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르네상스미술에서 북유럽(지도)이라고 일컫는 지역은 알프스 산맥 북쪽을 말합니다. 현대의 벨기에와 네델란드 지역인 플랑드르와 독일지방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이번 주제3에서는 플랑드르 지역의 15세기 미술을 살펴보겠습니다. 플랑드르 지방은 모직공업과 국제 무역으로 경제활동이 크게 부흥하였고 이와 함께 부유한 시민계급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들의 주문으로 이루어진 미술은 이전 귀족 계급의 미술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면서 종교화임에도 현실이 사실적으로 반영된 새로운 미술을 발달시켰습니다. 이 시대의 이탈리아 회화는 원근법이나 명암법, 고전의 발견 등 이론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회화의 가치를 높인 반면 플랑드르 회화는 여전히 고딕전통을 오래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사회는 신흥 시민계급이 사회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분이 중요한 정치구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나 광장과 같은 대중공간을 위한 거대한 규모의 미술품이 제작된 데 반해 정치적인 힘보다는 실질적인 경제력이 우선하였던 플랑드르 지역의 미술은 비교적 소품이며, 사적이고, 친밀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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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15세기 초 귀족미술의 대표적인 예를 살펴보는 것은 이 시대 미술을 아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지만 이후 시민계급미술이 얼마나 혁신적인지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플랑드르 출신의 필사본 화가 랭브르 형제(Limbourg Brothers, Herman, Jean, Paul: 1370/80년경-1416년)는 베리 공작(Duc de Berry)의 미술품 제작에 종사했습니다. 그들이 공작을 위해 그린 <가장 호화로운 기도서>(도1,2)는 크기가 22.5×13.6cm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기도서로써 12달의 생활을 글과 그림으로 나타낸 책입니다. 그 중 5월은 사랑의 축제로 그려졌습니다(도1,2). 5월의 색채인 녹색 옷을 입은 여인들과 호화로운 옷을 입은 남자들이 야외로 나가고 있으며 그들의 앞에는 음악대들이 축제의 흥을 돋우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마 1400년과 1410년에 결혼한 베리공작의 딸과 아들인 듯하여, 멀리 보이는 城은 그들이 결혼식을 행하였던 파리의 시테궁(Palais de la Cite) 이라고 짐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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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 랭브르 형제 <가장 호화로운 기도서> 5월 |
1412-16년, 필사본 그림, 22.5×13.6cm |
샹틸리, 콩데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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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2 도1의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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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3 랭브르 형제 <가장 호화로운 기도서> 9월 |
1412-16년, 필사본 그림, 22.5×13.6cm |
샹틸리, 콩데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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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4 도3의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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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포도수확이 한창인 과수원과 그들의 주인이 살고 있는 하얀 성(城)으로 그려졌습니다(도3,4). 포도를 따고, 게걸스럽게 먹으며, 마차에 실어 나르는 농노들의 모습은 그로테스크 할 정도여서 5월에 묘사한 아름다운 궁정인들과 너무나 큰 대조를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거둬들인 수확물은 모두 城으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성벽으로 굳게 둘러싸인 하얀 성은 너무나 환상적이어서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귀족과 농노계급으로 대변되는 중세 말의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지요. 5월의 장면에서 본 바와 같은 이 시대의 화려한 궁정미술을 우리는 국제 고딕양식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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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물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상징의 이중성, 그리고 주문자의 강조는 15세기 후반 후고 반 데르 고스(Hugo van der Goes: 1440-82)의 그림에서도 더욱 매력적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회에 놓여있던 세 폭 제단화는 평소에는 양 날개패널을 닫아놓았다가 미사나 특별한 행사 때 열게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엔 마치 대리석 조각 같은 도13의 모습으로 놓여 있다가 행사 때는 도14의 화려하고 장대한 광경으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의 전개는 성경이야기의 전개와 맞물립니다. 즉 수태고지를 바라보고 있다가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이어지며, 이를 바라보는 관람자는 주변의 목동과 주문자 가족, 그들의 수호 성인과 모두 함께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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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3 후고 반 데르 구스 <포르티나리 제단화> 양쪽 패널을 닫았을 때의 모습 |
1475-76년경, 253×282cm, 피렌체, 우피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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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쳤을 때의 모습(도14)을 봅시다. 원근법적인 회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일관성 없는 인물의 비례에 당혹감을 느낄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거대한데 앞에 있는 천사는 작으며, 이들의 뒤에 있는 목동은 또 다시 크게 그려졌습니다. 양 옆 날개 패널의 앞 부분에 그려진, 이 그림의 주문자 포르티나리 가족은 작고 그들 뒤에 그려진 이들의 수호성인들은 거대합니다. 그리고 원경으로 이어지는 배경의 인물들은 또 다시 아주 작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보다 반세기 전에 그려진 얀 반아이크의 <롤랭수상의 성모상>(10주 주제3, 도9)에서 후원자가 크게 그려진 것과 비교한다면 이 그림은 마치 중세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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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4 후고 반 데르 구스 <포르티나리 제단화> 양쪽 패널을 펼쳤을 때의 모습 |
1475-76년경, 나무패널에 유채, 가운데 패널 253×304cm, 양쪽 패널253×141cm, 피렌체, 우피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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