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서커스 - 2,000년을 견뎌낸 로마 유산의 증언
나카가와 요시타카 지음, 임해성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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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초까지 거의 1년에 걸쳐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읽었다. 64200여 쪽에 이르는 <로마제국쇠망사>를 읽으면서 흥미로운 전개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던 때가 있는가하면 때론 슬럼프에 빠져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던 날도 있었다. 나 혼자 읽었다면 아마 도중에 밀쳐두고 더 흥미진진하고 구미가 당기는 책으로 손을 뻗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 흐트러지는 마음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강력하고 화려함에 영원한 제국으로 불리었던 나라, 로마가 게르만족 같은 이민족의 침입과 내부로부터의 적으로 인해 결국 분열되고 쇠퇴하여 멸망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안타깝고 착잡했다. 지구의 반대편에 위치한, 오래전에 사라진 나라의 역사이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빵과 서커스>가 출간됐을 때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서점에서 ‘2,000년을 견뎌낸 로마 유산의 증언이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저자가 역사전공이 아니라 기계공학과 토목공학을 전공한 후 토목기술사로 활동했다는 이력을 보니 토목 건축의 관점에서 다시 살피는 로마 이야기라는 표지의 문구가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로마제국의 또 다른 면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제목인 빵과 서커스가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의문은 ‘1. 로마제국이 남긴 유산들에서 풀렸다,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에 깃든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유웨날리스라는 로마의 시인이 번영한 나라의 나태한 시민들을 보고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시민들은 로마가 재정이 되면서 투표권이 사라지자 국정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과거에는 정치와 군사의 모든 영역에서 권위의 원천이었던 시민들이 이제는 오매불망 오직 두 가지만을 기다린다. 빵과 서커스를.’(24.) 배불리 먹이고 오락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게 했다는 대목을 보면서 예전 우리의 ‘3S’가 떠올랐다. 물론 로마와 우리나라가 같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로마시민들이 타락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자마다 로마의 멸망시기를 다르게 주장하고 있지만) 로마제국이 바로 멸망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토목, 건축에 초점을 맞춰서 로마가 제국으로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를 유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고대에는 민족 간에 침입이나 전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 성벽을 높이 두르고 수로를 정비했는데 로마의 성곽이나 상하수도는 어떠했는지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것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본문에 해당 지도와 사진을 수록해놓아서 막연하게 글로만 접하는 것보다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7시민의 교양편도 흥미로웠다. 로마가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드넓은 영토 확장과 함께 다른 나라나 민족의 문화를 받아들이는데에 거부감이 없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뒀으며 국가차원에서 학술 발전을 위해 대도서관을 세우게 했다. 게다가 이름난 공공 욕장에 로마 시민들이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공공 욕장 도서관까지 설치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로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화려한 문화예술품, 웅장한 건축물, 피가 튀는 잔인한 검투장 그리고 쾌락에 빠져 흥청이는 시민들. 그 어떤 것도 하나만으로는 로마를 완전히 어떻다고 말할 수 없다. ‘길은 지나간 뒤에 생긴다고 했다. ‘남겨진유적들을 통해 우리는 지금은 사라진로마를 유추해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로마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보고 싶은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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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미있는 책이라면 - 청소년을 위한 독서 유발 인문학 강독회
박현희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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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결혼 전까지 지냈던 친정집이 이사를 하게 됐다. 도로 건너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는 거라 장롱이나 가전도구처럼 큰 짐은 트럭에 실어 이미 옮겼고 작은 짐만 틈틈이 옮기고 있다. 지난주에 들렀을 때 현관입구에서 반가운 것들을 보게 됐다. 오래된 문학전집 여러 질이 노끈에 묶여 있었다. 없는 살림에 엄마가 언니들 읽으라고 장만해준 책이었지만 줄기차게 읽은 딸은 아마 내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이단 세로쓰기 판형의 책을 열 두어 살의 나이에 겁 없이 덤벼들었다. 그렇게 삼국지를 읽었고 헤밍웨이와 헤세, 제인 오스틴, 톨스토이, 브론테 자매와 같은 이들을 만났고 셜록 홈즈, 엘러리 퀸,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도 섭렵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소설 <빙점>이다. 살인자의 딸을 양녀로 받아들여 키우면서 그 가족에게 벌어지는 갈등과 죄에 대한 고뇌를 어린 내가 이해하기엔 무리였지만 그럼에도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그 소설이 국내에서 드라마화 되고 소설이 소개되고 작가의 이름이 미우라 아야코라는 건 세월이 한참 지난 성인이 되어서였다.

 

입시에 전념해야할 큰아이를 보면 늘 두 가지 마음이 갈등을 빚는다. 아이가 좋은 책을 즐겼으면 하는 마음과 모든 것을 제쳐두고 공부에만 매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내 가슴 속 어딘가에선 종종 ‘부모 vs 학부모'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라면>을 봤을 때 그 전쟁의 승자는 바로 ’부모‘였다. 내 아이가 한 권의 책을 단순히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좀 더 깊이, 더 넓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랬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이 십대 사춘기 시절에 만났을 때와 성인이 되어 만났을 때 다른 느낌, 다른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걸 느꼈으면 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라면>은 자칭 독서클럽 전도사라고 하는 저자가 한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독서 유발 인문학 강독회’를 하고 그것을 정리해놓은 것이다. 우선 본문에 소개된 책은 모두 8권인데 주제와 장르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하다. 또 각각의 책마다 제목 외에 타이틀을 붙인 점이 눈에 띄었다. 이를테면 셜록 홈즈의 [주홍색 연구]에 ‘대체불가 캐릭터의 탄생’이라고 하거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책으로 사랑을 배우다’, 제럴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한 권으로 읽는 13,000년의 역사 여행’이라고 해서 해당 책에 호기심을 유발하고 책을 좀 더 재미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읽을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다.

 

고등학생들과의 강독회를 바탕으로 한 책이어서 본문에는 학생들과 나눈 대화가 곳곳에 수록되어 있다.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큰아이 또래 아이들의 생각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어서 자연히 눈길이 더 오래 머물렀다. 소개해놓은 책에는 개인적으로나 독서모임을 통해 이미 읽은 책도 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 곧 읽을 예정의 책도 있었다. 청소년들을 독서로 유발하기 위한 저자의 강독회에 나도 역시 참여하는 기분으로 읽어 나갔다.

 

겨울방학에 큰아이가 지인의 아이들과 독서토론을 하고 있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었는데 이번엔 헤르만 헤세와 어느스트 헤밍웨이의 작품 몇 편을 읽기로 했다. 그런데 묘한 일이 생겼다. 아이와 내가 같은 날 같은 책으로 독서토론을 하게 됐다. 지정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오전 오후라는 시간과 장소가 다르고 세대가 다르지만 [데미안]은 우리 모자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알을 깨는 큰아이는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만남, 세계라는 알을 깨고 나오는 힘겨운 몸짓, 아브락사스의 날개짓을 아이는 어떻게 이해할까. 두근두근 기대가 된다.

 

이 책은 유혹하기 위한 책입니다. [데미안]을 처음으로 읽었던 그 밤을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책을 읽느라 온밤을 꼬박 밝혔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밤, 저는 [데미안]을 읽었고, 새로운 세계를 만났습니다. [데미안]을 읽었기에, 그 책을 읽기 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5쪽.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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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인문학
진중권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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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합니다.” ‘문과생이라 죄송합니다’란 말이 공공연히 통용될 정도로 인문학 전공자들의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하지요. 하지만 세계적 인터넷 검색업체인 구글에서는 신입사원의 80%를 인문학 전공자로 채웠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IT와 관련한 첨단기술 전공자가 유리할 것 같지만요. 인터넷 사용자의 환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게 중요한데 여기에 인문학이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구글에서는 매년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하는군요. “당신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인문학이 인간에 대한 이해와 근원적인 문제, 더 나아가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인문학으로 치유를 한다고? 그게 과연 가능할까? <치유의 인문학>을 처음 봤을 때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공동저자로 소개된 10명의 인물학자들, 진중권, 서경식, 박노자, 박상훈, 조국, 고혜경, 정희진, 이강서, 황대권, 문요한. 그들의 이름에 끌렸습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졌습니다.

 

먼저 ‘광주 트라우마센터’에 대해 얘기해야겠습니다. 빛고을 광주에는 도시이름에 비해 슬픈 역사가 참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인데요. 1980년 5월을 직접 경험했던 광주시민들을 비롯해서 국가로부터 고문과 폭력을 당한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 바로 ‘광주 트라우마센터’인데요. 이곳에서 정신적인 아픔과 상처를 지닌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매달 진행한 인문학 강의 중에서 일부를 수록해놓은 것이 바로 이 책, <치유의 인문학>입니다.

 

강의자로 나선 이들이 모두 현재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인 지성으로 통하는 인문학자들이어서일까요? 내용이 어렵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고 있더군요. 언젠가부터 ‘힐링’과 ‘멘토링’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소비되다시피 하는데 진중권은 이 현상이 바로 우리 사회가 그만큼 병들어있다는 증후라고 하면서 상처를 무조건 잊고 망각하려 하기보다 그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겨내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구요. 박노자는 폭력이란 ‘인간이 근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위반’하는 것이라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폭력이 얼마나 만연해있는지 지적합니다. 박상훈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로 우리 삶에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정치인이란 어떤 자질을 가져야 하는지, 정치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성장한다고 하지만 과연 대한민국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없습니까? 집이 없어 떠도는 사람들이 없습니까? 노숙자는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노숙자는 줄어들지는 않고 계속적으로 늘어나기만 합니다. 굶어죽은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통계적으로 잘 잡히지는 않지만 많은 독거노인들이 먹지 못해 죽어 갑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보도조차 되지 않습니다. 노인이라 해도 한 사람이 먹지 못해 죽은 사건을 보도조차 안하는 사회가 과연 탈폭력화된 사회일까요? - 80~81쪽.

 

조국은 선거 때면 정치인들은 저마다 ‘경제 민주화’를 외치지만 서민의 삶은 갈수록 궁핍해지는데 비해 재벌은 갖가지 특혜로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그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지고 있다면서 ]내가 낸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혜경은 세월호라는 최악의 사건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는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면서 세월호 이후로 ‘이 땅은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면서 악몽 같은 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조금씩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난 주말, 시내 중심가에서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이전의 경험을 살려 간이깔개와 무릎담요를 미리 준비해갔지만 겨울밤공기는 예상보다 훨씬 차가웠습니다.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줄지어 앉아 함께 구호를 외치고 촛불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폭언을 내뱉는 일부 사람들, 그들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이, 분노가 그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추거나 물러서고 싶진 않았습니다. 우리의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말입니다.

 

나의 작은 의식의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자 또 지름길임을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 길들이 있겠지만 꿈이 그 한 가이드라인이 되어 줄 것입니다. 대파국이라는 본래 의미처럼 이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나는 꿈을 꾸어 봅니다.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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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시간을 걷다 - 한 권으로 떠나는 인문예술여행
최경철 지음 / 웨일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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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인문고전을 읽기 시작한지 2년이 되어 갑니다. 서양고전 추천도서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시작으로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문학, 철학서적을 하나씩 읽고 있는데요.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특히 철학은 읽어도 읽어도 난해하고 모호해서 좌절할 때가 많은데요.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서 간신히 한 걸음씩 떼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 철학이 마무리되면 드디어 ‘로마’시대에 접어들게 되는데요. 그래선지 요즘 부쩍 ‘지중해’라는 지역에 대해, 지중해를 둘러싼 당시 고대국가의 모습과 문화는 어떠했을지 궁금했습니다.

 

<유럽의 시간을 걷다>가 막 출간되었을 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유럽 여행에 관한 책은 지금까지 읽은 책만으로도 기본은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빠른 시일 내에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또 한 권의 여행 안내서를 읽을 필요는 없잖아요. 하지만 찬찬히 훑어보니 단순한 여행안내서가 아니라 유럽의 역사와 문화, 건축에 대해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책은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와 반동들’ ‘새로운 양식들’ 모두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유럽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시대 순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면 여느 여행서적과 차이점은 그다지 없어 보이는데요. 본문에 들어가면 이 책만의 독특한 점을 확연히 느끼게 됩니다. 바로 ‘스토리’에요. 매 꼭지를 시작하기 전에 독자들이 당시의 상황과 모습을 쉽게 이해하기 쉽도록 저자가 소설적 요소를 접목한 겁니다. 이를테면 로마 건축양식인 ‘로마네스크’를 곧바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한 여인이 야만인이 침입했을 때 예배당으로 피신했을 때 품에 안고 있던 아이, 클라우스가 수도원으로 보내져서 성장하고 주교가 되어 석공을 만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로마시대의 건축양식과 조각이 어떤 흐름을 통해 이뤄졌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럽의 시간을 걷다>는 ‘한 권으로 떠나는 인문예술여행’이란 부제처럼 유럽의 역사와 문화, 건축, 예술을 한 권에 담고 있어서 본문이 500쪽이 넘고 두툼합니다. 하지만 각각의 내용이 길지 않은데다 본문 곳곳에 컬러사진이나 그림, 도면, 지도를 곁들여 놓아서 책을 읽는데 있어 지루하지 않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좋았구요. 어느 시대든지 간에 그 시대의 문화는 역사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데요. 이 책을 통해 유럽의 역사와 문화, 예술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했는지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유럽에 대해 알아보는 일은 세계의 반쪽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저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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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아워 - 우리가 언젠가 마주할 삶의 마지막 순간
케이티 로이프 지음, 강주헌 옮김 / 갤리온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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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혹의 선]이란 영화가 생각납니다. 제법 오래된 영화인데요. 죽음 이후, 사후세계에 강한 의혹을 품고 있는 의대생들이 직접 죽음을 경험하기 위해 비밀스런 실험을 감행하기에 이릅니다. 몇 대의 기계와 약으로 뇌와 심장이 멈추면 이내 모니터에 평행선이 이어지면서 비로소 죽음으로의 여행을 시작합니다. 자신들의 경험이 의학계에 혁명을 가져오게 될 거란 기대를 가지고. 제한 시간 약 1분. 어둠 속에서 한 명 한 명...그들은 차례로 죽음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데요. 현실로 돌아온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성취감이나 명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각자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과거의 일들이 현실에서도 환상처럼 나타나면서 오히려 지독한 고통을 겪게 되는데요. 호기심에 본 영화지만 삶과 죽음, 그 사이에는 결코 넘볼 수 없는 확실한 경계, 선이 있을거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인생, 인간의 삶이라고 하지요. 그래선지 죽음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의문을 갖는 주제인데요. <바이올렛 아워>의 저자 케이티 로이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잔병치레가 잦았고 급기야 한쪽 폐의 절반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면서 그녀는 죽음에 바짝 다가가게 되는데요. 거기다 의사였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녀는 더욱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까? 두렵지 않을까? 나는 어떨까? 내게 마지막 순간은 어떻게 다가올까? 언제든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끊임없이 계속 이어지는 의문을 풀기 위해 저자는 남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 인물들, 지그문트 프로이트, 수전 손택, 존 업다이크, 딜런 토머스, 모리스 샌닥의 죽음을 역추적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들이 생전에 남긴 작품이나 인터뷰, 일기나 편지, 노트를 비롯해서 주변 인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바이올렛 아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알아보기 시작하는데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위대한 인물들의 마지막 순간은 어땠을까... 궁금한 마음이 컸는데요. 전 두 사람의 마지막 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최면술을 통해 인간의 마음에는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린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는 구강암으로 인해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으나 “맑은 정신으로 생각할 수 없다면 고통이 없는 것보다 차라리 고통을 받으며 생각하는 쪽을 선택하겠다”면서 진통제를 거부하고 마지막도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삶을 마쳤다고 하는군요.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동화작가 모리스 샌닥은 늘 자신이 갑자기 죽을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속에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선지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이나 질병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죽음과 관련된 물건을 수집하기도 했다는데요. 독특한 상상력으로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빚어내는 그를 저는 막연히 재기발랄한 삶을 살았을거라 생각했는데 평생토록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니 정말 의외였습니다.

 

 

죽음, 마지막 순간. 남은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저 잠결에 가게 해달라’고 되뇌는 팔순의 친정엄마처럼 마지막 순간에 고통이 없기를, 평온하기를.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하늘에 서서히 보랏빛 어둠이 내려앉으면 자연스레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꼭 그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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