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사랑 - Incendi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불편하다는 것... 진실을 직시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감싸 안는다는 것...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을 이 영화는 태연하게 해치워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 머리는 멍하기만 하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비극에 몰입했다가 깨어난느낌... 그 운명적이고 압도적인 비극성에도 불구하고 잘 알고 있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듯한 불편함까지... 

어머니 나왈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이해하지 못할 유언으로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혼란에 빠진다. 죽은 줄 알았던 생부와 얼굴도 모르는 형에게 편지를 전하라는 어머니의 유언... 그 유언이 지켜지지 않으면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말에 두 사람은 당혹스럽다. 어머니의 유언을 무시하려는 시몽과는 반대로 잔느는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주기 주해 어머니의 고향으로 떠난다. 그리고 거기서 조우하게 되는 어머니 나왈의 과거는 잔느에게 상상하지 못할 고뇌를 던져준다.  

나왈은 종교적 내전이 치열한 땅에서 이교도와 사랑에 빠져 고향을 등지려다 사랑하는 사람을 친족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명예살인까지 당할 뻔한다. 그리고 낳은 아이가 바로 쌍동이의 형.... 출산 후에 고아원으로 보내지고 내전의 와중에 행방불명이 된다.

고향을 등지고 학교에 다니던 나왈이 겪어야 했던 전쟁은 종교의 이름으로 잔인한 학살이 되풀이되는 지옥이엇고 나왈은 성모 마리아를 소총에 붙이고 여인과 아이들까지 학살하는 기독교 민병대의 잔인한 행위에 충격을 받고 테러리스트가 된다. 기독교 민병대의 지도자를 암살하고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다. 감옥에서 버티기 위해 끊임없이 노래 부르며 저항하던 여인 나왈... 그녀는 그 곳에서 상상하지 못할 고문을 견뎌내고 캐나다로 이주한다 

종교가 틀린 이민족간의 분쟁으로 인해 개인이 받아야 했던 아픈 상처들... 그 만진창이의 사회속에서 끈질지게 이어가는 생명의 애착이 나왈을 살게 했던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죄책감과 회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던 나왈이 무너져 죽음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비밀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았던 땅의 운명처럼 자신에게 닥쳐온 운명은 살아서 견디기 힘든 비밀의 폭로였고 그것을 온전하게 감당하기에는 나왈의 상처는 깊고도 길었으리라.  

시몽과 잔느는 생부의 존재와 형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다. 그리고 도달한 진실에 대해서 전률하고 그 운명이 내린 비극에 대해 할 말을 잃는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쌍둥이의 탄생 자체가 비극이었고.. 그 비극은 탄생으로 끝나지 않고 그 긴 인연의 사슬을 끌고 있음을 알았을때의 망연함.  

남편과 자식에게 남기는 나왈의 편지는 운명에 순응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아니 순응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함을 보여준다. 거부할 수 없기에 받아들여야 하는... 의지로 해결할 수 없기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그럼에도 결연하게 거부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그 사랑의 결말은 먹먹하다.  

그리스 비극의 카타르시스에 대한 논의를 책 속에서 이해했다면... 어쩌면 이 영화는 정서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요한 매개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어쩌면 서양인들이 가진 비극적 세계관이 너무 그대로 드러난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건 그 빼어난 서사와 점점 고조되는 서정성의 조화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결말 부분을 예상하면서도 식상하기보다는 점점 두려워지는 영화...
결말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운명적 느낌으로 오싹해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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