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여사의 소설이 한국에서 영화화 되었다. 미미여사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들(나는 미미여사의 작품 중 '모방범', '이유', '화차'를 가장 좋아한다) 중 하나었기에 영화로 만들었을때 소설만큼의 여운을 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는데... 잘 만든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에 집중시키는 탄탄한 구성과 잔인한 장면이 두드러지지 않고도 이렇게 잔인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연출한 것은 일품이다. 더불어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많이 남았다는 것.... 한 여자의 인생에 대해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영화는 수작이라 생각된다.

 

사회를 살면서 끊을 수 없는 관계는 무엇일까?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을 찾아 그 사람을 대신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회적 관계를 바라보면서 던질 수 밖에 없는 질문이다. 그 관계란 가족관계도 아니고 우정도 사랑도 아니다. 가장 끊을 수 없는 근원적 관계는 웃기는 얘기이자 처절한 얘기지만 채권 채무관계가 아닌가 한다. 원초적인 관계... 물질적 보상만 이루어진다면 가장 손쉽게 끊어지지만 보상이 충족되지 않으면 어떤 형식으로도 집요하게 들러붙어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채 좌지우지 하는 관게....그것이 채권채무관계다.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으로 신용사회를 거론한다. 그 신용사회의 이면에서 불신용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 존재한다. 카드사용자가 늘어날수록 개인파산자가 늘어나는 것도 결국 신용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사용에 대한 책임은 그 개인 스스로가 지고 나가야 한다. 그것이 신용사회의 룰이다.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이는 신용사회의 이면에는 신용을 망실하여 제대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그림자는 비추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밝히는 부분이 바로 신용사회의 이면이자 어쩌면 자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럼에도 자본주의에서 만개한 채권채무관계에 대한 통찰이다. 이미 일본에서 통과했고 어쩌면 우리나라도 IMF 이후 오늘날가지 겪고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별 해답을 던져주지 못하고 있는 문제이다.

 

이른바 사회파 추리소설가로 불리는 미미여사의 작품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한 여인의 범죄와 관련되어 그 여인을 추적하다 보면 그 여인은 느끼지 못할 거대한 사회적 그물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거기에 인간적 상황이 겹치면 이제 범죄의 주인공은 특정한 개인인지 사회인지 알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어렵다고 모든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이겨내기 위한 생존의 투쟁을 벌인다.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절박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중 하나가 범죄라면 그 범죄를 일으키도록 움직이는 사회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영화중에 여인의 말처럼 살아남기 위한 '쓰레기'가 양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시종일관 무겁다. 그녀의 실체가 드러날 수록 그 실체 뒤의 그녀의 삶이 드러날 수록 영화는 무겁다. 한마디도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원소설의 문제제기까지 충분하게 드러내고 있다. 올해 나온 최고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

 

최근 들어 사회적 문제의식을 드러낸 영화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도가니'나 '부러진 화살', '화차'까지.... 어쩌면 우리네 삶이 많이 팍팍해지고 그 느낌을 공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과정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공감을 떠나서 '화차'는 그 영화상의 이야기 만으로도 충분하다. 변영주 감독의 초창기 사회의식이 이렇게 반영된다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그래서 반가운 영화다.

 

별점은 네개 반.....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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