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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딸
재키 프렌치 지음, 공경희 옮김, 기타미 요코 그림 / 북뱅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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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날 바라본다. 인형을 들고 있는데 폼이 좀 이상하다. 대부분 인형을 가슴 부위에 들고 안는다. 근데 이 아이는 인형을 자신의 눈높이와 거의 비슷한 곳까지 올렸다. 마치 낯선 이를 경계하는 듯, 그러면서도 주변의 상황에서 눈을 떼지 않고 눈여겨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소녀 뒤로 커다란 시계가 보이는데 숫자판의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히틀러의 딸>. 이 책의 표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상징적 의미인 그림 하나만을 강조한 게 아니라 몸의 크기를 다르게 그린 소녀를 비롯해 여러 가지 그림을 빼곡하게 그려져 있다. 어찌보면 산만하고 복잡해 보이는 그림인데 오히려 궁금증을 자아낸다.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네 명의 아이들이 있다. 안나, 꼬마 트레이시, 마크, 벤. 그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 정류소에서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게임’을 하게 된다. 누군가가 가상의 주인공을 만들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게임.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안나가 말문을 연다. “히틀러의 딸에 대한 이야기야”하고.




히틀러의 딸의 이름은 하이디. 시골의 넓은 집에서 겔베르란 가정교사와 함께 살았다. 히틀러는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 큰 붉은 점이 있는데다 한쪽 다리가 짧아서 다리를 저는 아이를, 자신의 딸을 비밀에 부쳤다. 아이가 전투를 보지 못하게 막고 다른 사람들과도 떼어놓았다. 가끔 자신을 찾아오는 아버지를 하이디는 ‘더피’라 불렀다. 얼마후 하이디는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이사를 간다. 그곳에서 집안일 하는 부인을 통해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잡혀간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던 중 전쟁은 막바지로 치닫고 하이디는 베를린으로 향한다. 아버지 히틀러가 있는 곳의 방공호로...




사실 책에서 히틀러의 딸, 하이디의 이야기는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우선 안나의 이야기가 조금씩 며칠에 걸쳐서 이어지는데다가 주인공인 하이디는 아버지인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지 모른다. 그저 주위 사람들이 쉬쉬하며 나누는 대화 속에서 어렴풋이나마 지금이 전쟁 중이며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낄 뿐이다. 히틀러의 딸이란 점만 빼면 하이디는 뚜렷한 개성이 없어 보인다. 때문에 이야기가 밋밋하게 흐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마크라는 호기심 많은 소년을 히든카드로 등장시킨다. 마크는 안나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주의를 온통 빼앗긴다. 마크의 관심은 학교로 가는 스쿨버스는 물론 학교와 집에서도 오직 안나가 해준 하이디 이야기에 관한 거였다. 히틀러가 어떤 인물이며 얼마나 끔찍한 짓을 했는지, 만약 자신의 아빠가 히틀러와 같은 짓을 했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옳은 일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끝없이 의문을 품는다.




책은 등굣길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이야기 게임을 통해 과거의 하이드와 현재의 마크의 이야기가 교차하듯 진행되는데 각 챕터의 길이도 짧은데다 그다지 어려운 내용이 없어서 빨리 읽혀진다. 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녹여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책 읽는 시간의 몇 배가 걸렸다.




중요한 건 히틀러의 딸이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냐가 아니었다. 인간의 생명을 빼앗고 존엄성을 잔인하게 짓밟는 전쟁은 왜 일어나고 그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지며 옳지 않은 일엔 과연 저항할 수 있는지...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책에선 이런 의문과 궁금증들을 마크가 대신 풀어가곤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남은 기분이다. 개운해지지가 않는다. 왜일까.




마크가 상상 속의 엄마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말하기 어렵고 까다로운 질문에 현실의 엄마는 대답을 회피하고 얼렁뚱땅 넘어가지만 상상 속의 엄마는 달랐다. 당황스런 마음을 접고 그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알려주면서 마크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다면 엄마는 저항했겠어요?...거의 모든 사람이, 어떤 게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엄마는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하겠냐는 거예요.”

“...그들은 히틀러에게 동의하지 않았어. 아니 그가 저지르는 모든 짓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 하지만 그냥 지냈어. 그러다가 너무 늦어버렸지. 그들은 눈을 감고 일이 일어나게 내버려두었던 거야.”(132~ 133쪽.)




아이들은 자라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진저리가 날만큼 해댄다. 나도 처음엔 아이의 질문에 잘 대응해주지만 어느 정도 계속되면 슬며시 부아가 치민다. 특히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제 좀 고만하자!”고 할 때도 있고 “엄마도 잘 몰라.”하며 말을 끊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나의 무지가 아이에게 탄로날까봐 두려운 거다.




<히틀러의 딸> 이 책은 아이에게 읽히기 전에 먼저 부모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내 아이도 틀림없이 마크와 같은 질문을 던질거란 각오를 해야 한다. 아이와 함께 전쟁에 대해, 이념과 사상, 인간의 존엄성을 두루 꿰뚫는 심도 깊은 대화를 할 마음의 준비를 해두자.




참, 이 책은 뒷표지도 필히 꼼꼼하게 들여다봐야한다. 책을 읽으면서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든다. 왜일까? 궁금증은 직접 해소하시길...







사람들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자기가 옳은 일을 하는지, 그른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알까? 다른 사람이랑 똑같이 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히틀러 사건은 나라 전체가 그른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까.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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