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자 - The Conspirato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음모자들은 이중적이다. 하나는 미국의 남북전쟁을 승리로 끝낸 북군의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한 음모자와 이들의 성공으로 대통령을 잃은 북군이 희생양을 찾기 위해 꾸민 북군지도부의 음모....사건은 두가지 (암살과 처형) 이나 관통하는 것은 하나다. 국가와 시민의 관계에 대한 긴장감. 그리고 그러한 긴장은 21세기인 현재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 되풀이 되는 역사를 생각한다면 영화는 단순하게 과거의 사실을 조명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비극적 사실의 원초적인 출발이 아직도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원환 속에서 새롭게 사유하지 않으면 비극이 희극이 되도록 벗어나지 못하고 매여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 또는 자유로운 시민의 형성은 동시적이지 않다. 시민이 먼저이고 국가가 다음이다. 그러나 그 힘의 관계는 역전되어 있다. 국가는 힘을 가지고 있고 개개인은 무력하다. 그렇기에 국가의 자의적 횡포를 막기 위해 법률이란 것을 정해 놓았다. 이른바 법치주의.... 그러나 국가가 가진 권력은 가법게 법치주의를 넘어선다. 그리고 무력한 개인은 그대로 희생양으로 전락해 버린다.  

링컨 암살 사건으로 연루된 8명의 용의자 중 1명은 두자녀의 어머니인 메리 서랏이다. 그녀는 하숙을 하고 있었고 암살 용의자들이 자주 모임을 가졌던 장소를 제공한 혐의를 넘어 암살 음모에 직접가담한 사람으로 기소된다. 그리고 유일하게 도망간 용의자 중 한 명이 바로 그녀의 아들이다. 북군의 전쟁영웅 출신이자 변호사인 프레데릭 에이컨은 메리 서랏의 변호를 맡으며 국가와 개인의 자유와 법치에 대한 갈등과 회의에 빠진다. 무엇보다 자유로운 미국을 사랑하고 있으며 노예해방을 위해 전쟁까지 불사했던 에이컨으로서는 확실하게 암살 가담의 증거가 없는 메리 서랏의 재판에서 보여지는 국가의 무자비한 음모를 인정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국가를 위한다고 이야기하는 한 여자의 무고한 재판에서 에이컨이 읽어 내는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라는 문제이다.  

국가의 전쟁에 참여했던 것은 자신이 지키려는 국가가 그 구성원들을 자유롭고 하고 정의를 수호한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는 에이컨의 신념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 증거를 조작하고 증인을 매수하고 오로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증거도 불충분한 한 여성을 암살범으로 처형하려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기에 이미 국가와 개인이 가지는 원초적 관계가 드러난다.  

정의로운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이미 끊임없이 변주되는 주제이다. 현대는 암살범 대신 테러리스트가 목록에 올랐고, 국가에 의해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힌 개인은 그 순간 범죄사실에 상관없이 증오와 멸시를 받는다. 그리고 그것이 국가에 대한 헌신과 정의로 포장된다. 국가의 힘 앞에 쓰려져야 할 개인의 인권은 무시되거나 조작된다. 이것이 미국이 자랑하는 민주주의이다. 아니 미국뿐만 아니라 국가라는 초월적 권위에 포섭되어 있는 현재의 정치체제에 대한 증명이다. 그리고 국가라는 경계에서 벗아나 있는 사람들에겐 아무런 보장도 보호도 없이 버려진다.  

'어 퓨 굿맨'에서 나타났던 미국 법치주의의 승리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현실에 다가가서 조용하게 묻는다. 국가의 정의와 개인의 정의, 법치와 인권, 현실과 과거.... 인간은 진보하고 있는가?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철저하게 고증한 화면을 제외하곤 이 영화를 과거의 영화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거기에는 생생한 현실이 보인다. 그것은 내가 가진 편견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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