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구판절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가 살고 있는 방의 곰팡이 낀 더러운 벽에서 한 폭의 벽화를 읽어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 나릿빛 사진의 추억-10쪽

같이 여행 가서 찍은 필름을 맡길 돈도 없을 만큼 내가 어렵다는 걸 알고 여자는 처음엔 괜찮다고 말했고 좀 지나자 한숨을 쉬기 시작했으며 그 다음엔 이유 없이 울음을 터뜨리곤 했었다.
- 나릿빛 사진의 추억-11쪽

나는 누군가가 내 영혼의 자기장 깊숙이 들어오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랑 속에는 사람들이 흔히 기대하는 따스함, 열정, 몰입, 기쁨, 까닭 없이 터뜨리는 웃음소리 같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눈부심 속으로 들어가 보면 마치 빙산의 아랫부분처럼 거짓과 권태와 배신과 차가움과 환멸같은 것들이 수면 아래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다.
호텔 유로-55쪽

아아. 인생을 일천 번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이처럼 세상이 아름다우니까.
- 나의 피투성이 연인-94쪽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는 확실히 그런 순간이 있어. 사랑이란 어떤 것에 대해서는 너무 예민하게, 어떤 것에 대해서는 너무 둔감하게 만들어버리는 감정의 알러지 상태 같은 것이니까.
- 나의 피투성이 연인-109쪽

"필름, 내가 가지고 있을게요. 참, 제목이 뭐예요?"
두고 가면 버릴 것 같아서, 라는 말은 삼켜버렸다.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무슨 뜻이에요?"
"대부분의 우린, 별이 아니라, 스스로는 빛나지 못하는 차갑고 검은 덩어리에요. 존재란 스스로 빛날 수 없는 것.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월도 되고 때론 그믐도 되고 그런 거 같아요."
-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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