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트라우마 - 그의 아들 원경과 나눈 치유 이야기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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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다운 외모와 다소 멋쩍어하는 듯한 미소,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주위를 살피는 태도와 침착하고 과묵함. 왠지 무게가 있어 보이는 모습"

러시아 역사학자이자 해방 정국에서 서울 주재 소련영사의 아내였던 샤브시나가 기록한 박헌영의 첫인상이라 한다.

 

남에서는 빨갱이의 수괴로 북에서는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남과 북이 모두 지우고자 했던 비운의 혁명가가 있다. 이 책은 남과 북 모두 역사의 질곡을 겪으면서 그 와중에 희생당한 사람. 일제 강점기 내내 굽히지 않고 민족해방에 헌신했던 철저한 공산주의자이자 조선공산당 최고 지도자인 박헌영에 대한 이야기 이다.

 

요즘 젊은이(?)중에 박헌영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을까?

북한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저자 손석춘은 북한의 젊은이들도 박헌영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긴 미제의 스파이로 몰려 총살당한 반동 반혁명분자에 대해 체제가 어떤 정보를 주었을까마는.. 남과 북에서 외면당한 한 혁명가를 추모함은 비틀어진 역사를 바로잡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헌영뿐이랴... 박헌영과 오랜 동지적 관계를 가진 김삼룡, 지리산 산사람들의 총사령관 이현상...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에서 박헌영의 아들로 태어나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던 원경스님까지... 역사의 물줄기를 이토록 험난하게 넘겨야 했던 사람들이 있음을 보며, 격동의 현대사를 견딘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새삼스런 감회가 일어났다.

 

미군정하헤서 정치활동을 금지당한 채 북으로 넘어갔지만 김일성의 견제를 받으며 지내다 한국전쟁 후 미제국주의의 스파이로 몰려 총살당한 비운의 혁명가이지만 아직도 남쪽의 일부 사람들은 박헌영의 스파이설을 믿고 있다고 한다. 뭐 북의 말을 믿는 것은 자유지만 제발 역사 공부 좀 했으면 하는 분들이 좀 있다. 그러고 처음으로 박헌영 간첩설을 제기하신 분이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김영환씨라고... 이분 북에 밀입국까지 하신 주사파지만 현재는 북한에 대한 가장 강한 반대활동을 벌이고 계신 분이다.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증언하시는 분...

 

샤브시나의 인상과 달리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감금되었을때 자신의 대변을 먹으며 정신병환자 행세로 출감하여 다시 독립운동을 했던 강철같은 혁명가이자 해방 후 가장 유력한 대중정당인 조선공산당의 지도자였던 인물이 이렇듯 역사 속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이제 빨갱이란 표식으로  지워졌던 수많은 이 땅의 혁명가를 복권시켜야 하지 않을까?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투명하게 평가되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하는데...

 

얼마전 통합진보당의 해산결정을 보며..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원경스님의 기억에 의존하여 새로 밝혀지는 여러 사실들도 있다. 물론 정식으로 역사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부분들도 많이 있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보천보 전투'에서의 김일성을 부정하고, 북으로 가면 처형 당할 것을 알고 남에 남아서 싸우다 전사했지만 시신 확인이 안되었다는 이현상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다만 사실 확인이 안된다는 점이 아쉽다.

 

또 하나 서슬퍼런 박정희 치하에서 박갑동씨가 '중앙일보'에 '내가 아는 박헌영'이란 글을 6개월이나 연재했다고 한다. 이는 박정희가 직접 부탁해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해방정국에서 박헌영선생(박정희가 선생이라 칭했다고)의 '8월 테제'를 아주 감명깊게 봤다고 그게 박정희 인생의 세계관이 되었다고 한 증언도 흥미롭다. 전형적인 2단계 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했던 '8월테제'에서 군사쿠데타의 원형을 보았던것은 아니었을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박정희는 한때 남로당 당원이었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이다. 질곡의 역사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분노와 함께 슬픔을 느낀다.

아버지의 박헌영의 복권에 대해 저자가 묻자 원경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한마디만 더 말씀드린다면, 아버지(박헌영)의 복권은, 우리 손(석춘)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급한게 아니라고 봅니다. 대신, 남로당 전체, 이름 없이 산화된 그 사람들의 명예를 정말이지 바로 찾아야 합니다. 물론, 박헌영 선생이 복권되면 그것도 덩달아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아요. 일단 아버지는 아무리 금기시하고 억압해도 언젠가는 이름 석 자가 나오고, 100년 뒤든 언제가 됐든 학자들 입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 그런데 광복 운동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남로당이 되려고 그렇게 청춘을 불살랐던 것은 아니거든요. 남의 힘에 의해서 우리가 해방을 맞이하고 보니까 모든 게 뒤틀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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