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는 죄악인가
권혁범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민족적 감수성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민족의 개념과 범위와 실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뭐 밑도 끝도 없을 것이다. 최근에 생각되는 것은 민족이란 개념은 결코 진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나 역시 학생시절에 민족에 대해 뜨거운 감정을 품었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결코 회귀하고 싶지 않다. 이건 마치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가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싫은 심정과 비슷하다.  둘 다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들고 모든 가치를 우선하여 하나의 가치만 옳다고 주장하는 패권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고 뭐라 반박하기 힘들어도 일단 벗어나니 속은 후련한 그런 느낌.... 

생래적으로 타고난 듯하게 느껴지는 민족이란 단어도 역시 근대성의 산물이다. 그런 근대성의 산물을 고유한 무언가로 포장하고 마치 생득적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은 역시 자본주의 발달의 효과이다. 우선 안정된 시장이 있어야 했고 그런 시장을 구획하는데 영토와 언어, 문화적 동질감 등이 공통적으로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동질감을 최우선적으로 하면서 만들어낸 근대적 기획의 산물이 결국 민족이 아닌가 한다. 특히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혈통도, 언어도, 문화도 아니다. 영토와 주권... 이것은 민족의 바탕을 이루는 뼈대다. 독도가 일본과 매번 논쟁이 되는 이유도 민족을 이루는 뼈대인 영토와 주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영토와 주권에 대한 논쟁은 결국 민족 감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처럼 고조선부터 현재까지 마치 하나의 민족으로 영속적으로 이어져 내려왓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민족의 가치는 절대적으로 높아진다. 한반도에서의 근대적 민족의 각성은 식민지배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 형성되었을 것이다. 민족이 나름 진보적 가치를 지니는 것은 인종이나 언어를 구획하는 불평등을 저항하기 위한 담론으로 기능하는 때일 것이다. 따라서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한 민족적 저항은 그 나름의 진보성을 담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탄압과 억압과 착취를 행하는 세력에 대항하고 내부적으로는 봉건적 신분질서를 해체하여 동질감을 형성하는 담론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때 신분질서를 해체하지 않고는 민족의 성립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봉건적 질서에서 민족적 동질성은 회복되지 않는다. 임란때 일본의 침략 속에서 궁궐을 불태운 민중의 저항은 계급적 대립이 드러난 것이지 거기에 민족적 동질성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근대적 발명품이 생득적 성질로 전화하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국사 교육일 것이다. 나라의 역사를 끊임없이 창조하는 것은 민족의 신화를 강화하는 것이다. 때문에 일본의 교과서는 무슨일이 있어도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표기해야 하는 것이고, 중국 역시 향후 일어날 소수민족의 저항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역사를 조작하고 가공하고 있다. 이른바 동북아 공정이란 중화민족 중심의 역사관을 확대시키기 위한 정지 조건을 뿐이다. 이러한 역사적 조작에 한반도의 남과 북은 단군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환원시키면서 대응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신화와 역사는 뒤섞이고 혼동되어 사실로 둔갑해 버린다. 이러한 시도는 주권을 가지고 영토를 통치하는 일정한 집단이 끊임없이 시도하고 계획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민족의 위대성이란 허구가 들어서 있는 것이다.  

민족문제하면 역시 남북문제가 빠질 수 없다. 민족을 위해서라도 통일을 해야 한다는 논리는 통일을 위한 주된 논리다. 더불어 반핵주의자도 북한이 개발한 핵에 대해서는 쉬이 비판하지 않는다.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언젠가 통일이 되면 민족의 자산이 되기에 비판을 하기 어려워진다. 이렇게 민족이 끼어 버리면 평화도, 계급도, 성적 차별도 부차적인 문제로 가려져 버린다. 민족 담론이 위험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을 민족 우선으로 대접하고 나머지 중요한 모순들은 부차적이거나 중요하지 않는 문제로 치부되면서 사실상 통치 권력이 자의적으로 휘두를 수 있는 전가의 보도로 변화하기에 민족이란 개념은 위험하다. 통일 역시 민족이란 이름으로 진행하면 오히려 퇴행적이 되기 싶다. 좁게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크게는 세계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통일인 것이지 민족의 영광과 발전이 제약되기에 필요한 것이 통일은 아니다. 사실 서로간의 전쟁위협만 없다면야 그리고 (영토적) 통합의 강제만 없다면서 우리가 서로 적대할 이유가 남도 북도 없다. 이건 마치 없느니만 못한 상태로 서로에게 으르렁거리고 있다.  

이 책은 민족에 대한 민족주의에 대한 여러 논의들을 종합하고 있다. 그간의 논쟁을 바탕으로 민족주의가 가진 장점과 맹점을 나름 세심하게 풀어쓰고 있다. 정확하게 저자는 민족주의에 부정적이다. 그건 민족주의가 가진 패권적 성질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민족주의야 말로 가장 강렬한 파토스를 가진 이념이라는 사실을 긍정한다. 여기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 민족주의가 문제가 있으니 폐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긍정하고 인정해야 하는가? 저자는 말한다. 현실에 영향을 강하게 주는 민족주의 감정은 인정하자 그러나 고칠건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민족주의가 가진 패권적 성질과 편협함을 이겨내지 않으면 사실 미래는 암울하다. 민주주의가 파시즘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고 그 변화의 밑바탕에는 민족주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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