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왕이 된 남자...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이 영화를 소개할 때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영화임에도 방송에서 소개하는 내용이 마치 다 아는 내용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 영화를 보러갔다. 영화를 관통하는 스토리는 내가 너무 좋아했던 영화의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일단 '광해 - 왕이 된 남자' 는 보는 내내 즐거웠다. 익숙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사람이 바뀌니 새로운 참신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천민인 왕의 대리역이 왕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이 영화 중간 중간에 배치되면서 굵직한 선으로 그어지는 이야기의 구조를 좀 더 섬세하게 만들어 냈다.
또한 주인공들의 연기도 나무랄데 없었다(?)고 난 생각한다. 어색하거나 무리하게 느껴지는 장면들은 없었으니까... 역사에 무지한 나로서는 이 이야기의 사실성에 대해서는 뭐라 얘기 못하겠다. 뭐 다큐가 아니니 사실성을 따지는 것 또한 무리일터다....설사 다큐라도 그것이 사실을 그대로 옮기지 못함을 알고 있거는....하지만 역시 역사극이란 장르는 무언가 사실과 상상을 다시 한 번 헤집어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듯하다.
다 좋은데... 결정적으로 좀 거시기한 것.... 나쁘게 말하면 실망스러운 것은 이 영화는 사실상 짝퉁이란 것이다. 이미 93년에 제작된 '데이브'를 보면 광해와 얼마나 비슷한 서사구조를 보여주는지 금방 드러날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거의 똑 같다.
광해는 닮은 가짜 왕을 데이브는 닮은 가짜 대통령을
둘다 진짜 부인을 사모하게 된다.
둘다 진짜왕과 진짜 대통령은 부인과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다.
둘다 가짜들은 백성/ 민중의 삶을 잘 이해하고 대변하려고 한다.
둘다 올바른 정책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직위를 이용하여 관철시킨다.
둘다 경호원이 진짜보다 가짜에게 매혹된다.
그리고 둘다 진실이 밝혀지는 사건의 클라이막스에 교묘하게 도망간다.
이러한 내용을 영화 처음에서 끝까지 쭉~~ 이어 붙이면 시대와 인물만 틀리지 동일한 이야기가 반복됨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순간 당혹스러웠다. 허리우드가 내용의 빈곤으로 제3세계 영화들의 시나리오를 사들여 자신들의 이야기로 바꾸는 것은 많이 보았지만... 한국 영화가 미국 영화를 베꼈다는 말인가?
아니면 우연인 것일까?
안정효의 허리우드 키드처럼... 허리우드 영화가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의 잠재적 의식에 침잠되어 있다가 작품으로 튀어나온 것일까?
뭐... 어찌되었건 무슨 상관일까
'데이브'를 보았던 즐거움과 감동이 '광해'를 보면서 깍이거나 줄어들지 않았다.
서사구조가 비슷해도 배경과 인물의 변동은 원이야기와 다른 또 다른 즐거움과 감동을 주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다만, 이 영화가 신선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좀 안타까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