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 하지만 한 생명의 죽음은 결코 흘러가는 조각구름처럼 가벼운 건 아닐 것이다. 죽은 이가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건 이름 모를 장삼이사건 그 자체로 고귀한 생명이고 저마다 온전한 하나의 작은 우주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한 생명이 현세에서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건, 죽음 앞에 고개 숙이고 저세상으로 편안히 가길 빌어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격적인 서거 소식을 들은 지 49일이 됐다. 오늘 49재를 지내면 그의 영혼은 우리 곁을 영영 떠난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어 떠난다고 했지만 오히려 우리가 그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졌다.” 그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 힘없는 서민에 대한 한없는 애정 등 소중한 것들을 너무 많이 남기고 떠났다. 이제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너와 내가 하나 되는 ‘사람 사는 세상’으로 편안히 가시기 바란다.

그는 수백만 국민의 애도 속에 저세상으로 가지만 아직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한 맺힌 영혼들이 있다. 용산 참사로 희생된 다섯 명의 철거민들이다. 지난 1월20일 새벽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망루에서 불에 타 죽은 지 오늘로 172일째다. 하지만 아직까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차가운 냉동고 안에 갇혀 있다.

용산 참사 현장에는 고인들의 합동분향소가 차려져 있다. 유족들은 낮이면 검은 상복을 입고 분향소를 지키다가 밤에는 사랑스런 남편이자 자상했던 아버지 품으로 돌아간다. 짧은 밤시간이나마 차가운 육신과 이승을 떠나지 못한 영혼들을 조금이라도 가까이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아침이면 다시 분향소로 나와 상주 노릇을 하는 고통스런 일상을 되풀이하길 벌써 반년이 다 돼 간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서서히 잊어가고 있을 때 유가족들에게 힘이 돼준 이들은 천주교 사제들이었다. 지난 6월15일 용산 참사 현장에서 ‘천주교 사제 1000인 시국미사’를 주도했던 사제들은 그 뒤 매일 저녁 7시 참사 현장에서 추모 미사를 올리고 있다. 그 길거리 성당은 이제 ‘남일당 본당’으로 불린다. 시국미사를 이끌었던 사제단의 전종훈 대표신부는 “시국미사 뒤 유족들을 놔두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부터 바로 분향소 옆 도로에 비닐천막을 치고 유족과 숙식을 함께하고 있다.

유족과 사제들이 원하는 건 단순하다. 검찰이 숨기고 있는 용산 참사 수사기록 3000쪽을 공개해 사건의 진상을 명백히 밝히고, 책임자는 사과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망자들이 편안히 저세상으로 갈 수 있게 장례라도 치르게 해달라는 게 그들의 작은 바람이다.

하지만 이들의 소박한 요구에 이명박 정부와 우리 사회는 무지막지한 폭력과 냉대와 무관심으로 응대하고 있다. 그 사이 고인들의 영안실 비용 등은 5억원에 이르렀고, 철거용역업체는 유족들 때문에 철거가 지연돼 손해를 보고 있다며 8억7000만원짜리 손해배상청구서를 들이밀었다. 미물의 죽음에도 옷깃을 여미는 게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진대, 이 정부는 국가 공권력에 희생된 이들을 이렇게 방치하고 유가족들을 두 번 세 번 죽이고 있다.

이제 고인들을 차가운 냉동고에서 벗어나게 해줄 때도 됐다. 아니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는지도 모른다. 국가 폭력에 짓밟힌 생명을 여섯 달이 다 되도록 냉동고에 가둬두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49재까지는 지내주지 못할망정 장례라도 치르게 하는 게 우리 사회가 해줄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용산’이 우리 시대의 양심을 시험하고 있다

www.hani.co.kr/arti/opinion/column/3649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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