평행우주의 한가운데 있다면 어떨까. 스치듯 알게 된 사람들도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이라면, 누군가에 의해 만나는 거라면 우리는 모든 순간 선택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심해의 파수꾼」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키메라의 땅』이 떠올랐다. 지구에 더 이상 거주할 수 없게 된 인간은 바닷속 깊은 곳에 해저 도시를 만든다. 삶의 터전을 옮기기 위해서는 그곳에 존재할 수 있는지 시험해봐야 한다. 바다에서 태어난 새로운 생명체 로비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아이'라고 불린다. 지구에서 해저 도시로 온 인간들과는 고작 몇 개월을 함께 할 뿐이다. 그들과 헤어질 때 언젠가 자기도 육지로 갈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해저 도시에서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었다. 로비는 향유고래와 대화를 통해 그가 받았던 교육과는 다른 진실을 알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던 진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로비 또한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건가.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갈 미래의 한 장면을 만날 수 있다.
기억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궤적이다. 과거를 기억할 수 없다면, 혹은 삭제되었다면 누군가를 그리워할 일도, 고통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불안하지 않을까. 과거에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누구를 사랑했는지 모른다면 두렵지 않을까. 언어의 세계를 잇는 기억, 시간의 흐름과 언어가 가지는 흔적이 인간의 삶을 이루는 요소가 아닐까 한다. 기억과 언어 그 경계에서 인간의 삶을 엿보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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