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
서영교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4월
평점 :
핼리 혜성. 약 75년의 주기로 지구에 접근한다고 알려진 혜성의 출현은 옛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안겼던 모양이다. <우주의 발견>이라는 책에는 ‘451년, 훈족의 아틸라가 로마군과 야만족의 연합군에게 패배할 때에도 핼리 혜성이 나타났다. 684년에 일어난 역병도 이 혜성의 탓이라고 이야기되었고,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이 영국을 정복한 1066년의 헤이스팅스 전투 때에도 핼리 혜성이 나타났다. 또 프랑스 국왕이 사망한 1222년에도 나타났다’는 대목이 있다. 밝은 빛을 내며 순식간에 밤하늘을 가르고 지나가는 혜성이 아름답기는커녕 불길한 징조로 여겨지다니.
그런데 <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은 더욱 놀라운 이야기를 쏟아낸다. 바로 핼리혜성의 출현으로 인해 신라에서는 왕위쟁탈전이 벌어졌다는 것. 에이, 설마? 한 나라의 임금이 단순히 혜성이 나타났다고 해서 목숨을 잃거나 자리에서 물러나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왠지 솔깃했다. 그 말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알고 싶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혜성을 불길하게 여기게 된 원인이 대체 무엇인지.
“기록은 아주 정직합니다” 서두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혜성은 지구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는데 중국의 기록을 보면 ‘기원전 1400년부터 기원후 100년까지 338개의 독립적인 혜성 출현을 기록(8쪽)’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중국인들이 혜성에 대한 ‘공포’를 나타내는 거라고. ‘거대한 혜성이 떠서 왕의 잘못을 경고하고 있다. 만일 왕을 죽이지 않으면 혜성이 지상에 떨어지고 우리 모두가 죽고 만다(9쪽)’고 말이다. 혜성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해 혜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걸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일축해버릴 순 없다. ‘혜성은 일정한 주기로 지구에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라는 건 현대에 와서 알게 된 일이니 하늘을 숭배하고 두려워하는 고대인들에게 혜성은 ‘하늘의 변고’이자 ‘왕실의 변고’를 나타내는 징조로 여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책은 크게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신라는 융천사의 [혜성가]를 언제 왜 만들었나’에서는 현존하는 최고의 향가 ‘혜성가’에 대해 언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지은 것인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알려준다. 저자는 우선 607년을 전후해서 신라와 신라를 둘러싼 주변국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알려주면서 607년에 핼리혜성이 지구에서 자그마치 100일 동안 관측되었는데 이 대규모의 혜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혜성에 공포심과 불안감이 고조되자 이를 민심을 달래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노래를 지어서 불렀다. 그것이 바로 ‘혜성가’인데 융천사가 '혜성가'를 부르자 혜성이 없어지고 일본병도 물러갔다고 한다.
이후 책은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기록을 비교하여 신문왕 대에 총 3번의 핼리혜성이 나타났는데 그때마다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신문왕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려주는데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혜성의 출현으로 신문왕은 보덕국을 희생양 삼아 내란을 조장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또 하늘에 해가 2개 나타나자 월명사가 지어 불렀다는 향가 ‘도솔가’에 대해서도 저자는 2개의 해는 바로 낮에도 관측될만큼 밝은 핼리혜성이 지구를 지나간 것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제시한다.
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이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해서 처음엔 팩션소설처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닐까 했는데, 천만에! 책장이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간혹 그림이나 사진자료를 이용해 태양과 핼리혜성, 지구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글로만 읽어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아마 이 책과 같은 내용을 주제로 일정기간동안 강연회를 한다면, 그 현장에서 직접 저자의 설명을 듣고 의문점을 질문하고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책의 내용을 좀 더 쉽게, 확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 어렵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주제임은 틀림없다. 특히 인기리에 방영됐던 <선덕여왕>에 몰입해서 봤다면 이 책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보면 좋을 듯하다. 재미삼아 봤던 드라마의 한 장면이 어떤 연유로 비롯됐는지, 그 역사적인 배경과 상황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