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조너선 프랜즌 지음, 홍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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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를 고찰하는 작품이다. 삶은 실수의 연속이라서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순간의 선택으로 놓치곤 한다. 뒤늦게야 후회하는데, 이처럼 후회하지 않은 삶을 살기란 어렵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단순한 선택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나서야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깨닫는다. 실수하므로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사는 삶, 잠시 돌아간다고 해서 나쁜 것은 없다. 한쪽 길로 갔다면 느끼지 못했을 다양한 인생의 경험하는 걸 보면, 때로는 옆길로 새도 된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는 저마다 특별한 친구가 존재한다. 단 한 명의 친구로 평생을 살고,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남는다. 다른 인물들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좋아하면서도 질투하고, 때로는 자기의 감정을 숨긴다. 물론 친구를 위해서다. 무작정 달려가기보다는 서서히 커가는 감정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옆집에 사는 동안 그의 의견을 존중하고 품위 있게 처신했다는 사실을 조이는 새삼 깨달았다. 그런 생각 때문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자유를 원했고, 부모님은 그에게 자유를 허락했다. (319페이지)

 


부모와 자녀, 조부모로 이어지는 가족의 관계는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속박한다고 하여 자유를 갈망하지만 진정한 자유란 마음의 문제인 거 같다. 갇힌 공간에 있어도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감정의 깊이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거다. 가족에게 벗어나려 도망쳐도 그때가 가장 자유로웠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월터의 한결같은 감정에 경의를 표한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걸 알면서도 월터는 패티에 대한 마음을 접지 않았다. 우울증에 걸려 엉망이 되어도 패티를 지키고자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즉 새를 지키는 일을 하는 즐거움을 깨닫고, 젊은 비서에게 자꾸 눈길이 가도 패티를 저버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패티가 리처드와 불륜을 저지르는 거나 월터가 랄리사를 사랑하는 일은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깨닫는 일이었으므로 필요불가결한 사항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더 일찍 깨달았다면 좋겠지만, 긴 시간을 지나서 겨우 깨닫게 하려면 어쩔 수 없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두 한마음인 건 아니다. 엄마와 아들 혹은 아빠와 딸의 식성이나 습관이 비슷해 성격이 더 맞는 경우가 있다. 우리 집도 그런 편인데 월터와 패티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부부건만, 월터는 조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데면데면하고 패티는 조이의 모든 것이 좋다.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결혼한다. 결혼제도가 백 퍼센트 좋다고 할 수 없는 게 여러 상황 때문에 불화를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을 욕망하다가는 자칫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 있다. 한 남자의 진정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 사람을 잃었을 때 알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때로는 너무 늦다.

 


부모로부터, 배우자로부터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은 시간이 지난 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지켜봐 주는 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주는 존재였다는 거를 알게 된다. 곁에 있는 사람을 지켜보라.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비록 애정 가득한 눈빛은 아니라더라도 그 감정을 교묘하게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니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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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하우스
메이브 빈치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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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역시 정원의 나무처럼 가꾸어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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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2 불편한 편의점 2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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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후문 쪽은 주택가다. 늦은 시간이면 어두컴컴해 후문으로 다니지 않는다. 후문에 있었던 슈퍼마켓이 문을 닫고 편의점이 들어섰다. 아이들은 편의점이 들어선 걸 꽤 반겼다. 밤늦은 시간에도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을 들었다. 얼마 뒤 주택가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편의점이 생겨 좋다는 말을 들었다. 딸들이 밤늦게 들어와도 골목길에 불이 밝혀져 있으니 무섭지 않다는 거였다. 밤을 밝히는 편의점이 있어 집에 돌아오는 길이 무섭지 않다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서울역 노숙자 독고 씨가 나오는 불편한 편의점의 감동은 2편까지 나오게 했다. 기억을 잃었던 독고 씨가 자신을 찾게 되며 길을 떠나고 새로운 알바생이 들어오며 ALWAYS 편의점은 변화를 맞이한다. 염영숙 여사 또한 잠시 편의점을 떠나있다. 독고 씨의 자리를 채우던 곽 선생도 지방으로 떠나고 그의 후임으로 새로운 인물이 밤의 편의점을 지킨다. 곰처럼 커다란 덩치에 독고 씨를 연상하게 했다. 말이 없던 독고 씨와는 다르게 재잘재잘 말이 좋은 마흔 즈음의 남자였다.

 




처음 그를 불편하게 여겼던 사람들도 그를 좋아하게 된다. , 말 많은 거만 빼면 더할 나위 없다. 밤의 편의점을 지키는 그는 어떤 인물일까. 염영숙 사장의 아들과 호형호제하며 그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모습이 범상치 않다. ALWAYS 편의점과는 어떤 인연이 있길래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질까.

 


편의점과 알바생의 현실을 그대로 담은 거 같다. 물론 편의점에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은 덜 할 거라고 예상하지만 말이다. 이와 다르게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소설처럼 사연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관심을 갖고 건네는 한 마디에 위로받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귀찮아하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피해버리겠지만 말이다.




 


학연, 지연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타지에서 외롭게 사는 사람들은 누군가 건네는 따듯한 말 한마디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민식과 황근배 씨가 같은 지방 캠퍼스를 나왔다고 호형호제하는 장면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근배 씨, 아니 홍금보 씨가 풍기는 긍정적인 에너지에 많은 사람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부분 때문이었다. 독고 씨가 밤과 새벽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켰던 것처럼, 한 사람이 내뿜는 에너지의 파급력이 큰 거 같다.

 


변화. 누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닌 스스로의 변화 말이다.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변화를 요구받는 게 싫은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바뀔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기다려주며 넌지시 도와야 했다. (281페이지)




 


근배 씨의 정체와 편의점을 거쳐 간 사람과의 인연이 드러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연극이 진행될 때 독고 씨의 등장도 반가웠다. 왠지 다음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근배 씨의 뒤를 이어 밤의 편의점을 지킬 인물의 변화가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든다. 사람이란 무릇 이처럼 변화되어야 한다. 현재의 모습이 다가 아니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주변에 나를 지키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는다. 스치듯 지나치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을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처럼 중요한 것도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편의점을 거친다. 필요한 물건을 시간의 구애 없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 다만 찾는 물건이 없을 수도 있다.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주변의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우리는 또 웃고 감동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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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유나이티드 - 음악도 인생도 뿌리에 물을 주어야 꽃이 핍니다 클래식 유나이티드 1
정경 지음 / 똑똑한형제들(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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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위로가 크다. 퇴근길 습관적으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다. 적막한 밤 혹은 한적한 주말 오전, 책을 읽을 때 라디오를 듣거나 플레이리스트에서 원하는 음악을 찾아 듣는다. 그 음악이 팝일 때도 있고 때로는 클래식일 때도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있기 전에는 자주는 아니지만, 공연을 챙겨보곤 했다. 많은 것이 변화한 요즘, 음악이 주는 즐거움에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한다. 첼로나 비올라, 바이올린 등 현악기를 좋아하는 나는 자주 음악에 매료된다.

 


EBS에서 클래식 방송 진행자로, 워너뮤직의 아티스트, 경희대학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정 경 교수가 만난 예술가들의 음악 이야기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한 도서이다. 예술가가 가지고 있는 음악성과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활약하는 데 큰 의미를 둔 거 같다.




 


지휘자 윤의중,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 첼리스트 양성원, 피아니스트 박종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수상 경력과 학생들을 지도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음악에 대한 깊은 철학을 만날 수 있었다. 음악이 주는 매력이 듣는 사람만이 아닌 연주를 하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도 커다란 울림을 주는 것이란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예술가 집안에서 자란 그들은 자연스럽게 음악과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부적인 재능이 그들을 이끈 것도 있겠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음악은 저에게 숨 쉬는 공기와 같습니다. 음악이 없는 삶이 저에게 주어진다면 그 삶과 인생은 무의미할 것 같습니다. 한 번밖에 없는 제 인생을 지금 음악과 함께 한다는 것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26페이지, 지휘자 윤의중 편)


 

음악을 대하는 생각과 자세가 아름다운 부분이었다. 지휘자 윤의중은 중, 고등학교에서 음악이 줄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교육이라 일컬었다. 각 분야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프로필과 학력, 수상 등을 서술했고, 음악가에게 차지하는 각자의 분야와 연주, 연주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없는지 묻는다. 특별히 기억되고 싶은 것이나 예술가의 꿈을 묻는데 그들만의 음악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피아니스트 박종화는 달리는 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피아노를 실을 수 있는 트레일러를 제작, 피아노를 싣고 다니면서 공연했다. 클래식을 접하지 못하거나 잘 듣지 못하는 분들을 찾았다. 제주도의 해녀를 만나서 물의 주제가 되는 피아노 음악을 들려 드렸다. 피아니스트 박종화의 말을 들어보자.

 


저는 온갖 소리에 자극을 받습니다. 세상의 모든 리듬은 제 심장을 뛰게 합니다. 복잡한 대위법과 하모니가 저를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키기도 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제 영혼을 움직이죠. 그리고 매일의 일상적인 소음에서 전 음악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곳은 정말 아름다운 장소이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는 모든 곳에서 음악을 찾을 수 있습니다. (75페이지, 피아니스트 박종화 편)


 

대중은 가까이에서 접하는 음악에 감동한다. 이것 자체가 클래식의 대중화에 대한 노력일 것이다. 사람과 멀어지는 음악은 대중에게 사랑받지 못한다. 피아니스트 박종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BTS의 예를 들며 현실성 있는 비전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포부가 인상적이었다.





 

음악의 영감같은 것을 별로 믿지 않아요. 다만 사는 것 자체가 영감의 원천인 것이죠. 거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길거리를 다니면서 늘 보고 듣고 찍고 기록하고 녹음해요. 제가 어릴 적부터 기록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어요. 일기도 오래전부터 써 왔고, 책을 많이 봅니다. (115페이지, 작곡가 최우정 편)

 


나는 작곡가 최우정의 음악론이 좋았다. 정통 클래식보다 극음악을 만들고 있는데, 전통음악이나 서양가곡, 대중음악, 뮤지컬 등을 섞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노력이 미래지향적인 것 같았다.

 


언젠가 여수에 갔을 때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오르간 소리에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거대하고도 울림이 있는 파이프오르간은 종교를 믿지 않아도 우리를 경건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음악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클래식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클래식의 다양화를 위해 노력하는 예술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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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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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 외로운 상황에 있다면 불안한 존재를 집안으로 들일 수 있을까. 그렇다 혹은 아니다로 갈릴 법한데 나의 답은 들일 수 있다는 거다. 혼자라는 외로움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생의 마지막 순간, 혼자 외롭게 죽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죽었을 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하는 걸 고독사라 부른다. 그거야말로 가장 두려운 것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오던 옥주는 쓰레기를 뒤지는 아이를 발견했다. 석류처럼 붉은 눈을 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그는 소금 그릇을 챙겨 밖을 내다보았다. 썩은 쓰레기를 먹던 아이의 모습을 한 존재는 쓰레기통 옆에서 졸고 있었다. 안쓰러워 집안에 들여 석류를 권했으나 아이는 옥주의 팔을 물었다. 인간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아이를 집안으로 들인 것이다. 혼자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그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이 죽었으면 했다.




 

조예은의 소설은 스노볼 드라이브를 읽고 이번 작품이 두 번째인데 꽤 매력적인 작가다. 우리의 미래는 현실의 확장으로 디스토피아적이고 상상하지 못하는 존재들과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며 인육을 먹어야만 하는 존재나 꿈을 꾸는 사람이 상상하는 무서운 거로 보이는 악몽의 존재나 서로 다른 세계를 잇는 틈이 벌어져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것은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보았던 내용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세계가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느낌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우리는 밖의 세상을 향한 목마름이 있다. 그 목마름을 채워주는 역할이 하는 게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상상하지 못하는 세계에 도달해 마음껏 즐기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는 것 같다.

 


파란 수염을 변주한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고양이가 사라진 도시에 새롭게 발견한 고양이의 존재를 알게 한 유니버셜 캣숍의 비밀등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를 상상하게 한다. 상상의 세계만 다루는 게 아니다.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는 마치 우리의 거울 속을 보는 듯 불편하다.


 

새해엔 쿠스쿠스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에 틀어박힌 한 여성의 이야기다. 사촌 언니와 비교당했던 유리, 학교에서 전공과는 무관한 과목을 가르쳤던 유리는 학생부장의 괴롭힘으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집 앞으로 엄마가 찾아오는 날이 이어지고, 유리는 알 수 없는 번호로 온 문자를 받는다. 모로코, 사막과 쿠스쿠스라는 단어를 보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부모들이 종종 저지르는 실수 중의 하나가 타인과 비교하는 거다. 친구는 당연하고 형제나 친척들까지 끼는 경우가 있다. 비교당하는 자의 기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복수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부모에게 복수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유리나 연우의 입장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스치듯 말한 부분에서 힌트를 얻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훌쩍 떠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누군가의 강력한 권유는 이처럼 변화가 필요할 때 더할 나위 없는 방법이 된다.

 




인간의 호흡기에 침투하는 바이러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극성을 부릴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요소 중 하나가 공기다. 우리의 미래는 먼지와의 전쟁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들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에서 눈에 띄는 한 가지가 바로 미세먼지로 가득한 지구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옇게 가라앉은 지구. 마음껏 숨을 쉴 수 없어 보호구를 착용하고 다녀야 하는 지구를 그려보니 우울하다. 가장 작은 신의 수안은 취업 면접에서 떨어진 날, 급성 먼지바람이 불자 벤치 밑으로 들어가 방독 마스크를 사수하고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 요양을 위해 자발적으로 집에 틀어박혔다. 생수 배달이 오는 날,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미주가 찾아오며 기묘한 만남이 시작된다. 다단계의 영구회원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미주와 그런 미주의 사정을 알면서도 집에 찾아오는 게 싫지 않아 미주의 회사에서 파는 저품질의 제품을 사주고 있었다. 수안에게 영구회원 동의서를 내밀지 못했던 미주는 실적이 좋지 않은 직원들이 가는 야유회에 가야 한다. 미심쩍은 수안은 미주를 구하기 위해서는 집 밖으로 나가야 했다. 용기를 내어 집 밖으로 나섰던 수안의 모습은 투사와도 같다.

 


그러므로, 인간은 타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이 잠들 때 가장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악몽이 곰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벌어진 틈 사이로 빠져나와 기억을 잃은 릴리가 마지막까지 쥐었던 손에서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 서로 싫어했던 사촌 자매가 같은 것을 바라보고 그에 대한 꿈을 꾸는 것까지. 마음 한쪽이 차올랐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직 살 만하다고. 우리 곁에 누군가가 있어 외롭지 않다고 말하는 소설이었다. 비록 다른 존재에게 먹힐지라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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