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panda78 > 서양미술사 9 - 그리스 : 남성상, 여성상

그리스의 도시 아테네시내에는 고대 아테네 도시엔 남성 조각상이 즐비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사회의 모범자들의 상입니다(도1).

 

도1 아테네 조각상 설치 상상도
 
 
 
 
그리스 조각에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운동경기자의 상일 것입니다. 미론의 원반던지는 사람은 완벽하게 단련된 인체와 그 균형을 이루는 운동감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도2).

 

도 2 미론<원반던지는 사람> , 로마시대 복제품
기원전 450년경, 높이155cm, 로마 국립박물관
 
 
 
 
 

그리스 교육기관 중 가장 중요한 김나지온(gymnasion)은 운동을 통하여 육체를 단련하는 곳으로 원래의 뜻은 '사람들이 나체로 다니는 장소'를 말합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믿은 그리스인에게 건장한 몸 만들기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어서 실제로 근육이 완벽하게 갖춰진 건장한 인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그리스의 아름다운 남성 누드상은 이러한 사회 속에서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을 것입니다.

 

 

운동경기의 승리자라고 짐작되는 <크리티오스의 소년상>(도3)은 아마 그리스 조각 중 가장 사랑 받는 걸작 일 것입니다. 아직 완숙되지 않아서 더욱 아름다운 소년 상입니다. 가슴과 배의 근육은 마치 살아 있는 조직처럼 느껴집니다. 그리스 당시 가장 유명한 남성상은 폴리클레이토스(Policleitos)가 제작한 <창을 들고 가는 사람>(도4)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원작은 소실되고 로마시대의 대리석 복제만 전해지고 있습니다(도4). 흔히 복제본이 그렇듯이 근육의 묘사가 원작보다 과장되었겠지만 전체구조나 비례는 원작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도 3 <크리티오스의 소년상>
기원전 490∼480년경, 대리석, 높이 86cm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도 4 폴리클레이토스, <창을 들고 가는 사람>,
로마시대 복사품, 원작 기원전 440년 경, 높이 199 cm,
나폴리, 국립박물관
 
 
 

무게중심을 오른쪽 발에 싣고 다른 한발은 힘을 빼어서, 힘이 실린 다리의 엉덩이가 올라가고, 반대로 어깨는 왼쪽 어깨가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머리는 오른쪽을 향하게 됩니다. 따라서 전체의 구조는 S자의 좌우를 바꾸어 놓은 것 같은 자연스러운 자세입니다. 콘트라 포스트라 부르는 이러한 자세는 하나의 전형이 되어 지금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폴리클레이토스는 남자의 입상을 제작하는데 엄밀히 계산된 비례 수치를 적용하였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잘 만든 조각 작품은 머리카락 굵기의 오차 안에서 계산된 수많은 측량의 결과"라고 말하였는데 그가 완성한 캐논(canon:규범) 은 이러한 수학적 법칙에 근거하였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그의 저서『캐논』은 이름만 전해 질 뿐이어서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법칙이 매우 다양하게 이용되었다는 사실에서 미루어보면 그의 규범은 이집트 조각에서 적용된 경직된 법칙과는 달리, 매우 유연한 비례법칙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즉 신체의 한 부분은 다른 부분과의 관계 속에서 조화로움을 이루는 유기적인 비례입니다.

 
그럼 건장한 남자의 신체에서 완전한 아름다움을 찾는 그리스의 미적 감각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요. 인간을 만물의 척도라고 본 그리스인들이 인간의 신체에서 아름다움의 규범을 찾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발상이며, 신체라는 자연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자연 모방론과도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왜 남녀노소의 많은 신체 중에 건장한 남자의 몸을 기준으로 삼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현대의 학자들은 그리스의 경우 나체 또한 의상의 한 형식이었다고 말합니다. 즉 나체는 노예와 구별되는 시민으로, 여자와 구별되는 남자로, 김나지움에서 사교와 운동에 전념하는 특권자의 의상이었던 것입니다. 건장한 신체는 그리스 소년들이 도달해야 할 이상이며 거의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체숭배는 전쟁에서의 승리, 운동에서의 승리를 최고의 미덕으로 꼽는 그리스 사회에서 길러진 이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남자 누드상에 비교해 볼 때 그리스 조각에서의 여자 누드상은 제한되었으며 시기적으로 매우 늦게 기원전 4세기에 이르러야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원전 7-6세기의 코레상들은 모두 옷을 입은 여성상이었습니다. 기원 전 5세기경에 제작된 반나의 여성상 또한 라피타이족의 신부나 니오베의 딸, 아마존(도5)등 모두 부정적 역할의 여성상임을 감안한다면 프락시텔세스의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도6,7)는 거의 충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손으로 음부를 가리고 수줍은 듯 상체를 숙인 포즈는 당당한 남성상과 크게 대조됩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보는 이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아름다운 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은근한 눈빛으로 관능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창을 들고 가는 사람 >(도4)을 제작한 지 100여 년 후인 기원전 350년경, 프락시텔레스가 이상을 제작하였을 때, 이 상은 제작 자체가 이미 일종의 '사건'이었습니다.
 

로마인 플리니우스는 프락시텔레스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프락시텔레스는 2개의 아프로디테 상을 만들었는데, 하나는 옷을 입은 채로, 다른 하나는 완전한 누드로 제작하여 동시에 같은 가격에 내놓았다. 우선권을 가진 코스(Kos)인들은 '격식 있고 정숙하기 때문에' 옷을 입은 아프로디테를 선택하였고, 크니도스(Knidos)인들은 나머지 여인상을 차지하였다.  

 

도 5 <부상당한 아마존 전사>
기원 전 440∼430년경에 제작된 그리스
원본의 로마시대 복제품,
대리석 높이 203.8cm
뉴욕 메트로 폴리탄박물관
 
도 6 프락시텔레스<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기원 전 350년경, 로마시대 복제품, 대리석,

높이 205cm, 로마 바티칸 박물관
 
 
 
도7 뒷면
 
 
 
 
 

 

 

옷을 벗은 아프로디테가 유명하게 되자 코스의 니코메데스 왕은 크니도스인들의 엄청난 부채를 삭감해 줄 것을 약속하면서 이 상을 다시 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크니도스인들은 단호히 거절했고, 이 상은 크니도스를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를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크니도스로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상을 안치하였던 신전은 이 상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열린구조의 원형으로 세워졌습니다(도8, 9).

 

도 8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신전> ,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가 티볼리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 복원, 2세기 A.D.
 
 
 
 
 
도 9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신전 상상도
 
 
 
 
 
 
 

기원 후 2세기에 씌어진 또 다른 여행기에 의하면, 이 자그마한 신전의 경내에는 향기로운 과수가 그득하고 은매화가 피어난 정원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점은 신전 안에 신상을 모신 것이 아니라, 프락시텔레스의 뛰어난 조각상품 모시기 위하여 신전이 지어지고 정원이 꾸며 졌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여신의 종교적 존재는 사라지고 유명한 작가의 걸작이 감상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감상은 매우 관음적이었습니다. 로마의 수사학자 루치아노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당시 아프로디테의 조각상에는 남성들의 '정액'으로 얼룩진 흔적들이 있었으며, 그것이 또한 볼거리였다고 합니다. 프락시텔레스의 아프로디테는 여성의 은밀한 부분을 가리는 포즈로 만들어져 그녀가 남자 관람자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음을 표현합니다. 이 조각상은 여성의 몸을 '남성적 응시'의 대상으로 삼은 오랜 서양미술사 관행의 첫 단추였습니다. 부끄러운 듯 가리면서 오히려 남성의 시선을 끄는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자세는 끊임없이 변조되면서 서양미술사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도10, 11).

 

도10 카피톨리노의 <아프로디테>
 
 
 
 
 
도11 카노바, <아프로디테>, 1804∼1812년, 높이 172×5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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