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베러월드 - In a Better Worl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한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그냥 좋은 영화야. 이러저러 군말이 필요없어..."  

일단 '좋은 영화'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나머지는 그냥 나의 변죽일 뿐이다.. 

사실 이 영화를 한 번 보고나서 왜 좋은 영화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총론에서 너무 훌륭한 이 영화를 각론에서는 왠지 불편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그냥 불편하다....그건 아마도 그냥 내가 삐딱해서 그런 모양이다.  

이 영화는 강렬한 대비가 돋보인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빈곤한 생활도 뭐든지 풍요로워 보이는 서구 사회.. 벌판에서 뛰어다니는 벌거벗은 어린아이와 넘치는 방을 주체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배려받으며 공부하는 서구의 아이들... 이 강렬한 대비속에서도 인간의 밑바닥에 흐르는 폭력에 대한 고찰은 어떤 사회이건 폭력은 끊어낼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 이야기 하는 듯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영웅적으로 보이는 건 끊어낼 수 없는 인간의 폭력에 대한 저항과 인간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폭력'에 대한 성찰... 과연 인간의 폭력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이 영화에서는  폭력이 아닌 비폭력의 가치를 옹호하면서 너무 쉽게 해결해 버리는 듯 하다. 어느 누구도 인간에게 폭력을 휘두르는데 정당함을 가질 수는 없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구조화 되어 있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인간에게 저항의 폭력까지 '폭력 일반'으로 수렴하는 것은 더욱 더 잔인한 폭력일터다. 모든 폭력의 근원은 결국 타자를 인정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타자를 어떻게 인정하고 용인할 것인가는 결국 폭력의 한계를 규정할 것이다.  

두 개의 사회 두개의 강렬한 대비 속에서 과연 폭력은 어떻게 규정되는가? 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리는 사회에서는 대항폭력을 사용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아프리카의 난민들을 심심풀이로 공격하던 무장단체의 수괴는 결국 난민들의 폭력 속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폭력이 저해되는 선진사회에서의 폭력은 과잉 사용하면 어떻게든 제3의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결론 내리는 듯 하다. 그러고 사소하건 중요하건 폭력이란 내면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폭발로 규정하는 듯 하다.  

같은 폭력일지라도 대응은 그 사회의 양태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개인의 분노 역시 그 사회가 가지는 구조적 모순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찰한다면.. 역으로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진정한 일은 단순한 용서와 화해가 아니다. 개인적인 특수성으로서의 분노의 정화도 필요하지만 그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멈출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 될 수 잇다. 

불편함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개인적 분노의 승화만으로도 좀더 나은 세상을 그릴 수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의 대비는 폭력이란 그렇게 단순하게 해결 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영화는 개인적 분노의 승화를 알려주지만 구조적 폭력의 해결점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아니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이 땅의 질서를 관장한 백인들의 시각이 주되게 관철되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갖게된다.  

그냥 좋은 영화에... 나는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너무 민감한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불편한 건 불편한거다... 그래서 난 좋은 영화라는 가치 중립적 표현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그걸 넘어서는 뭔가를 욕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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