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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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간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오늘을 살지만, 곧 흘러가 버릴 세계, 과거의 한순간이 될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모든 게 미래를 위해 산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에 갇혀 무리한 결정을 해야 할 때 그 앞에서 망설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어떠한 계기로 새로운 시간을 설계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가 건네는 한 마디가 삶의 희망을 줄 수도 있는 법이다.

 


표제작 이토록 평범한 미래의 소설가는 대학 시절 지민과 함께 외삼촌이 일하던 출판사를 찾았다. 자살한 지민의 엄마가 쓴 오래전에 절판된 소설을 찾고자 했다. 미래가 현재를 바꾸는 순간, 평범한 현재를 사는 것처럼 우리의 미래 또한 거창하지 않은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알게 한다.




 


언어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그 뜻이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야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이야기의 형식은 언어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 역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렇듯 인간이 정체성은 허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규정하는 것도 언어이므로 허상은 더욱 강화된다. 말로는 골백번을 더 깨달았어도 우리 인생이 이다지도 괴로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19페이지, 이토록 평범한 미래중에서)

 


소설 속 주인공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소설가 혹은 배우, 범죄심리학자. 저마다 과거의 기억을 안고 있는 인물들이다.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의 한순간을 기억하고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두는 인물들이다. 그러고 보면 여덟 편의 소설은 과거의 기록, 시간의 기록인 것 같다. 과거에 사랑했던 연인을 우연히 만나 그 시간을 반추하고, 애써 지우려 했던 인물들조차 어떤 인연으로든 찾아드는 기록인 것이다.


 

남해의 한 섬의 중학교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초청을 받고 섬에 도착한 정현은 대학 때 문학 동아리를 함께 했던 손유미 씨, 즉 은정이를 다시 만난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라는 소설이다. 손유미가 쓴 소설을 보여주는데 조선시대 명문가에서 태어난 정난주의 이야기였다. 관아의 노비가 될 처지였던 난주가 아들을 살리려 바다에 빠지려고 했던 내용이었다. 하나의 삶이 끝나고 두 번째 삶이 시작되었듯 손유미 또한 아이를 잃고 남해의 한 섬에서 두 번째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마치 세컨드 윈드처럼, 거침없이 부는 바람을 향해 나아갔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세상을 거울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신의 내면에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도 어딘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믿음에 가까웠지만, 그는 늘 눈앞에 펼쳐진 세계의 모습을 통해 지금 자신의 내적 상태를 점검하곤 했다. 거리의 풍경을 면밀히 살펴보거나 들리는 소리에 자세히 귀를 기울이는 건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44페이지, 난주의 바다 앞에서중에서)

 


소설 속 배경은 남쪽 바다 그리고 제주의 바다였다. 세월호 침몰이 일어났던 그 배를 타고 제주를 건넜던 자의 깊은 고민, 세찬 바람이 두렵지만 건너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현재. 마치 삶의 한 모습인 것 같다.

 


아버지를 살해했을지도 모르는 유진주의 심리를 담당했던 범죄심리학자에게 메일이 온다. 정황상 치매 아버지를 간병했던 딸이 견디지 못하고 아버지를 살해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던 방송을 보고서 말이다. 자신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진주의 메일이었다. 범죄심리학자라고 해도 살인자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건의 정황, 증거 등을 보고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진주의 결말은 그렇게 타인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그동안 제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면서 그게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이상한 글을 써대는 저를 보고는 이상한 애야, 라고 간단하게 이해해버렸겠지요. (85페이지, 진주의 결말중에서)

 


누군가의 노래 하나가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자살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카페에 들어섰을 때 들리는 노래가 다시 살고자 하는 용기를 주었다. 노래를 부르고 메모를 쓴 가수를 오랫동안 찾았고, 그 사연을 말하는 사람을 통해 감동의 전이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에서 울림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어 좋았다. 소설이 주는 즐거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에 대한 대리만족이랄까. 단편소설임에도 마치 한 편의 긴 이야기로 압축되는 듯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거쳐 미래의 시간을 머무는 우리. 시간은 이토록 혼재하여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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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1-06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3-01-0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eeze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