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panda78 > 서양미술사 28 - 이탈리아 매너리즘 : 왜곡과 변형

미술사에서는 1520년경부터 1600년경까지, 즉 16세기 중·후반의 미술을 매너리즘(Mannerism)이라는 용어로 부릅니다. 이는 이탈리아어 Maniera 즉 '방식'이라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특정한 '방식', '형식'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개인 화가가 자기의 '방식'에 빠져 창의성 없이 그 형식을 반복할 때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하는데 이탈리아 16세기 중엽의 미술에 대해서도 그러한 부정적인 의미에서 매너리즘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16세기 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 등 소위 거장들의 미술이 절정에 달하자, 이후 미술가들은 그들의 '좋은 방식'(buon maniera)을 본 받아 따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레오나르도의 방식이 오랫동안 유행하고, 라파엘로 그림을 모방한 판화들은 화가들의 화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 화가들은 곧 자기 방식들을 만들어갔으며, 이전의 고전주의 잣대로는 평가할 수 없는 일탈과 변형의 미술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작품들을 봅시다.

암마나티(Bantolomeo Ammanati: 1511-1592)의 조각(도1)은 레다가 백조로 변한 제우스와 입을 맞추는 모습입니다. 주제는 다르지만 형태는 미켈란젤로의 조각(도2)과 똑같죠? 방식 즉 maniera를 따라한 모습입니다. 이들에게 미술은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품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아름다운 형식 자체가 미술의 목적이 된 것입니다.

 

도1 바르톨로메오 암마니티<레다>, 대리석
 
 
 
 
도2 미켈란젤로 <줄리아노의 무덤>부분
1526-33년, 대리석
피렌체, 산 로렌조, 사크레스티아 누오바
 
 
 

 

이번엔 파르미쟈니노(Parmigianino: 1503-1540)의 <목이 긴 성모>(도3)를 봅시다. 정말 목이 길죠? 얼굴도 작아서 아마 10등신 정도는 되어 보입니다. 아름다움과 우아함의 전형이 형성되자 이를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한 과장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장은 어느덧 변형의 미(美)를 낳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성모자와 성인 또는 천사들이 같이 있는 것 같지 않고 마치 채색된 성모자 조각상에 천사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모자의 묘사가 너무 인위적이며, 좌대 위에 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 인간보다 훨씬 거대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바로 마리아의 뒤에 놓인 큰 기둥 때문입니다. 그 앞에 있는 수도자는 오히려 너무 작습니다. 이제 미술가들은 더 이상 실제같이 보이게 하려는 재현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특정한 효과가 더 중요하지요.

도3 파르미자니노 <목이 긴 성모>
1534-40년, 나무 패널에 유채, 216×132cm
피렌체, 우피치
 
 
 

로쏘 피오렌티노(Rosso Fiorentino: 1494-1540)는 중앙집중식의 구도도 와해시켰습니다. 그가 그린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리는 그림(도4)을 보십시오. 예수의 모습을 찾으려면 우리는 땅에 쓰러질 듯 슬퍼하는 막달라 마리아부터 마리아를 부축이고 있는 여자와 예수의 발을 붙잡고 있는 왼쪽의 남자, 잘 붙들고 있으라고 소리치는 왼쪽 위의 남자들까지 한 바퀴를 돌아야 합니다. 같은 주제를 그린 15세기 그림(도5)과 비교하면 이러한 일탈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주인공인 예수와 성모, 요한은 중앙에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늘에 가려있습니다. 조연들의 행동들만이 번잡할 뿐입니다. 이제 중심은 해체된 것입니다.

 

도4 로쏘 피오렌티노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
1521년, 나무패널에 유채, 375×196cm
볼테라 대성당
 
 
도5 프라 안젤리코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부분
1437-40년, 나무패널에 템페라, 전체 176×185cm
피렌체, 산 마르코 박물관
 
 
 

여러분들은 아마 제가 로쏘 피오렌티노의 위 그림을 설명하는 동안 색채와 빛의 작용도 유심히 보았을 것입니다. 푸른 보라빛을 배경으로 한 붉은 색의 난무와 같은 이미지였지요. 고유색을 부정한 이러한 인위적인 색채와 빛의 효과는 로쏘의 동료인 폰토르모(Jacopo Pontormo: 1494-1557)의 그림(도6)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그가 그린 예수의 시신을 눕히는 장면은 보라빛이 감도는 연한 푸른색과 연한 주황, 연분홍, 연한 살색의 배치 같습니다. 이러한 탈색된 듯한 색들은 그림에서의 색채가 이제는 사물의 묘사를 위한 색채이기보다 색들 자체의 유희임을 잘 보여줍니다(도7).

 

도6 야코포 폰토르모 <예수의 시신을 눕힘>
1528년, 나무 패널에 유채, 313×192cm
피렌체, 산타 펠리치타
 
 
도7 도6의 부분
 
 
 
 
 

 

역시 폰토르모가 그린 <마리아의 엘리자벳 방문>(도8)은 매너리즘의 여러 특성을 함께 지니고 있는 작품입니다. 화면 가득히 차지하고 있는 네 사람의 머리와 발은 작고 몸체 중앙만 부풀린 채 커서 마치 공중에 약간 떠 있는 듯이 보입니다. 마리아와 엘리자벳은 서로 마주 보고 있으나 뒤의 두 사람은 관람자를 쳐다 보아 네 사람의 관계는 서로 불일치하며, 그들에게 비추는 광선 또한 마리아는 화면 왼쪽에서, 엘리자벳은 화면 정면에서 오는 빛을 받아 분산된 효과를 주고 있습니다. 이 광선들은 한쪽에서 오는 자연광이 아니며 화가가 임의로 정한 인위적인 국부 조명인 것입니다. 이 그림이 더욱 괴이하게 느껴지는 것은 배경과 인물들 간의 비례 때문일 것입니다. 인물들은 건물의 3층까지 차지할 정도로 거대하여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이들은 왼쪽 건물 아래에 있는 아주 작은 인물들과 대비되어 더욱 모뉴멘탈하게 보입니다. 화가 폰토르모는 성경의 주제나 사물의 재현에는 관심 없이 비례나 색채, 빛의 변형된 효과들을 즐기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도8 야코포 폰토르모 <마리아의 엘리자벳 방문>
1528-29년, 나무 패널에 유채, 202×156cm
피렌체(카르미냐노), 산 미켈레
 
 
 

이 시대의 초상화를 한 점 봅시다. 브론지노(Agnolo Bronzino: 1503-72)가 그린 <톨레도의 엘레오노라와 그의 아들>(도9)을 이전의<모나리자>(9주 주제2 도11)나 티치아노가 그린 <벨라>(10주 주제1 도10) 등과 비교하면서 이 그림의 특징을 생각해 보십시오. 인물의 얼굴은 마네킹 같이 차갑고, 부인이 입은 옷은 마치 의상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듯이 옷의 특징 만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물들은 마치 박제된 듯 고정되어서 주인공의 성격이나 감정을 읽어내기 어려우며 인물이 그림으로부터 소외된 듯이 느껴집니다.

 

도9 아뇰로 브론지노 <톨레도의 엘레오노라와 그의 아들>
1550년, 나무패널에 유채, 115×96cm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도10 죠르지오 바자리 <코지모 1세의 신격화>
1555-65년, 프레스코화, 피렌체, 베키오궁 천장화
 
 
 

엘레오노라는 메디치가의 피렌체 공작 코지모 1세의 부인입니다. 16세기 중엽 피렌체 정치는 여러 면에서 이전 르네상스시대와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공작은 곧 이 지방의 주인이었으며 정치면에서만이 아니라 경제, 문화, 모든 것을 지배하여서 도10에서 보듯이 자신을 신격화 할 수도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국제 정세에서의 피렌체는 오히려 약세였으니 이러한 신격화는 과시에 불과했습니다. <코지모 1세의 신격화>(도10)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가 주문한 미술들은 대부분 정치 선전의 도구였습니다. 사회는 경직되고, 이에 따라 미술은 겉과 속이 다른 괴리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매너리즘을 연구한 아놀드 하우저는 이 시대의 미술을 사회적인 정신분열의 증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회화에서 본 바와 같은 변형과 해체의 현상은 건축과 공예부분에서도 많이 보입니다. 줄리오 로마노(Giulio Romano: 1499-1546)가 설계한 팔라쪼 두칼레 (Palazzo Ducale)(도11)를 보면 기둥 양식은 나선형으로 변형되고 팀파늄 또한 해체된 모습입니다. 건축가이자 미술에 관한 글을 많이 쓴 주카리(Federico Zuccari: 1540-1609)는 미술에서 환상(fantasy)을 강조하였는데 실제로 그가 설계한 주카리 궁(宮)의 문과 창문은 거대한 괴물의 입 모양으로 되어있습니다(도12). 도13에서 보는 이미지는 어떻습니까?(도13,14) 옆으로 길게 늘어진 변형된 인물 형상이죠. 정상적인 비례의 형상이 되게 하려면 옆으로 비스듬히 놓아야 합니다.

 

도11 줄리오 로마노 <팔라조 두칼레>
 
 
 
도12 페데리코 주카리, <팔라제토 주카리>의 창문 부분
1593년, 로마
 
 
 
 
 
 
 
 
도13 윌리엄 스크로츠 <에드와르도 6세의 초상>
1546년, 나무에 유채, 54.2×160㎝, 런던, 내셔널 갤러리
 
 
도14 도13을 비스듬히 본 모습
 
 
 
 

 

매너리즘 현상은 이 시대의 베네치아와 스페인 미술에서도 두드러집니다. 틴토레토(Tintoretto(일명, Jacopo Robusti:본명): 1518-94)가 그린 <최후의 만찬>(도15)은 베네치아의 산 조르지오 마조레(San Giogio Maggiore) 교회에 걸려있는 거대한 캔버스화 입니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9주 주제2 도9)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틴토레토의 작품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식탁은 대각선으로 놓여있고, 예수와 사도들 보다 이들의 식사를 시중들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번잡스러움이 화면을 지배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임을 알아보게 하는 요소는 번쩍이는 두광의 빛입니다. 예수의 두광은 마치 자체가 빛을 발하는 힘이 있는 듯 하며, 제자들의 두광은 화면 왼쪽 위의 등불에서 발하는 빛의 역광인 듯 처리하였습니다. 빛의 원천이 뒤에 있기 때문에 인물들은 모두 어둡고, 따라서 표정을 알기 어렵습니다. 인물의 역할보다는 빛이 화면의 효과를 좌우합니다. 어두운 부분은 거의 색채가 없는 듯 검은 색이며 밝은 부분은 섬광이 빛나듯 즉흥성이 번뜩이고, 등불의 빛이 번져 나가면서 형성하는 천사들의 환영은 초자연적인 신비감마저 조성합니다.

 

도15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94년, 캔버스에 유채, 363×568cm
베네치아, 산 조르지오 마죠레
 
 
 

틴토레토는 잠시 티치아노의 제자였지만 일찍 헤어졌으며, 그들의 불화는 오래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보면 티치아노의 전통이 역력하며, 자신 또한 티치아노의 색과 미켈란젤로의 드로잉을 결합하겠다고 공언하였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16세기 화가들은 인체묘사력을 중요시한 피렌체 회화의 장점과 색채와 빛을 중요시한 베네치아 회화의 장점을 적극 수용하고, 융화시키고, 또 변형시킨 것입니다.

 

 

 

스페인의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 또한 당시 화가들의 이러한 의식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스의 크레타 섬 출생으로 베네치아(1566-70 체류)와 로마(1570-76 체류)에서의 체류는 그의 화업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576년 로마에서 아마도 그림 주문을 계기로 스페인의 톨레도(Toledo)에 간 그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곳에서 제작하면서 실로 획기적인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게쎄마니에서의 기도>(도16)와 <톨레도 풍경>(도17)을 보겠습니다. <게쎄마니에서의 기도>는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예수가 공포와 번민에 싸여있는 순간의 기도입니다. 데리고 간 세 제자는 잠에 빠져 예수와 함께 깨어있지 못하였으며 이때 이미 유다는 로마인들에게 예수가 있는 곳을 알려준 순간이었습니다. 엘 그레코는 기도하는 예수에게 붉은 옷을 입혀 크게 중앙에 놓고, 왼쪽엔 잠에 빠진 제자들, 오른쪽엔 로마 군인들을 희미하게 암시하였습니다. 길게 늘어트린 인물의 비례와 명암의 강한 대비, 마치 초점이 없는 듯 흐릿하고 어긋난 윤곽선들, 빠른 필체 등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매너리스트들의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엘 그레코는 더욱 혁신적입니다. 그는 사물을 배치하는데 있어서 현실의 고정관념을 거의 무시하고 있습니다. 예수와 천사의 관계는 공간적으로 매우 애매하며, 잠든 세 제자가 있는 곳은 마치 동굴 속 같기도 하고 공기의 막에 싸여있는 듯 비현실적입니다. 그리고 푸른 달무리와 밤하늘의 구름은 환상적인 느낌을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도16 엘 그레코 <게쎄마니에서의 기도>, 1588년경
캔버스에 유채, 104×117㎝, 오하이오, 톨레도, 톨레도 박물관
 
 
 
 

 

<톨레도 풍경>(도17)은 인물 형상이 없어서 표현력이 더욱 큰 것 같습니다. 엘 그레코가 이미 이전 그림들의 배경으로 여러 번 사용한 (예를 들면 암스텔담 왕립 박물관 소장의 <십자가에 고통받는 예수> 1585-90) 이 모티브를 독립된 풍경화로 그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 풍경의 종말론적인 분위기에 애착을 지니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짙은 먹구름 아래에서 번개 빛에 실루엣을 드러내는 음산한 언덕과 건물들, 빛의 흐름만이 번쩍이는 검은 하늘은 거의 추상화 같습니다. 중세 종교화가 지닌 영적인 힘과 현대의 추상회화가 만난 듯한 표현력이지요.

 

도17 엘 그레코 <톨레도 풍경>
1600-10, 캔버스위에 유채,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지금까지 주로 회화를 중심으로, 매너리즘 미술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지금부터 400-500년 전의 그림들이 이렇게 혁신적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십니까? 이 시대 미술들이 지닌 변형, 왜곡, 일탈의 특성들은 20세기 말 현대 미술의 특성이기도 하여서 이들을 낳은 현대 사회와 16세기 사회의 공통성을 찾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당연히 매너리즘의 근본 원인은 16세기 사회의 변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4세기에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1000년이 넘게 확고한 틀을 유지해 온 카톨릭은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정통성을 도전 받았으며, 지리상의 발견과 지동설의 학설은 유럽인들이 믿고 있었던 정신적 기반을 뿌리 채 뒤흔드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이 믿던 중심은 해체되고, 이제 이 시대의 새로운 언어를 찾게 된 것입니다. 매너리즘은 그 소산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원동력으로 17세기 바로크미술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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