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panda78 > 서양미술사 7 - 그리스 : 도시와 신전 건축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위기 때 함께 대처하고, 같은 수호신을 모시는 공동체였습니다. 따라서 고대 신전은 신을 모시는 공간이었을 뿐 아니라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 즉 애국심을 결성하는 공공의 장소였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의 도시와 신전, 그리고 정치는 서로 복합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신전은 산 속이나, 바닷가, 혹은 시장이나 극장이 이뤄진 도시의 한 가운데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어디에 세워지건, 신전은 언제나 시민의식의 지향점이였으며, 그리스인들은 신전의 건축과 조각을 통해 국가의식을 공유하고 과시하였습니다.

최근의 미술사 연구는 미술을 독립적으로 다루기보다 정치,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그 참 모습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수업에서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통해 신전과 정치의 관계를 추정하겠는데, 그러기에 앞서 새로운 형태를 위한 건축가들의 창안과 경쟁적인 노력을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그리스 건축이라 하면 당연히 신전의 기둥 장식에 따라 도리아식(도1, 4), 이오니아식(도2, 5), 코린트식(도3, 6)과 같은 세 가지 양식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고대 건축에 있어서 柱式 (order)이 단순히 주두장식의 차이만을 일컫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이러한 양식의 차이에 따라 각 부분의 비례와 조각의 배치 방법들까지 달리하였습니다.

도1 도리아식 주두
기원 전 447-438년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도2 이오니아식 주두
프리에네의 미네르바 폴리스
 
 
 
도3 코린트식 주두
로마 파르테논 신전
 
 
 
도4 도리아식 주두
기원 전 450년 경,
실라로의 보물창고, 파에스툼
 
 
도5 이오니아식 주두
기원 전 500년 경
아테네, 페스토 박물관
 
 
도6 코린트식 주두
기원 전 4세기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아래 두 신전의 외양을 비교해 봅시다. 그리스 북방 도리아민족이 가져온 도리아식은 육중하고 단순한 반면(도7), 해양민족이었던 이오니아에서 유래한 이오니아식은 가늘고 경쾌합니다(도8). 두 양식은 그리스 본토에서 융화되어 기원전 5세기경엔 같은 신전에 함께 쓰이기도 하며, 더 화려한 코린트 양식이 창안되기에 이릅니다.

 

도7 도리아 신전, 헤라신전( 포세이돈 신전으로 알려져옴 )
기원전 460년 경, 이탈리아 파에스툼(고대 그리스 식민지)
 
 
도8 이오니아식 신전, < 에렉트레티움 >
기원전 421-405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민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두 양식과는 달리 코린트 양식은 코린트 지방의 한 건축가가, 이오니아 주두가 땅에 떨어져 무성한 아칸투스 잎으로 둘러싸인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창안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도3, 6). 이 외에도 긴 드레스를 입은 여성상이 무거운 건물을 떠받들고 있는 모양의 기둥인 카리아티드양식도 있습니다(도9). 이 양식의 기원에 대해서 카리아티드 도시를 무찌른 후 여자들을 노예로 삼았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 전해져 오기도 하지만, 글쎄요, 크게 설득력이 있는 근원은 아니라고 봅니다.

 

도9 에렉테이온, 기원전 421-405년 경,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같은 방식의 신전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양식이 변한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기원전 6세기와 5세기의 도리아식 신전을 비교하면 6세기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박공과 엔타블라처가 전체 높이의 거의 반을 차지하는데(도10) 이에 비해 기원전 5세기에 지어진 파르테논 신전에선 그 부분의 비중이 적어지고 기둥이 높아졌고, 기둥사이의 간격도 넓어졌기 때문에 훨씬 조화롭게 느껴집니다.(도11).

 

도10 아르테미스 신전 정면도면, 기원 전 6세기 초
 
 
 
도11 파르테논 신전 정면도면, 기원 전 447-438년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자리 잡은 흰 대리석의 파르테논 신전은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답습니다(도12, 13). 많은 학자들이 이 건축물에서 황금분할 비례를 찾아내어 이를 규범화했으며 그리스 고전기의 가장 훌륭한 신전이라고 칭송하여 왔습니다.

 

도12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전경
 
 
 
도13 파르테논 신전, 기원 전 447-438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이 우리 눈에 균형 있게 보이는 데는 건축가의 섬세한 계산이 있었던 결과입니다(도14). 건축가는 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가늘게 보이는 착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기둥에 배불림(엔타시스)을 주고 기둥 윗부분을 조금 안쪽으로 기울여 안정감 있게 보이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도14 파르테논 신전 정면, 기원전 447-438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지금은 관광유적일 뿐이지만, 기원전 5세기의 당시를 상상한다면 아테네의 모든 시민이 줄지어 신전에 봉헌하며, 범 아테네 축제를 벌이는 모습이 실로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 곳은 종교적인 역할을 넘어 도시국가(police)로서의 공동체를 인식하는 정치적인 공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은 그리스 연맹이 페르시아에 승리한 후, 연맹을 주도하던 아테네가 정치력을 확고히 하려는 의도에서 추진하였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이같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연맹의 군자금까지 전용했다고 하는데, 아테네가 신전의 건축과 조각에 이렇듯 큰돈을 들인 것은 미술이 민심을 결집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위치와 신전 안팎의 조각들을 살펴보면 신전의 정치적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전은 아크로폴리스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도시의 어디에서나 보이며 사방의 길이 이 곳을 향하게 되어 있어서 파르테논 신전은 당시 아테네 사회의 중심이었습니다.

 

도15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전경
 
 
 
 
 
 

신전 안에 모셔 놓았던 아테네 파르테노스(순결한 아테네)상은 비록 실물이 남아있지 않아 작은 모형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으나 원래의 높이는 12m에 달하는 실로 거대한 상이었으며, 아테네상의 옷을 장식하는 데만 1144Kg의 금을 사용하였다고 하니 화려했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도16). 순결을 상징하는 파르테노스상 임에도 불구하고 아테네 여신은 여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투구 양쪽엔 날개 달린 말이 달려있고, 아이기스 갑옷엔 무서운 고르곤이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창과 방패는 물론 이려니와 오른손엔 승리의 신 니케를 들고 있습니다. 아테네는 이 도시의 초월적인 보호자인 것입니다.

 

도16 피디아스, < 아테네 파르테노스 > 복원모형
원작품 기원전 438년 경, 토론토, 온타리오 왕립박물관 제작
 
 
 
 
 

건축안쪽의 이오니아식 프리즈에는 범아테네 (판 아테네)지역 축제에 참가하는 봉헌자들의 긴 행렬이 새겨 있습니다(도17). 이들 중엔 기마병과(도18), 물동이를 이고 가는 봉헌자(도19), 제물로 바칠 양과 소를 데려가는 봉헌자도 보입니다(도20).

 

도17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서쪽 파사드, 내부의 프리즈
 
 
 
 
도18 파르테논 신전 내부 프리즈 , 행렬중 < 말탄 사람>
 
 
 
도19 파르테논 신전 프리즈 <물동이를 들고 가는 봉헌자들 >
 
 
 
도20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프리즈 <양을 바치는 사람들 >
 
 
 
 
 

그들의 의도는 건물의 외부의 장식에 더욱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오르며 제일 먼저 만나는 서쪽 박공에는 이 도시를 놓고 아테네와 포세이돈이 겨루는 장면이 새겨져 있으며(도21), 그 반대편에는 아테네 여신의 탄생장면을 나타내는 조각들이 채워졌습니다(도22). 이러한 주제의 이야기들은 도시의 기원과 성격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도21 파르테논 신전 서쪽 팀파늄, <아테네와 포세이돈의 경쟁>
복원모형
 
 
도22 파르테논 신전 동쪽 팀파늄, <아테네의 탄생 >, 복원모형
 
 
 
 
 

건물의 양 박공 이외에도 메토프와 프리즈에는 많은 장식조각들이 새겨져 있는데, 주로 거인족들과 싸우는 신들의 무용담, 아마존과 싸워 이긴테세우스, 켄타우로스와 싸우는 아테네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도23, 24).

 

도23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남쪽 메토프
<켄타우로스와 싸우는 라피타이족>
 
 
도24 파르테논 신전 남쪽 메토프
기원 전 447-438년경, <켄타우로스와 싸우는 라피타이족>
 
 
 
 

이 같은 주제에서 우리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즉 아테네를 지킨 神과 영웅을 善에 놓고 그와 싸운 트로이나 아마존, 거인족, 반인반수의 켄타우로스를 惡에 놓은 기본 구조가 그것입니다. 아래, 아폴로 신전의 프리즈 부분인 <아마존을 내리치는 그리스 병사> 역시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도25).

 

도25 아폴로 신전, 프리즈 <아마존을 내리치는 그리스 병사>
기원 전 420-410,년, 높이 64cm, 런던 대영박물관
 
 
 
 
 

그리스를 위협하였던 적들은 되도록 혐오스럽고, 동물 같은 존재, 혹은 여성으로 그려내고 있는 반면 이들과 싸운, 즉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는 건강하고 보기 좋은 젊은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범 아테네 도시 연방 외부의 적들은 아테네의 문명화된 질서와 신성을 위협하는 파괴적인 존재라는 무언의 이미지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미술 생산품들을 미적인 범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리스신전 건축과 조각은 도시국가의 정치와 분리하여서는 생각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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