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씨와 유령 선생 생각하는 숲 7
타카도노 호오코 지음, 이이노 카즈요시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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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핫, 정말 유쾌상쾌한 책이다. 무심코 집어든 얄팍한 아이의 책을 읽으면서 난 또 내 나이를 잊는다. 반짝반짝 빛나는 보물 같은 책을 또 하나 발견했다. 바로바로 <진지한 씨와 유령선생>!

 

책의 주인공은 진지한씨. 이름만큼 매사에 진지하고 완벽하다. 시계처럼 규칙적이고 정확하다. 누군가와 농담을 주고받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진지한씨의 아버지 ‘진지해’씨와 할아버지인 ‘진지함’씨, 증조할아버지인 ‘진지하오’씨까지 모두 진지하기 짝이 없는 신사였기에 그런 성격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진지한씨. 그가 달라졌다.

 

어느 일요일, 평소처럼 정각 12시에 점심을 차려먹은 진지한씨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신의 집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바로 진지한씨의 유령이었다. 밤 12시부터 아침까지는 바로 유령인 자신의 시간인데 밤새 온 집안에 쌓인 진지한 공기를 휘젓고 다닌다고 한다. 왜냐면 진지한 공기는 날마다 적당히 풀어주지 않으면 점점 굳어버려서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의 성격이 자꾸만 뒤틀리고 비꼬여서 결국엔 고집불통이 되어 버린다는 거였다.

 

유령을 만나고 나서 진지한씨에게 작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매일밤 자신이 잠든 시간에 나타나 집안에 고인 공기를 풀어주는 고마운 유령을 그냥 모른척 할 수 없었다. 진지한씨가 쪽지에 인사말을 써서 남기자 유령이 답장을 하고 진지한씨가 읽어보라며 <왕자와 거지>란 책을 권하자 유령은 아침을 준비해둔다. 또 새벽에 방송되는 영화를 보라며 편지를 써두자 유령은 진지한씨가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데, 그때부터 진지한씨와 유령, 서로의 시간으로 나뉘는 밤 12시란 기준이 사라지고 둘은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 밤새 함께 체스를 두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둘은 점점 친해진다.

 

완벽하리만치 규칙적이던 진지한씨의 생활패턴이 유령으로 인해 조금씩 깨어진다. 늦잠을 자서 회사에 허겁지겁 출근하는가하면 항상 단정하던 머리가 흐트러져있고 하품을 하기도 하는데...나사 하나가 빠진듯한 진지한씨의 모습에 직장동료들은 무척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예전보다 밝아진 진지한씨의 표정에 궁금증을 갖는다. 무슨 좋은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여긴 그들은 급기야 진지한씨의 집을 불쑥 방문하는데 진지한씨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자 유령이 대신 손님들을 맞는데...

 

사실 처음 표지를 봤을땐 뭔가에 깜짝 놀란듯한 진지한씨의 표정에 혹시나 무서운 얘기는 아닐까, 아이가 봐도 될까...긴장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정해진 모습이 없어서 집주인의 모습을 빌어서 나타나는 유령을 내가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꺄아악!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을 떨거나 쓰러졌을 게 분명하다.

매사에 진지하고 깐깐한 진지한씨가 유령을 만나 지내면서 ‘진지하기 짝이 없는 신사’에서 ‘적당히 진지한 신사’로 변해가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고도 재미있다. 한 눈 팔지 않고 앞만 보며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삶을 즐기는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이며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우리 집에도 유령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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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도깨비 책귀신 1
이상배 글, 백명식 그림 / 처음주니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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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도깨비. 제목이 참 재밌다.

 

우선 ‘도깨비’가 뭔가.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한 잡된 귀신’으로 초인적인 괴력과 재주를 갖고 있는 존재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이 죽은 후에 생기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오래 쓰다가 버린 물건, 즉 헌 빗자루나 짚신, 부지깽이, 오래된 가구 같은 것들이 밤이 되면 도깨비로 변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여타귀신과 달리 사람들에게 악한 일을 하지 않는다. 대신 황소를 지붕 위에 올려놓거나 큰 산을 움직이는 짓궂은 장난을 많이 하지만 그 반면에 잘 사귀면 신통력으로 금은보화를 가져다주는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데...바로 그 도깨비가 책을 읽는단다. 정말? 호기심이 발동한다.

 

책의 주인공은 바로 고리짝 도깨비다. 구두쇠 영감이 돈을 모아놓는 고리짝에서 나온 도깨빈데 주인을 닳아 돈 냄새를 좋아한다. 어느날 구두쇠 영감의 돈을 훔쳐서 달아난 고리짝 도깨비는 나무 밑동에 난 구멍에 돈을 쌓아놓고 지낸다. 껑충 큰 키에 온몸은 털북숭이, 머리에 패랭이 모자를 쓰고 사람 행세를 하면서 돈을 쓸어 모으자 빗자루 도깨비와 공책도깨비가 찾아온다. 좁은 나무 밑동에 세 도깨비가 자리를 잡자 지나던 개들이 짖어대고 그들은 이사하기로 마음먹는다. 

 

경치가 좋은 명당을 발견한 세 도깨비가 이사하려고 그 곳을 먼저 찾은 사람들을 훼방놓기 시작한다. 이를 눈치 챈 선비는 도깨비들에게 내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선비가 내놓은 문구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하는데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공책 도깨비마저 알 수가 없었다. 이에 세 도깨비들은 밥보다 책읽기를 좋아한다는 세종대왕을 찾아가는데....

 

사람이 오래 쓰고 버려둔 물건이 도깨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데 이 책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세 도깨비들은 선비와의 문답내기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세 가지의 기쁨을 알게 된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세종대왕의 심부름으로 서점을 찾는 기쁨과 책을 구입하는 기쁨, 거기에 한 가지 더! 책을 읽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느끼게 된다.

 

‘人不通古今(인불통고금)이면 馬牛而襟据(마우이금거)니라.’ ‘사람이 고금(고금)의 일을 알지 못하면, 마소에 옷을 입히는 것과 같다.’ 명심보감을 읽지 않아서 이 문장이 정확하게 어떤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옛 선인들의 지혜와 가르침이 담겨있는 책을 읽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닦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 게 아닌가 싶다.

 

책을 읽으면서 내 아이들을 생각해보게 됐다. 책을 읽는 기쁨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는 기쁨과 책을 구입하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지 못했던 것 같아 가슴이 뜨끔했다.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기쁨과 환희의 순간을 내가 방해한 게 아닌가...싶어서.

고리짝 도깨비, 빗자루 도깨비, 공책 도깨비. 이들은 선비와의 문답 내기에서 어떻게 됐을까. 이겼을까? 졌을까? 그리고 서점을 찾는 기쁨과 책을 구입하는 기쁨, 책을 읽는 기쁨을 알게 된 세 도깨비가 어떻게 됐을까?...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지금 당장 책을 펼쳐보라고 권하고 싶다. 100쪽이 넘는 책이지만 삽화가 많아서 쉽게 넘어가고 저학년들도 재밌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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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의 서평을 써주세요
작은 거인 - 고정욱 감동이야기 좋은 그림동화 16
고정욱 지음, 김 담 그림 / 가교(가교출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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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고 열흘쯤(?) 지났을 때 고정욱님의 책을 만났다. 제목은 <작은 거인>. 제목만 보고 한참 생각했다. ‘작은 거인’.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작다’와 ‘거인’은 결코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비슷한 말도 아닌 오히려 반대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두 단어를 붙여 ‘작은 거인’이라 한 이유는 무엇일까.




토요일, 버스터미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동을 켜고 막 출발하려는 버스 속에서 운전기사와 대학생 몇 명이 실랑이를 벌인다. ‘더는 못 기다린다. 내려서 다음차를 타라’는 기사에게 학생들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사정을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버스가 막 출발하려는 찰라, 남학생 한명이 허둥지둥 달려온다.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올라탄 학생, 그에게 일행들은 묻는다. 왜 이렇게 늦었냐고.




그 후 책은 한 시간 전의 상황을 보여준다. 야유회 가려고 터미널에 모인 그들에게 한 아이가 다가와 구걸을 한다. 때가 절어 초라한 모양을 한 아이를 일행들은 앵벌이라며 오해하지만 키 작은 학생은 아이에게 무슨 사정이 있을 거라며 얘길 건넨다. 아이에게서 엄마는 도망간데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아빠는 다쳐서 꼼짝없이 누워있다는 얘길 들은 학생은 아이를 도와주기로 마음먹는다. 일행들에게서 돈을 모은 학생은 마트에서 장을 본 다음 아이의 집에 넣어주고 왔다는 것이다. 제2의 IMF라는 요즘이어선지 책에서 전하는 이야기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우린 이담에 성공하면...돈 많이 벌면....그때 어려운 사람들 도와야지...라는 말을 곧잘 한다.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마음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바로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 이 책은 바로 그 마음을 얘기하고 있다. 어딘가로 곧 떠나야할 상황임에도 어려움에 처해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내치지 않고 성의껏 도와주는 마음. 그 정성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왠지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학생들이 기사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상황만 봐도 그렇다. 학생들이 타야하는 버스가 터미널에서 행선지로 떠나는 막차라면 이해가 간다. 근데 그렇지도 않다. 차 안에 다른 승객들도 있는 상황에서 일행이 타야 하니까 무조건 기다려달라는 거, 그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게다가 한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에 아이의 집이며 마트에 다녀왔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고  감동을 주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이 얼마나 깊은 감동을 받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 서평도서의 좋은점 : 아이들이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해준다.

* 한핏줄 도서 : 고정욱님의 <괜찮아>  


* 권하고 싶은 대상 : 초등 저학년과 학부모.

* 마음에 남는 구절 : "우리에게는 별거 아닌 게 얘네한테는 지금 이 고비를 넘기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 -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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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들의 전쟁 1 - 제1부 늑대족의 피
마이떼 까란사 지음, 권미선 옮김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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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기르면서 판타지 동화를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요정이나 용, 기사, 마법, 마녀...로 가득한 세계가 어른인 내겐 시시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근데, 천만의 말씀. 너무 재밌었다.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만나게 되는 환상의 세계는 잊고 있던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바싹 메말라버린 상상력에 촉촉한 비를 뿌렸다. 오랜 가뭄 뒤에 단비를 만난 기분이 이럴까.




이번에 만난 판타지 동화는 스페인이 배경이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 그런데 책 표지에 나타난 세계는 어둡고 음울하다. 큰 소리로 울부짖는 늑대처럼 보이는 산을 배경으로 기괴한 모습을 한 나무가 가득한 숲이 펼쳐져있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한 소녀가 있다. <마녀들의 전쟁>에서 이 소녀가 맡은 역할은 무엇일까. 재앙을 불러올 것인가. 아니면 모든 전쟁과 불행을 잠재울 것인가...궁금한 마음에 서둘러 책장을 펼쳤다.




주인공은 아나이드. 열네 살, 한창 사춘기의 몸살을 앓으며 감수성을 키워가는 나이지만 아나이드에겐 사정이 달랐다. 열 살이라고 보일 정도로 작은 키에 볼품없는 외모의 아나이드를 친구들은 공부벌레, 난쟁이라며 따돌렸다. 그런데  폭풍우가 몰아치던 악몽을 꾸고 난 어느날부터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옷이며, 신발, 핸드백, 자동차...모든 건 그대로 있는데 엄마만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엄마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순간 데메떼르 할머니가 사라진 날이 떠오른 아나이드는 엄마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숲을 뒤져보지만 어떤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엄마의 실종은 아나이드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아나이드는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찾아온 엄마의 친구들와 이모할머니를 통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와 할머니는 물론이거니와 자기 역시 마녀라는 사실을. 뿐만아니라 아주 오랜 옛날 대마녀 오에게 오드와 옴이란 두 딸이 있었는데 옴의 후손인 오마르들이 조용히 시대와 사람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데 비해 오드의 후손인 오디시들은 영원한 생명을 갖기 위해 오마르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런데 문제는 대마녀 오가 최후의 순간에 붉은 머리의 선지자가 나타나 오마르와 오디시의 대립을 종식시킬 것이란 예언을 했는데 엄마의 실종도 그것 때문일 거라는 거였다. 어느 누구보다 똑똑하고 영리한 아나이드는 자신이 엄마를 찾겠다는 뜻을 밝히고 길을 떠나는데....




<마녀들의 전쟁> 1부 늑대족의 피 1권은 이렇게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마녀란 사실을 알게 된 아나이드가 마녀 입문식을 하고 오디시들에 의해 납치된 엄마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열 셋, 열 넷...막 사춘기로 접어드는 시기인 이 나이가 마녀들에겐 또다른 출발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다. <마녀배달부 키키>에서 키키는 열세 살이 되면서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집을 떠난다. 낯선 마을에 도착한 키키가 정착하는 모습은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었지만 <마녀들의 전쟁>에서 아나이드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듯하다. 5개 국어를 하고 한번 만져본 악기라면 어떤 것도 연주할 수 있는 능력으로 혼자서 마법을 깨우친 아나이드 앞에 어떤 고난과  모험이 기다릴 것인가. 그리고 잃어버린 흰고양이 아뽈로는 과연 찾게 될까...1권을 덮자마자 2권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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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딸]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히틀러의 딸
재키 프렌치 지음, 공경희 옮김, 기타미 요코 그림 / 북뱅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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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날 바라본다. 인형을 들고 있는데 폼이 좀 이상하다. 대부분 인형을 가슴 부위에 들고 안는다. 근데 이 아이는 인형을 자신의 눈높이와 거의 비슷한 곳까지 올렸다. 마치 낯선 이를 경계하는 듯, 그러면서도 주변의 상황에서 눈을 떼지 않고 눈여겨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소녀 뒤로 커다란 시계가 보이는데 숫자판의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히틀러의 딸>. 이 책의 표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상징적 의미인 그림 하나만을 강조한 게 아니라 몸의 크기를 다르게 그린 소녀를 비롯해 여러 가지 그림을 빼곡하게 그려져 있다. 어찌보면 산만하고 복잡해 보이는 그림인데 오히려 궁금증을 자아낸다.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네 명의 아이들이 있다. 안나, 꼬마 트레이시, 마크, 벤. 그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 정류소에서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게임’을 하게 된다. 누군가가 가상의 주인공을 만들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게임.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안나가 말문을 연다. “히틀러의 딸에 대한 이야기야”하고.




히틀러의 딸의 이름은 하이디. 시골의 넓은 집에서 겔베르란 가정교사와 함께 살았다. 히틀러는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 큰 붉은 점이 있는데다 한쪽 다리가 짧아서 다리를 저는 아이를, 자신의 딸을 비밀에 부쳤다. 아이가 전투를 보지 못하게 막고 다른 사람들과도 떼어놓았다. 가끔 자신을 찾아오는 아버지를 하이디는 ‘더피’라 불렀다. 얼마후 하이디는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이사를 간다. 그곳에서 집안일 하는 부인을 통해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잡혀간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던 중 전쟁은 막바지로 치닫고 하이디는 베를린으로 향한다. 아버지 히틀러가 있는 곳의 방공호로...




사실 책에서 히틀러의 딸, 하이디의 이야기는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우선 안나의 이야기가 조금씩 며칠에 걸쳐서 이어지는데다가 주인공인 하이디는 아버지인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지 모른다. 그저 주위 사람들이 쉬쉬하며 나누는 대화 속에서 어렴풋이나마 지금이 전쟁 중이며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낄 뿐이다. 히틀러의 딸이란 점만 빼면 하이디는 뚜렷한 개성이 없어 보인다. 때문에 이야기가 밋밋하게 흐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마크라는 호기심 많은 소년을 히든카드로 등장시킨다. 마크는 안나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주의를 온통 빼앗긴다. 마크의 관심은 학교로 가는 스쿨버스는 물론 학교와 집에서도 오직 안나가 해준 하이디 이야기에 관한 거였다. 히틀러가 어떤 인물이며 얼마나 끔찍한 짓을 했는지, 만약 자신의 아빠가 히틀러와 같은 짓을 했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옳은 일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끝없이 의문을 품는다.




책은 등굣길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이야기 게임을 통해 과거의 하이드와 현재의 마크의 이야기가 교차하듯 진행되는데 각 챕터의 길이도 짧은데다 그다지 어려운 내용이 없어서 빨리 읽혀진다. 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녹여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책 읽는 시간의 몇 배가 걸렸다.




중요한 건 히틀러의 딸이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냐가 아니었다. 인간의 생명을 빼앗고 존엄성을 잔인하게 짓밟는 전쟁은 왜 일어나고 그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지며 옳지 않은 일엔 과연 저항할 수 있는지...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책에선 이런 의문과 궁금증들을 마크가 대신 풀어가곤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남은 기분이다. 개운해지지가 않는다. 왜일까.




마크가 상상 속의 엄마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말하기 어렵고 까다로운 질문에 현실의 엄마는 대답을 회피하고 얼렁뚱땅 넘어가지만 상상 속의 엄마는 달랐다. 당황스런 마음을 접고 그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알려주면서 마크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다면 엄마는 저항했겠어요?...거의 모든 사람이, 어떤 게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엄마는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하겠냐는 거예요.”

“...그들은 히틀러에게 동의하지 않았어. 아니 그가 저지르는 모든 짓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 하지만 그냥 지냈어. 그러다가 너무 늦어버렸지. 그들은 눈을 감고 일이 일어나게 내버려두었던 거야.”(132~ 133쪽.)




아이들은 자라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진저리가 날만큼 해댄다. 나도 처음엔 아이의 질문에 잘 대응해주지만 어느 정도 계속되면 슬며시 부아가 치민다. 특히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제 좀 고만하자!”고 할 때도 있고 “엄마도 잘 몰라.”하며 말을 끊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나의 무지가 아이에게 탄로날까봐 두려운 거다.




<히틀러의 딸> 이 책은 아이에게 읽히기 전에 먼저 부모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내 아이도 틀림없이 마크와 같은 질문을 던질거란 각오를 해야 한다. 아이와 함께 전쟁에 대해, 이념과 사상, 인간의 존엄성을 두루 꿰뚫는 심도 깊은 대화를 할 마음의 준비를 해두자.




참, 이 책은 뒷표지도 필히 꼼꼼하게 들여다봐야한다. 책을 읽으면서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든다. 왜일까? 궁금증은 직접 해소하시길...







사람들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자기가 옳은 일을 하는지, 그른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알까? 다른 사람이랑 똑같이 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히틀러 사건은 나라 전체가 그른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까.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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