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회의하고 자리에 돌아와서 즐찾서재를 보고 알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 했다는 사실이 영 믿기지 않았다.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줄이야 알고 있었지만...이렇게 허망하게 가실 줄은 정말 몰랐다.  

생이 있으면 사가 있는 것이고....살아있는 것은 어차피 모두 죽어야 할 운명이라면, 그분의 죽음 또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신문을 보니 좌우를 막론하고 지역을 넘어 그 분을 추도하는 분위기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와는 또 다른 풍경들.... 어제 고인의 일대기를 준비한 방송들을 보니 전부 대통령 임기까지 고인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었다. 고인이 먼저 간 후배대통령을 애석해하며 그리 울부짖었던 말들은 나오지 않았다. 이미 죽은 분.. 시류에 관계없이 좋은게 좋은거라며 넘어가는 분위기가 싫다.  

김대중 대통령.... 내 아버지가 존경하는 그분에게 난 애증이 있다. 젊은 시절 나에겐 고인은 너무 노회한 정치인이었으며,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비판적 지지'라는.... 한계는 있지만 지지하자는 그 선거전술은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나서야 결국에는 고인을 비판적으로 지지했고 대통령까지 당선되는 걸 보았으니...잘되길 바랬다.  

그렇게 잘 되길 바란 내 손으로 뽑은 두명의 대통령이 자신의 성과와 업적이 모두 거부 당하는 이 시점에서 운명을 달리 했다는 점이 가슴아프다. 어제는 마음이 허허로워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마침 공선옥의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이 있기에 구입해서 읽었다. 인생의 밑바닥 끝까지 몰린 두 여자의 이야기...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그 처참함 속에서 그 절망 속에서도 절망의 끝에는 희망이 있으리라 기대하는... 그래서 절망의 끝을 보고자 하는 그 대목이 그저 개인의 삶의 문제 같지 않아 보였다.  

이미 많이 지나버린 서른 살의 두 여인이 희망과 절망을 두고 새 출발하러 떠나며 끝나는 소설을 읽으며 나는 절망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시대가 어둡다고 하자. 암울하다고도 하자.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그래도 살아있고 살아갈 것 아닌가.... 어린 눈망울들을 위해 다시 일어나고 다시 앞으로 나갈 것 아닌가.  무엇보다 끈질기게 살아갈 것 아닌가 말이다.  

경기만 바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절망도 바닥이 있는 것이다. 입추가 지난 지금의 날씨가 폭염으로 더운 것 같아도 그 더위 속에는 가을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이다. 느끼지 못한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더 내려간다해도 걱정하지 않는다. 내려갈 수록 남은 건 올라가는 일 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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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8-20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93년인가, 대선을 치르고 비로소 눈물겨운'호남인의 정서'를 이해한 나는 그때부터 광주사람이 되었지요.ㅜㅜ
'오지리에 두곤 온 서른 살'보셨군요. 내가 그책에 필이 꽂혀 공선옥을 사랑하게 됐지요.
동지 같아서 반갑습니다~ 우리 군산에서 만나나요?^^

머큐리 2009-08-20 19:37   좋아요 0 | URL
군산에서 뵈야지요...동지 만나러 군산으로 갑니다..ㅎㅎ

2009-08-20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09-08-20 19:38   좋아요 0 | URL
그저 이 세월을 견뎌내면 좋은 일이 있을겁니다...힘내시길...

[해이] 2009-08-20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슬프네요ㅠ 우리라도 오래 살아서 좋은 날 꼭 봅시당ㅠ

머큐리 2009-08-21 14:43   좋아요 0 | URL
ㅎㅎ 당근 헤이님은 오래 살아야징~ 오래 살 수록 좋은 날 볼 확률이 높아진다는거...

후애(厚愛) 2009-08-2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군산에 가고 싶네요...
제 마음이 군산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아 주세요!^^

머큐리 2009-08-21 14:4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같이 가셨음 더 좋았을걸...마음이라도 꼭 모시고 갈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