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초안 살펴보니
곳곳에 폭탄조항…협상체결 뒤 수정 불가능
타국과 FTA체결하면 유럽연합에 자동혜택
쇠고기·금융상품 등 민감품목 개방 수위 높아 

 

2007년부터 진행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적게 받았다. 한-미 에프티에이에 견줘 정치적인 상징성이 적을 뿐더러, 독소조항이 거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초안에는 군데군데 ‘폭탄’이 깔려 있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못지 않은 수준이었다.

일단 상품과 서비스, 투자 부문에 걸친 역진 방지(ratchet 조항·일단 개방된 폭을 더 좁힐 수 없게 만든 내용)이 초안에 포함됐다. 협정 초안 7조를 보면, 우리나라와 유럽연합은 ‘당사국은 협정 수준을 끌어내리지 않는 수준에서 무역 조처를 수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는 협정 발효의 부작용이 있어도 당사국이 개방 수준을 낮출 수 있는 ‘퇴로’를 차단하는 내용으로, 한-미 에프티에이에서 집중 비판을 받았던 대목이다.

미래 최혜국 대우 보장도 논란 거리다. 초안에서는 서비스 등의 분야에서 한국이 다른 국가와 추가로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서 더 많은 개방을 약속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유럽연합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도록 규정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당시에도 이 부분은 논란을 낳았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앞으로 한국이 유럽연합, 미국을 제외한 일본, 중국 등에 대해 서비스, 투자 부분을 추가 양허하면 유럽에도 적용되는 효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알려진 투자자-국가 제소 조항은 한-유럽연합 협정 초안에서는 빠졌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단정하기는 힘들다. 유럽연합은 회원국들로부터 투자자-국가 제소 조항 분야와 관련된 협상권한은 위임받지 않았다. 따라서 유럽연합 회원국이 우리나라와 개별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이 조항을 포함시키자고 요구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금융세이프가드 부문을 보면,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초안이 한-미 협정 내용보다 강하다. 초안에 따르면, 자본의 이동에 따른 국내 외환시장의 불안이 생기는 경우에 양쪽이 세이프가드 조처를 취할 수 있는 기간을 6개월로 한정했다. 한-미 협정에서는 금융세이프가드 유지 기간이 1년이었다. 송기호 변호사는 “외환위기와 같은 비상한 상황에서나 외환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까다로운 조건을 달았다”고 설명했다. 또 금융시장 개방과 관련, 이번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된 파생상품을 한-미 협정 수준으로 개방하기로 합의했다. 저작권 문제와 관련, 양쪽은 저작권자의 사후 70년까지 저작권을 인정하기로 합의해 국내 출판·예술 산업 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 쇠고기 시장 개방과 관련, 양쪽은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에 기초(based on)한다고 명기(<한겨레> 4월22일 1면)해, 광우병이 다수 발발한 유럽 일부 국가의 쇠고기 수입 여지를 열었다. 의약품 분야의 특허-허가 연계 조항(<한겨레> 4월 20일 1면)도 초안에서 확인됐다. 한편, 우리나라와 유럽연합의 지난해 교역액은 984억 달러로, 대미 교역액(847억 달러)보다 많다. 또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액을 보면, 유럽연합이 43억3000만 달러(2007년 기준)로 미국(23억4000만 달러)을 크게 앞지른 1위였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653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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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공격…EU 독해졌다 

2006년부터 ‘무역자유화’ 강화 표방
수출업자 수익에 집중…미국 닮은 꼴 

유럽연합이 달라졌다?’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초안을 살펴보면, 유럽연합이 지금까지 맺어온 자유무역협정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 드러난다. 유럽연합은 그동안 협정을 추진하면서 경제력 차이를 인정해 개방폭도 비대칭적이면서 점진적인 방식을 택했다. 또 노동과 환경, 빈곤 퇴치 등의 문제를 교역과 연계해서 풀어냈다. 즉, ‘몸집’ 차이를 인정해서 그만큼 양보하고, 대신 인권적인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한국과 맺을 협정 초안에는 미국식 자유무역협정만큼이나 공격적인 개방을 유도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지난 2006년부터 유럽연합이 표방한 ‘글로벌 유럽’ 정책이 있다. 이 정책에 따라 유럽연합은 서비스와 투자 분야 등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무역 자유화를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새로운 자유무역협정’ 모델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 첫번째 파트너로 고른 상대 가운데 하나가 한국이었다. 지난 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내놓은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관련 보고서를 보면 “(비관세장벽 관련 합의 내용이) 지금까지 있어온 어떤 자유무역협정보다도 강력하다”고 자평했다. 또 “자유무역협정 규정 대부분의 문항들이 혁신적이고, 지금까지 유럽연합이 맺어온 어떤 협정에서도 전례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한국과 맺을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유럽연합 쪽의 구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옥스팜 등 유럽 시민단체가 내놓은 ‘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보고서’는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보고서는 “최근까지 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의 투자조항은 매우 ‘얄팍한’(shallow) 수준이었지만, 새로운 모델은 미국의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또 “유럽연합이 유럽 수출업자들의 수익에 집중하는 와중에 개발과 빈곤, 환경문제는 묻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태 기자  

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653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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