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얼굴의 여우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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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의 소설을 읽는다는 건 과거의 어느 한 장소로 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전설 속에서 나타나는 기이한 것들의 출현이지만 결국은 사람의 욕심에서 나오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의 소설은 한마디로 재미있다. 민속학을 접목한 기이한 미스테리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스스로 자문하게 된다. 누군가의 복수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결국 인간의 욕망으로 귀결된다.

 

미쓰다 신조가 이번 작품 『검은 얼굴의 여우』는 세상을 떠돌며 괴담을 수집하는 도조 겐야 시리즈가 아닌 모토로이 하야타라는 새로운 인물을 선보인다. 하야타 시리즈를 출발하는 스토리다.

 

 

하야타는 건국대학을 졸업한 인텔리로 가방 하나를 둘러메고 특별한 행선지 없이 떠도는 중이다. 한 남자에 의해 탄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기 직전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얼굴상이 여자로 착각할 만큼 갸름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얼굴에 흉터가 있는 남자였다. 자신의 이름을  아이자토 미노루라고 밝힌 그는 예전에 조선에서 징용이라는 이름으로 정남선이라는 남자를 탄광에 넣었었다며 하야타를 구했다. 특별한 직업이 없었던 하야타는 아이자토 미노루를 따라 그가 일하던 탄광 넨네 갱으로 가 광부가 되었다. 물론 대학을 나왔다는 말은 하지 않고 초등학교만 졸업했다고 밝혔다.

 

패전후 탄광은 조선인들은 떠나고 일본인만 남아 있다. 항상 위험을 감수하고 하는 일이라 탄광 입구에 신사가 있는 것은 물론 여우 신을 모시는 사당도 존재한다. 즉 미신을 많이 믿는다는 말이다. 탄광에 들어갈 때마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를 위험을 안고 들어가며, 안녕을 고한다. 이 곳에서 기이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여우신을 모시는 사당에 있는 금줄로 목이 맨 남자들이었다. 이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을 하는 게 하야타다.  

 

 

하야타와 같은 방을 쓰는 아이자토 미노루가 탄광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한 뒤, 탄주에 머물던 기도가 금줄로 목을 매 자살한 듯한 사건이 발생하고, 이어 기타다와 니와 하타타로까지 같은 방법으로 죽었다. 문제는 밀실살인이라는 거다. 모든 방의 창문과 문은 안으로 잠겨 있고, 그 안에서 자살이라고 할 수 없는 자세로 죽어 있었던 거다.

 

소설의 배경은 일본의 패전후다. 전쟁에 막바지에 다다른 일본은 석탄 부족 때문에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용해 광부로 썼다. 음식을 제대로 주지도 않고 탈출도 못하게 만들었고 몰래 탈출하려는 사람에게 폭력은 물론 죽이기까지 했다. 이 부분은 영화 <군함도>를 참고하면 될 것 같다.

 

 

처음 기도라는 자가 죽기 전 검은 여우의 얼굴을 가진 자가 그의 집으로 들어간 것을 본 여자애들이 있었다. 검은 여우가 나타나 죽인 것인지, 검은 여우의 가면을 쓴 누군가가 살해했는지 의문이다. 왜, 무슨 이유 때문에 죽였는지가 문제다. 밀실 살인의 트릭을 이용한자, 어떠한 원한을 갖고 있기에 죽인 것인지, 하야타의 추리가 빛나게 된다.

 

역사적 배경을 조선과 연결해 징용이라는 문제를 다시한번 바라보게 만든다. 어쩌면 일본인들에게 불편한 소재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역사적 배경과 호러와 추리를 가미해 묘한 쾌감을 선사하는 소설이었다. 하야타의 앞으로의 활약도 기대하게 만드는, 새로운 하야타 시리즈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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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
돌리 앨더튼 지음, 김미정 옮김 / 윌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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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몇 살이 되든 사랑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의 방법이 다를 뿐이다. 십대는 십대의 사랑을, 이십대는 이십대의 사랑을, 삼십대는 삼십대의 사랑을 한다. 하지만 꼭 나이대에 맞게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에 따라 사랑의 방법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진중하고도 오랜 사랑을 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여러 사람을 다양하게 만나기도 한다. 어떤 방법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각자가 추구하는 것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 돌리 앨더튼은 다양한 경험을 하고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에 따른 상처와 경험을 글로 담았다. 마치 한편의 소설같은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 읽게 되었다. 우리가 경험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결국에는 비슷한 마음을 품고 있지 않았을가 싶기도 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실패의 보고서, 그리고 십대, 이십대의 시기를 지나 삼십에 이르러 실패를 딛고 자신의 삶에 좀더 의미를 부여하게 된 보고서에 가깝다.

 

 

 

 

아마 저자와 나이 차이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는데 상당히 재미있었다. 오로지 남자를 만나기 위해, 남자와와 경험을 위해 수많은 파티에 갔고, 음주를 하는 등 광란의 밤을 보냈던 저자의 솔직한 표현들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짓기도 했다. 하룻밤 상대로 만나던 남자였든, 1년을 만나던 남자였든 이별은 언제나 슬픈 법이다. 저자가 고통스러워하며 밥맛을 잃어 날씬해지는 과정, 이어  건강을 해칠 정도로 거식증에 이르는 과정을 솔직하게 말했다.

 

남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여자들에게 친구는 무척 중요한 존재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온 친구와 오랜 시간을 지내다보면 서로의 집안을 왕래하며 그냥 가족이 된다.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단 하나의 친구라 여기게 되는데, 친구가 남자친구와 진지한 만남을 가지게 되면 친구보다는 남자친구가 먼저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서운함 혹은 질투를 실감나게 표현했다. 헤어졌으면 좋겠고, 자기처럼 여러 남자를 가볍게 만났으면 싶지만 친구는 사랑에 있어서는 항상 진중했다. 친구의 남자친구를 미워하다가 결국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과정이 필요했다.

 

꿈꿔오던 사람과 만날 확률은 적다. 이상적인 남자라 여겨도 그 사람에게는 이미 여자 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 가볍게 만나 술마시고 자는 생활을 반복했지만 그것에서 얻은 것이 있다. 진정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도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이제 남자에게 얽매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필요했다. 

 

그 순간, 인생이 그저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듯 아주 단순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시했다. 내 옆에서 걷는 사람을 마음껏 사랑하는 게 뭔지 깨달았음에 감격했다. 매우 깊이, 맹렬히, 말도 안 되게. (199페이지)

 

심리 상담을 받으며 자신을 뒤돌아보았고, 진정한 자기와 만나는 순간이 필요했던 거다. 가장 사람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남자를 찾지 않고 주변의 친구들과 자신에게 집중했다. 그런 계기가 필요하다.

 

저자가 가볍게 많은 남자들을 만나는 순간들을 지켜보며 마음속에 불안한 심리적 요인이 있지 않았나 생각했지만, 돌리에게는 그저 새로운 경험이 필요했다. 살고 있는 매 순간을 사랑했고, 새로운 남자들을 만나고 싶었던 거다. 십대에 느꼈던 것, 이십대, 삼십대에 느끼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적었으며 그로 인한 성숙의 시간을 가졌다. 남자를 사로잡는 요리법은 다른 하나의 팁이다. 더 이상 다른 남자를 사로잡으면 안되기 때문에 그 요리법은 패스!

 

아직 인생의 반도 살지 않은 서른 살의 사람이 사랑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안다고 볼 수는 없다. 더 나이가 들면서 더 성숙한 사랑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녀에게는 아직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랑을 할 것인가, 결국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묻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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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 ZERO 零 - 김사과 소설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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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앉아 이별 의식을 치르고 있는 남녀를 바라보는 건 그다지 좋은 감정은 아니다. 둘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누가 잘못했는가를 따질 수 있지만 깊게 들어가보면 다른 양상을 띄기도 한다. 성연우가 헤어지자고 말하면서 '나'가 잘못한 것들을 읊고 있다. 순진한 것처럼 혹은 피해자인 것처럼 말하는 '나'.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그녀는 성연우의 말을 들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의식한다. 특히 이제 막 들어온 사십 대 남자를 주시하면서 자신의 말을 듣는 걸 알 수 있다. 완벽하게 적절했다라며 주변 사람들을 의식한 '나'의 행동은 매우 놀라울 뿐이다.

 

이런 사람과 곁에 있다보면 매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명문 대학 독일문학을 전공한 '나'는 학창시절에 알았던 이민희가 암에 걸리자 그의 강의를 물려받았다. 그러면서 이민희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말한다. 독일에서 4년간 살았을때 김명훈에 대해서도 말한다. 김명훈을 어떻게 자기 무리로 끌여들였는지, 그리고 독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혼후 한국으로 돌아온 김명훈의 아버지에 대한 것까지.

 

 

모든 사람을 자기 계산하에 다루고 행동하는 '나'를 바라보는 건 유쾌하지 못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새롭다. 아주 나쁜 축에 드는 주인공임에도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착한 사람 코스프레를 하는 듯 보이지만 자기 마음 속 욕망에 대해서는 주저하지 않는다. 강의실에서 신입생 티를 벗지 못한 박세영을 눈여겨 보는 장면은 '나'에게서 뭔가 다른 것을 발견 할 것 같은 예감이었다. 하지막 본연의 성격을 버리지 못했는지 '나'는 박세영을 깊은 늪까지 데리고 갈 정도로 그녀를 닥달한다. 글 쓰는 것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걸 알아챘지만 마치 질투의 화신처럼 다른 걸 하게 만들었다. 산문에 어울리는 박세영을 시 쪽으로 재능이 보인다며 다른 쪽으로 유인해 지쳐 나가떨어지게 만든다는 거다.

 

일부러 나쁜 사람을 만들어내듯 탄생된 캐릭터 같았다. 아버지가 갑자기 죽은후 엄마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게 되면 그녀가 가진 악마성에 놀란다.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냈을까. 타인들에게 보여지는 그녀의 행동은 자못 순수해 보이고 효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거대한 욕망은 타인을 조종하고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얻은 뒤에는 헌신짝처럼 버리는 게 그녀의 특기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불행을 바란다.

그것은 진실이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이다. 김지영 선배는 미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했다.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사람들은 누구나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바란다.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자신의 방에 길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리고자 한다. (120페이지)

 

김사과의 단편은 몇 편 읽었지만 어떤 작품이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러던 차에 읽은 이번 작품은 자못 상큼했다. 이러한 독특한 캐릭터를 좋아하기 때문에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더군다나 뒷편에 실린 작가와 평론가 황예인 과 나눈 대담은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왜 박세영을 괴롭혔는가에 대한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나'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헤어지겠다고 말하는 성연우와 엄마 만이 그녀의 욕망과 정체를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또 한 명을 짓밟고 다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말하는 부분은 그녀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여전히 누군가를 밟고 이용하며 기간이 다했을때는 과감히 버리는 행동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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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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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곧 여행이다. 어떤 삶이 이어질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행을 떠나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획을 세워왔지만 갑자기 생긴 사정에 따라 일정이 달라진다.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은행나무 숲길이 있다고 큰소리를 치고 부근의 장소까지 찾아 떠났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은행잎들이 다 떨어져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있는 경우, 주변의 두번째 장소 또한 마찬가지일거라는 생각에 무거운 발걸음을 향하지만 역시 같은 느낌에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고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할때처럼. 삶 또한 이처럼 예기치 않은 일들 투성이다.

 

매일을 여행자처럼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아니하고 떠도는 삶. 우리는 그들을 가리켜 방랑자라 부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떠돌며 살고 있고, 어떤 이들은 그런 삶을 꿈꾼다. 100여 편의 짧은 이야기가 수록된 『방랑자』는 그러한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하다. 때로는 작가의 목소리로 때로는 타인들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점점 달아오르는 군중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정말 놀랍도록 즐거운 일이었다.  (376페이지)

 

 

 

삶의 어느 경계선. 떠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어떤 여자의 삶처럼. 우리는 일종의 방랑자다. 소설의 아누슈카는 장애인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시어머니가 찾아와 자유 시간을 주지만, 그녀는 어딘가로 가서 마음껏 소리내어 울고 싶다. 거리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소리내어 말하는 여인을 바라보다 그녀는 탔던 열차를 내리고 다시 타기를 반복한다. 자기 아파트 앞에서 서성거렸다가 그 여자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녀가 느꼈을 고통, 아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거리를 떠도는 여자가 되어 있는 그녀. 그 또한 하나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쿠니츠키는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조그만 섬에서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애태우는 한 남자의 모습이다. 사라진 순간을 되새기지만 정확히 기억나는 건 없다. 어떻게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가. 길을 헛갈렸을거라며 애써 마음을 다잡지만 쿠니츠키는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각자의 이야기이면서 또한 다음 이야기를 나타낸다. 하나의 장소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다른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별함을 만날 수 있다.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에게 보내는 어느 딸의 편지는 의미심장하다. 신하가 죽자 황제는 미라로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영혼이 숨쉬게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달라는 딸의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흑인이 아닌 백인이었어도 자신의 신하를 박제해 전시했겠느냐는 물음이었다. 인간의 진정한 권력은 인간의 육신에 있는지, 영혼을 다스릴 수 있도록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말이었다. 몇 번의 간청을 거쳐 이제는 당당히 요구하겠다라고 말하는 딸에게서 삶의 방향을 배우기도 한다. 

 

죽은 아이나,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의 시신을 사려는 샬로타는 해부학자의 딸이다. 알코올 속을 헤엄쳐 다니는 아름답고 창백한 표본들이 그녀에게는 자식이나 다름없다. 그런 그녀도 항구쪽을 걷다가 남자용 누더기를 걸치고 동인도 회사의 선원이 되는 상상을 한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여겼음에도 떠나고 싶은 게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던 듯 하다. 아마도 여행의 경험과 취향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죽은 인간의 표본을 말하는 부분이 많았다. 신체의 한 부분을 표본으로 남기거나 해부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인간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향하는 움직임 속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상태의 인간을 놓고 설득력이 부족한 설명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나'라는 존재를 이해함에 있어 관계성을 배제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듭니다. (118페이지)

 

 

 

모든 여행자의 시간은 수없이 많은 시간이 하나로 모인 결합체다. 그것은 혼돈의 대양속에서 정리된 시간, 섬과 군도의 시간이다. 기차역의 시계가 만들어 내는 시간, 가는 곳마다 달라지는, 그때그때 약속된 시간이자 자오선의 시간이기에 그 시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시간이 사라져 버리고,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오후와 저녁의 발소리가 계단에서 들려온다. 그저 잠시 머무는 대도시에서의 빡빡한 시간은 하룻저녁을 송두리째 바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83페이지)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일상의 시간을 잊기 위해, 새로운 삶의 방향을 바라보기 위해. 현재의 것들을 잊고 낯선 장소에서 미래를 꿈꾼다.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떠나든, 옷가지와 다른 것들을 가득 담아 떠나든 우리는 언제나 시간을 달린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공간도 방랑하는 여행자의 한 공간임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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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1-29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많이 읽으시네요 ㅎ나도 이참에...참으야 ㅎ

Breeze 2019-12-11 16:20   좋아요 1 | URL
에세이처럼 짧으면서도 이어진 내용들이 많아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님^^

페크(pek0501) 2019-11-29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저자의 다른 책 <태고의 시간들>을 사 놓고 못 읽고 있어요.
저도 읽어야겠습니다.

Breeze 2019-12-11 16:20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이 책으로 저자를 처음 알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문장의 일 - 지적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스탠리 피시 지음, 오수원 옮김 / 윌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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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 타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장, 아름다운 문장, 간결한 문장을 쓰고 싶다. 문장이 아름다운 작가로 김훈과 김연수 작가를 꼽을 수 있다. 김훈 작가의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늘 감탄을 하곤 한다. 간결하고 날카로운 그러면서도 정확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누군가 그랬다. 가장 아름다운 문장은 처음 쓰는 문장이라고. 어느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문장.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책을 읽어야 하고, 자신의 문장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책 속에서 읽은 좋은 표현을 마음에 새기고 흐트러짐이 없는 문장을 쓰고 싶은 건 모든 글 쓰는 사람의 염원일 것이다.

 

문학이론가이자 비평가, 법률학자인 스탠리 피시의 좋은 문장을 쓰는 글을 읽으며 느낀 건 역시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사랑받는 작가들 제인 오스틴과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버지니아 울프, 샐린저의 문장을 발췌하여 문장의 형식을 말하고, 종속 혹은 병렬, 풍자 형식의 글을 쓰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한다.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점이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일 거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쓸때 첫문장 때문에 고민하고 마지막 문장때문에 애가 타는데 좋은 문장을 쓰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나는 문장을 관찰하는 사람이다. 순수 미술이나 좋은 포도주를 음미하는 사람들도 이다. 나는 좋은 문장을 음미한다. "우와, 참 대단하지 않아?", "저 문장 좀 보라고!" 라는 감탄을 이끌어내는 문장을 찾아 헤매는 일이 내 업이다. (12페이지)

 

 

 

 

 

글을 내놓을 때 늘 부끄럽다. 글쓰는 방법을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좋은 글을 읽으며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다른 분들의 글을 볼 때면 부럽다. 어쩌면 그렇게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문장을 구사하는지. 늘 배우는 자세로 글을 읽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글쓰기 관련 책을 읽는다고 해서 능력이 금세 일취월장 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글을 읽고 쓰며 노력을 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단어들을 열거한 목록을 넘어서 문장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문장 쓰기를 연습하고, 자신이 쓴 문장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일을 되풀이한다면, 자신이 쓰는 내용이 언제 실패로 돌아가는지 알게 되고 써놓은 문장이 별개 항목의 정보 더미로 전락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점 또한 파악하게 된다. (58페이지)

 

어떤 작가처럼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 새 글을 업로드 하고 그러다보니 좋은 글 즉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위 발췌 문장에서처럼 문장 쓰기를 연습하고, 자신이 쓴 문장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오른 사람의 행동일 수도 있겠다.

 

 

 

아래 문장은 헤밍웨이가 작가들에게 제공한 조언이다.

문장을 짧게 써라. 명료하게 써라. 영어에 어원을 둔 간단한 단어를 써라. 중복을 피해라. 형용사를 피해라(에즈라 파운드에게서 배운 교훈이다). 자신을 빼라. (124페이지)

 

내가 쓴 문장을 다시 읽고 있노라면 형용사가 많고, 중복된 단어가 많다. 헤밍웨이의 조언은 작가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적용되는 방법이다. 짧은 문장으로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글을 쓸때 가장 중요한 것이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이다. 물론 중간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처럼 중요한 게 없다. 첫문장 때문에 소설을 중도에 읽기를 포기한 적도 있을 정도다. 마지막 문장 또한 마찬가지다. 어떻게 마무리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게 깔끔한 마무리인데 나는 늘 마지막 문장이 어렵다.

 

문장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문장의 형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어떠한 형식으로 글을 쓸 것인가. 논리적 형식에 맞게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가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어떠한 내용으로 어떠한 문장을 쓸 것인가. 결국 구체적인 연습을 통해 논리 형식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자, 이제부터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다시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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