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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2년 12월
평점 :
우리의 삶은 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로 향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원하고자 하는 길 위에 서 있기도 한다. 어떤 순간,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 삶은 어땠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 한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우리는 다른 삶을 살지도 모른다.
우리가 읽었던 책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는 삶의 한 방법을 바라보게 된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책의 내용을 더 이해하고자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띄엄띄엄 읽었던 소설에서 다 느끼지 못할 감정을 영화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삶이 버거울 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다 버리고 떠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상상일 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가족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하지만 다른 가족이 없다면 훌쩍 떠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치 정해진 시계처럼 살았던 문두스, 그레고리우스가 인생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순간, 그의 삶은 열려 있었다. 갇혀있었던 마음에서 해방되는 듯한 느낌, 어디로든 향할 수 있었다. 다리에서 만난 포르투갈의 여성 때문에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날 아침의 수업 따위 아무렇지도 않았다. 예전의 그라면 전혀 생각하지 못할 모습이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이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부딪혀 낯선 세계로의 여행, 즉 새로운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연히 책에서 만난, 낯선 언어로 된 문장이 삶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꿈꾸어보지 못한 삶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프라두의 삶을, 자신의 삶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31페이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가서 고전어를 가르치는 단조로운 삶을 살았던 그레고리우스였다. 단 하나의 사건이 그를 바꿨다. 학교를 뒤로하고 무책임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가 학교에서 걸려 오는 전화도 무시하고 타인의 삶을 좇았다. 이미 그는 새로운 삶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낯선 도시는 우리를 훨씬 자유롭게 만든다.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한다. 그 연결고리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배운다.
시간에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부여하는 것은 죽음이다. 시간은 죽음을 통해서만 살아 있게 된다. 모든 것을 안다는 신이 왜 이것은 모르는가? 견딜 수 없는 단조로움을 의미하는 무한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237페이지)
철학적인 사유가 가득하다. 밑줄을 그어가며 문장을 읽고 기억 속에 저장하려고 애쓰게 된다. 중요한 순간마다 책을 펼쳐 아마데우의 언어를 음미했던 그레고리우스의 모습을 살핀다. 베른을 떠나 리스본을 향해 기차에 오르던 장면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과 흥분을 엿볼 수 있다. 리스본에서 다시 베른으로 돌아가면서도 리스본으로 돌아갈 것임을 느끼게 한다. 그레고리우스가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낯선 도시를 걸었듯, 영화 속의 포르투갈의 거리가 머릿속에 맴돈다. 그 길 위에서 낯선 풍경을 바라보고 걸어보고 싶게 만든다.
_영원한 젊음
젊은 시절 우리는 자기가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하며 산다. 죽을 운명이라는 인식은 종이로 만든 느슨한 끈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인생에서 이런 상황은 언제 바뀌는가? 이 끈이 우리를 점점 휘감고 결국에는 목을 조르는 건 언제인가? 이 끈이 절대 느슨해지지 않으리라는, 부드러우면서도 굽히지 않는 압박을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이런 압박을 깨달을 수 있는 징후는 무엇인가? (320~321페이지)
『자기결정』의 페터 비에리가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이다. 십여 년 전쯤에 『레아』와 함께 읽었던 소설인데 그때는 어떤 감정으로 읽었는지 제대로 생각나지 않았다. 다시 책을 읽으며 그레고리우스는 왜 프라두의 삶에 그토록 매달리는가. 프라두의 삶을 알기 위해 평온했던 삶을 버릴 만큼 변화를 바랐던 것인가. 낯선 도시를 걸으며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299페이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내가 그였더라면 어땠을까, 깊이 사유하는 것이야말로 내 삶은 더 풍요로워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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