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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라이징 ㅣ 레드 라이징
피어스 브라운 지음, 이원열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평점 :
미래의 세계를 그린 SF작품에 고대문명의 짙은 향수가 배어 있다고 할까? 레드 라이징이 묘사하는 세계는 신화와 과학이 교차하는 세계이다. 여기서 레드의 의미는 다층적이다. 다른 곳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빨갱이'란 말에서 드러나는 레드의 음험함과 '레드 데빌'에서 나타나는 민족적 감수성의 열정이 동시에 나타나는 땅에서 살다보면 '레드'는 건들기 어려운 금단의 열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의 '레드'는 게급이다. 그것도 골드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계급은 색깔로 표시되는데 그 중 최하층 계급이다. (사실 소설에서 묘사되는 색으로서의 계급은 오히려 계층에 가깝거나 사회분업에 따른 직분에 가까워 보인다. 다만 레드는 사회학적 의미에서 피억압 계급에 가장 근접해 보이기는 하다)
이 SF소설은 이미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피어스 브라운의 이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엔더의 게임', '헝거게임', '파리 대왕'이 연상된다는 호평까지 받고 있으니 신작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그리고 황금가지 출판사로 부터 가제본으로 책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망설이지 않고 신청한 이유도 역시 작품에 대한 기대감 이었다.
작품은 패턴은 어쩌면 평범할지 모른다. 고난받는 피억압계급의 주인공과 그에게 닥친 시련. 복수를 위해 증오하는 계급의 일원으로 변신하여 그들 속에서 성장하는 스토리. 성장과정에서 보이는 계략과 암투, 증오와 사랑. 그리고 좌절 속에서의 희망과 성공.
잘 짜여진 모든 소설들이 그러하듯 속도감 있는 전개와 우주적 스케일의 배경은 자체로서 흥미롭다. 더구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특성과 성격을 통하여 인물과 단체에 특성을 잡았다는 점에서 미래의 SF를 고대전쟁의 느낌이 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독특했다. 서구에서의 대중적 흥행의 성공은 이러한 익숙한 그들의 문화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추측해본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신화와 함께 진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도 과학에 의한 의도적인 진화는 미래에 대한 작가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 작품에서 계급의 차이는 단순하게 권력의 차이가 아니다. 그리고 그 권력의 차이에는 생물학적 기반이 전제되어 있다. 즉 최고 권력을 가진 골드는 이미 기존 인간이 상상하는 한계를 넘어서 있는 부분이었다.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자신이 증오하는 계급안으로 섞여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생물학적 변이에 따른 것이다. 즉 레드의 육체로는 골드에게 대항할 수 없는 것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진화를 하면서 두가지에 적응해야 했다. 생물학적인 진화와 사회적 진화. 생물학적인 진화는 지난하고 느린 과정이었지만, 사회적 진화는 생물학적 진화의 속도를 뛰어 넘어서 이루어졌다. 즉 인간이 만든 상상의 허구, 국가, 법률, 이데롤로기, 사회적 관계는 실체가 없는 인간 상상력의 허구임에도 인간이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진화의 무기였다.
이러한 상상의 진화를 뒤엎는 생물학적 과학적 진화의 세계, 가장 전투적이며 강인한 육체를 지닌 지배계급의 등장은 19세기 사회진화론의 미래 버젼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는 강자가 모든 것을 취하는 것이 당연하며, 약자는 강자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인간이 인간으로 누려야할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운다는 것. 골드의 지배를 무너뜨리기 위해 의지를 불태우는 인간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작품이 가지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레드라이징은 이제 첫발을 디뎠다. 작품은 복수를 위한 예비단계를 마쳤을 뿐이다. 본격적인 복수를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것이다. 이 작품은 연속되는 작품의 첫단추일 뿐이다. 따라서 복수의 장정을 가야하는 주인공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부 독자들이 '파리대왕'이나 '엔더의 게임'의 느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성장에 따른 격렬한 갈등구조 때문일터다.
계속되는 이야기에서는 어떤 작품이 연상이 될까? 그 다음은 바로 '왕좌의 게임'이 아닐까 한다. 개인적인 인간과 집단 속에서의 인간이 부딪치며 성장한 주인공의 선택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는 지배계급에 대항하여 그들을 절멸할 것인가? 아니면 거대한 전투뒤에 타협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역사는 부분타협이었다면 작가가 의도하는 작품의 결말은 무엇일까? 빨강이라는 음울하고도 열광적인 색에 대한 감정때문에 특이하게 몰입하게 된 작품을 보면서 궁금해졌다. 내가 작가라면 어떤 결말을 예비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