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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 우리가 사랑이라 말하는 모든 것들 ㅣ 날마다 인문학 4
정지우 지음 / 포르체 / 2023년 2월
평점 :
사랑이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 사랑에 아파하고 웃고 했던 때. 지금의 나는 사랑에 대하여 특별히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영화나 소설에서만 사랑을 접하는 것 같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사랑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여전히 소설 속 사랑에 목말라하고 영화의 사랑에 마음 졸인다.
사랑을 정의 내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관계가 다른 법이다. 저자는 사랑을 글로 배우고 머리로 알기 위한 여정이라고 표현했다. 사랑을 글로 배운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랑도 글로 배울 수 있는 거였다. 수많은 책에서 사랑을 말한다. 사랑을 알지 못했던 때부터 우리는 사랑을 글로 배우고 있었다. 훗날 어떤 사랑을 할 거라고 상상하면서 말이다.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기다리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범주를 부수고 나오기도 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가? 그럼 그건 사랑이다. 사랑하는 이의 전화를 기다리고 만남을 기다리는 일. 나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의 마음을 자꾸 확인하고자 하는 그것. 저자는 사랑의 기다림을 내 안의 ‘상상’에 대한 욕망과 가깝다고 표현했다.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수많은 상상. 사랑은 관계를 부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자기 안의 편견과 싸우게 되면서 범주가 무너지는 순간, 범주 바깥에서 침투해 들어오는 것, 사랑이다.
사랑의 면모 중 참으로 멋진 측면을 하나 꼽자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며 인생에 한 번쯤은 자기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바꾸거나 수정하고 재창조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이다. (69페이지)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의 집에 온 데이지가 화려한 셔츠를 만지며 기뻐하는 장면이 있었다. 데이지가 바란 건 돈이었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데이지의 눈길에 닿는 자기 재산을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가치의 재산정하는 느낌. 사랑은 각자의 가치를 의심하면서 둘만의 가치를 창조해 가는 일이라고 했다.
그들의 삶을 보고 나서 ‘우리의 삶은 그에 비해 얼마나 쓸데없을 정도로 복잡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들처럼 삶의 ‘핵심’만을 살아낼 수는 없는 걸까? 왜 그저 사랑하는 채로 머무르고 그에 전적으로 만족하며, 그렇게 평생 동반자의 곁을 지켜주다 생을 마감할 수는 없는 걸까. (101페이지)
이 책의 좋은 점이 영화 속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내용이 훨씬 풍부해졌다. 보았던 영화에 대한 공감과 보지 않았던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인생 영화라고 할 만큼 <내 사랑>을 좋아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 영화가 더 빛났다. 관절염에 절뚝거리는 모드와 무식한 생선 장수 애버렛의 관계는 처음엔 조화롭지 못했지만, 그들의 공간에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결국 우리가 인생을 알아간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완벽함’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나와 세계가 일치했던 완벽한 나날들에서 벗어나는 것, 나이듦이 상실이 아니라 새로운 단계임을 받아들이는 것, 삶에서 찾아오는 결핍의 순간들을 의연하게 인정하는 것이 성숙이다. (219페이지)
사랑을 글로 공부했다고 하면 좀 웃길 것 같았다. 하지만 많은 글에서 우리는 사랑을 배운다.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가 서서히 사랑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내가 하고 싶은 사랑, 만들어가고 싶은 사랑을. 사랑에 관한 상상이 사랑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거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서 인용한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라는 문장은 우리가 왜 사랑에 목말라하는지 알겠다. 사랑이 있어 오늘을 버틸 수 있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삶의 모든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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