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소리 기고글에서 퍼옵니다.
www.vop.co.kr/2010/02/18/A00000282879.html
2월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이하 행안위)에서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옥외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 상정에 대한 전체회의가 진행되었다. 이는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야간 옥외 집회·시위를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집시법 제10조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후속 조치가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시간 정도 진행된 행안위 회의를 지켜보니 한나라당의 집회시위에 대한 인식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하긴 개정안을 내는데 의견수렴을 한 것이 시민도 아니고 법률가도 아니라, 강희락 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들이었다는데 그 개정안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내용을 보지 않더라도 알만하지 않겠는가. 헌재가 헌법불합치 판결은 낸 것은 집시법 10조가 헌법정신에 위배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니 이를 최대한 보장하라고 한 것이지, 경찰의 행정편의를 위해 집회를 제한하거나 국민을 통제하라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한나라당은 기본적으로 집회, 시위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 차 시민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집회, 시위는 불편함을 유발하며 부정적인 행위라는 인식을 심어주려 하는 듯하다. 시민들의 집회, 시위가 그들을 꽤 힘들게 했나보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불편하고 부적절한 것이 왜 기본권으로 보장되야 하는지, 국회의원의 역할이 무엇인지 헷갈려하는 한나라당의 입장을 한번 살펴보자.
헌법불합치 판결에 대한 남다른 이해
헌재는 5명의 위헌 의견 -집회에 대한 허가 금지를 규정한 헌법 21조 2항은 집회의 내용뿐만 아니라 시간·장소를 기준으로 한 허가도 금지된다는 의미이며, 야간 옥외집회를 허가제로 규정한 집시법 10조는 헌법에 정면으로 위반- 과 2명의 헌법불합치 의견 -과도하게 야간 옥외집회를 제한함으로써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으로부터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는 집시법 10조가 헌법정신에 위배되며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회에 대한 허가나 금지조항이 문제이니 허가를 하지 말라는 것이고, 금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의원들은 일몰과 일출사이의 시간제한은 좀 폭이 넓으니 야간에 집회할 수 있는 시간을 몇 시간 주고 나머지는 금지하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결국 야간집회는 절대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헌재의 주문을 제대로 이해는 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알고는 있지만 애써 축소하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야간집회는 폭력집회로 변질될 것이다?
야간집회뿐만 아니라 집회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는 경찰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폭력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으니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은 어떻게 이 집회가 폭력집회가 될 것임을 예견할 수 있을까? 설사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경찰은 얼마든지 진압을 할 것이며, 법적처벌을 요구할 것이면서도 늘 개최되지 않은 집회를 예측한다.
사실 현행 집시법은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이미 규정해 놓았다. 즉 집시법 5조(폭력이 예상되는 집회 금지), 8조(사생활의 평온), 11조(주요 국가기관의 안전), 12조(교통소통), 14조(소음 규제) 등을 통해 많은 조항으로부터 이미 집회는 (지나칠 정도로) 통제되고 있다.
행안위에서 한나라당의 입장도 동일했다. 야간이라는 특성상 폭력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간제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그런 판단의 근거가 궁금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밤에 폭력성이 나타나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갈수록 격화되는 불법폭력시위를 막아야한다고 했는데 이는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실제로 1년간 2398회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가운데 폭력시위는 0.6%로, 다른 나라의 집회시위와 비교해도 매우 낮다. 참으로 선진적인 집회시위문화 아닌가.
대부분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경찰이 몸으로든 차로든 막아서, 혹은 강제적인 방식으로 집회를 해산시키거나 제압하려 할 때 일어난다. 집회, 시위의 참가자가 폭력적이어서가 폭력집회가 되었다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한 행위를 합리화하려는 정부나 경찰의 표현이다.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의사표현을 들으려하지 않거나 경찰이 폭력적인 대응 때문에 의사표현이 가로막힌 것에 대한 저항의 행위인 것이다. 국회의원이라면 폭력과 저항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의사표현과 소통의 수단을 막아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 폭력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고 국가의 폭력에 비판적이어야 함이 국회의원의 역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집회시위의 자유와 국민의 안녕 그리고 민주주의
한나라당은 국민들의 행복추구권도 지켜줘야 한다며, 국민들이 편안하게 삶을 영위할 권리도 지켜줘야 한다며 야간집회를 제한해야한다고 했다. 그렇다. 나도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행복하고 편안할 수가 없어서 집회를 한다는 생각은 왜 못하고 있는가. 혹은 좀 더 행복해지고 편안해지려고 집회를 한다는 생각은 왜 못하고 있는가.
정권이 바뀌면서 각종 불법시위와 관련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부담했다며, 국가 혼란을 막고 국격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정권이 바뀌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집회를 했다. 왜 2008년 촛불집회를 그렇게 많이 했는지, 갈등과 혼란을 줄이기 위해 시민들이 원하는 것이 소통과 민주주의였다는 것을 진정 당신들은 모른단 말인가?
집회와 시위는 시민의 의사표현이며, 사회적 논의를 유발하기 위한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 시위가 정치적 의사형성에 있어 중요한 자유이며 권리이다. 또한 집회, 시위는 필연적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정도의 불편함을 유발한다고 해서 제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없다. 갈등이 있지만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의견표현이 자유로울 때 그 사회를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사회는 발전할 것이다. 그런 사회가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국격이 높은' 사회가 아니겠는가.
시민들이 할 일이 없어서 집회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 문제가 존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사회구성원의 역할이기 때문에 집회를 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은 민주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또는 그러한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있음을 알고 있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집회를 규제할 것이 아니라 집회를 유발시키고 있는 정부, 정치인, 재벌들을 규제해야 하는 것을 우선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전진하는 시민, 후진하는 국회의원
현재의 집시법은 손 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오래 전부터 학자들, 법률가들, 인권활동가들이 위헌적인 집시법 폐지를 위해 노력해 왔지만, 번번이 권력을 가진 자들의 여론 조작과 교묘한 정당화 논리에 가로막혀 왔다. 그런데 그것을 돌파해낸 것은 다름 아닌 시민들의 의지와 행동이었다. 직접 행동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입증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개정된 9차 개정 헌법에서도 나타난다. 5차 개정 헌법 등이 규정했던 것과 다르게 집회의 시간과 장소를 제한할 수 있는 조항들을 대거 삭제했다. 이는 ‘집회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던 과거 헌정사에 대한 반성과,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발전하기 어렵다는 헌법 개정권자인 국민들의 결단이 반영된 변화라고 봐야 한다.
시민들의 의식은 성숙해져가고 역사는 진화한다. 그런데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역사를 거슬러 후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개정안을 보고 시민들은 '통행금지의 부활'이라며 실소를 금치 못한 것이다. 국회의원의 본분에 대한 고민이 최소한 가슴에 달린 금뱃지만큼의 무게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집시법 개정,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논의는 다시 시작되었다. 집시법 10조의 족쇄를 끊어버릴 때가 온 것이다.
<랑희(인권단체연석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