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재미있는 책이라면 - 청소년을 위한 독서 유발 인문학 강독회
박현희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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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결혼 전까지 지냈던 친정집이 이사를 하게 됐다. 도로 건너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는 거라 장롱이나 가전도구처럼 큰 짐은 트럭에 실어 이미 옮겼고 작은 짐만 틈틈이 옮기고 있다. 지난주에 들렀을 때 현관입구에서 반가운 것들을 보게 됐다. 오래된 문학전집 여러 질이 노끈에 묶여 있었다. 없는 살림에 엄마가 언니들 읽으라고 장만해준 책이었지만 줄기차게 읽은 딸은 아마 내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이단 세로쓰기 판형의 책을 열 두어 살의 나이에 겁 없이 덤벼들었다. 그렇게 삼국지를 읽었고 헤밍웨이와 헤세, 제인 오스틴, 톨스토이, 브론테 자매와 같은 이들을 만났고 셜록 홈즈, 엘러리 퀸,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도 섭렵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소설 <빙점>이다. 살인자의 딸을 양녀로 받아들여 키우면서 그 가족에게 벌어지는 갈등과 죄에 대한 고뇌를 어린 내가 이해하기엔 무리였지만 그럼에도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그 소설이 국내에서 드라마화 되고 소설이 소개되고 작가의 이름이 미우라 아야코라는 건 세월이 한참 지난 성인이 되어서였다.

 

입시에 전념해야할 큰아이를 보면 늘 두 가지 마음이 갈등을 빚는다. 아이가 좋은 책을 즐겼으면 하는 마음과 모든 것을 제쳐두고 공부에만 매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내 가슴 속 어딘가에선 종종 ‘부모 vs 학부모'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라면>을 봤을 때 그 전쟁의 승자는 바로 ’부모‘였다. 내 아이가 한 권의 책을 단순히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좀 더 깊이, 더 넓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랬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이 십대 사춘기 시절에 만났을 때와 성인이 되어 만났을 때 다른 느낌, 다른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걸 느꼈으면 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라면>은 자칭 독서클럽 전도사라고 하는 저자가 한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독서 유발 인문학 강독회’를 하고 그것을 정리해놓은 것이다. 우선 본문에 소개된 책은 모두 8권인데 주제와 장르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하다. 또 각각의 책마다 제목 외에 타이틀을 붙인 점이 눈에 띄었다. 이를테면 셜록 홈즈의 [주홍색 연구]에 ‘대체불가 캐릭터의 탄생’이라고 하거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책으로 사랑을 배우다’, 제럴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한 권으로 읽는 13,000년의 역사 여행’이라고 해서 해당 책에 호기심을 유발하고 책을 좀 더 재미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읽을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다.

 

고등학생들과의 강독회를 바탕으로 한 책이어서 본문에는 학생들과 나눈 대화가 곳곳에 수록되어 있다.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큰아이 또래 아이들의 생각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어서 자연히 눈길이 더 오래 머물렀다. 소개해놓은 책에는 개인적으로나 독서모임을 통해 이미 읽은 책도 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 곧 읽을 예정의 책도 있었다. 청소년들을 독서로 유발하기 위한 저자의 강독회에 나도 역시 참여하는 기분으로 읽어 나갔다.

 

겨울방학에 큰아이가 지인의 아이들과 독서토론을 하고 있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었는데 이번엔 헤르만 헤세와 어느스트 헤밍웨이의 작품 몇 편을 읽기로 했다. 그런데 묘한 일이 생겼다. 아이와 내가 같은 날 같은 책으로 독서토론을 하게 됐다. 지정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오전 오후라는 시간과 장소가 다르고 세대가 다르지만 [데미안]은 우리 모자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알을 깨는 큰아이는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만남, 세계라는 알을 깨고 나오는 힘겨운 몸짓, 아브락사스의 날개짓을 아이는 어떻게 이해할까. 두근두근 기대가 된다.

 

이 책은 유혹하기 위한 책입니다. [데미안]을 처음으로 읽었던 그 밤을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책을 읽느라 온밤을 꼬박 밝혔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밤, 저는 [데미안]을 읽었고, 새로운 세계를 만났습니다. [데미안]을 읽었기에, 그 책을 읽기 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5쪽.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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