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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아르카익 시대에 만들어진 쿠로스상들은 신전 안에 모셔진 신들에게 봉헌하는 상이거나 무덤의 표시였습니다. 사모스 섬에서 몸통만이 출토된 아래 쿠로스상의 허벅지에는 "레우키오스가 나를 아폴론에게 바쳤다"라고 새겨져 있어 이 상이 신에게 봉헌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도6). 아나비소스의 쿠로스(도8) 좌대에는 "여기 죽은 크로이소스의 무덤에 서서 그를 가엽게 여기라. 그가 전장에서 싸운 것 같이 아레스를 전멸시켜 그를 분노케 하였노라"라고 쓰여있습니다. 이 조각상은 무덤에 세워져 있어서, 지나는 이로 하여금 멈춰 서서, 이 상을 보고, 명문을 읽어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게 하는 매개체였습니다. 전쟁으로 죽은 주인공은 비록 땅 속에 묻혔으나 조각을 통하여 이러한 젊은이로 존재케 하려는 그리스인들의 바램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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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6 사모스섬 출토 쿠로스 |
기원 전 575-550년경, 높이 100 cm |
바티, 사모스, 고고학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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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7 테네아 쿠로스 |
기원 전 6세기 중엽 |
바비에라의 모나코, 글립토테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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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8 <아나비소스의 쿠로스> |
기원 전 530년 경, 높이 194 cm |
아테네, 국립 고고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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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쿠로스보다 약 반세기 후에 제작된 아나비소스 쿠로스는 인체묘사에서 큰 발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도8). 우선 머리를 작게 함으로써 전체의 인체비례는 8등신에 가깝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 묘사에 의존하던 뉴욕 쿠로스와는 달리 정확한 살붙임으로 뺨과 턱뼈가 해부학적으로 정교해졌을 뿐 아니라, 도식적이던 가슴묘사도 탄력 있는 근육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우리는 위의 네 상을 보면서 아르카익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묘사하고자 하는 인물이 아폴로 신이거나, 봉헌자거나, 심지어는 전장에서 죽은 병사이거나 상관없이 모두 젊고 이상적인 신체의 누드상으로 묘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제작된 수많은 남자 누드상을 보면서 우리는 이 시대 그리스인들이 지향하던 도덕적인 이상을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들은 사회적 권위의 옷보다는 누드의 남성성 자체를 숭상하였으며, 또한 그들이 숭상하는 이상적인 인간은 젊고 생명력이 넘치나 또한 절제된 남성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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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코레보다 1세기 뒤에 제작된 일명 페플로스을 입은 코레(도10, 11, 12)는 같은 유형의 여자 봉헌자상이지만 니칸드레의 코레보다 훨씬 사실적입니다. 밝게 미소지으며 왼손의 물건을 봉헌하는 매력적인 코레는 채색된 흔적을 지니고 있어서 원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합니다(도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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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2 <페플로스를 입은 코레> |
기원 전 530년경, 채색 대리석, 높이 120 cm |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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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3 키오스의 코레 |
기원 전 520년경, 높이 55.3cm |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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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이 남아 있는 코레에서 우리는 화려한 장신구와 잔주름이 많은 아름다운 의상을 복원해 볼 수 있습니다. 키오스에서 출토된 코레(도13)에서도 보듯이, 머리장식과 귀걸이, 목걸이로 아름답게 꾸미고 한 손엔 언제나 봉헌물을 지닌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여성상은 젊은 신체로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냈던 남성상과 여러모로 비교됩니다. 이러한 차이에서 우리는 그리스 사회에서 남자는 젊은 청년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반면, 여자는 니칸드레 코레의 명문에서 보았듯이 자신의 이름보다는 아버지의 딸로, 오빠의 누이동생으로 그리고 남편의 아내로 존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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