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panda78 > 서양미술사 11 - 그리스 미술의 수용과 로마의 특성

기원전 146년 로마가 그리스의 코린트 지역을 점령한 이후 지중해 지역은 사실상 로마의 영토가 되어갔습니다. 로마시의 티베리나섬에서 부터 시작한 로마 민족은 이제 제국으로 성장해 간 것입니다(도1). 원래 호전적이었던 로마민족은 그리스의 발달된 문화를 적극 받아들여서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변형시켰습니다. 비너스와 마르스의 상에 얼굴만 초상으로 바꾸어 부부의 초상을 만든다든지(도2), 그리스 신전형식을 받아들이면서 그리스인이 중요시하던 조화로운 비례감은 무시하는 등의 현상에 대해서 고대전공의 초기 미술사학자들은 그리스 미술을 망쳐놓았다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러나 문화의 현상은 한가지 기준으로 우열을 가리기보다 각 사회의 요구에 의한 생산임을 자각한 이후의 학자들은 로마미술의 특성을 찾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로마미술은 실용성과 현실성, 그리고 이야기 서술을 중요시 여긴 것입니다. 이제 건축과 조각, 회화의 작품을 예로 로마인들이 그리스 미술을 어떻게 수용하고 변형시켰는지 살펴봅시다.

 

도1 로마의 티베리나 섬
 
 
 
도2 비너스와 마르스 상으로 나타낸 부부초상
대리석, 높이216cm, 오스티아출토
로마 국립박물관 소장
 
 
 

모든 신들에게 바쳐진 판테온 신전(Pantheon=Pan모든+Theon신들)(도3), 의 정면은 기단부 위에 열주와 삼각형 팀파늄을 얹은 그리스 신전의 형식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리스의 신전과 비교해 보면 열주는 너무 가늘고 팀파늄은 지나치게 커서 그리스 신전이 지닌 조화로운 비례는 찾아볼 수 없으니 로마인은 美의 요소는 빠뜨린 채 형식만 가져온 셈입니다. 그러나 판테온의 전체구조를 보면 로마인은 현관만 그리스 신전형식으로 장식하였을 뿐 내부는 완전한 구(球)의 단일 공간으로 설계하였습니다(도6). 그리스 신전은 내부를 닫고 외부에서의 시각적 효과를 중요시여긴 건축인데 반하여, 로마의 판테온은 내부를 실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건축인 것입니다.

 

도3 판테온 신전, 2세기 초, 로마
 
 
 
도.4 파르테논 신전, 기원전 5세기, 아테네
 
 
 
도5 도3의 로마 당시로의 복원 모형
 
 
 
도6 도3의 내부
 
 
 
 
 

도7의 조각상은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상입니다. 우리가 그리스 조각의 전형으로 본 <창을 들고 가는 사람>(도 8)과 비교해 보면 로마인들이 그리스 미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금새 알 수 있습니다. 즉 몸의 포즈와 형태를 그대로 수용한 채 아우구스투스의 갑옷을 입히고, 익명의 얼굴이었던 그리스 두상자리에 초상을 넣음으로써 황제의 상으로 바꾸었으니 필요에 의한 변형인 것입니다.

 

도7 <프리마 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상>
14-29년경, 대리석, 높이204cm
바티칸, 키아라 몬티 박물관
 
도8 <창 들고 가는 사람>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원형의 기원후 1세기 로마 복제품
 
 
 
 

회화의 예도 살펴봅시다. 지난주에 본 바와 같이 그리스의 고전기와 헬레니즘 시기에는 벽화 등의 대형회화가 크게 발달하였으나 본토에 있던 원작은 거의 소실되었습니다. 반면에 이를 받아들인 로마의 회화는 많은 부분이 보존되어 있어서 그리스 회화의 성격을 짐작케하며 또한 로마인의 다양한 수용형태를 보여줍니다. 도9와 도10은 모두 미노스 궁전에 갇혀있던 아테네인들을 아테네로 구출해 온 영웅 테세우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이 보기엔 어떻습니까? 같은 주제이고, 테세우스가 한 가운데 있는 같은 형식이지만 차이가 있죠? 그럼 어떤 그림이 더 마음에 듭니까? 제가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물으면 대부분이 도9의 그림을 선호하더군요. 그도 당연한 것이 남자 인체를 훨씬 아름답게, 그리스 조각에서 본 모델같이 묘사하였죠. 이에 비교해 볼 때 도10의 인체는 어깨가 너무 내려오고, 상체가 너무 길고, 허리와 다리를 잇는 고관절의 묘사가 약합니다. 실제 인체에 더 유사할 지는 모르지만 아름답지는 않죠. 그러나 조금 관점을 달리하여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봅시다. 왼쪽의 그림은 테세우스라는 한 영웅을 강조할 뿐이지만 오른쪽 그림은 그가 구한 아테네 시민들에게도 큰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에 더 충실하다고 할 수 있죠. 로마인들은 그리스 신화나 역사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때론 그리스 화가를 데려오기도 하고, 혹은 그 그림을 보고 로마의 화가가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두 그림은 모두 기원 후 1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도9의 <테세우스>는 로마의 행정장소였던 에스퀼리노 언덕에서 발견되었고, 도10의 <테세우스>는 폼페이의 개인집에 그려진 것이어서 전자는 좀 더 공적인 장소에, 후자는 개인적인 공간에 그려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초기 황제시대엔 공적인 목적에선 그리스 문화를 더 많이 수용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합니다. 또한 전자는 그리스 화가가 와서 그린 것이라면 후자는 이를 보고 로마 화가가 그린 것 일 수도 있습니다. 위의 세 비교를 통해 로마인은 실용적이고, 현실적이었으며 또 미화된 한 주인공보다는 이야기 서술을 선호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도9 <아테네인을 구하는 테세우스>
60-79년경, 프레스코화, 높이190cm, 에르콜라노 언덕 출토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도10 <아테네인을 구하는 테세우스>
60~79년경, 프레스코화, 폼페이가비우스 루푸스집 출토
나폴리 국립고고학 박물관
 
 
 

한 두 가지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도11의 부조는 오스티아(Ostia)도시의 가게 간판이었습니다. 무엇을 파는 가게인지 금방 알 수 있겠죠? 아래쪽엔 토끼가 갇혀있고, 위엔 닭 같은 것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닭과 토끼 등을 파는 곳이었겠지요. 그럼 도12의 그림은 무슨 가게의 간판일까요? 시원한 음료와 과일이 있는걸 보니 아마 간이 음식점이라고 짐작됩니다. 작은 테이블은 옆에서 보고 컵은 약간 위에서 보고 그린 것이어서 마치 엉터리 같이 느껴지죠. 그러나 그런 점은 오히려 의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컵을 옆에서 보면 사다리형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로마의 미술은 이렇게 아름다운 형태보다 직접적인 전달력을 중요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11 <야채와 닭을 파는 집 간판>, 2세기 후반, 폭55cm, 대리석, 오스트리아박물관
 
 
 
 
도12 <간이 음식점 간판>, 1세기, 프레스코화, 폭105cm, 오스티아의 비아 디 디아나 현장
 
 
 
 
 
 

도13의 부조도 로마인의 성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 부조는 도14의 무덤 제일 윗부분에 새겨진 것입니다. 무슨 장면이냐고요. 자세히 보십시요. 맨 오른쪽에서부터 보면 나귀가 돌리는 방아가 보이고, 그 왼쪽 상 위에서 두 사람이 무언가 만들고 있습니다. 밀을 가루로 만들어 반죽하고, 그 왼쪽의 오븐에 넣어 빵을 만드는 장면입니다. 이 무덤은 빵제조업자 비르질리오스 에우리사세스(M. Vergilius Eurysaces)의 무덤입니다. 빵 굽는 이를 미화시키지 않고 자기 직업을 그대로 묘사한 것입니다. 로마인의 현실적인 성격도 놀랍지만 이 무덤이 서울로 말하면 4대문 안에 놓여있었다는 사실도 또한 놀라운 일입니다(도15). 그리스인들이 죽은 이를 승리한 운동선수(도16)나 용감한 기병(도17)으로 미화시키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로마인은 묘비에 자신의 직업을 그대로 <빵 굽는 이>(도13)나 <배 만드는 이>(도18)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인의 이러한 현실적인 사고 방식은 미술사에 커다란 두 가지 업적을 남겼습니다. 하나는 황제의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이고, 다른 하나는 초상조각입니다.

 

도13 <빵제조업자 M.베르질리우스 에우리사세스의 무덤 윗부분>
1세기말, 대리석, 로마, 프레네스티나 가,
 
 
 
 
도14 <빵제조업자 M.베르질리우스 에우리사세스의 무덤>
1세기말,대리석, 로마, 프레네스티나 가
 
 
도15 <포르타 마죠레>
오른쪽 아래가 도14의 무덤
 
 
도16 <승리한 우동선수>, 기원 전340년경,

높이168cm, 아테네, 대리석

아테네에서 출토된 묘비석
국립고고학박물관
 
도17 <용감한 기병>, 높이175cm
대리석, 아테네 출토
댁실레오스의 묘비석
페라메이코스 박물관
 
도18 <푸블리오 농기디에노 家 의 묘비>
1세기, 전체 높이266cm의 부분, 대리석
라벤나 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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