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희망버스가 김진숙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경찰 차벽에 막혀 돌아가야 했지만... 그건 3차를 예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2차가 워낙 대대적으로 진행되었기에 3차가 어찌될지는 모르겠다. 시기도 여름휴가 시즌과 겹칠 듯 하니... 걱정스럽기는 해도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휴가를 소금꽃 나무와 함께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김진숙 동지의 편지를 첨부한다.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만나지 못하고 배웅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한진에서는 용역들이 김진숙동지와 같이 농성하는 노동자들을 계속 자극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려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고맙다고 인사하는 소금꽃 나무를 지켜야 할텐데...  

웃으면서 !  끝까지 ! 함께 !

담쟁이 넝굴같이

 

이 땅에선 더 이상 정의를 말할 입이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 땅에선 더 이상 진실을 들어 줄 귀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 땅에선 더 이상 연대를 받아 안을 가슴이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먼 길을 달려와 비를 맞고 ,최루액을 맞고, 물대포를 맞고, 그리고 끌려가신 여러분,

여러분들이 눈물겹도록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한달동안 우리가 만들어낸 일들은 기적이었고,

어제 오늘 우리가 겪은 일들은 역사가 될 것입니다.

 

모두가 저건 절망이라고 아무도 저 절망의 벽을 넘을 수 없다고 돌아설 때 온몸으로 벽을 기어오르고

담쟁이처럼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희망을 향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행정대집행이라는 법의 이름으로 조합원들은 공장 밖으로 끌려 나가 내동댕이쳐졌고, 모이기만 하면 연행됐고, 이 크레인에 대한 강제침탈 기도가 몇 차례나 시도됐습니다.

그 피 말리는 시간들을 견디게 한건 희망버스 여러분들이었습니다. 

특공대가 바로 옆의 84호 크레인을 정탐하고 가고 수천명의 무장경찰이 공장을 에워싸고 용역들에 둘러싸여 완전히 고립된 전기마저 끊어진 이 크레인이 저라고 왜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저라고 왜 불안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저와 우리 조합원들이 이 크레인을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두려움과 불안보다 훨씬 컸습니다. 

2003년 10월 17일. 김주익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이 크레인에 올랐던 날.

그날로부터 저는 이 85호 크레인을 한 발짝도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한진자본에 대한 분노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더 컸습니다.

여기 올라와서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너무나 절실하게 이해되던

그의 고립감과 단절감이 왜 밑에서는 129일이 되도록 그 토록이나 몰랐을까.

채 하루가 되지 않아 그토록 절박하던 외로움을 나는 왜 129일 동안이나 외면했을까.

전 주익씨랑 재규형이랑, 그 외롭고 억장 무너지는 영혼들이랑 반드시 같이 내려갈겁니다.

그래야 저도 제대로 살수가 있습니다.

비바람과 지독한 바다안개 속에서도 이 크레인 주변을 떠나지 못하며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는 우리 조합원들.

조남호 회장에겐 쓰레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지만 제겐

너무나 소중한 한사람 한사람들.

형제가 같이 짤리기도 하고, 아버지가 희망퇴직하면 아들은 살려주겠다 해서

아버지가 희망퇴직을 했는데 결국 아들마저 짤라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2004년 비정규직이었던 아버지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에 항거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아버지의 목숨대신 아들이 입사를 했는데 그 아들마저 짤렸습니다.

 

그리고 이 투쟁의 와중에 구속된 수영이는 4개월째 감옥에 있습니다.

우리 조합원들을 지키기 위해서 함께 해주셨던 신부님, 수년님들.

한진일이라면 밤낮없이 트위터에서 함께 해주시고 국내언론이 외면한 우리 목소리를 외신에게까지 보도되게 애써주신 분들.

오늘도 맨앞에 서신 백기완 선생님,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한 여러 어르신들.

그리고 현장에서 함께 하셨던 여러 의원님들.

 

고맙고 죄송합니다.

전국에서 달려오신 희망버스 승객여러분,

러분들이 계신데 제가 뭔들 못하겠습니까.

희망버스는 모든 소외당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향한 새로운 희망이고 미래를 향한 힘찬 출발입니다.

정리해고로 고통받아온 쌍용차 그리고 유성기업, 전북버스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

900만을 헤아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장애인들, 성적소수자들, 철거민들, 학생들, 제주강정마을.

 

그 모든 희망을 싣고 달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불의에 침묵하지 않음을 더 이상 부당한 권력에 굴종하지 않음을 담대하게, 자유롭게, 신명나게, 기발하게, 화끈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고생을 사서하기 위해 빗길을 뚫고 전국에서 달려와 주신 여러분, 너무 자랑스럽고 너무나 고맙습니다.

2011년 7월 9일. 역사는 이날을 반드시 기억할 것입니다.

물방울이 모여 어떻게 바다가 되는지 작은 희망의 꽃씨 하나가 어떻게 꽃밭세상이 되는지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저와 우리 조합원들을 그리워 하셨던, 제가 너무나 보고 싶어했던 여러분.

우린 결코 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2011년 7월 10일

2차 희망버스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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