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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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파 길을 헤맬 때 뜻밖의 장소에서 위안을 얻는 경우가 있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편안함. 때로는 낯선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듯, 발을 딛고 서 있는 장소가 큰 의미가 된다. 마음을 둘 데가 없어 길을 떠났다. 시골 어느 변두리,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 온다. 커피 한 잔을 내줄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에 책과 음식이 있었다. 물론 예약해야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손님에게도 아주 작은 공간 하나 내어줄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의 이름은 소양리 북스 키친.


 

일명 책들의 부엌이다. 책과 음식, 북 스테이를 겸할 수 있다. 글을 쓸 수 있는 공간도 있고, 근처 음악 공연에 갈 수도 있다. 풀리지 않은 미래에 대하여 혹은 번아웃을 느꼈을 때, 목표를 향하여 쉼 없이 달려왔으나 가로막힌 순간을 경험할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와 책과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책을 구매하고 엽서에 편지를 써 크리스마스에 받아볼 수 있는 이벤트도 있다. 여행 시 우체통 앞에서 1년 뒤에 받을 수 있는 편지를 써 본 사람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말을 쓸까 고민하면서 쓴 글이 받아보았을 때는 그때의 고민이나 염원은 매우 가벼운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희망적인 언어를 주로 쓰는데, 불안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될 거라는 마음을 담는다.

 


저마다 우울한 순간,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꼭꼭 숨겨두었던 마음을 꺼내 놓기도 하고, 삶을 달리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된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듯. 소양리 북스 키친을 찾아온 사람들은 이 장소에서 비로소 자기가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깨닫게 된다.

 


어떤 고민을 하고 있다고 치자. 내가 하는 고민이 세상에서 제일 크고 중요할 거 같지만, 누구나 이런 고민 하나쯤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면 비로소 우리의 시야가 좁았음을 알게 된다. 누구나 비슷한 고민과 더한 고통을 가지고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북스 키친은 말 그대로 책들의 부엌이에요. 음식처럼 마음의 허전한 구석을 채워주는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 지었어요. 지난날의 저처럼 번아웃이 온 줄도 모르고 마음을 돌아보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맛있는 이야기가 솔솔 퍼져나가서 사람들이 마음의 허기를 느끼고 마음을 채워주는 이야기를 만나게 됐으면 했어요. 그리고 누군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225페이지)

 


소양리 북스 키친 운영자 유진은 그 사람에 맞게 책을 처방해준다. 인생에서 길을 잃었을 때, 문장 한 구절, 책 한 권은 큰 의미를 갖는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책의 느낌도 달라지는 법. 어느 순간에 확 와 닿는 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듯 음식도, 공간도 기분에 따라 좋은 곳이 될 수도, 그저 그런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유진이 처방해주는 책을 보고 있자니,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작가가 좋아하는 책, 읽었던 책들의 목록이 반가워서였다. 내가 읽었던 책의 공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반가웠을 것이다. 빨강 머리 앤의 모퉁이에 대한 부분은 나도 아주 좋아하는 문장이다. 읽을 때마다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는 한다. 좋은 문장을 인용해 이 소설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마음을 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감정. 그것이 애틋한 마음의 다른 표현이었음을 대화를 했을 때 드러난다. 마음에 담고만 있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동식은 자기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엄마에게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거부의 표현으로 엄마를 미워하고 자신을 학대했다. 물어보기로 결정했을 때 그는 마음을 열었던 거다.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장소에 갔을 때, 책이 있으면 그 곁으로 다가가 책들의 목록을 살핀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반가움 혹은 공감을 하며 책 목록에서 드러나는 그 사람의 취향을 짐작해본다. 소양리 북스 키친이 어디쯤 있을까. 작가의 상상력의 장소이지만,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다. 싹싹한 성격의 시우가 손님을 맞이하고, 말없이 커피를 건네는 유진의 손길이 따스할 것 같다. 머물고 싶은 장소. 마음을 나누는 장소가 될 소양리 북스 키친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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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데이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0
서수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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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과 인종이 다른 사람이 만나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거 같다. 문화와 습관이 차이에서 오는 다름. 그것을 넘어서기란 마치 문화가 가진 본질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전에는 국제 연애하는 사람을 볼 때면 참 낭만적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 이 책을 읽은 후로는 어쩌면 굉장히 어려운 연애라는 것, 평생 이해하지 못할 일도, 견해의 차이가 클 거라고 예상했다.

 


삼십 대의 호주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이 만나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서로의 연애에 대하여 깊이 파고드는 것과는 다른,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을 인식하는 과정들을 나타낸 소설이다. 두 사람의 사고방식은 좁힐 수 있다 치더라도 상대방 부모와의 견해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거 같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유진은 한국인으로,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호주인으로 자란 데이브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연애의 시작에서부터 다르다. 집에서 물담배를 하자는 초대의 의미와 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의 차이. 집에 초대했을 때 물담배 말고 다른 것을 할 건지 하지 말 것인지를 미리 말해야 한다고? 한국인처럼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건 없는 거 같다. 그에 따른 문제, 상대방이 잘못 인식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에게 그어진 선에 대하여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대부분 자기만의 선을 그어놓고 그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한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결혼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데이브에 반해 유진은 엄마의 요구도 그렇고 결혼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한국인이 서로의 부모에게 초대받은 일을 결혼의 시작점이라고 보는 반면, 외국인은 자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소개하는 상황을 비교적 가볍게 받아들인다. 데이브의 부모 집에 갔을 때 유진이 입었던 원피스에 대하여 말해 보자. 격식을 갖춰 불편한 옷을 입었으나 데이브의 부모나 여동생과 여동생의 여자친구가 편한 옷을 입은 것의 차이는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불편하다. 초대받은 집에서 한국식으로 도와드리겠다고 설거지를 하는 것의 차이와도 같다. 초대된 손님이 설거지하는 경우는 없다는 걸 유진은 몰랐다.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으로 생각했다.

 


이와 반대로 데이브가 한국에 왔을 때, 무거운 물건 때문에 엄마가 도와주러 집 밖에 나왔을 때 데이브를 마주쳤다. 데이브는 당연히 자기를 초대할 줄 알았는데 다음에 정식으로 초대하겠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는 집에서 편하게 입었던 옷이 불편했고, 데이브는 집에 찾아온 손님을 내쳤다고 생각했다. 데이브가 유진의 엄마에게 정식으로 초대받아 갈 때 데이브가 선물하려 했던 빗자루는 압권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선물은 하고 싶지 않을뿐더러 주고 싶은 선물을 할 거라고 말하는 데서 오는 이질감 혹은 다름의 인식이다.

 


한국 사람들도 결혼에 대한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결혼과 동거의 차이에 대하여 서양처럼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변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거 같다. 결혼에 대한 확고한 생각, 결혼과 아이에 대한 미래를 그리지 않은 사람이 하는 행동에 마냥 그의 뜻이 맞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얼마나 불합리한가 말이다. 자기의 유전자를 물려준 아이가 자기의 아이인가 가족의 아이인가. 어쩌면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거라 여길 수밖에 없다. 물론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만약 우리가 특정한 나라의 외국인을 만났을 때 저절로 그 나라의 정치적 현실이 궁금해 질문하게 될까. 평소에 궁금하게 여기는 건 좋으나, 국가를 대표하여 답을 내놓기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았다고 해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유지하지 않느냐 말이다. 언젠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안전불감증에 대하여 표현하는 걸 보았다. 북한과의 갈등은 국가의 일이고 우리는 개인이므로 지극히 개인적인 사고를 하기 마련인 것이다.

 


유진은 정성껏 그린 그림을 뭉개는 작업을 했다. 그림을 뭉갰다는 것은 유진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는 거다. 사람의 얼굴이 뭉개졌다는 건 그 사람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것. 태즈메이니아 창에서 바라보았던 풍경과 뭉개지 않을 그림을 그릴 것 같았던 마음은 곧 다름의 차이로 역시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랑이 어디까지인지, 국적과 인종 간의 갈등과 다름을 극복하기란 역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그녀가 햇살 가득한 그림을 그릴 수 있기를 바란다. 유진은 다른 삶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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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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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평 빌라에서 여섯 명의 가족이 복닥거리며 사는 걸 상상해 본다. 작은방에는 조카 둘, 거실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안방에는 젊은 부부가 산다. 문제는 네 명의 어른 중 제대로 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거다. 이 가족은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할까. 그럼에도 이 가족은 돈 벌어오지 않는다고 누군가를 타박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바라보고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말없이 서로를 지지해준다고 해야 옳겠다.

 


수경과 우재, 여숙과 천식, 준후와 지후가 그들이며 더불어 은지와 보라가 이 가족과 얽혀 소설을 이끌어 간다. 플랫폼 노동자를 다룬 이야기나 여성 서사의 이야기로도 읽힌다. 회사를 다니며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묻는 소설이기도 하다.


 


 

 

수경은 업무적으로 친한 직원이 건네준 약물을 탄 음료를 마시고 성범죄를 당할 뻔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유일한 직장인이었던 수경을 가족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다 같이 아파하고 자기만의 골방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수경은 집 밖으로 나왔다. 휴대폰에 어플만 있으면 일할 수 있는 택배 배송을 시작한다. 타인의 지나친 관심 따위 받을 일 없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엄마와 함께 택배 배송을 하기 시작하자 남편 우재도 해외 선물 거래 틈틈이 야간 대리운전을, 아버지는 걸어서 음식 배달하는 일을 시작한다.

 


마치 알에서 깨고 나오는 가족들 같다. 한없이 웅크리고 있다가 드디어 알 밖의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처럼 보인다. 4개월여 기간 동안 고통스러워하다가 직접 부딪치며 이겨내야겠다는 자각이 컸다. 물론 경제적인 면도 없잖았다. 그 전에는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면 이제부터는 서로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비로소 소통하는 가족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처음 택배 배송을 하고 엄마가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으며 노동의 힘겨움 속에서 서로 마음을 터놓기 시작했다. 직장 다닐 때 느껴보지 못했던 노동자의 삶에 눈을 떴다고 해야겠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는 플랫폼. 플랫폼 안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의 애환을 엿볼 수 있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 작품의 귀결은 헬프 미 시스터라는 여성을 위한 심부름 대행 어플이다. 휴대폰을 켜면 일을 받을 수 있고, 의뢰인은 여성이며 의뢰를 받는 사람도 시스터다. 수경과 여숙이 받은 일 중에 결혼식 가족 대행도 있었고, 시댁에 가서 제사음식을 해달라는 것도 있었다. 왜 시어머니가 되면 며느리를 괴롭히게 되는 걸까. 가족들 먹인다는 이유로 일하는 며느리를 불러 제사음식을 해야 할까. 아들은 일하는 사람이라 괜찮고, 일하는 며느리는 휴가를 내고 와야 하나. 여성 차별을 여자가 하는 경우가 많으니 더 문제다. 부조리한 제도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자의 고통이 스며든다.

 


소설 속 인물 중에서 수경의 엄마 여숙의 행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나이가 많아 젊은 애들 틈에서 견디기가 힘들어도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자동차 운전을 하는가 하면 햄버거집 키오스크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자립이라는 단어는 여숙 씨에게 해당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수경과 함께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양천식 씨의 말대로 기적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겠다.

그들 모두 이렇게 한마음으로 함께 있다는 것이 기적.

그들 모두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해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기적.

그들 모두 웃고 있다는 것이 기적.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모든 게 기적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338페이지)

 


다소 부족하더라도 가족이 함께라면 이기지 못할 것이 없다. 살짝 반지층이라도 서로에게 주어진 나만의 공간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 조금 노력하면 웃을 수 있다. 미소를 짓는 수경이나 여숙 씨, 우재와 천식 씨, 지후나 준후가 웃을 수 있으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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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이 우리 주변으로 다가온 지 꽤 되었다. 일상의 한 부분처럼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편의점으로 간다. 특히 심야 시간에 더 빛을 발한다.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중 나이 든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다른 곳보다 시급이 적어 알바생이 자주 바뀐다. 그런데 체격이 곰처럼 크고 듬직한 사람이 야간을 맡고 있다면 편의점 점장으로서는 믿을 만하리라.


 

신분증, 신용카드, OTP, 통장 등 모든 것이 들어있는 파우치를 잃어버렸을 때 노숙자가 찾아준다는 게 가능할까. 독고 씨로 불리는 그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이 소설은 판타지로 보였다. 실제로는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내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가정 하에 말하는 거다.


  

부산을 향하는 기차 안에서 염영숙 여사는 파우치가 사라진 걸 알았다. 이어 전화가 걸려와 파우치 주인을 묻는다. 배가 고프다며 편의점 도시락 먹으면 안 되겠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더니 도시락값이 찍혔다. 다시 출발한 서울역으로 향했다. 몸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는 노숙자였다. 염 여사는 그를 데리고 자신이 운영하는 편의점으로 데리고 가 산해진미 도시락을 데워 주었다. 알바생 시현에게 이 남자가 오면 언제든지 도시락을 챙겨주라고 말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 도시락 폐기시간에 맞춰 찾아와 도시락을 먹고 갔다. 그리고 야간을 책임져 주던 성필 씨가 그만두게 되자 독고 씨에게 편의점을 맡아 달라고 한다. , 술을 마시지 않을 것과 가불해 줄 테니 돈으로 목욕탕에 들러 씻고 새 옷을 사 입으라고 말했다.

 


이렇게 독고 씨는 편의점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된다. 염 여사의 편의점을 책임져 줄 뿐 아니라 시현이 근무하는 시간대에 찾아오는 JS(진상) 손님을 해결해 준다. 노숙자 출신이라며 대놓고 싫어하는 선숙 씨에게도 아들과의 일을 듣고 조언해주는 사람이다. 진상을 대할 때는 강하게, 친절이 필요한 할머니들에게는 배달 서비스까지 해줄 줄 알았다. 좋은 곳에 투자하겠다며 편의점을 팔라고 재촉하는 염 여사의 아들 민식에게는 대차게, 민식이 고용한 흥신소 곽의 미행을 못 본 척 눈감아주고, 필요한 제품이 없어 불편한 편의점이라고 부르는 한밤에 찾아오는 작가 인경에게 줄 산해진미 도시락을 몰래 숨겨놓기까지 한다.

 


반말하는 사람에게는 반말로, 편의점 대표의 아들이라며 계산하지 않은 남자에게는 계산할 때까지 물건을 주지 않는 것, 술 마신다며 가족이 싫어하고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의료기기를 파는 사람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오히려 도움을 주기까지 한다.

 


그런 그에게 어떤 사정이 있었기에 노숙자로 살게 되었으며 알코올 중독으로 자신의 이름도, 가족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궁금할 수밖에 없다. 편의점 일을 배우며 점점 기억이 돌아와 자기의 직업을, 가족들이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자기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거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252페이지)

 


평범한 이야기 같은데, 읽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편의점과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은 곧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 가지고 있는 고민, 미래를 위해 공시생으로 있든, 새로운 투자처를 마련해 돈을 벌고 싶든 우리 주변에서 있음 직한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공무원 준비를 하며 편의점에서 일할 것이고, 누군가는 돈벌이 안 하는 가족들을 대신해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하여 너무 무관심하지는 않았는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는다. 물론 작은 친절이 과도한 관심으로 변해 불편함을 유발할 수도 있다. 서로의 경계를 지키며 할 수 있는 것을 해주는 것. 소통에서 오는 관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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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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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료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감탄하게 된다. 디테일한 묘사 때문에 실제로 그 장소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읽은 소설을 다시 읽었음에도 여전히 가슴이 떨리는 감정을 갖게 되었다. 결말이 어땠더라, 여전히 궁금하게 여기며 전보다 더 매끄러운 번역 덕택에 사와자키 시리즈를 읽는 즐거움이 컸다.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의 사와자키. 그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때문에 유괴 사건에 얽힌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소녀가 유괴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소녀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에 체포되었다. 의뢰인의 전화를 받고 도착했음에도 경찰은 믿지 못한다. 다행히 경찰의 의심을 풀었으나 유괴범이 말한 돈을 운반해야 할 상황이었다.

 



 

 

모든 작가는 소설의 중간중간에 단서를 심어 놓는다. 작가가 독자를 헷갈리게 함과 동시에 의문을 갖게 되는 효과를 준다. 탐정 사와자키에게 사건 의뢰했던 의뢰인의 목소리와 딸을 찾고 싶으면 돈을 준비하라는 유괴범의 목소리가 같다. 남자처럼 낮은 여자 목소리가 그중 압권이다. 유괴된 소녀 사야카의 사건을 조사함과 동시에 사와자키는 이와 다른 의뢰를 받는다. 조사를 시작하며 한 명씩 유괴 용의자에서 배제하여야 한다.


 

유괴는 돈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원한 관계에서 오기도 한다. 아무래도 사와자키는 경찰이 아닌 탐정이기에 그들과는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자신만의 노하우로 사건과 관계된 자들을 조사하는데,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주시하게 된다. 자주 찾아가고 의심하는 사람이 중요한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경찰은 그를 탐정이라고 무시하지만 니시고리 경부는 그를 신뢰하는 편이다. 의외로 중요한 인물 일줄 알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인물들이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 나타나 소설을 다른 방향으로도 이끌기도 한다.


 

가족이란 무얼까 생각해보게 된다. 순간의 실수로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 치명적인 살인으로 이끄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순간을 모면하려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죄를 뒤집어씌우기도 한다. 소설에서 우리는 유괴된 소녀 사야카의 오빠 요시히코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훗날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에서 조수로 일하기도 하는 인물이며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관심을 두면 이 소설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사와자키에게는 와타나베라는 동료가 있었다. 탐정사무소 이름도 굳이 바꾸지 않아 그에게 의뢰해오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와타나베일 거로 여긴다. 사와자키 시리즈를 더해 갈수록 와타나베의 언급이 덜하지만, 와타나베가 종이비행기로 안부를 전해오는 장면은 꽤 아날로그적이다. 이 소설이 쓰일 때만 해도 휴대폰이 보편화되지 않아 전화 교환 서비스를 이용한다. 중요한 연락을 받기 위해서는 전화기가 있는 장소에서 기다려야 하는 장면도 지금과는 매우 다르다.


  

블루버드를 타고 담배를 피우며 경찰들 틈에서 사건을 의뢰받는 사와자키는 꽤 건조한 인물이다.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사람도 없고, 타인과의 관계에 무감하다. 조직폭력단 하시즈메나 니시모리 경부 등 관계자에게 반말을 하면서도 조사에서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한다.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순간적인 판단력이 뛰어난 탐정이다. 그의 주변에 늘 살인사건이 발생하지만, 사건의 한가운데서 자신만의 감각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그래서 사와자키 시리즈에 열광하게 된다. 어떤 과거를 간직하고 있길래 이처럼 혼자서 도시를 떠도는가.


 

무엇보다 이 소설의 백미는 개정판이 출간되면서 단편 감시당하는 여인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와자키의 매력이 빛난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뢰를 해결하며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우편함에 꽂힌 종이비행기를 발견하고는 다시 원래대로 접어 비행기를 날려보내는 사와자키의 마음속이 궁금해진다. 그는 와타나베에게 어떤 말을 남겼을까. 그가 그리워하는 만큼, 어느 순간 불쑥 나타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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