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달 한국 사회에 새로운 희망이 싹트고 있습니다. 미국 흑인민권운동 당시 '버스'에 버금가는 눈물겹고도 감동스러운 행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똑똑히 보아야 합니다. 이 갸날픈 희망은 가슴 아프게도 안타까운 절망 속에서 싹텄습니다.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싹텄습니다. 비정규직화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대세라는 사회적 패배감 속에서 싹텄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그 어떤 진전된 민주주의도 불가능하다는 포기 속에서 싹텄습니다. 노동자민중,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의 무한한 고통전담을 먹고 사는 신자유주의 자본의 세계화, 폭력의 세계화의 물결은 거스릴 수 없다는 체념 속에서 싹텄습니다. 세속적이고 기계부품이나 생산의 원료 같은 비속한 인간을 넘어선 위대한 인간들의 세기, 존엄한 인간들의 세기는 가능치 않다는 역사적 허무주의 속에서 싹텄습니다.
그렇게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무수한 이웃들의 사회적 죽음을 먹고 싹텄습니다. 한국사회는 세계 제1의 자살공화국이 되었습니다. 다시 무수한 열사들의 죽음이 이어졌습니다. 평범한 이들의 생활고와 미래가 없는 삶에 절망해 생을 내던져야 했습니다. 젊은 청년들과 모든 부모들의 소망이 정규직 일자리 하나 얻는 것이 되는, 그래서 동료와 이웃을 짓밟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라는 비참한 사회, 악독한 사회, 비윤리적 사회가 되었습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가족 15분의 죽음은 그 절망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뿌리 깊은지를 알려주는 사회적 경고음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에 김진숙 님의 초인 같은 사회적 저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15살에 가출해 버스안내양으로, 파출부로, 행상으로, 미싱공으로, 용접공으로 살아 온 그는 우리 시대 노동자민중의 수난의 상징입니다. 25살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3번 끌려가고, 징역 2번 살고, 5년동안 수배자로 살아야 했던 그는 우리 시대 노동자민중의 저항의 상징입니다. 현 시기 정리해고,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입니다.
이런 절망들을 막고자 뒤늦었지만 우리 시대 모든 양심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1차 104명의 소환, 2차 50여명의 연행에도 불구하고, 낯선 부산까지 내려가 폭우와 폭염을 맞으면서 화장실 하나 없는 곳에서 아이를 안고, 연인끼리 1박 2일을 버티는 사람들의 모습은 감동이었습니다. 그 감동이 현재 전체 사회를 뒤흔들며, 이 사회의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을 넘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촛불로 점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가장 평화로우면서도 존엄한 촛불로, 부산을 넘어 전국 각지로, 전국 각지를 넘어 전세계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그간 이 사회의 주권자며, 다수인 1700만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안전과 평화, 평등, 안녕보다는 이 사회의 1%도 안되는 재벌과 특권층들의 편에 '학실하게' 서 온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여당, 보수언론 등은 이런 사회적, 공동체적 연대운동을 막기 위해 온갖 반사회적, 반공공적 활동에 나섰습니다. 공권력 폭력을 행사하고, 구시대적인 지역감정 조장, 색깔입히기, 관변단체 동원 등을 통해 '함께 살자'라는 일자리 하나 보장해 달라는 너무도 소박하고, 평범한 전국민적 요구들을 짓밟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1700만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소박하고, 너무도 눈물나는 소망을 받아, 저 아름다운 여인, 김진숙의 온 생의 절규를 받아, 그들 동료들의 눈물겨운 투쟁을 받아, 그들을 살리기 위해, 우리 모두를 살리기 위해, 우리 모두의 미래를 살리기 위해, 우리 모두가 시대의 소금꽃들이 되어, 우리 모두가 노동자가 되어, 우리 모두가 각자의 크레인이 되어, 우리 모두가 결사항전이 되어,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의 미래가 되어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대항전에 나섭니다. 희망의 광장을 열러 갑니다. 하나의 광장이 아니라 수십개, 수백개, 수천개의 민주주의의 광장으로 나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씩의 물러설 수 없는 희망의 광장이 되어 나아갑니다. 작은 마을마다, 지역마다, 사회 각 부문마다 사전 광장들이 열릴 것입니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문화로, 어떤 이들은 지혜로운 학술로, 어떤 이들은 견결한 저항과 투쟁으로, 어떤 이들은 박수와 환호로 함께 할 것입니다.
8월 27일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로 쓰는 날입니다. 우리 시대의 김진숙들이, 우리 시대의 소금꽃들이, 우리 시대의 양심들이, 이 황홀하고 아름다운 꿈들이, 사랑들이, 연민들이, 공통의 감각들이 이깁니다. 수를 묻지 마십시오. 1700만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함께 나섭니다. 그 내용을 묻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제 이 추악한 사회를 넘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갑니다.
2011년 8월 8일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4차 희망의 버스'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