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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인문학
진중권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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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문송합니다.” ‘문과생이라 죄송합니다’란 말이 공공연히 통용될 정도로 인문학 전공자들의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하지요. 하지만 세계적 인터넷 검색업체인 구글에서는 신입사원의 80%를 인문학 전공자로 채웠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IT와 관련한 첨단기술 전공자가 유리할 것 같지만요. 인터넷 사용자의 환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게 중요한데 여기에 인문학이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구글에서는 매년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하는군요. “당신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인문학이 인간에 대한 이해와 근원적인 문제, 더 나아가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인문학으로 치유를 한다고? 그게 과연 가능할까? <치유의 인문학>을 처음 봤을 때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공동저자로 소개된 10명의 인물학자들, 진중권, 서경식, 박노자, 박상훈, 조국, 고혜경, 정희진, 이강서, 황대권, 문요한. 그들의 이름에 끌렸습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졌습니다.
먼저 ‘광주 트라우마센터’에 대해 얘기해야겠습니다. 빛고을 광주에는 도시이름에 비해 슬픈 역사가 참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인데요. 1980년 5월을 직접 경험했던 광주시민들을 비롯해서 국가로부터 고문과 폭력을 당한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 바로 ‘광주 트라우마센터’인데요. 이곳에서 정신적인 아픔과 상처를 지닌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매달 진행한 인문학 강의 중에서 일부를 수록해놓은 것이 바로 이 책, <치유의 인문학>입니다.
강의자로 나선 이들이 모두 현재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인 지성으로 통하는 인문학자들이어서일까요? 내용이 어렵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고 있더군요. 언젠가부터 ‘힐링’과 ‘멘토링’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소비되다시피 하는데 진중권은 이 현상이 바로 우리 사회가 그만큼 병들어있다는 증후라고 하면서 상처를 무조건 잊고 망각하려 하기보다 그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겨내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구요. 박노자는 폭력이란 ‘인간이 근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위반’하는 것이라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폭력이 얼마나 만연해있는지 지적합니다. 박상훈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로 우리 삶에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정치인이란 어떤 자질을 가져야 하는지, 정치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성장한다고 하지만 과연 대한민국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없습니까? 집이 없어 떠도는 사람들이 없습니까? 노숙자는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노숙자는 줄어들지는 않고 계속적으로 늘어나기만 합니다. 굶어죽은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통계적으로 잘 잡히지는 않지만 많은 독거노인들이 먹지 못해 죽어 갑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보도조차 되지 않습니다. 노인이라 해도 한 사람이 먹지 못해 죽은 사건을 보도조차 안하는 사회가 과연 탈폭력화된 사회일까요? - 80~81쪽.
조국은 선거 때면 정치인들은 저마다 ‘경제 민주화’를 외치지만 서민의 삶은 갈수록 궁핍해지는데 비해 재벌은 갖가지 특혜로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그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지고 있다면서 ]내가 낸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혜경은 세월호라는 최악의 사건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는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면서 세월호 이후로 ‘이 땅은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면서 악몽 같은 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조금씩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난 주말, 시내 중심가에서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이전의 경험을 살려 간이깔개와 무릎담요를 미리 준비해갔지만 겨울밤공기는 예상보다 훨씬 차가웠습니다.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줄지어 앉아 함께 구호를 외치고 촛불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폭언을 내뱉는 일부 사람들, 그들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이, 분노가 그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추거나 물러서고 싶진 않았습니다. 우리의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말입니다.
나의 작은 의식의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자 또 지름길임을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 길들이 있겠지만 꿈이 그 한 가이드라인이 되어 줄 것입니다. 대파국이라는 본래 의미처럼 이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나는 꿈을 꾸어 봅니다. -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