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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울산공장 점거 투쟁 기록
박점규 지음 / 레디앙 / 2011년 7월
평점 :
2010년 11월 15일에서 12월 09일까지... 25일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의 기록이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이 기록이 출판되지 못할까봐 비밀리에 작업했다는 뒷 이야기도 들리고...
박점규... 저자 이름이다.
난 박점규를 희망버스 집회에서 처음 봤다.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목소리가 유난히 낭랑하고 우렁찼던 활동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모든 싸움의 현장에서 그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나 보다. 그냥 우연하게 들른 집회에서 사회를 본 사람이 이 책의 저자라는 사실이 뭔가 묘하다.
언제나 싸움이 있어왔고 그 기록은 항상 승자의 기록이었다. 패자는 기록이 왜곡되어지거나 아예 사라지기 일쑤였고 승자를 화려하게 치장하기 위한 배경의 조각으로나마 명맥을 유지했었다. 그렇기에 승패를 떠나 기록은 중요하다. 일관된 기록... 사건이 진행되는 경우 조각조각 접하는 기록이 아닌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일관된 기록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많은 사실을 유추하고 배울수 있다. 그리고 보다 정확한 현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김점규의 시선이 들어가 있다. 사실의 취사선택과 강조점에 따라 현실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김점규의 시선을 믿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없어야 한다는 기본 전제 조건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이 주어지지 않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어 동일 노동에도 차별을 받는 모순된 세상을 개선하고자 하는 그의 믿음과 실천을 신뢰하기 때문에 난 이글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믿는다. 그리고 그 사실의 힘은 몇가지 우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고 그럼에도 꺽이지 않는 희망을 드러내고 있다.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싸움이 2010년 하반기에 많이 벌어졌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판결이 있음에도 현대자본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왼쪽바퀴는 정규직이 오른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조립을 하면서, 동일노동에 대한 임금은 절반, 상여금이나 각종 복지제도는 꿈도 꿀 수 없는 비정규직. 울산에서 현대자동차에 다닌다고 하면 가장 먼저 묻는 말이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라는데... 막말로 비정규직은 장가가기도 힘들다고 한다. 이러한 모순이 중첩되고 체제를 반대하는 것이 아닌 이 나라의 법과 제도가 인정하는 정규직화를 위해 시작된 싸움이 바로 비정규직의 울산공장 점거 투쟁이었다. 자본이 그토록 주장하는 법대로 살기위해 시작된 싸움...
이 기록들을 읽다보면 현대자본에 대한 무자비함과 그 자본과 교묘하게 발맞추고 있는 정규직 노조의 움직임이 보인다. 노동자는 하나다라고 누가 그랬나? 엄연하게 노동자는 둘이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진 노동자. 노동조합도 둘이다. 정규직 노동조합과 비정규직 노동조합. 비정규직을 철폐하기 위해 가장 먼저 연대해야 할 대상이 정규직 노동자이고 정규직 노동조합이다.
결국 25일의 싸움은 실패로 끝났다. 정규직 명찰을 달고 농성을 풀겠다는 노동자들은 추위와 배고픔 속에 25일간 싸움을 지속했지만 현대자본의 지능적 탄압과 정규직 노동조합의 비협조와 냉대속에 농성을 풀고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조합 내 민주파 지도자들의 무기력한 모습은 노동자들의 단결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 것인지를 증명해 주고 있다.
자본도 자본이지만 노동의 단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없다는 냉정안 깨우침을 던져준다. 그리고 제한적이나마 농성장에서의 단결과 연대는 그래도 노동운동이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현실은 명백하고 과제는 주어졌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는 이제 새롭게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싸워나가야 할 모든 사람들의 몫이다. 그 싸움을 진행하면서 꼭 살펴봐야 할 지점을 이 기록들은 하나하나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과 연대하지 못하고 겉돌았던 정규직 노동조합이 자녀들의 취업까지 보장받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한쪽에서는 제대로 임금도 받지 못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대를 이어 충성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현실을 내부까지 볼 수 있다. 그게 참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