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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은 처음이라서 - 테마소설 1990 플레이리스트
조우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7월
평점 :
1. 녹색극장
열일곱살 생일, 나는 100송이 장미를 생일선물로 받는다. 함께 들었던 노래들이 들어있는 CD- 그리고 이소라.
신촌연 앞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너를 만났다. 우리는 신촌의 모텔을 자주 찾았다
헤어지고 나서야 서로를 찾는 일이 더 많아졌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했지만, 그냥 아직은 내 몸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걸 겁낸다고 여기며 넘기곤 했다. 그건 몸의 생각이지, 나의 선택은 아니었다고 충동적인 결심과 그로 인한 만남은 때로 내게 허망함을 안겨주었으니 그렇다고 해서 울적해지지는 않았따. 너와 내가 어쨌든 만날 수 있었으니까. 연락만 하면 바로 집 밖으로 나오는 네가 있었고, 문자만 보내도 신촌을 향해 택시를 잡던 내가 있었으니까.
없다가 있는 자리. 있다가 없는 자리.
pp.88~89
헤어지잔 말이 튀어나오고 나라는 존재는 끝내 너란 존재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헤어지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고 끝내 여름을 함께 나버린다. 추운겨울이 되자 다시 너는 헤어지자 말했지. 그리고 끝내 나는 죽어가는 정신으로 자살을 꿈꾸고 있지. 너는 말한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한 죄. 죽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은 죄. 너는 내게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 p.101
2.
마치 피아노치는 것을 듣는 듯 했고, 노래가 들려오는 듯 했다. 선율이 보일 때에 들리는 듯한 음악소리는 90년대의 향수를, 90년대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사랑은 처음이라서』는 90년대 노래를 소재로 해서 일곱명의 작가가 그려낸 소설이다. 노랫가락의 일부가 첫 페이지에 나오고, 마치 그 노래에 맞추듯이 소설이 노랫소리처럼 흘러간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맛이 더해진다. 더해지는 맛에 더해져 소리의 소리가 더해진다.
3. 미래의 미래
이상한 일이었다. 사랑은 미래에 대한 것이라면 그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다 알고 있다고 믿었따. 그러나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니었음이 드러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를테면, 사랑은 미래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도무지 기억을 해낼 수가 없었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풍경, 반쯤 틀어진 채로 놓여 있던 책상의 위치와 책상상판을 정확히 반으로 가르던 햇빛의 구획, 쏟아지는 빛 속을 떠돌던 먼지의 개수 같은 것들은 잊어버리려고 해도 잊히자가 않는데, 그날 그 시간 초침과 분침이 정확하게 벼치던 바로 그 순간에 미래가 한 말만큼은, 고작 며칠 전의 일 같은데도 도저히 기억을 해낼 수가 없었다. - pp.116~117
사랑과 미래의 밀당. 사랑은 미래를 알 수 없고 미래는 사랑을 받아들이긴 너무 이르다. 사랑은 미래를 좇지만 미래는 사랑에게로 갈 수가 없다. 사랑은 그저 미래를 계속 좇기만 할 뿐이다.
어쩌면, 미래는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미래의 미래니까. 그러나.
미래의 미래는 계속될 것이다. - p.143
4.
끝내 이룰 수 없었던 것 같은 마음 따위, 접어두고, 이젠 희망으로 달려가는 소설의 선율을 본다. 재미는 둘째다. 소설의 선율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자꾸만 다시 눈이 가게 한다. 그 하나하나의 문장들이 살아서 노랫가락이 된다. 그런 마음. 그런 사랑. 하나도 잊혀지지 않는 어떤 순간들은 빛나는 보석이 되어, 큰 보상이 주어지곤 한다. 하나씩 익혀지는 마음들. 그 마음들로 『이 사랑은 처음이라서』를 본다면, 기쁨의 눈물이, 마음의 정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 마음의 정화에서 슬픔도 어느덧 가라앉고,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게도 된다는 걸, 체험한 어느 날.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자격으로 다산책방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