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아메리카나 1~2 - 전2권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읽고 여성으로서 아프리카에서 산다는 것. 여성과 남성의 역할, 가족에 대한 것, 자기 삶은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작가의 다른 소설 『아메리카나』를 함께 읽으며 아프리카 문학에 대한 정수를 만난 것 같았다. 한 권의 소설은 그 다음 작품을 읽게 하고 우리가 책을 읽는 행위가 얼마나 세계를 아는 일인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디치에 소설이 그렇다. 매우 다르면서도 매우 비슷한 감성, 우리와 동떨어진 나라의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있어 왔던,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일깨웠다.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아버지의 그늘 안에 갇혀 주체적인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자자와 캄빌리의 성장을 담은 소설이라면 이 작품은 그들이 아버지의 공간에서 나와 머나먼 미국으로 향하며 그곳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담은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혹은 캄빌리의 이페오마 고모의 딸이 느끼는 것이라고 해도 옳다. 나이지리아라는 나라에서 희망에 찬 미국으로 향해 그들이 느끼는 인종 간의 갈등과 다양한 경험을 말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부터 사귀었던 오빈제와 이페멜루는 대학을 다니며 서로 헤어져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미국을 꿈꾸었던 오빈제는 대학 졸업후 직업을 가지려 여기저기 지원했지만 구하지 못했고, 영국에서도 추방당했다. 이페멜루는 일할 수 있는 신분증이 없어 현금을 받는 보모 일을 하며 학교를 다니고 인종간의 갈등을 담은 블로그를 운영하며 프린스턴에서 연구비를 받아 그걸로 큰 수입을 얻게 되었다. 부자인 백인 남자를 사귀며 느꼈던 감정, 안정된 직장을 가진 예일대학교 교수를 만나며 느꼈던 감정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나타냈다.

 

미국에서 흑인으로서 산다는 것들의 모든 감정들을 담았다. 우리가 매체에서 주로 느꼈던 인종간의 갈등. 백인들 사회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의 애환을 담았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곳이 미국이다. 그만큼 다양한 인종 간의 갈등이 있는 곳이다.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동양인들은 원숭이라는 말을 듣는 곳. 흑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백인들 스스로 조심한다며 말하는 언어를 사용하며 스스로 인종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 또한 이중적인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 같았다. 

 

 

이페멜루가 운영하는 인종 블로그에서 그녀는 비미국인 흑인으로서 느끼는 것들을 말한다. '인종 단상 혹은 미국인 흑인들에 대한 비미국인 흑인의 여러가지 생각' 이란 코너에서다. 아마 이 소설이 쓰여진 시기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선거를 바라보며 말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던 인종 간의 갈등보다 훨씬 심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오빈제와 이페멜루의 시점에서 교차되어 각자의 사정을 이야기하지만, 이페멜루의 이야기가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현재 나이지리아에서 큰 부자가 된 오빈제의 현재와 과거, 이페멜루의 미국에서 거주했던 십삼 년 동안 느꼈던 모든 것들을 말한다. 타인의 신분증으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집세가 밀려 쫓겨날 처지에 놓이게 되자 매춘 비슷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처참한 경험. 그 이유로 나이지리아에 있는 연인 오빈제의 연락을 지웠던 기억들조차 이페멜루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당신은 인종이 문제가 안 됐다고 말하는 유일한 이유는 당신이 그랬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우리 모두 바라죠.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에요. 저는 인종이 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에서 왔어요. 한번도 스스로 흑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미국에 와서 흑인이 됐죠. 흑인이 미국에 살면서 백인과 사랑에 빠지면 단둘이 있을 때는 인종이 문제 되지 않아요. 나와 연인, 둘 뿐이니까. 하지만 밖에 나가는 순간, 인종은 문제가 돼요. (2권, 109페이지)

 

 

 

미국에서는 자신의 인종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결정해 준다. (2권, 187페이지)

 

소설의 첫 시작이 프린스턴에서 흑인 전용 미용실을 찾는 부분이 나오는데, 흑인의 머리 땋는 법에 대한 게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왜 그렇게 흑인 여성의 머리 땋는 법이 중요한 것인가. 궁금했다. 한참을 읽다 생각한 것이 흑인들의 심하게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때문이란 걸 알았다. 흑인의 머리 땋는 법을 검색하고 그들이 자주하는 머리스타일에도 이름이 있음을 알았다. 면접을 보러가기 위해 머리를 펴는 행동이 두피를 힘들게 한다는 것. 머리를 한번 땋으면 몇 개월을 보낸다고 하던데 그러면 머리는 어떻게 감는 것일까. 가렵지 않을까. 별별 생각을 다 했다. 우리가 그처럼 생각하는 만큼 흑인들은 자신의 머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무척 고민한다는 점이다.

 

미셸 오바마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참 멋지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모습 또한 많은 고통을 감내하고 했을 거라는 것. 가발을 이용해 머리를 땋는 일과 짧은 파마 머리처럼 한 아프로 스타일 등. 여성으로서 머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영원한 숙제일 것 같았다. 이는 예쁘게 보이고 싶은 모든 여성들의 마음인 거다. 그들이 했을 고민들이 비로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머리를 땋으며 지난 십몇 년을 뒤돌아보며 나이지리아로 돌아가게 된 이페멜루.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미국 시민권자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녀에게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름다운 아내와 딸이 있는 오빈제를 만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자신이 검은 피부를 가진 흑인이라는 생각없이 살  수 있는 곳에서 언제까지 지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고보면 인종을 생각하지 않는 자신의 나라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누군가 나에게 피부 색깔이 다르다며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곳에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흑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충을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물다섯, 서른, 세계여행 - 현실 자매 리얼 여행기
한다솜 지음 / 비채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을 앞두고 있다. 늦은 여름 휴가다. 평소 패키지로만 다니다가 작년 동생네 가족과 함께 대가족이 모여 홍콩 여행을 했었다. 겨우 34일간의 여행이지만 무척 좋아 이제부터는 자유여행으로만 다니겠다고 다짐했다.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유럽의 어딘가로 가고 싶지만 여의치 않아 올해는 태국의 치앙마이로 결정했다. 비행기 표 가격을 보다가 가장 저렴할 때 예약을 했고 현재 좌석 선택까지 마친 상태다. 가족이 함께 머물 호텔을 예약했고, 단체 톡에 어디를 가고 싶은지 갈 곳을 몇 개씩 꼽았다. 일단 가족들이 가고 싶은 곳을 정한 상태에서 근처의 카페도 다녀오자고 말을 마친 상태다.

 

누군가 그랬다. 여행은 여행지에서보다 오히려 준비하는 시간이 더 설렌다고 말이다. 장소를 정하고 비행기를 예약하고 났더니 두근거린다. 얼른 떠나고 싶어서. 비행기 예약을 한 시점부터 한 달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견디나 싶을 만큼 간절하게 떠나고 싶다.

 

 

그래서일까. 우연히 메모장에서 버킷리스트를 발견했다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하게 된 서른 살 한다솜이 그의 여동생과 함께한 여행기는 꿈꾸었던 유럽 여행에 대한 간절함을 더 했다. 여행이 시작되기 전 준비단계에서부터 자세하게 적혀져 있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척 유익한 정보였다.

 

 

서류 체크리스트와 여행지 그리고 교통비 등을 상세하게 적었다. 물품 체크리스트를 적고 날씨에 따라 두꺼운 옷을 피해야 하는 이유로 언제 떠나야 저렴한지, 어느 나라를 갈 것인지를 정해 그 코스대로 움직였다.

 

 

 

여행은 모든 것에서 한발 물러나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꼭 필요한 시간이다.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데 필요하듯 나를 알아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나 자신을 집중해 바라본 끝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약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6페이지

 

떠나는 일 그 자체보다도 떠나기도 한 결정이 나를 제일 먼저 변하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원래 떠날 정해놓으면 준비하고 기다리는 이 시간이 너무 좋지 않은가. (21페이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나 보다 더 깊은 내면의 나를 마주하기 위해서 떠난다. 가족과 함께 여행할 경우에는 다른데, 평소에는 함께 식사할 시간도 부족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짧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함께 여행을 가다보면 우리 가족 외에는 혹은 함께 여행한 사람들 외에는 온통 낯선 사람들뿐이다. 함께 음식을 먹고 어딘가를 다니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다. 그렇다보면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게 된다. 현재 그리고 미래의 꿈을. 때론 다독거리면서 때로는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면서 의견을 묻는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하므로 감정이 상할 때도 있지만 여행이란 건 함께 하는 사람과 서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법이다.

 

 

'내가 행복해하고 좋아하는 시간을 많기 갖기가 나의 여정을 가장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125페이지)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들과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 여행의 힘든 일정을 견디며 나는 생각보다 멘탈이 강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난 이런 상황은 견디지 못할 거야하고 나 자신을 낮게 평가했다. 어쩌면 그것은 그 상황을 회피하기에 급급하고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세계여행을 통해 진정한 나의 모습을 알고 나서부터는 나 자신에 대한 평가가 높아졌다. (417페이지)

 

 

 

작년 홍콩 여행을 하며 느낀 거지만 여행이란 건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다. 마카오에 위치한 호텔들이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어 입구와 출구가 카지노를 통해 들어가고 나와야 하는 구조다. 우리 가족 중에서 만21세 미만이 둘이나 있었다. 카지노 입장 제한 나이 때문에 카지노를 통해 나가지 못하고 출구를 찾는데 애먹었다. 호텔에 온 사람들을 카지노를 거쳐 나가도록 카지노 외 출구를 교묘하게 숨긴 탓이다. 홍콩으로 가는 페리를 겨우 탔던 경험으로 여행에는 역시 예상 밖의 일이 생긴다는 걸 안다.

 

 

 

한 자매의 여행 사진을 보면서 느낀건데, 여행 시작 부분에서는 얼굴이 살짝 달라 보였었다. 7개월 정도 함께 여행을 해서인가. 여행 막바지의 사진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는 사실이다. 마치 쌍둥이처럼. 자매의 사진을 보면서 누가 언니였던가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단발머리에서 어깨를 닿을 정도로 머리가 길게 된 동생 한새미나와 언니 한다솜이 미소까지도 닮아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고 듣고 먹고 마셨기 때문이 아닐까. 

 

215일 동안 24개의 나라, 54개의 도시를 여행한 한 자매의 여행기를 읽으며 몹시 부러웠다. 꿈꾸고 있지만 (과연 현실의 일이 되려는지 알 수 없지만) 꿈을 꾼다는 것만으로 행복하지 않겠나. 힘들고 지치겠지만 가고 싶었던 나라의 장소를 섭렵한다는 것만으로도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겠다 싶다. 다솜, 새미나 자매가 용기를 내고 도전을 했듯 나에게도 용기라는 것을 주고 싶다. ', 떠날 수 있어!' 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춘기 소녀에게 반에서 1등을 하지 못했다고 아버지가 욕실로 데리고 가 발에다 뜨거운 물을 부었다. 소녀는 울면서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다음에는 꼭 1등을 하겠다고 한다. 아버지는 저명한 진보주의 성향의 신문사의 발행인이기도 하고 식음료 업계의 거부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기부를 마다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족에게는 어떻게 하나. 가정 폭력으로 어머니는 임신한 아이를 유산했고, 아이들에게는 공부할 시간표를 정해 그 뜻대로 따라야 한다. 캄빌리라는 이름의 소녀가 열여섯 살, 그의 오빠 자자는 서너 살 위가 아닐까 싶다. 정확히 어떤 시대를 나타내는지 알 수 없지만 이 가족이 사는 법을 보면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더욱이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자신의 아버지 즉 캄빌리의 할아버지가 토속 신앙을 믿는다 하여 집에 가지 않을 뿐더러 아이들에게도 방문은 하되 마실 것도 먹을 것도 입에 대지 말라고 하며 15분내로 돌아오라고 한다. 우상 숭배자라 하여 멸시하는 것이다. 마음 속에 수많은 말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제대로 입밖에 내지 못하는 캄빌리의 일상이 전해진다. 소설은 아버지의 명령으로 영성체를 하지 않겠다던 오빠의 반항으로 시작된다. 무조건 아빠의 명령에 따라야 했던 오빠가 어떻게 자주적이며 주체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던가. 스스로 아버지에 맞서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에게서 아이들을 꺼내려는 주체적인 여성 이페오마 고모의 노력이 있었다. 대학교 교수인 고모는 자자와 캄빌리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물도 잘 나오지 않고 전기도 끊겨 먹을 것도 부족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세 명의 사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아버지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된다. 마음속으로 많은 말들을 생각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면 이제는 입밖으로 내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최소한의 단어만 사용하면서도 서로의 말을 이해했다. 두 사람을 보면서 내가 절대 가질 수 없을 뭔가를 향한 갈망을 느꼈다. 일어나서 나가고 싶었지만 내 다리가 내 것이 아닌 양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세워서 부엌으로 갔다. (205페이지)

 

아프리카의 삶을 잘 알지 못했다. 아직도 TV에서 비춰지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삶을 생각했던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로서 나이지리아의 삶을 제대로 보여 준 아디치에의 작품을 읽으며 그동안 얼마나 편견에 갇혀 있었나 제대로 깨달았다. 캄빌리의 아버지를 보면 우상 숭배를 하는 가난한 자신의 아버지를 멸시하고 나이지리아의 사람들 앞에서는 일부러 영국식 악센트로 말했다. 이는 그가 영국적인 것을 더 나타내고 싶었고 흑인이라는 것을 감추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집 밖에서는 저명한 인사였음에도 가족들한테는 어떻게 했나. 아내까지 억압했고 아이들에게는 체벌을 가했다. 우상 숭배를 한다 하여 파파은누쿠를 만나지도 않았다. 아버지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던 오빠 자자와 캄빌리는 고모의 집에서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잘못되었음을,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과 하고 싶지 않은 말이 너무 많았다. 독수리 두 마리가 머리 위를 맴돌다 땅에 내려 앉았다. 내가 잽싸게 덤비면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깃털 없는 목이 이른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285페이지)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 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274페이지)

 

왜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죽여야만 했을까? 왜 직접 우리를 구원하지 않았을까? (346페이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주체적인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거다. 고모가 주었던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살아 남았듯 자신들 또한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이페오마 고모의 모습에서 여성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이 비춰졌다. 마음대로 음악을 듣고 종교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모습을 보고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페오마 고모의 모습에서 저자가 추구하는 페미니스트를 살펴볼 수 있다. 고모를 지켜보며 캄빌리의 어머니 또한 자극을 받지 않았나.

 

이 책을 읽기 전 어느 소설에서도 페미니스트를 언급하며 아디치에의 이름을 말했는데 그것 만큼 반가운 감정도 없었다. 이 책을 읽어보시라!  놀랍도록 아름답고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다.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08-08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뷔작으로 이런 책을 썼다는 게
믿을 수가 없더군요.

반면 <아메리카나>는 데뷔작의 신선함
이 쇠락한 느낌이랄까요.

Breeze 2019-08-09 11:46   좋아요 0 | URL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니 놀랍더라고요.
<아메리카나>도 읽고 싶은 책이에요.
감사합니다. 레삭매냐님^^
 
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하상욱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카오 프렌즈 시리즈를 읽기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왔으나 잘 알지 못했던 캐릭터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어피치, 라이언을 읽었고 이번에는 튜브다. 사실 튜브란 이름도 몰랐고 오리 주둥이 같이 생겼다라고만 생각했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튜브의 특성을 볼까. 작은 발을 부끄러워하는 소심한 성격이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입에서 불을 뿜으며 밥상을 뒤엎는 미친 오리로 변신한다고 한다. 화가 나 있는 튜브가 초록색인 이유다. 스스로 시팔이라 부르는 하상욱과 카카오 프렌즈 튜브가 만났다. 하상욱 특유의 센스를 만날 수 있다. 그의 시를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시를 읽다가 생각지 못한 것에 파안대소를 터트릴 준비를 해야 한다.

 

 

 

 

싫은 사람과 잘 지내는 법은

서로 안 보고 사는 것뿐이다. (12페이지)

 

 

라고 한 부분을 보라. 사실 싫은 사람과 잘 지내기란 힘들다. 얼굴을 마주해도 껄끄럽고 가장 좋은 건 안 보고 사는 것뿐이다. 살아가면서 그런 사람을 만들지 말자고 생각 했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불편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잘못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상욱의 글은 이처럼 허를 찌른다. 입 밖으로 내보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것을 확 내지른다고 해야할까.

 

 

누군가의 비밀을 지키는 이유는

비밀을 지키고 싶어서가 아니지.

 

 

그 사람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지. (38페이지)

 

 

누군가의 비밀을 알았다고 치자. 어느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그래도 절대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 사람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 또한 친구를 보호하고 싶어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들이 있다. 때로는 그 친구를, 때로는 연관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상욱은 우리가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아주 짧은 시로 표현한다. 그래서 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학생 : 공부가 하기 싫지만 학교 친구는 좋다.

직장인 : 일은 하고 싶지만 회사 사람이 싫다. (82페이지)

 

위의 사진 속 글과 위의 문장을 읽고는 나도 몰래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하고. 다시 읽어도 미소가 지어지는 문장들이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퇴사하는 생각을 하고,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것. 모든 직장인들의 비애가 아닐까 싶다.  

 

 

나 보다 어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의 어제를 사는 게 아니더라.

 

같은 오늘을

그저 다른 나이로 살아갈 뿐. (182페이지)

 

나 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과 마주했을 때 그 사람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 볼 일이다. 나 보다 늦게 태어나기는 했지만 나 보다 월등한 생각을 가진 게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랄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군가의 말씀처럼 어린이에게서 배우는 게 많지 않는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느라 그 사람의 진실됨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 또한 아이에게서 배운다.

 

 

당신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당신이 모든 사람을

실망시킬 수도 없다. (240페이지) 

 

세상에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50%라면 반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50%이게 된다. 100%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싫어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고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나에게 실망하고 서운한 감정을 품는다. 반면 나를 좋아하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상욱의 위트 있는 문장과 함께 카카오 프렌즈의 오리, 튜브의 갖가지 캐릭터를 보며 즐거웠다. 화 났을 때 초록색으로 변신하는 모습마져 귀여웠다.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캐릭터, 튜브와 함께 하는 즐거운 여름 한나절 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판자 칸막이로 된 작은 공간에 누워있는 소녀들. 공간 문 밖에서 줄 서 있는 일본 군인들. 하루에 수십 명을 받아내야 했던 열세 살 혹은 열네 살, 열다섯 살의 소녀들. 지옥이 따로 없는 그 공간들. 냇가에서 삿쿠(콘돔)을 빨래하는 소녀들의 얼굴이 그나마 평화로워 보였었다. 영화 「귀향」의 한 장면이다. 김숨 작가는 영화  「귀향」 과 닮은 소설을 펴냈다. 살아돌아온 위안부가 마지막 한 명 남았다는 가정하에 썼던 『한 명』에 이어 『흐르는 편지』는 위안부들이 속해있는 위안소의 그 지옥으로 향한다.

 

비단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동네 아저씨에 의해 트럭에 올라탔던 소녀. 바늘 공장, 고무 공장에 가서 돈을 벌겠다는 말에 혹해 하나라도 입을 덜어주겠다는 마음으로 나섰던 소녀들은 위안소라는 지옥으로 흘러들었다. 머나먼 중국 땅인 만주에서 일본 군인들을 받았다. 제대로 먹을 것도 주지 않고 위안소에서 지급하는 모든 것은 그들의 빚이 되었다. 하루에 수십 명의 군인들을 받아냈던 어린 소녀들은 아래가 곪고 헐었다. 삿쿠가 터져 임신이라도 되면 자궁을 들어내었다. 그 어린 소녀들에게 일본은 어떠한 만행을 저질렀는가. 겨우 열세 살, 열네 살에서 열여덟 살의 소녀들에게.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위안소에 있던 소녀들의 사연이 잔혹했다. 입에 풀 칠하기도 어려웠던 가족들, 가난을 피해 나온 길이 지옥인줄도 몰랐다. 소녀들은 말한다. 무슨 죄를 지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하고.

 

 

열다섯 살의 소녀 금자, 일본군인들이 붙여준 이름은 후유코. 그 외에도 열 개쯤 되는 일본 이름이 있는 소녀. 임신을 했다. 아기가 죽어버리길 바라며 흐르는 물에 손가락으로 편지를 쓴다. 글을 알지 못해 어머니에게 불러주는 편지다. 닿지 못할 편지를 쓰며 소녀는 아기가 뱃속에서 죽길 바란다.

 

소녀들을 지옥에 있게 한 일본 군인들이 전쟁에서 졌으면 좋겠지만 한 편으로 이기길 바란다. 만약 일본군이 지면 소녀들의 목숨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지옥의 한 복판에서도 삶을 꿈꾼다.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일본군이 이겨 돌아오길 바라고, 살아 돌아 와달라고 빌어주라는 말에 마치 그들의 어머니처럼 살아오라는 말을 건넨다.

 

그들의 몸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위안을 해주어야 하는 소녀들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했다. 중국인들, 어린 소녀들의 죽음. 죽음앞에 눈을 돌리고 살길 바랐다. 살아서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가고 싶었다. 집주소도 모르는 소녀들이지만 집으로 향한 꿈을 매일 꾼다.

 

작가가 『한 명』을 쓸 때는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40명쯤 살아있었다면 이 소설이 쓰여진 2018년에는 겨우 27명이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온전한 기억으로 살아 남은 사람들이 몇 명 남지 않았다.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 일본은 과거 일제 강점기에 징용에 관련된 일로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헤쳐나가지 않을까 희망에 찬 마음을 품고 있다. 다른 방법을 찾아낼거라고. 고통스러운 지옥에서도 소녀들이 살아남았듯.

 

어머니, 그런데 나는 무슨 죄를 지은 걸까요.

무슨 죄를 지어서 이 먼 데까지 끌려와 조선삐가 되었을까요. (291페이지)

 

소녀들의 아우성 때문에 깊은 잠이 들 수 없었다.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계속 들려왔다. 마치 내 귓가에 소리치듯 그렇게. 글을 쓰는 작가 또한 굉장히 고통스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금자가 되어 내레이션을 하듯 말하며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 치달은 그 지옥 속에 살았을 것이므로. 살아서 다행이다. 이렇게 우리가 그때의 상황을 알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살아남았기에 가능한 일이잖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